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집 가장은 당연히 근엄하고 위엄있는 아버지였었다. 우리 6남매는 누구하나 아버지에게 대꾸는 커녕  의사표달도 못할 정도로 꼼짝 못하고 무서워 했었다.
  우리 아버지는 엄숙하면서도 도리를 따지며 촌에서도 지서공작을 하면서 존경받는, 철저히 원칙을 지키는 분이셨다. 동네에서는 '철저히' '반드시'가 아버지의 대명사였을 정도로 위망있는 분이셨다.  나의 동네 친구들은 자기 아버지한테 종종 맞기도 하면서 터지며 지내였었지만 우리형제는  한번도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적도 욕을 먹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왜 아버지를 무서워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길 노릇이였다. 나는 그때 가장이면 위엄도 있고 욕한마디 매 한번 안 들이대도 자식들이  벌벌 떠는 무언의 위력감 그런게 가장이라고 인식이 박혀 버렸다.
  가장하면 대개 한집안의 세대주 즉 기둥이자 한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를 뜻한다.내가 알기론 몄전년 기나긴 인류 력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보거나 대대손손 우리들의 선조들 전통으로 보나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가장이 될수 없었다. 중학교 력사 시간에 배운 기억에 의하면 세상을 지배한 황제나 영웅 호걸이나 평범한 백성이나 거의가 다 남자였고 가장이였던것이다. 력사의 긴흐름 한페이지에 모계씨족이 생겨 나서부터 짧은 한세기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그런 사회도 있었던걸로 알고있었다.
   6남매 막내로 자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남인 형님이 장가든 후에도  형님이 가장노릇을 하다보니 나는 항상 가장을 섬기는 '머슴'같은 존재였다. 그러다가  내나이 30을 넘겨서야  총각딱지를 벗으면서 늦게나마 가장대오에 가담하여 위로는 년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옆에는 (그때는 착했뎐?)  지금의 아내와 아래로는 하나 밖에 없는 귀여운 따님을 챙기야 하는 가장이 될수 있었다. 그것도 고작 5년 대통령 임기 보다도 짧은 2년이 되나마나한 기간이였다. 아내가 나와 결혼한지 2년도 안돼서 한국에 가버렸기 때문이였다.
아쉽게도 중학교때 반장자리 3년째 해먹었던것보다 짧은 장'長'자 자리였다.
  그러다가  아내 따라 한국에 들어온 이후 언제부터인가 나의 장'長'자 자리는 저도 모르는사이 아내에게 서서히 뺏겨가고 있었다. 집문서에는 한국에 먼저 온 아내가 세대주가 되여 있었고 나는 남편으로 적혀 있었다. 2인자인 샘이다. 중국에 있을 때와는 완전히 순서가 잘못되여 있었다.
   따님을 한국에 데려 온후 '어린이집'에 보낼 때나 중학교 다닐때나 지금 고등학교 다닐때나  집에 날아 오는 통지서, 각종 수도세 전기세 해트폰요금  집문서 등 모두 세대주란에는 아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사건의 심각성'을 잘 몰랐다. 애가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선생님은 모든 행사나 여건들을 다 아내 한테로 직접 문의하고  동의를 구하곤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더니 어느 순간 슬슬 나의 가족에서의 위치나 존엄마저 서서히 아내에게로 옮겨가는 것이였다.
어느 사이 '궁정의 난'이 일어 정권을 빼앗긴지도 모르고 나는 열심히 밖에서 '머슴'처럼 일만하고 있었다.
  눈썰미 좋은 딸애도 이젠 권력의 이동에 눈치 채고 무엇이나 엄마하고 상의한다. 물론 내가 거의 직장에서 주숙하며 주 한번이나 2주 한번쯤 집에 가다 보니 아내가 거의  혼자 집에서  당나라 여황제 무측천처럼  남편이 붕거한 이후 행했던것처럼 독주 일인 체제로 '국가정세'를 결정하고 집행해 나가고 있었다.
 나의 임무란 거의 한달째 벌어둔 월급을 아내의 계좌에 텔레뱅킹으로 이체해서 입금해 주면 끝이다. 그사이 집에서 아내가 서서히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왕관을 쓴채 우리집의 가장 세대주 행세로 '집정' 하고 있었던것이다.
  하늘 같았던 아버지를 가장으로 모셨던  나의 어렸을 때와는 정반대로 우리집 공주의 안목에도 이제는 아내를 우리 집 1인자로 비쳐가고 있었다.
그 계기가 된 일이 한번 있었다. 치욕의 1910년 8월29일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한일병합협정)이나 청조의 8국연합군과 맺은 신축조약(辛丑条约)에 버금가는 사건이였다.
  어느 굴욕의 날 밥상에 앉아 돈을 세고있는 아내에게 우리집 따님이 용돈을 좀  주라고 졸라대는 것이였다.  마침 그때 나도 이때다 싶어 랠 떠날 버스 요금이 모자라 현금2000원을 달라고하니  (요것들이 돈밖에 모르네) 하고 아내의 흘기는 눈길을 받으며  마지못해 주는 용돈을 잽싸게 넙적 머리를 조아리며 두손으로  고작2천원을 받아 내고는 속으로 쾌자를 불럿던 추태가 그때의 불평등 조약을 맺었을 고종황제나 청조말기의 '여황' 나라씨의 심정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그때 쓸쓸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는 딸애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월급은 다 바치고 용돈을 얻어 쓰는 나의 처량한 모습으로 따님의 마음속에서 아빠의 가장권위 자리를 지켜낸다는것은 바다속에 모래성을 쌓는것과 다를바 없이 허무한 짓이였다.
  얼마전 이내가 아빠트를 샀는데 나보고 보험관리사를 보낼테니 대출서명을 하라는것이였다.   내가 대출서명을 하고 보니 집문서 공인인증서 명의에는 아내의 이름이 버젓이 세대주로 되여 있었다. 그곁에 2인자  배우자란에다 나의 이름을 술을 먹인 오리처럼제 위치를 찾지 못한채 초라하게 적어놓았다. 이젠 집에 수리공을 부를때나 일가 친척 형제에게 부조를 할일이 있을때나 자기용 승용차를 살때도 상의 없이 혼자 알아서 다 해 재끼는 아내다.  아내가 가끔 나가 차를 몰고 소풍이라도 하라 해도  따님이 아침 늦게까지 자다가  일어 나서 학교 등교시간이 늦어질때 아내는 피곤하거나 술을 먹고 취했을 때면 나를 보고 애를 차에 태워  보내주라 한다. 그럴때면 나는 운전기술을 다잊어 버렸다며 딸에게 2만원을 주며 택시를 불러 보낸다. 하긴 운전면허나 땃을뿐 차에는관심이 없는 나다. 따님의 눈에 내가 2인자로 보일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직장에서 주숙하며 일을 하니  차를 몰고 다닐 일도 없을 뿐더러 술을 좋아 하다보니 어느 술좌석에도 차를 몰고 갈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이젠 진짜로 운전기술도 무용지물이 된것 같다.가끔 친구 모임때  운전 한다며 술을 못 마신다는 친구들을 볼때면 왜  술도 안먹으며 다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였을가?! 나는 쓰레기 담당에 집 청소에  설겆이에 상까지 치우는 자신의 모습을 의아하게 발견하게 되였다. 그기다가 더 놀라운것은 이제는 본의 아니게 아내에게 물을 떠달라고 하면 물을 떠주고  커피를 타서 달라면 커피도 타주게된다. 심지어 새벽녘에 달콤한 꿈나라에서 선녀같은 아가씨와 구름 같은 다리위로 산책하 며 꿈속을 해멜 때도  다리를 주무르라고 깨우는 아내다. 이럴땐 정말 안 미울수가 없다. 하지만 싫은 기색없이 눈등을 비비며  꿈속에서 깨지도 못한채 직업이 전문 마사지사라지만 종아리랑 허벅지랑 엉덩이며 허리며 어깨를 대충대충 얼버무려 주물러 준다.
  딸애도 이젠 나의 2인자 역할에 체념 한듯 쓰레기 버리기며 그릇 씻는 일은 나에게 넘기려한다.  어쩌다 직장인 서울에서 충청북도 혁신도시에 있는 집으로 가는날이면 식기들이며 재활용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져있다. 아내와 딸애가 내가 집에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기라도  하는듯 참담하기도 하다.
세대주의갑질인가 반항은 금물. 자칫하다간 쉽사리 구할수 없는 세대원 자리에서도 잘릴수가 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바이러스처럼 성형되는 졸혼. 황혼 이혼을 생각하면 말만 들어도 무한 바이러스 같이 온몸이 오싹해 난다. 그러잖아도 가끔 요즘 졸혼도 유행이란다며  슬쩍 으름장을 놓을때도 있다. 집권 정치의 한수인가보다.
  반년전인가 아내가 180만주고 강아지 한마리를 사다 놓았다. 견종으로는 포메이고 이름은 마루다. 그야말로 세대주 아내와 3인자 공주님(사실은 2인자임)의 독제강경 정책이 아닐수 없다. 하루는 나의 민원 청원으로  우리가족(반려견포함) 넷이 가족 서열 순서를 정하는 비정상회의를 했는데 딸애가 하는 말이 아빠의 서열이 4번째란다. ㅋㅎ 소웃다 꾸레미 터질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아빠의 자존심을 세워주려는듯
'난아빠 위해 공부해요. 커서 돈 많이 벌어 아빠 용돈 두둑이 줄게요'라고 아양을 떤다.
 딸애가 이럴때는 꼭 치킨이나 피자나 먹고 싶을때가 아니면 용돈이나 필요할 때가 온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진심이기를 바랄뿐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세상이 이렇게 빨리 바꿔다니. 모계씨족 사회가 다시 오려는것은 아닐런지. 20년째 세대주를 하고있는 아내다.
   실은 아버지처럼 1인자는 하고 싶어도 못하니 체념한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직  나에게 사랑?해 주는 아내가 있고  존경?!해 주는 공주가 있고   좋아해 주며 반기는 강아지(이건 믿는다!)들로 뭉쳐진  행복한 우리 가족이 있다면 세대주가 아닌 세대원 자리에서  조선시대 최말단 종9품직인 참봉이 되더라도  두 여자를 섬기며 달갑게 살아 가고 싶다.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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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이

林海的儿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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