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0년생이다. 그 당돌하다는 90후의 첫 시작을 대표하는 90후도 올해 서른이다. 요즘은 00후도 자기를 이모라 칭한다던데 난 아직도 나를 철이 덜 든 어린이로 생각한단 게 웃프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노래방에 가면 그렇게도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서른즈음에>란 노래인데 가사는 이렇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일 줄 알았는데. 내가 떠나 보낸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것도 아닌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아마, 그때부터 나름 서른을 준비하고 있었나본데, 현실의 우리는 아직도 많이 방황하고 있는 미성숙아이다. 

오늘 중앙인민방송국에 다니는 언니의 이런 메세지를 받았다. 솔직히 서른이란 이 독특한 시점을 두고 생각은 많이 해봤으나 진짜 글로 내가 느끼고 고민하는 걸 적은적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나처럼 서른즈음 나이로 살아가는 80/90과 함께 우리의 생각을 공유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서른을 시작하는 나의 생일을 지난 달에 보내면서, 난 <나의 서른이란?>에  <서른, 이제 인생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적었다. 아마 나는 나의 서른을 계기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고맙게도 나의 새 시작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냈다. 

서른전까진 부모님이 곱게 키워서 시집 보냈으니(마침 작년에 결혼식을 올림) 서른부턴 진정한 나의 삶, 나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마다 시기가 다 틀리겠지만 서른쯤엔 대부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진정한 독립이란 걸 하게 된다. 

사실, 나는 대학4학년때부터 북경에서 일을 하면서 <난 이젠 독립했어! 부모님과 더는 돈 달라고 손을 벌리지 않아> 라고 혼자서 으쓱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20대 초반에 사회에 나와 부딪치면서부터 오늘날 서른이 되기까지 난 겨우 진정한 독립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던것 뿐이다. 

서른, 어리다는 핑게를 댓다가는 다 큰 어른이라는 것이 질책이 되어 돌아오고 어른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간 코 웃음의 조롱거리가 되기 쉽상인 이상한 나이, 그 나이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어쩌면 진정한 독립을  마주하고 있다. 다행히, 만회할수 있는 시간이 있는 우리의 지금에 칭찬한다. 모든 새 시작이 용서되는 나이이기도 하고 뭘 하든 늦지 않은 서른이니까. 

그래서 요즘 젤 핫했던 都市情感剧 이름도 <三十而已> 인가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꽤 상당한 부분의  묘사와 설정이 드라마틱 한 연출과 억지스런 대사라, 썩 현실적은 아니라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감을 했다. 세 주인공의 삶에 작게크게 자기를 대입시키기도 하고  현실에선 가능치 않았던 다소 완벽한 결말에  그래도 진심어린 응원과 축복을 보냈었다. 

그건, 내가 서른즈음이 되면서 많이 느꼇던 걸 이 드라마에서 찾아볼수 있었던 이런 몇가지 점 때문이다. 

1. 어른의 세계에는 <쉽다>라는 두 글자가 없었다. 그게 누가 됐든지간에. 

2. <결혼> 은 언제까지 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다. <이혼> 또한 다 내가 우수하지 않아서 초래되는 결과는 아니다. 

3. 타고난 가정배경에서 오는 빈자리와 고통은 결국 혼자서 치료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4. 부모는 자식의 본보기이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편인 건 부모밖에 없다.

5. 인생의 우선순위는 자신을 사랑하기이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와 자신의 위치선정이 정확하게 되어 있을때에야만이 우린 단단한 심장을 가질수 있다. 

6. 우리가 생각하는 인맥과 그 인맥이 나를 생각하는 시야는 전혀 다를수 있다.

7. 우린 낯선 사람들앞에서 웃는 법을 배우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앞에서 우는 순간을 인정한다. 

8.생활의 본질은 앞으로 그냥 나가는거다. 앞에 어떤 곤난과 장벽이 있던지간을 막론하고. 

9. 서른전엔 양으로 승부했다면 서른부턴 삶의 질로 승부한다.

10. 이십대의 소탈함도 아니고 사십대의 여유로움도 아닌 서른인 우리는 그냥 더 좋은 생활을 꿈꾼다. 

이 10가지가  내가 공감을 느낀 점이다.  우린 알고 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훨씬 쉽지 않다는 것을.  이 또한 풍자적이겠지만, 드라마에서도 煎饼果子 팔고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밝게 희망을 담아 찍어낸 이유다. 현실에서 서른즈음이란 중년어깨의 짐은 <위로 부모 아래로 자식 > 고단함의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아직 아이가 없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 한 자식의 부모로써 그 역할은 얼마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서른의 시각에서 여러분들은 또 <나의 서른이란?> 어떤거 같은가? 

자, 그럼 이쯤에서 처음 방송국언니의 질문을 다시 보도록 해보자. <나의 서른이란?> 나는 이 질문에 어떤 답변을 할것인가? 

이런 문장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진짜 가난한 것은 사랑하지 않는것이다.> 좀 인상깊었던 문구이다.

그렇다, 난 나의 서른에서 기존의 모든 편견을 버리고 진짜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고 싶다. 여지껏, 자신의 경험으로, 자신이 본것으로, 자신이 아는것으로 살아왔다면… 난 서른부터 그 안에 감춰진 것에 더 깊은 생각을 하고 눈에 보이는것보다 마음으로 감지할수 있는것에 더 중점을 둘거다. 

지식의 편견, 피상적인 것에 대한 선입견, 여유가 없어서 슬쩍 보는 가벼움 같은 걸 모조리 버리고 그저 순수한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려 한다. 

그렇게 깊게 파고 또 파다보면 우린 삶의 본질을 찾을거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면서 잘 죽어갈 것이다. 사람은 원래 잘 살아내는 게 아니라 잘 죽어가는 과정이 우리 삶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서른부턴, 숨겨져있는 겉모습속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것 알맹이를 볼려 노력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상대의 진실을 발견하는 일에 염두를 더 둘것이다. 나의 서른은 과도기다. 허물을 벗는 과정이다.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은 안고 가되,  쓸데없는 껍데기는 이젠 벗겠다. 우리의 본향은 이 무거운 몸으로 갈수 있는 곳이 아니라 허물을 다 벗어놓고 가벼운 상태로 맞이하는 곳이니까.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에서 이렇게 썼다. < 완전이란, 더 이상 덧붙일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떼어낼 것이 없을때이다.> 

그렇다, 지금까지는 기존의 정보를 이용하는 시야를 가졌었다면, 나의 서른부터는 더 이상 떼어낼것이 더는 없는, 그렇게 남는, 가장  본질적인것을 추구하는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 보다 많이 보다 넓게 보려면 기존의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 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서른즈음인 당신, 당신의 서른은 어떠한가?  혹은, 당신은 어떤 서른을 기대하는가? 그리고 또 , 당신은 이미 지나온 당신의 서른에 만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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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니

글로 내 생각과 내 마음을 표현할수 있는건 굉장히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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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우연이 ㅋㅋㅋ축복 감사해용 😊 hana님의 중년의 울먹임을 인상깊게 읽은적이 있어요, 인생은 늘 어느시기든 그 시기만의 쉽지 않음이 있는 것 맞는거 같아용~ 현실이 어떻든, 늘 여유로움을 갖도록 노력화 습관화 긍정화 해볼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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