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문득 딸애가 급히 내게로 뛰여오며 소리쳤다.

        “엄마,  여기가 아파”

        그러며 딸애는 자기의 가슴을 가리켰다.

        나는 빙그레 웃어주었다.  그런 내 표정에 더 놀란건 딸애였다.  말똥하니 나만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예전에 아프다는 소리가 나오기 바쁘게 허둥지둥 병원으로 향하던 나였으니까 말이다.

         “작은 꽃봉오리가 숨어있는 거야.”

       내 말에 딸애는 수줍게 웃었다.

       “그럼 엄마는 활짝 핀 꽃?”

      그러며 딸애는 내 가슴에 안겨왔다.

       “아니,  이미 시들기 시작하는 꽃.”

        나는 조금 시무룩해서 대답했다. 

       “아니야, 엄마는 언제나 활짝 핀 꽃이야.” 

        딸애는 그랬다.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난 녀자니까!

        며칠 후 나는 딸애에게 이쁜 기능성 브래지어를 사주었다.  딸애는 그것을 착용하고 거울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며 야릇한 행복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며칠뒤에는 애들의 가슴과 비교해서 자기의 가슴이 작다는둥 내가 목욕시켜줄 때 한쪽 가슴을 힘껏 밀어놓아서 짝짝이가 되였다는둥 하며 고민도 했고 그러다가 어느날부터는 더욱열심히 공부를 하기도 하고 부지런히 독서를 하기도 했고 또 나랑 자주 싸우는가 싶다가는 “엄마, 내가 사춘기인가 봐.  엄마가 좀 참아쥐.” 그러며 품안에 안겨들기도 했고 어느날부터는 자신의 머리단장 옷단장에 신경을 써가더니 또 어느날은 자신이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쭉 적어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체크하기도 했고…

        지금 딸애의 가슴에는 어떤 희망과 도전이 꽉 차있을가?

        딸애의 그 작은 가슴 속에는 언제나 새롭고 싱싱한 꿈들이 반짝인다.  딸애는  온 세상을 다 껴안을 듯한 열망으로 매 하루하루를 당당하고 야무지게 살아내고 있다.  자신의 노력이라면 무엇이든지 이룩해낼 수 있다고 오만스레 장담도 하며 즐겁다.  그러는 딸애가 바라보는 자신의 먼 후날은 항상 선명하고 언제나 눈부시다.

         먼 예전에 내가 엄마에게서 브래지어를 받았을 때 나는 어떤 동경을 했을가?

        나는 네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에서 이 산너머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이 답답한 시골을 벗어나면 멋진 도시의 삶이 그림처럼 펼쳐지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참답게 하면서 부모님의 말씀을 꼬박꼬박 들으면서 이제 나에게 시처럼 아름다운 날들이 다가와주길 간절히 기대했다.

        더욱 먼 옛날에 엄마는 외할머니로부터 브래지어를 받으면서 어떤 꿈을 꾸었을가?

        엄마의 청순한 가슴은 어떤 맑은 꿈으로 설레였을가?  어쩌면 그 나이에 하는 모든 소녀들의아름다운 환상으로 가슴이 터질 듯 했을 것이다.  엄마는 구경 어떤 녀자의 행복한 삶을 그려보았을가?

        내 가슴이 탱글탱글 여물어가기 시작해서부터 나는 엄마가 브래지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늘 밭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땅에 엎드려 일해야 했던 엄마에게 있어서 그 목천으로꽈악 조여오는 브래지어는 무척 숨가쁘고 불편했을 것이다.  

         우리가 엄마에게서 태여나고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젖을 빨면서 커갈 때부터 엄마는 더는 녀자로서가 아니라 엄마로서 살아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뉘 살아왔다.  지금 엄마의 가슴은후줄근히 처지고 싹말라들어 빈껍질로 만남았다.

        엄마가 살아오면서 엄마의 모든 희망이나 꿈이라는 것 모든 기다림이나 인내라는 것 모든 정성이나 수고라는 것 모든 근심과 걱정이라는 것 모든 기쁨이나 행복이라는것… 그 모든모든 것들이 다 우리들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였다. 

         그렇게 살면서 엄마의 허리는 차츰 굵어지기 시작했고 손은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이마에는주름이 늘어가기 시작했고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다리가 후둘거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지금엄마는 늙어있다.

        극성스러운 모성으로만 살았던 엄마를 보면서 나는 가끔 엄마의 녀자를 위해 잔잔한 아픔을느낄 때도 있다.  완전히 엄마로서의 삶에 빠져 녀자로서의 감미로운 삶을 외면하고 살아서 보는이에 따라서 비애가 느껴지기도 할것이다 그러나 녀자가 위대한 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지극히 아름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을것이라고 믿는다. 

        딸애의 가슴을 본다.  아직 작지만 단단한 꽃봉오리이다.  밝고 깨긋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빠끔히 바라보며 귀엽게 웃어주는 꽃봉오리이다.  이 세상을 향해 겁모르고 도발적으로 얼굴을 쳐들고 도도한 꽃봉오리이다.  가슴에 령롱한 꿈을 키우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끊임없이 진보하는 꽃봉오리이다. 

         엄마의 가슴을 본다.  시들고 말라들고 초라한 꽃잎이다.  좀은 칙칙하지만 그래도 섬세한 가슴이다.  오래된 향기와 깊은 빛갈과 소중한 이야기가 남아있는 꽃잎이다.  그래서 시든 꽃잎을 마주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고단한 삶에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외로왔고 얼마나 힘들었을가?

         나는 지금 어쩌면 애의 말대로 아직은 활짝 핀 꽃인지도 모른다.  마악 시들기 시작하는.  세상의 바람을 맞으며 비에 젖으면서도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내려는 꽃일 것이다.  고귀하고 싶고 아름답고 싶고 빛나고 싶은 그런 꽃일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의 모자람으로 인해 좀은 작고 희미할지라도.

         나는 가끔 엄마처럼 늙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엄마처럼 살아가는 자신을 느끼군한다.  아이가 아프면 나도 아팠고 아이가 슬퍼하면 나도 슬펐고 아이가 웃으면 나도 웃었고 아이가 실망하면 나도 실망했고 아이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했고…  그리고 그외의 모든 것은 내 빈약한가슴으로 껴안을 수가 없었고 이런 나를 역시 세상은 자연스럽게 외면해버렸다.  그만큼으로 나는 세상앞에 하나의 부끄러운 락오자임을 가슴 아프게 느낀다.  엄마로서 산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여기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서글픔이 드는 때도 있다.  좀더 지혜롭게 녀자로서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내고 싶은 욕심에서이리라. 

         그런 자신을 느끼면서 나는 딸애가 모성을 지닌다는 의미에서는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지만모성을 너무 우상화하지 말았으면 한다.  모성을 방패로 숨어버려서 모성이외의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녀자를 좀더 존중해주고 아껴주면서 스스로를 지켜가고 승화시켜가는 삶이라면 좋겠다.

         딸애는 정녕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아름다운 빛갈로 세상을 당당히 마주하고 언제나 그윽한향기로 세상을 함초롬히 적시며 언제나 자유로운 몸짓으로 세상과 함께 성장할 것이다. 

        사랑스러운 딸애는 투명한 해살아래 한껏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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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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