"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나의 최애작이다. 애니메이션중에 최애작 말고 그냥 남버원이다.제목만 불러봐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인생작이다. 몇십 번을 반복해서 봤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볼 때마다 감탄한다. 어떤 천재면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애니메이션 얘기를 하면 아빠가 떠오른다. 몇살인데 아직도 动画片을 보냐고. 아빠는 모르시겠지만 삼십대 후반인 지금도,애 엄마가 된 지금도 나는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유일한 동기는 애니메이션을 자막없이 보고 싶기때문이다.

진작 이에 관한 글을 적으려고 했지만 후기도 아닌, 리뷰도 아닌 스토리에 대한 나만의 글을 이제야 끄적여본다. 아마 나의 최애작이어서, 지금까지 엄두를 못 냈을지도 모른다고 핑계를 찾아본다. 성스러운 뭔가를 내가 감히 글자로 옮겼을 때의 그 때탐을 견딜 수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름 합리화를 해본다. 오늘도 이렇게 미루는 버릇 때문이었다고 심플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구구절절 변명거리를 찾아본다.

"센"과 "치히로"는 한 주인공의 두 이름이다. 8세나 9세 정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치히로는 그녀의 본명이다. 

작은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된 치히로는 이사 가는 날, 운전하던 아빠가 숲속에서 길을 잘 못 들어서는 바람에 테마공원 잔해처럼 보이는 터널 같은 건축물을 보게 된다. 차에서 내린 치히로는 으슬으슬 불어오는 바람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돌아가자고 엄마 아빠에게 조르지만 엄마 아빠는 겁도 없이 성큼성큼 터널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안 들어간다고 버티던 치히로는 혼자 더 무섭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면서 엄마 옆에 바싹 다가선다.

터널을 지나보니 피아란 하늘에 가슴이 탁 트이는 뷰가 보인다. 엄마는 피크닉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으로 시원한 바람을 만끽한다. 엄마에게는 그저 시원한 바람이 치히로에게는 뭔가 우는소리처럼 들린다.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치히로와는 달리 엄마 아빠는 뭔가에 홀린 듯 계속 걸어간다. 어른의 판단이 아이보다 낫다고 과연 자부할 수 있을지 한 번쯤은 의심하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거부하기 힘든 향긋한 냄새가 아빠의 코를 자극한다. 냄새를 따라가니 맛집처럼 음식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가게 주인은 어디도 안 보이고 침샘을 자극하는 푸짐한 음식들만 가득 차려져 있다. 엄마 아빠는 고민도 없이 주인이 오면 돈을 내면 된다고 하고 음식을 주워 담고 입에 넣기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고기가 뼛속까지 부드럽다며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잔뜩 긴장한 치히로는 주인이 오면 화낼 거라고 강력하게 주장해보지만 아빠는 신용카드며 현금이 두둑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 시킨다. 어른들은 지극히 육체적이다. 그리고  뭐든 돈이 해결사라고 믿는다.

치히로는 그렇게 인간에게는 금지된 신의 세계, 인간이 아닌 온갖 신들을 위한 유바바의 목욕탕집에 오게 되었다. 곧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지고 해지기 전에 이곳을 당장 떠나야 한다는 낯선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걸어왔던 길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호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물로 온통 뒤덮여 있다. 빨간 불빛이 반짝이는 유람선 같은 배가 정착을 하더니 정체를 모를 온갖 신들이 하나둘씩 줄을 지어 내리기 시작한다.  치히로가 엄마 아빠를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돼지로 변신하여 꿀꿀대며 가게 주인에게 비참하게 채찍질 맞고 있었다.

이쯤 되면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겁 많은 어린 치히로는 용기를 내어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엄마 아빠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스토리상 플롯만 보면 사실 굉장한 건 없다. 하지만 2003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포함하여 엄청난 상들을 싹쓸이한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사로잡은 걸까. 바로 캐릭터들이다. 주인공부터 시작해서 하쿠,유바바, 제니바,카마지,가오나시,보…숨겨진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캐릭터들이다. 

어딘지도 모르고 마법의 세계에 들어온 치히로에게 이곳에서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던 남자아이가 하쿠다. 하쿠는 유바바에게 마법을 배우려고 제자가 되어 시키는 일을 가리지 않고 하는 아이다. 하쿠, 일본어에서는 "용"이 아닐까 대충 짐작을 해본다. 그 아이는 변신을 하면 용이 되니까.

이 목욕탕의 주인인 유바바는 무서운 마녀할매다. 재밌는 사실은 그에게 똑같이 생긴 쌍둥이 자매 제니바가 있다. 금을 좋아하고 부하를 부려먹고 화를 내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유바바와는 달리, 제니바는 작은 집에서 살지만 정직하고 베풀며, 상냥하지만 파워풀한 마녀다. 이 쌍둥이는 결국 한 인간의 두 모습이 아닐까 .

유바바의 세계는 인간이 머무를 곳이 아니다. 유바바의 눈에 인간은 그저 탐욕을 부리고 게으르고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몸에서 악취가 나는 존재다. 엄마 아빠는 탐욕을 부린 대가로 돼지로 변해버렸다. 이곳에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일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치히로는 하쿠의 도움으로 유바바를 찾아가서 일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유바바는 엄청 화를 내면서 "너같이 노크도 안 하고 예의도 없으며, 게다가 효로효로(들을수록 재미져서 일본어에서 따온 말) 하게 비쩍 마른 애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라며 무서운 말로 치히로를 겁을 주지만 치히로는 끝까지 일을 하게 해달라고 끈질기게 요구를 한다.

유바바는 알겠으니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하고는 "치히로"라는 그녀의 이름을 손안에 넣고, "넌 이제부턴 "센"이라고" 하면서 새 이름을 지어준다. 유바바가 한 존재를 길들이는 방식이다. 본명을 잊게 하고 지어준 이름으로 살게 한다.

자신의 이름을 잊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쿠는 센에게 말해준다. 센은 이사 가기 전 다니던 학교의 친구들이 적어준 카드에 적힌 자신의 본명을 보면서, 치히로가 본명임을 떠올리고 마음속에 저장을 한다. 정작 하쿠는 자신의 본명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바바의 노예로 시키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신세다.

치히로는 돼지 무리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돼지들을 보면서 그중에 갇힌 엄마 아빠에게 너무 많이 먹어 살찌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는, 꼭 구해줄 거라고 울면서 뛰쳐나간다. 하쿠가 가져다준 주먹밥을 치히로는 울면서 먹는다. 양볼에 주룩주룩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치히로는 덜렁대고 실수투성이다. 일을 남보다 야무지게는 못하지만 냄새나고 더러운 일이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또한 슬프면 울어버리는 겁이 많은 여자아이다. 하지만 묵묵히 견디고  포기를 모르는, 어쩌면 그래서 누구보다도 강한 여자아이다.

유바바의 명을 따라 제니바의 도장을 훔쳐 위험에 처한 하쿠를 살리기 위해, 치히로는 돌아오는 기차도  없는 기차를 타고,  제니바를 찾아가서 사과하고 도장을 돌려드린다. 카마지(거미처럼 여러 개의 팔과 다리를 가진 할아버지) 말대로 겁이 많던 치히로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아이(爱)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겁이 많던 치히로는 누구보다도 용감해진다.

덕분에 살아난 하쿠가 용의 모습으로 치히로를 데리러 가고 용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치히로는 어렸을 적에 강물에 빠진 신발을 찾으려고 하다가 강물에 빠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은 아파트 건축으로 없어져 버린 그 강물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 강의 이름은… 그 강의 이름은… 하쿠의 원래 이름은 코하쿠강이야!" 덕분에 하쿠는 자신의 본명을 떠올린다. "치히로, 고마워. 진짜 내 이름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야."

인간의 세계로 돌아가는 치히로를 데려다주며 하쿠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을 한다. "나는 더 이상 못 가.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치히로의 질문에 하쿠는 대답한다 "응, 반드시!"

터널을 지나서 차 있는 데로 돌아오니 엄마와 아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치히로에게 가자고 한다. 차에 덮인 나뭇잎과 제니바가 선물해 준 머리끈만이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증명해 주듯이 말이다. 

어른은 마지막까지 무지하다. 돼지가 되었던 기억도 없다. 신의 세계에서 돼지었을 때 인간이었던 기억도 없듯이 말이다. 깨어있었던 사람은 치히로뿐이었다. 어린 왕자가 묘사했던 어른들도 별반 다름이 없다. 제대로 된 질문도 할 줄 모르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다. 솔직히 가끔은 딸아이 눈에 내가 그런 어른으로 비칠까 두렵다. 

가오나시는 그렇게 수십 번을 봐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막연하게 얼굴 없는 귀신이라는 이 캐릭터는 대체 정체가 뭘까. 가오나시는 떠돌이 신세고 외로워 보인다. 

비 오는 날 치히로가 가오나시에게 문을 열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가오나시는 치히로를 도와주려고 하고 금을 주려고 한다. 금이 필요 없다고 거부를 당하자 가오나시는 화를 내면서 치히로를 공격한다. 가오나시는 목소리가 없다. 개구리를 삼키면 개구리 소리를 낸다. 유바바 목욕탕에서는 만행을 저지르지만 제니바 집에서는 그 누구보다 평안해 보인다. 얼굴도 목소리도 없는 가오나시, 어쩌면 기댈 곳 없는 우리의 마음 같기도 하다.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본연의 모습 그대로, 이름 그대로 불러주고 기억해주는 일 말이다. 치히로와 하쿠처럼 서로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누군가가 그대의 옆에도 있기를 소원한다. 아니면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이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을 공유하기:

쭈앙

그저 글쓰는 사람이고 싶은 일인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7
응원합니다

댓글 남기기

    1. 오~ 아니군요~치히로가 변신한 용이 하쿠인줄 모르고 흰 용을 보더니 “하쿠” 라고 부르다가 그 하쿠인줄 알아차려서 용인줄 알았네여 ㅋㅋ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은 자막번역만 보면 잘 이해 안되는 장면들이 있어서 그럴땐 평강님이 부럽습니다🙃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