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는 그냥 좋아서 축구를 본다

심섬

4년에 한번씩 세계인들을 축구축제의 도가니속에 함몰시키는 월드컵이 올해는 삼바의 나라 브라질에서 열릴 예정이다벌써부터 어떻게 한달동안 밤을 새며 봐야 하나 행복한 고민(?)이 스멀거리기 시작한다.

축구얘기가 나오면 지난 세기 90년대말이 떠오른다그때는 중국축구가 본격적으로 프로축구의 길에 들어섰고 갑A에서 연변팀은 유일한 소수민족팀이라 각광을 받고있을 무렵이였다우리는 원정경기는 경제여건에 시간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가지 못했지만 고향에서 진행되는 홈장경기는 빼놓지 않고 보았다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연길은 말그대로 명절날이나 다름없었다오후에 진행되는 경기지만 벌써 오전부터 경기장부근은 후끈 달아올라 있었고 일찌감치 경기장 부근에서 술판을 벌리고 이제나저제나 경기시간을 기다라는 축들도 꽤 많았다.

그날 우리는 점심에 벌써 얼근해져서 경기장을 찾았다산동팀(제남태산)과 연변팀(연변현대)의 경기일찍 몇겜을 앞두고 벌써 탈락의 위험선에서 벗어난 산동팀은 여유만만한 모습인데 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연변팀은 긴장을 늦출수 없었다관중석이 미여질듯 했고 경기시간이 가까워올수록 경기장의 열기는 더욱 고조되고있었다.

마침내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였다반드시 3점을 따야 하는 연변팀은 관중석을 꽉 메운 고향축구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초반부터 밀물공세를 들이댔다나도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있었다전반 41분 홍순구의 발에서 골이 터졌다시원한 한방이였다축구장이 삽시에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나는 흥분을 가무리지 못한채 옆에 앉은 낯모를 사람을 껴안고 그의 잔등을 세차게 두드렸다내가 아마 좀 과했나보았다그 사람은 좋지 않은 눈길로 나를 쏘아보았다그러거나 말거나였다이어 후반 63분 김광주가 추가골로 상대방의 골문을 갈랐고 한국적 선수 리준택이 경기종료를 앞두고 연거퍼 두골을 박아넣었다비록 한골을 내주면서 산동팀의 체면도 세워주었지만 탈락의 낭떠러지에서 촌보의 여유도 없었던 연변팀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3점이였다.

경기가 끝난 다음 곁에 앉아 같이 구경하던 형이 나에게 빨리 자리를 뜨자고 재촉했다나중에 술상에 앉아서 형한테서 들을라니 내가 경기를 보는 내내 너무 날치는(?) 바람에 주변에서 아니꼬운 눈길들이 적지 않았고 특히 나한테 안기운채 잔등을 세차게 얻어맞은 그 한족사람(혹시 속으로 산동팀을 응원하던 축구팬이 아닌지도 몰랐다)은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나를 자꾸 째려보았다는것이였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는 축구를 보며 싸우는 일도 많았고 경기가 끝난 다음 뒤풀이를 한답시고 술을 마시다가도 술병이 날아가는 일이 비일비재였다그렇게 나는 본의아니게 축구경기를 보다가 얻어맞을번(?)하기도 했다.

그때는 진짜 축구에 미쳐 살았다. 1998년이라고 기억된다그때 최은택감독에 의해 4강진출에 성공한 기록을 가지고있던 연변팀은 중국의 강호축구팀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였다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연변팀에 꺾이우기 일쑤였고 강한 팀일수록 연변팀은 더욱 분발했는지도 모른다한번은 연변팀이 중경에서 원정경기를 치르게 되였다연변팀은 원정경기지만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가고있었다그러다가 선방을 날린것이 상대방의 골문에 꽂혀버렸다. 0:1 연변팀이 앞섰다그러나 일은 거기서 터졌다심판은 줄곧 연변팀에 옐로카드를 내들며 편파판정을 하다가 결국 패널티킥을 불고야 말았다고종훈이 달려갔고 선수들이 달려가 항의했다그러나 주심을 설득할수 없었다. 1:1. 그러고도 연변팀이 일단 상대선수한테 따라붙기만 하면 가차없이 경고가 내려졌다결국 연변팀은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2:1로 역전당하는 수모를 겪고야 말았다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던 고종훈은 CCTV카메라에 대고 분노의 경전을 뿜어냈다. <중국축구는 희망이 없어요!>

원정경기라 현장에 가지 못하고 텔레비전으로 관전하던 연변축구팬들은 억울함을 삭힐수 없었다연길 시대광장에서 자발적인 성토대회가 열렸다. <검은 호루래기는 물러가라!><공정한 재판을 요구한다!> 나도 거기에 가담했다그날따라 하늘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있었다우리는 프랑카드를 들고 연길시내를 걸었다시대광장에서 축구팬구락부로축구팬구락부에서 연변의학원으로연변의학원에서 연변대학으로… 

어쩌면 축구는 사람이 심판을 서길래 더욱 볼만한지도 모른다늘 일희일비를 껴안고 진행되는 축구경기는 그래서 남자들의 경기라 할수 있다웬간한건 상대팀에서도 웃으며 넘어가준다호협한 사내들의 흉금이다그러나 도를 넘으면 용서가 되지 않는다그것을 알면서도 돈에 눈이 어두운 일부 심판들은 계속 검은 호루래기를 열심히 불어댄다달갑게 력사의 죄인이 되는것이다돈 몇푼으로 자신의 인격을 팔아먹는것이다.

몇년전 북경에 가서 강습을 할 때도 낮에는 강의를 듣고 저녁이면 지인들과 맥주를 마시며 월드컵경기를 빠짐없이 보았었다한국이 16강진출의 쾌거를 일궈내던 그번 경기를 나는 누이동생네 집에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한국경기를 보는 한편 스마트폰으로 다른 경기를 보면서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었다.

만삭이 된 안해를 무시한채(?) 월드컵을 보았다고 지금도 안해는 두고두고 바가지를 긁는다그러나 바가지를 긁어도 그게 무슨 대수랴나는 남들처럼 도박을 놀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춤판에 다니거나 하지도 않는다축구경기가 있으면 그것이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잠을 설쳐가며 본다례의 맥주 한잔을 기울이면서.

소동파는 <하루에 려지 삼백알 먹으니 한뉘 령남에 산들 마다할소냐>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긴적이 있다그것을 패러디하면 <맥주잔 기울이며 축구경기를 본다면 한뉘 바가지를 긁히운들 마다할소냐>가 될것이다.

그렇다나는 그냥 내가 좋아서 축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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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60후 자유기고인. 가을을 유독 좋아하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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