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몇통의 생일 추카문자를 미리 받는다 . 음력으로 쇠는 생일이지만 양력에도 기억해주고 꼭 꼭 연락오는 반가운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사실은 나 본인도 매년마다 자기 생일을 모를때가 많다.  달력보고 계산해봐야 하니깐.

한해는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에 그냥 양력으로 정하고 친구들이랑 생일을 보낸적도 있다. 엄마는 다신 그러지 말라고 당부한다. 내가 태어나던 해가 마침 윤달이라 5월이 29일까지 있었는데, 옛말에 <음력으로 6월 여자는 애물, 6월 남자는 효자 >라는 말이 있어서 태동도 없는 나를 굳이  재왕절개 수술을 하고 낳았단다. 혹시나 여자일까봐. 

어찌됐건 그 과학적 근거도 없는 말에 나는 6월의 여자는 애물이란 딱지를 가까스로 피해가고 5월의 마지막 잎새로 태어났지만 지금도 내 생일이 항상 헷갈리는건 사실이다. 아무렴, 지인들은 더 헷갈려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매번 생일 추카문자를 두번씩 받으면서 <이날은 재왕절개한 엄마가 젤 수고한 날이니, 엄마한테 꼭 효도하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엄마가 아닌 아빠에 대해 좀 얘기해보려 한다. 

부친절이 내 양력생일이랑 우연히 하루인 한해라는 핑계로 아빠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적었던  자신에게 어쩌면 마땅한 이유를 제공하는 중이다. 

아빠는 부끄러움이 많은 남자이다. 표현이 서툴어서 부끄러움이 많은지, 너무 사랑해서 부끄러움이 많은지, 그는 그저 부끄러움이 많은 남자였다. 

늦둥이로 얻은 독신자녀인  나는 그에게 전부의 세상이었다. 금지옥엽이었고 둘도없는 공주였다.

 어릴때 마루에 걸터앉으면 아빠가 와서 신발끈을 묶어주던 기억이 난다. 내가 허리 굽히지 말라고 아빠가 무릎을 꿇었단게 지금 생각하면 괜히 송구스럽다. 

내가 태어날 때 엄마는 수술을 했었으니 아빠가 나를 먼저 보고 엄마한테 <우리 딸 너무 뽀얗고 완전 이쁘게 생겼다>고 좋아서 달려와 말했단다. 그리고 엄마가 본 나는 아주 평범한 너무 하얗지도 완전 이쁘지도 않은…대신 진짜 무게가 많이 나가서 보들보들한  곱덩이 같았다고 회억했다. 

크면서 찍은 모든 나와 아빠의 사진은 늘 정면을 보는 아빠의 시선을 찾기 힘들었다. 왜냐면 다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사춘기가 오면서 그게 좀 부담스러워서 더 툴툴대고 반대로 삐뚤어지는 나였지만 그걸 애교라 받아주며 해시시 하시던 그 표정은 결국 아빠의 인상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용돈달라 호통치고 너 혼자 미국에서 잘사냐고 뭐라하시는 아빠지만 어디 다칠세라 서러울세라 딸에대한  관심과 근심이 늘 동반됨을 보아낼수 있다.  대신 부끄러움이 많아서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니 항상 엄마 옆구리를 찔러 물어보게 한다. 엄마가 <여보가 직접 말하는 습관을 해보라>고 하면 산책 간다고 급급히 집 문을 나선다. 

초등학교 다닐때 아빠친구분이 선생님 출신인 분이 계셨는데, 나의 공부를 가르친적이 있다. 그분은(마다바이라고 불렀음) 유머러스하고 말도 참 매력있게 잘 하신다. 심지어 내 눈빛을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정확하게 아셔서 날 투명인간으로 종종 만드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정확한 학습법을 습득하고 성적도 1.2위를 다투며 나에게 큰 자신감을 줬던 그분은, 오랜시간 친구처럼 나의 고민도 들어줬던지라 둘이 함께 나가 자꾸 밥도 잘 먹었었다. 어느 하루는 아빠가 뜬금없이  <나도 그 식당에 가서 널 밥 사줄수 있어>하는거다. 아마 홍콩반점이었던지, 무튼 거기를 자주 갔다. 양식처럼 퓨전식도 다양해서 내가 자꾸 가자고 그분한테 졸랐던거 같다. 

진짜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고 그 말에 나는 아빠가 부끄러움만 있는게 아니라 강렬한 질투심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은근 딸을 빼꼇다는 배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왜 나랑은 고민상담을 안하지라는 의문때문인지 한동안 아빠는 내가 아닌 그 분을 종종 뭐라 하셨다. 

 엄마는 그걸 유치하다고 했고 나는 아빠가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딸바보.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그해는, 더 웃픈 일이 있었다. 워낙에 문학을 좋아하고 조문학부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소원대로 중앙민족대학교 문학반에 붙게 되었다. 그 소식을 이른 아침에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나는 진짜 날듯이 행복했고 온전히 부모님이랑 그 기쁨을 나눴다.

근데 아빠가 그날 아침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딸이 북경대학에 붙었다고 하는거다. 왜 그러냐고 하니깐 북경에 있는 학교면 북경대학이랑 마찬가지란다. 어이없지만 딸을 자랑스러워 하는  맘은 이해가 됐다, 다만 좀 많이 챙피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은 운좋게 마침 우리 전공이 4년내내 학비 전액면제였는데 이건 내가 작정하고 한 부분이 아니고 그냥 우연의 일치였을뿐이었다. 

아빠는 지금도 그게 내가 부모님 생각해서 학비가 없는 전공을 선택한 효녀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기분 좋아라고 묵인하고 있을때도  많지만 북경대 친구들 만날 때마다 < 너랑 난 같은 대학이지뭐, 사실상은>하면서 멍청한 우스개소리를 한다. 그러면 아빠가 생각나고 아빠를 생각하면 늘 행복해진다. 

가끔 꼰대사상도 없지 않아 많고 이상한 표현법으로 나를 당황케 만들때도 많지만 그것이 얼마나 사소하고 가슴 뜨거운 행운이었는지 다시한번 되뇐다. 

뻔뻔하게 받았던 과한 사랑과 간지러운 친절들은 그동안 아빠의 부끄러움과 함께 내 맘속에 진하게 녹아들고, 보통의 삶속에서라도 늘 이런 아빠닮아  말 못하고 애교한번 제대로 부린적 없지만 그 사랑으로 지금도 당당하고 자존감 높게 살고 있게 해줘서 고마운 딸이, 이 순간 부친절을 진심으로 추카하며 극적극적 순수한 잡담을 기록하고 있다는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미국오기전 가평 놀러갔을 때

이 글을 공유하기:

여니

글로 내 생각과 내 마음을 표현할수 있는건 굉장히 행복한 일입니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27
응원합니다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