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로 위로하고 싶다

        오월에 막 들어선 어느 날이다. 거멓게 흐린 하늘에서 하루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늦가을의 비 만큼이나 을씨년스럽게 내렸다. 그러더니 저녁 때가 되여 느닷없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잠간 흩날리려는가 싶더니 커다란 눈송이로 변하여 한참을 내렸다. 오월의 눈이라니… 모두가 위챗 모멘트에 사진이며 동영상들을 찍어올리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누구는 랑만을 즐겼고 누구는 리유없이 들떠있었고 누구는 지구의 이상기후를 걱정했고…

        늦은 퇴근길, 나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빠트단지 내의 한메터 정도의 높이도 될가말가한 작은 꽃나무와 마주쳤다. 크고 화려한 꽃보다 자잘한 꽃들에 더 마음이 가는 나여서 지나다니며 늘 눈길을 주던 꽃나무였다. 높다란 아빠트들에 가리워 해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 도로변의 살구나무며들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울 때 겨우 앙증스러운 꽃봉오리들이 맺히였고 어느 날 급기야 수두룩이 피여있었다. 봄을 간절히 기다린듯 유난히 진한 빛갈로 피여있던 꽃이였다. 봄꽃이라는 화사한 어감만으로도 아름다운데 그 빛갈까지도 아주 아름답던 꽃이였다. 긴 겨울의 춥고 외롭고 메마르고 배고픈 령혼들을 달래며 꽃은 그렇게 음지에 조용히 피여있었다.

        그 꽃송이들에 지금 젖은 눈이 버겁게 내려앉고 그것이 다시 얼음이 되여 꽃잎을 덮고 있었다. 얼마나 추울가? 얼마나 두려울가? 이 어둡게 흐린 하늘 아래 얼마나 막막하고 원망스러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꽃잎에 맺혀진 얼음을 톡톡 쳐서 떨어뜨렸다. 그런데 꽃잎이 얼음과 함께 뚝 떨어졌다. 순간 몸이 움칫했다. 꽃잎의 비명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뭉클해져서 한참을 조용히 곁에 쭈크려앉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눈안에 눈물이 고여오고 가슴 속으로 한기가 퍼져올 즈음 집으로 들어왔다. 

        잠들기 전까지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차있었다. 밤 내내 어둠을 잘 견뎌낼가? 가슴 속까지 엄습해오는 랭기는 얼마나 혹독할가? 얼고 찢긴 상처들은 얼마나 아플가? 다른 사람의 아픔이 엄살처럼 여겨져 내 자신도 엄살을 부리지 않으며 살아온 내게 이런 감정이 있을 줄을 몰랐다. 사람들에게도 따스하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튿날 급한 출근길임에도 나는 그 길로 에돌아가며 꽃나무를 바라보았다. 얼음은 녹아버리고 꽃송이는 별다른 이상이 없이 여전한듯 싶었다. 그래 잘 견뎌낼 거야 하며 생명의 힘을 믿었고 또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직장으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꽃송이에 마음이 가군 했다. 괜찮겠지? 어둡고 추운 밤도 이겨냈는데 해살도 따뜻하고 바람도 따뜻한 이 낮시간 동안이야 잘 이겨내주겠지? 

        저녁 부랴부랴 퇴근하여 나는 꽃나무와 다시 마주했다. 색이 희멀겋게 바래지고 하루낮의 바람과 해볕에 말라버린 꽃들이 거기에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열성을 다해 봉오리를 밀어올리며 꽃을 피웠는데… 시들고 비틀린 꽃잎을 바라보며 내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 고운 꽃들이 이렇게 되다니. 꽃들은 찢기고 말라들고 덩어리진 채 볼품없이 일그러져있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였음에도 이렇게 초라하게 매달려서 되려 부끄러워해야 하는 슬픈 꽃송이들에 못내 가슴이 아려왔다. 허무감이 들며 온갖 알 수 없는 슬픔이 모여들었다. 그 여린 몸과 맘으로 부딪친 끔찍한 불행에 진저리가 쳐진다. 꽃잎의 엷은 숨결이 내 가슴을 바르르 떨리게 한다. 나는 눈물겹게 꽃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만지지도 못했다. 꽃송이 채로 툭 하고 떨어질듯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아, 너무 많은 이 슬픔을 어찌할가? 

        그 때 바람이 불어왔다. 그 순간, 마른 꽃잎들이 자신을 던져 그토록 편안한 몸짓으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서두르지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비물 고인 땅으로 떨어졌다. 그 꽃잎들의 향기가 공기 중에 아련히 퍼진다. 그것은 눈물의 향기였고 아픔의 향기였다. 아름답게 피였다가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꽃나무에 매달려 안깐힘을 쓰지도 않고 자기의 상처로 인해 꽃나무가 안으로 썪지 않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그 진실되고 용기 있는 선택이며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그 힘이며 너무 거룩했다. 죽음을 준비없이 맞았으나 애원도 집착도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맞이하는 그 아프도록 눈부신 몸짓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가? 바람도 한결 얌전하고 부드럽게 불어갔다. 나는 다만 조금 숨 죽여 흐느꼈다. 그들의 아픔을 함부로 입을 열어 위로할 수도 함부로 손을 내밀어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뜻밖에 평화롭게 웃음 짓는 꽃나무와 다시 만났다. 그들은 모든 아픔을 떨쳐내고 다시 웃고 있었다. 그래 잊어야 해. 잊어야 하는 거야. 숙명적인 아픔이였다. 잊어야만 다시 아름답고 향기로운 생명을 가꾸어갈 수 있는 슬픈 섭리였다. 상처와 죽음을 부둥켜안고서는 도무지 다시 꽃을 피울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의 환생을 만들어내기 위해 미련없이 홀연히 보내주어야 했다. 아니면 치유되지 않는 아픔으로 생명 전체를 갉아먹게 될 것이다. 지나간 상처를 잊으며 생명에 대한 뜨거운 정열과 열정으로 더 짙은 빛갈과 향기로 피여난 꽃잎들이 아프도록 아름답다. 

       어쩌면 스스로 몸을 던져 떨어져나가는 꽃잎보다 그 꽃잎들을 버려야 하는 나무의 립장이 더 아픈지도 모른다. 버려가는 아픔을 참고 견디는 건  강해서가 아니다. 다만 그래야 새로운 삶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였다. 나무가지의 어디 쯤 상처가 남아 그 자리에 새로운 꽃이 피더라도 가끔 뿌리 깊숙이 어딘가는 욱신거리기도 할 것 같다. 그래서 피여난 꽃들이 더 아름답고 더 슬픈 게 아닐가. 자연의 생리에 몸을 맡기고 순응하며 아름다운 생명을 가꾸어가는 모습이 눈물겹다. 그 모두가 가슴으로 스며들어와 생명의 빛갈과 무게와 지혜를 가르친다. 

        어찌 아픈 것이 이 꽃나무 뿐이랴. 그 누구나 만져지는 아픔 서너개 쯤은 간직한 채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닐가. 이제 가슴에 담긴 아프고 슬픈 것들을 훌훌 털어내야 한다. 언제나 날카롭게 찔러대며 가슴을 피 흘리게 하고 령혼을 파괴하는 상처들을 버려야 한다. 건강한 삶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본능 역시 아름다움일 뿐이다. 

       올해 5월의 봄, 나는 아름다운 시 한수로 그 눈부신 아픔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만큼 아파보지 못한 탓으로, 또 꽃들이 너무 아름다운 탓으로 결국 한구절도 쓰지 못했다. 나의 서툰 시로 감히 위로할 수가 없었고 가장 아름다운 시어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사라져간 꽃잎들도 새로이 꽃을 피운 꽃나무도 내가 그들로 하여 아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또 자신들이 결코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존재이기를 원치 않는지도 모른다. 

        꽃나무는 이미 더 예쁘고 더 밝고 더 씩씩하게 나와 마주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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