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눈이다.

       창밖으로 눈이 오고 있다.  예쁜 눈송이들이 온다.  이땅 어데라없이 온다.  골목골목과 높고 낮은 지붕들과 길가의 나무들과 말라버린 풀가지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달리는 차량과 깡충거리는 강아지들에게도… 창밖은 그래서 눈부시게 하얗다.  눈이 오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펑펑 소복소복 훨훨 한들한들 솔솔 사락사락 사뿐사뿐 나풀나풀 보슬보슬… 그 아름다운 단어들을 입안으로 천천히 반복한다. 매 하나의 음절자들이 하얀 눈송이로 다가와 가슴에서 반짝이는기쁨이 되고 고운 웃음이 되고 순수한 환상이 된다.   

      나는 눈을 좋아했다.  눈이 오면 철없는 애들처럼 괜히 신나하고 괜히 설레이고 괜히 행복해진다.  그리고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했다.

        눈이 오는 날에 친구랑 함께 우습깡스러운 눈사람을 만든다거나 아니면 애들과 어울려 눈썰매를 타거나 왁자그르 웃음을 터뜨리며 눈싸움같은 걸 한적이 거의 없다.  또 눈우에 그리운 사람의 이름자를 가득 써놓거나 수많은 하트를 그리거나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랑 눈우에서 손잡고달려보거나 또 뒹굴어본 적도 없다.  그렇게 빛나고 화려한 일들을 나는 꿈도 꾸지 못했다. 

        다만 눈이 오는 날이면 하염없이 눈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눈속을 무작정 걸으며 시간을 누리였다.  그래서 눈오는 날이면 예전에 내가 살고 있던 북대에서부터 철남까지 걸어갔다가 걸어왔던 적이 한해 겨울에만해도  여러번이다.  사범학교를 다닐 때의 어느 한번은 수업을 받는 도중에눈이 내렸다.  그 수업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려 높다란 담장을 뛰여넘으려다가 (그때 우리는 학교대문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여 있었다.) 담장우에 내려쌓인 눈에 미끌어 하마트면 떨어질번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여 학교를 빠져나가서 한 일이래야 겨우 온 하루 눈오는 거리를지치도록 걸어다닌 것뿐이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눈이 내게 어떤 축복을 준것 은 아니다.  다만 그냥 좋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듯 좋은 기분은 눈꽃이 선물해준 것이니 생각해보면 축복이 맞기도 하다.  어쩌면 그때쯤 나는 이세상을 순진하게 바라보며 세상속의 아름다운 것들이 가져다주는 기쁨에 즐겁기만 했을 것이다.

         그렇게 몇해의 겨울을  지나며 나는 학교도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의 엄마도되였다.  그리고 어느해 겨울이다.  그날도 눈이 내렸다.  창너머로 눈을 바라보다가 어떤 충동을 느끼며 텔레비죤에 눈길을 팔고 있는 남편에게 “우리 어디 가자.” 그랬다.  남편은 둥그렇게 눈을뜨며 나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이렇게 눈이 오는데 어디로 가려구?  택시 타고 가자.” 그래왔다. 그래서 꿈에서 깬듯 화들짝 놀라 현실로 돌아오며 아예 잠이나 자자고 대답했다.  나는 내 환상의날개를 접어야 했다. 그래, 나는 할일이 있었다.  직장에서 맡겨준 일을 해야 하고 가족의 밥을  해야 하고 빨래를 해야 하고 집안청소를 해야 했다.  며칠 미루어진 채소사러도 다녀와야하고 애와 놀아주어야 하고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고 시어머니께 전화안부도 해야 하고 늙은 부모님이 내게 보내주시겠다는 김치랑 가져와야 했다. 보고 싶지도 않은 텔레비죤에 눈길을 주며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밥을 꾸역꾸역 먹어주어야 했다… 

         더는 눈이 온다고 밖으로 뛰쳐나갈 수가 없다.  눈이 온다고 무작정 길을 걸을 수도 눈만 바라보며 시간을 허송할 수도 없다.  눈이 오는 날이면 그래서 사소하기 짝이 없는 리유들이 울적하게만들어준다.  그럼에도 눈은 어김없이 내렸다.  내가 어떠하게 변해있든 눈은 나에게로 약속처럼찾아왔다. 

        지금 나는 눈이 오는 날이 조금은 두렵다.  몽실몽실 피여오르는 감성을 내가 아프지 않게 잘다스릴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그 감성의 립자들이 대리석같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유리구슬이 깨여지듯 산산쪼각이 나서 먼지처럼 내가슴에 내려앉을 때면 나는 기분이 아득해진다. 그리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눈이 오는 날의 눈부시는 환상의 날개를 스스로 툭툭 꺾어내야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꺾어내는 아픔이 내 손끝까지 짜릿하게 전해져올 때 그리고 날개들이 꺾이면서 지르는 비명이 심장으로 예리하게 꽂혀와 피물이 번지는듯한 느낌으로 소스라칠 때면 나는 많이 아프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괴로움들이 어쩌면 나더러 눈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않도록 해주며  감성의 소중함을  다시금 돌이켜보도록 만들어주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요즘 너무나 리성적인 세상을 살고 있다.  그속에서 나도 똑똑하게 현명하게 분명하게 명징하게 살아내느라 모지름하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감성에 무디여졌고 때로는 감성에 젖어드는 자신을 되려 바보스럽게여기게 되는  어리석은 자가 되여버렸다. 그러나 나는 가끔 꽃들이 무색으로 피여날 때 바람이 더는 내옷깃을 스치지 않을 때 어쩌다 올려다 본 하늘이 텅 비여있을 때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러한 나의 가슴으로 눈이 오는 것이다.  나더러 이대로 감성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아직은 그래도 감성이 남아있는 자신을 일깨워가고 일렁이라고. 가끔씩 자신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해주는 일들을 솔직하게 해보라고.. 

         그래,  눈이 오면 모든 일 다 제쳐놓고 아무일도 하지 말자. 그리고 그냥 하염없이 눈을 바라보거나 눈속을 걸어보자.  어쩐지 터무니없고 의미없는 일 같지만 아직도 환상의 나래를 펼쳐 비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리해하게 되리라;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면 잘 알리리라.  그 시간은 헛되이 스쳐가지 않고 이제 얼마나 보배로운 선물로 남을 것인지.  이제 하나의 사막으로 남아버린 자신에게 가슴 먹먹하게 경이가 찾아들 것이다.  감성이 머무른 자리마다피여나는 고운 꽃과 풀과 나무들과 그것들 사이로 보이는 귀여 운 벌레들의 몸짓과 귀가 즐거워지는 새들의 우짖음소리… 그리고 그것들과 더불어 함께 어울려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눈이 온다.  섬세한 흰빛으로 내려서 쌓인다.  알 수 없이 어떤 경외의 시간이 된다.  내속에 깨끗한 감성이 담긴다.  눈이 아주 감미로운 소리를 내며 내린다.  그것이 따뜻한 외로움으로 일렁이며 고요한 환희를 가르친다.  나는 눈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천천히 차분하게 침잠한다.  그것은 신비롭게 단순한 행복의 세상으로 나를 초대해준다.

         눈이 오면 그래서 감사하다.  그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느날 조용히 이세상을 떠나고 싶다. 

아,  눈이다 그러며 행복하게 또 하나의 환상의 려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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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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