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의 마지막 자세는 휴식을 취하는 ‘송장자세’이다. 요가지도선생님이 송장자세를취하라는 말에 다들 자세를 바로 취하느라 련습실 안은 잠간 부산해지다가 이내 조용해진다. 나도 바닥에 천천히 드러눕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팔다리, 골반, 배, 입술과 이발까지 순서 대로 힘을 뺀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이완시키며 고요한 상태로 들어가려 노력한다.

금방까지 이리 비틀고 저리 접고 젖히고 굽히고 뽑고 한발로 서고 엎디는 동작을 하느라 이를 악물었고 진땀을 흘렸다.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치고 거기서 벗어나며 자신의 몸을 좀더 들여다보고 느끼려고 집중하였다. 아프기도 했고 포기하고도 싶었다. 그래도 노력했고 견뎌냈다.

어쩌면 우리 인간들 역시 이렇게 한생을 삶의 덫에 걸려든 채 자신의 몸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혹사시키고 있는게 아닌지 모른다. 어느새 후줄근해지고 삐걱이는 몸뚱이를 바라보면서 참 부실하구나 싶어졌다. 괜히 가슴이 쿵 내려앉고 깊은 가슴의 골짜기로부터 아릿한 감정의 손톱들이 가슴벽을 긁으며 차오른다. 이 몸뚱이로 무엇을 해내겠다고 그리 이악스레 살아왔나 싶다. 그것은 세상과 자신의 의식적 무의식적 강요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허기와 싸우고 불면과 싸우고 질병과 싸우고 외로움과 싸우고 욕망과 싸우고 실망과 싸우고 사랑과 싸우고 죽음과 싸우고…세상은 무정했고 무심했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었다. 거칠고 참담한 날들 속에서 욕심을 부렸고 정력을 소진했다. 아무리 화려하거나 빛나거나 높은 것을 이루었던들 결국은 다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서지거나 스러지거나 내려앉거나 한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 송장으로 남을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살면서 늘 가슴 속으로 늘 시 같이 아름다운 날들을 동경했다. 무지개빛의 오색령롱한 환상을 해보며 싱그럽고 빛나는 순간순간들이 찾아오리라 믿었고 노력을  다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흠칫했다. 시같은? 그말에 가슴이 찔렸다. 어쩌면 시는 온 몸을 세상에 문질러 살아내며 흘리는 땀과 피와 살점들로 빚어지는 단어로만들어진 것이 아니였을가? 그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시가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게 삶을 껴안고 힘을 끌어모으며 모지름을 쓰니까. 시가  삶에서 우러나듯이 삶 또한 시줄에 기대게 되는 리유이기도 하다.

누구든 부드럽고 깨끗하고 고운 살결의 생명체로 태여났고 덧입는 상처들로 두터워지고 그늘지고 깊어져간다. 어쩌면 한번도 잘 아물리지 못했을 것이다. 살얼음 덮이듯 말라붙은 흉터밑으로 여전히 벌건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쉽게 아물지 않으며 오래 가는 상처들이다. 그 힘든 시간들을 조용한 힘으로 견딘다. 늘 자신의 속에서 온기와 빛을 모아 이 세상 속으로 밀어냈다. 그것들이 이 시공 속에서 서로 어우러져 웃음과 행복과 감동과 평화를 이루었다. 그것들에 기대이며 우리는 다시 또 상처가 커지고 깊어져도 살아냈을 것이다. 몸의 굳은살, 흉터, 주름이나  풀리는 근육이나 식어가는 온기 … 그 모든 것이 삶의 흔적이다. 그것들 속에 나의 시간이 스며있다. 그 시간들은  나의 존재이다. 나의 세계이다. 생명을 마감하는 이 세상의 끝에 우리 역시 시줄속의 한 단어로 남으리라. 아름답고 처절하게 살아왔으니까.

참 용케 살아온 날들도 많았다. 다시 돌아가서 다시 살아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얼마 쯤의 눈물 나는 후회와 부끄러움도 갖고 있지만 말이다. 잘 살아왔다 싶다. 큰 사건 사고도 없이 큰 병도 없이 별탈없이 내 가족과 함께 살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몇몇 가지고 함께 어울려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또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며 사랑받는 행복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뜨거운 심장을  꺼내들고 꿈이라 불리울 만한 것들을 위해 정직하게 연소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것은 고단하고 지루한 날들 속에서 한번의 숨 고르기였고 편안한 잠이였으며 힘이 고이는 시간이였다. 마치 요가를 할 때 힘든 하나하나의 동작에 몰입하다가도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한 동작들을 넣듯이 말이다. 그 기쁨이 아픔과 서로 섞여 하나의 완전한 삶을 만들어왔을 것이다.

내 나이 마흔일곱, 어쩌면 이제 남은 시간은 살아온 시간보다 적을 것이다. 아직 죽음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만 기실 오늘 하루도 죽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죽을 준비는 되여있는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난다는게 가슴이 아프다. 이 세상에 태여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제 누군가를 껴안았던 팔다리의 힘이 약해질 것이고 감동과 설레임으로 높뛰던 심장의 박동도 느려질 것이며 미워하고 사랑하며 웃고 웃었던 모든 기억들도 희미해질 것이다.  머리칼도 자라고 손발톱도 자라고 몸뚱이도 커지고 욕망도 늘어나고 이 세상에 스며들고 이 세상 속 공간을 차지하고 무언가를 끌어안으려 아등바등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몸집도 줄어들고 머리칼도 빠지고 이발도 빠지고 힘도 줄어든다. 부모며 아이며 그외 직장에서 이런저런 관계로 복잡하게 이어왔던 관계의 끈들도 하나둘 끊어진다. 내가 하기를 기다리고 내가 해야만 했던 많은 일들이 줄어들고 또 줄어들 것이며 해볕아래 깜박깍박 잠이 드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이 세상의 폭력과 죽음과 비리와 재난들에 분노하고 좌절하던 격정도 사라지고 허구프게 웃으며 더듬거리는 말과 후둘거리는 걸음걸이에 처량해질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초라한 정신과 몸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사람은 잘 비여져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는가 본다.

입귀를 끌어올려 조용히 미소짓는다. 송장자세는 우리에게 생의 마지막을  가르친다.  위태롭게 두발로 서 있다가 이제 편하게 누운 자세로 휴식하라고 한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한 것이다. 꽃도 피였다가는 땅에 떨어지고 과일도 무르익으면 땅에 떨어진다. 영원히 빛 뿌릴 것 같은 우주의  별조차 땅으로 떨어지는게 아닌가. 모든 것은 나중에는  이 땅에 온몸을 부려놓고 온몸으로 땅에 의지하는구나 생각한다.

이제 언젠가는 이 땅에 스며들어서 고요해지겠지. 더는 풀잎 한번 만질 수 없겠지. 더는  꽃 한송이 이름 부를 수 없겠지. 어쩌면 그래서 맑은 바람이 나를 잠간씩 흔들고 가겠지. 밝은 해살이 나를 잠간씩 품다가 가겠지.

이 글을 공유하기:

해비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16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