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다.

도시의 밤은 화려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거리마다 네온불빛이 황홀하게 눈부시고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건물들도 형형색색의 칼라로 번쩍인다.

시골의 밤은 무색이다. 하루내내 일에 지친 부수수한 얼굴들이 턴넬같은 어둠속으로 돌아온다. 그리고색이 바랜 허름한 문을 열고 시름이 켜켜히 쌓인 집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흙묻은 옷가지들을 벗어서 비자루로 투덕투덕 털어서는 한쪽에 둥그마니 밀어놓는다. 그리고 찬밥을 물에 말아 목구멍으로 넘기며 저녁끼니를 때운다. 촉수낮은 전등불아래 땡볕에 거멓게 타들어간 피부와 거기에 새겨진 피곤이 그리고 밭이랑같은 주름살과 그 깊이마다에 채워진가난이 서로 섞여서 언뜻언뜻한다. 어진 소의 눈빛을 닮은 그 눈에서는 가끔 속수무책의 설음이 흐르기도 한다. 가장 성실한 땀으로 살아가지만 세상에서 소외된채 그 땀만큼의 불행을 줄줄이 달고다닌다.  

하지만 그들은 체념을 모른다. 체념할듯한 인생인데 체념을 못한채 아니, 아직도 체념을 안하며 그토록 간절하게 살아갈뿐이다. 무엇이 그렇게 간절한지 알수도 없으면서 다만 그렇게 단순하고 지극하게 정성을 다해갈뿐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가슴을 그 땅만큼이나 쩍쩍 갈라터뜨리며 그러다 큰 바람이라도 불어치면 침착하지 못한채 허둥지둥 돌아치며 혹 곡식이 병에라도 걸리는 날이면 애 앓는 엄마처럼 밤잠을 설치며 ……..
이 밤의 어둠은 어쩌면 그들의 그 고달픈 삶으로부터 배여나와서 그 어데나 번져가는지 모른다. 아무런 색채도 없는 흙빛의 삶을 억척스레 살아내며 가슴을 시커멓게 달여온 그들의 삶은 구경 어느만큼으로 짙은 색일가?
밤이다.

도시의 밤은 요란하다. 스피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와 차량의 경적소리와 서로 만나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 온갖 소리들로 흥그럽다.

시골의 밤은 조용하다. 밤을 가장 고맙게 기다린듯이 고단한 몸들이 편히 누운채 어느새 깊은 잠으로 곯아떨어진다. 두다리와 두팔을 아무렇게나 뻗고 자세를 취한다. 갈라터지고 그 사이에 풀물이 든 딱딱하게 굳은 발뒤축이 보인다. 드러난 목께로 그들의 살결이 옳기나 한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연 가슴이 늘어져있다. 모지라지고
거친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기도 한다. 하- 벌린 입으로 푸우푸우 거친 숨소리가 터져나온다. 입가에는 흐르다 만 침의 흔적이 허옇게 말라붙어있다. 무디어진 감각임에도 야윈 뼈마디를 움직여 뒤척일때마다 신음소리를 낸다.… 고상하지도 우아하지도 못한 람루하고 지저분한 모습이다. 잠자는것은 아름다움을 스쳐가는것이라고 누가 이야기했던가? 그러나 그 뉘가 감히 그들이 잠자는 모습을 깨여있는 정신과 의식이 아니라고 비난할수 있을가!

그들은 가장 절박한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을뿐이다. 또다시 래일을 살아내기 위한 철저한 휴식인것이다. 몸과 맘을 다 풀어서 자연적인것으로서의 휴식을 취함으로써 비로소 래일의 열망을 당겨올수 있었을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칠줄 모르며 오랜 세월 힘겨운 삶을 견뎌왔을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흐린 의식으로서는 감히 다가갈수 없는 엄숙한 한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밤 내내 부엉이가 구슬프게 울어가는지 모른다. 한번도 스스로 소리내본적 없이 또 누구에 의해 소리가 되여본적도 없이 저 홀로 한 귀퉁이에서 속울음으로 삼키는 그 아픔을 차마 울어주지 않을수 없었나본다.
밤이다.

도시의 밤은 환상의 세계이다. 일상을 초월한 온갖 꿈들이 거대한 빌딩숲처럼 치솟으며 그 꿈을 향해 다그치는 열광적인 몸짓들로 뜨겁다..

시골의 밤은 고운 꿈으로 피여난다. 이 땅을 믿고 이 땅에 의지하는 그들은 화려하고 아름찬 꿈을 꾸지 않는다. 그래서 또 절대로 막연해지는 법이 없다. 그들은 다만 자신의 노력으로 실현시킬수 있는 소망만을 가진다. 그랬기에 그들은 찌든 생을 살아오면서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수 있었던거 아닐가? 그들의 가슴에 자리한 꿈이라는거 그것은 지극히 작아서 꿈이라는 이름을 달아주기에조차 어색하다. 래년에는 애를 울리지 말고 학비를 제때에 내주어야지, 겨울에는 아이에게 고운 솜신을 사주어야지, 그리고 고운 무늬의 밥상도 꼭 사야지, 또 소수레의 바퀴도 새로 바꾸어야지, …하지만 그토록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해서 되려 아름다운 감동으로 뭉클하다.

그들은 성공이란 단어에 무식하다. 성공이 그들에게 있어서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가? 그들은 다만 미련하도록 바칠만큼의 모든 희생으로 그런 작은 꿈들을 묵묵히 실현해가며 행복이라 이름지어 부르고있을뿐이다. 그리고 그 평범한 행복을 시시한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성공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할뿐이다.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생을 완전히 수용하고 적응하며 노력으로  살아갈수 있는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인생의 성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이기에 사래긴 밭이랑은 늘 가슴을 열고 누워 그들의 정성에 보답하려고 모지름하고있는게 아닐가? 아침 곡식이파리들이 대롱대롱 달고있는 이슬은 간밤 그 참을수없는 감동을 울어간 흔적이 아닐가?

밤이다.

밤은 그들을 온전히 리해하고있다. 고상한 목표나 심오한 사상이나 빛나는 예감 같은것은 모르지만 생명을 푸르게 키워주며 왕성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투박한 그들의 손길이 어느만큼 진실한가를 알고있다. 이 세상이 변화하는것에는 무디지만 씨앗 하나 곡식이파리 하나에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민감해지는 그들의 가슴이 어느만큼 따스한가를 알고있다. 난삽한 리론이 없어 삶의 고뇌를 표현해본적은 없지만 자기의 생을 굳건히 믿고 자기의 생에 완전히 미쳐서 살아가는 그들의 심장의 울림은 어느만큼 깊고 힘있는가를 알고있다.
그래서 밤은 아프다.

밤은 절박한 마음으로 잠들수조차 없지만 그들에게 스며들어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희망이 될수는 없다. 허수아비때문에 그들이 허술한지 그들때문에 허수아비가 허술한지 잘 알수는 없지만 고집스레 땅을 지켜가며 땅에 가장 낮게 허리굽혀 살아가는 그들의 생명이 가장 아름다운 비상이라고 믿을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에게 좀은 더 편하게 더 가볍게 열려주지 않는다는것도 명확히 알고있다. 이제 래일도 또 먼 후날까지 아니 벽에 기댄 등을 더는 일으킬수 없을 때까지 그들은 그렇게 모진 삶을 땀내를 진동하며 살아내야 한다는것도 분명하게 알고있다. 어쩌면 이리 살려고 그렇게 온몸의 진을 깡그리 쏟아내며 땅에 몸을 문질러왔단말인가!

밤은 무척이나 아프다.

오늘 새벽도 여전히 푸르게 푸르게 멍들어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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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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