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식물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2-3년 전, 나의 생각은 '반려'라는 말을 너무 유행어처럼 여기저기 붙인 결과가 아닌가 싶을만큼 식물을 반려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엄마집에 살때 나의 취미 중 하나는 내킬 때마다 화분 한 두개씩 사다 놓고 죽이는(?)것 이었다. 나름대로 관심을 기울인다고 하는데 번번히 죽이는 나의 능력은 매번 가는 꽃집 사장님을 보기가 민망하리만치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두어 달에 한두번 꼴로 머쓱한 얼굴로 꽃집에 들어서며 '저번에 사간 뭐 있잖아요,또 죽었어요 ㅜㅜ'하면 '이상하다 그건 웬만하면 잘 안죽는데~'하며 이것저것 화분과 물주기 상태를 물어보곤 '젊은 사람들은 화분에 너무 관심이 많아 죽인다'며 팔할이 과습으로 죽이는 나에게 항상 적당한 무관심을 가질 것을 충고해주었지만 나의 식물기르기 능력은 늘 제자리였다.

생각해보니 그 때 나는 엄마의 그늘이 있다는 생각에 화분들이 죽어도 그 순간 미안할 뿐 그게 온전히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집의 환경도 고려하지 않은 채 들여온 녀석들이 가까스로 엄마의 도움과 본디 생명력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으면 조금 기특한 마음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던 내가 독립 이후 똑같은 취미(?)로 화분들을 들이기 시작했을 무렵 처음으로 '반려'식물이란 말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 녀석들을 내가 제대로 돌보고 신경쓰지 않으면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겠구나란 생각을 한 것이다. 초보집사의 마음을 식물도 알았던걸까. 독립한 뒤 나의 화분들은 대체로 튼튼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 


꽃을 피운 알로카시아

낯선 환경으로 온 녀석들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간 긴 몸살을 앓고 난 뒤 새순이나 새 꽃을 피울 때면 정말 뿌듯하다. 다시한번 내가 유일한 보호자구나란 생각에 기쁨과 책임감이 동시에 솟아났다. 원래의 자연에 있으면 당연한 이치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라나는 것들이지만, 열악한 실내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저 물 제 때 주고 선풍기로 바람을 쐬어주는 것 정도에도 생명은 삶의 의지를 틔워낸다니 정말 자연의 경이로움은 초보 식물집사를 겸손하게 했다.

오르비폴리아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의 식물 사랑에는 매우 미학적이며 차별적인 기준이 있었다. 이를테면 동네식당 앞에 탐스럽게 자라는 호박꽃이나 주렁주렁 열리는 방울토마토에는 대단한 감흥이 없었다. 

이제는 식물에 대한 미학적 기준이 많이 흐려졌다. 식물을 키우며 싹을 틔우고, 새순이 돋아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해서 목격하다 보니 모든 순서 뒤에 숨어있는 경이로움과 위대함이 보인다. 

아무튼 결론은 세상에 저주받은 손은 없다. 마음이 부족할 뿐이라는거.

레몬나무

수경도 이뻐요 

몬스테라

이 글을 공유하기:

비비드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10
좋아요
오~ 오~
1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1. 반려동물 못지 않게 손이 가는 게 또 반려식물인 거 같애요. 식물의 특성에 따른 물 주기, 벌레 방지, 이쁘게 가꾸기 등등…ㅠㅠㅠ 전 플라스틱 꽃만 잘 키워요. 가끔 방치해도 잘 크는 식물을 보면 로또에 당첨된 듯 기뻐요. 레몬나무 첨 보네요. 상큼하고 부지런한 인상 느껴집니다.

    1. 아이들 놓을 위치, 햇빛의 양, 물주는 방법, 분갈이, 영양제 주기, 병충해 관리, 건강한 여름과 겨울나기 등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계속 배우고 있어요. 무언가를 보살피고 키운다는 건 서로 대화하면서 교감하는 느낌이라는 것을 식물을 키워보신 분들은 다 느끼는 부분일 것 같아요. / 레몬나무 추천드려요, 레몬꽃이 활짝 피면 은은한 레몬꽃 향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온 방안이 꽃내음으로 가득차요, 꽃이 피었다 지고나면 레몬열매가 자리 잡아요 🍋

  2. 식물들 너무 이쁩니다♡ 인테리어 효과도 있는 같고~ 저도 전에 좀 키우다가 분갈이까지 못 버티고 말라죽인게 많습니다…지금은 고양이가 있어 섣뿔리 못 들이긴 하지만 방 하나 정도에라도 식물로 채워볼가 고민중입니다:)

    1. 쭈앙님, 귀여운 릴리🐈사진 방금 보고 왔어요. 헤헿
      인터넷 찾아보니까 고양이와 공존할 수 있는 식물이 생각보다 많이 없더라구요 (?) 동물을 못키워봐서 처음 안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가 있었군요 …

      1. 예~고양이에게 치명적인 꽃들도 많고 식물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 원인이 아니더라도 고양이가 흙 파고 잎 뜯고 장난질 하여서 한 공간에 두긴 애매합니다. 문으로 격리 할 수 있는 공간이면 가능합니다^^

    1. 저도 이파리가 큰 관엽식물을 제일 좋아해요. ㅎㅎㅎ 몬스테라, 오르비폴리아 둘 다 키우기도 쉽고 새 잎이 빨리 나와서 키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봄이되니 우리집 몬스테라도 새잎이 두장이나 나왔어요 🍃 가지치기 좀 해야겠슴돠 ㅋㅋㅋ

  3. 와~식물들이 푸르싱싱 정말 잘 크고 있네요. 저는 반려동물, 반려식물 하면 그들이 인간을 반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의 전환이네요. 식집사 아니면 누가 식물을 반려할까라니! 엄지 척 하고 갑니다~👍

  4. 아~ 이쁘게 잘 키우네요. 저도 크고 작은 화분에 식물과 꽃들을 키우다가.. 결국엔 다 시들어 버렸어요. 처음에는 물만 줘도 새싹이 돋아나고, 새 가지도 생기면서 “연록색”이 나오는것이 참 신기하였는데… 산소가 부족했는지, 아니면 해빛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흙을 제때에 갈아주지 못했는지 결군엔. “마음이 부족할 뿐이라는거.”에 공감하고 갑니다.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