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조선에서도 역병이 돌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였다고 한다. 2년전 무한에서 코로나가 전파되기 시작할때 제일 빠른 속도로 나라문을 걷어닫고 역병통제를 철저히 했고 다른 나라들에서 다 감염되고 미국에서 100만명의 사망자를 낸 지금 이 시각에도 조선은 감염자가 없었기에 지구위에 딱 하나 남은 정토라고 늘 동료들한테 말하군 했었는데 결국은 조선에서도 역병이 돈다구 한다. 같은 민족국가인 한국과는 달리 의료기술이 박약하고 경제력도 약해서 이런 역병이라도 돌면 인민들의 생활이 또 얼마나 어려워질가 우려된다.

친한 한족동료한테 이 말을 했더니 동료가 [역시 넌 조선에 감정이 깊어],하고 말한다. 그 동료가 료녕단동사람인지라 [너네 집두 조선이랑 가깝잖아? 넌 조선이 안쓰럽지 않니? ]하고 말했더니 그 동료가 글쎄 하구 한마디를 하구 더 말이 없다. 그 동료는 아마 조선에 별 관심이 없는거 같다.  하기야 나도 이웃나라 로씨야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으니 그 동료의 말이 맞는거 같다. 공간적거리가 아닌 마음속의 거리가 중요한것이다. 몇십키로 떨어진 로씨야보다는 몇백키로 떨어진 한국이 더 친근하고 애틋하니 말이다.

내가 중국에 있는 소수민족이란 사실을 소학교2학년때쯤 배웠던거 같다. 더 어릴때는 우리마을에 한족보다 조선족이 더 많으니 중국에 조선족이 더 많은가 했었다. 내가 다니던 소학교는 조선족학생 한족학생이 함께 다니던 이른바 민족학교였다. 어릴때 학교에서 운동대회를 하면 조선족애들과 한족애들은 늘 편을 가르어서 자기민족 애들이 이기기를 응원했었다. 그때는 민족이란걸 의식한것 같지는 않다, 다만 어린 마음에도 자기와 같은 무리를 찾자는 그런 단순한 심정이였던거 같다. 중학교에 올라간 다음에는 조선족중학교와 한족중학교가 따로 있었다. 나는 조선족중학교에 다녔었다. 그때 우리 학교남자애들과 한족중학교 남자애들이 무리싸움을 한다는 소문을 심심찮게 들을수 있었다. 싸움이 커져서 파출소에 불려간적도 좀 있는데 파출소에 있던 조선족경찰은 우리학교편, 한족경찰은 한족중학교편을 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내가 민족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하게 된것은 아마 초중때부터였을거다. 우리 마을은 두만강변에서 몇백메터 떨어진 곳에 있다보니 안테나만 세우면 조선의 텔레비죤프로를 신청할수 있었다. 어릴때부터 [령리한 너구리] [소년장수]를 보고 [휘파람] [반갑습니다] 등 노래를 들으면서 조선이 예술의 나라라고 찬탄을 하면서 조선채널을 꽤 즐겨 시청했었다. 아마 97년때부터일가, 강건너도시 조선 온성군이 자주 정전이 되는 바람에 우리는 조선채널을 보다가 다른 채널로 바꿔야 하는 안타깝고 짜증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었다. 원래도 가난했던 조선이 김일성주석이 서거한 그 몇년에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생활이 더 어려워졌던것이다.

조선이 강행군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왔고 잇달아 겨울이면 두만강을 넘어서 우리마을에 도망쳐오는 탈북자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었다. 대부분은 두만강이 꽁꽁 언 겨울에 두만강을 넘는데 여름에 헤염쳐서 두만강을 넘는 담대한 사람도 아주 가끔 있었다. 강건너편 조선사람들은 강을 넘으면 조선족이 대부분인 우리 마을에 왔었다. 한족이 절반수를 차지하는 앞마을에는 잘 가지 않았다. 우리마을에 오면 언어가 통한다는 편리한 점도 있었지만 더 중요하게는 앞마을에 가면 운이 나쁘면 한족들한테 고발당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 탈북자를 변방파출소에 고발하면 탈북자는 조선에 쫓겨가고 탈북자한테 지원을 준 사람은 150원 벌금하고 고발한 사람은 얼마간 상금을 받을수 있다고 하였다. 그 상금을 노리고 고발하는 한족들이 좀 있었었다. 90년대말에 150원이면 농촌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였지만 조선족들은 벌금에 아랑곳하지 않고 탈북자들한테 지원을 주었으며 고발을 해서 상금을 타려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지원이라 해도 그저 밥 한두끼 배불리 대접하고 낡은 옷을 주는것 정도인데 그 정도의 선심에 탈북자들은 눈물을 흘렸었다. 위험한 변강마을에 오래 머물지 못하기에 배불리 먹은 다음 낡은 옷을 몇벌 가지고 강바람이 쌩쌩 부는데 길을 떠나는 탈북자들을 보면서 우리도 늘 가슴이 아팠었다. 친척도 친구도 아니고 면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지만 다만 같은 민족이라는것에 조선사람들은 우리를 믿고 찾아왔으며 우리는 같은 민족이였기에 후한 인심을 발휘했고 그들의 처지에 마음이 아파했었다. 그러기에 작년에 인터넷에서 한송이란 미친 탈북자여인이 연변사람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봤을때는 그녀를 찾아내여 머리채를 휘여잡고 싶었었다. 땅에 꿇어엎디게 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잘못을 빌게 하고 싶었다.

같은 민족이기에 반가와하고 가슴아파하면서도 조선족이 절반수를 차지하는 연변에서 살때는 민족이나 자기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민족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것은 일본에 가서부터였다. 일본친구들이 어디에서 왔는가 물어보면 난 늘 중국이라구 대답했다. 그러다가 사이가 더 좋아져서 내가 조선족이라는걸 알게 되면 일본친구들의 물음은 많아진다. 그럼 한국이 더 좋으냐 조선이 더 좋으냐? 아님 중국이 더 좋으냐? 한국말을 더 잘하냐? 중국말을 더 잘하냐? 내가 한국말을 더 잘한다고 대답하면 [그럼 한국인에 더 가깝다구 해야겠네] 하면서 자기네절로 나를 한국인에 가깝다구 결정해버린다. 내가 아무리 중국사람이라구 우겨도 중국말을 못하는 중국사람이 어디 있냐구 막무가내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을 만난적이 있다. 일본에는 재일조선인들을 위한 정치단체 총련과 민단이 있다. 대개 총련은 조선쪽이고 민단은 한국쪽이라고 보면 된다. 그 재일조선인 여자애는 그당시 총련조직에서 근무했었다. 그 여자애는 소학교부터 대학까지 전부 조선인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오카야마시사람인데 오카야마시에서 소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는 전 오카야마현에 크라시키란 곳에 하나밖에 없던지라 크라시키에 가서 숙소생활을 하면서 다녔었다. 고중은 일본중국지구에 히로시마현에 하나밖에 없었던지라 히로시마에 갔고 대학은 전국적으로 토쿄에 하나밖에 없는지라 토쿄에 가서 조선대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졸업후에는 조선인을 위한 총련조직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여자애는 조선말을 나보다 못했었다. 내가 분명히 표준말을 했음에도 좀 어려운 말은 인차 알아듣지 못했다. 일본엔 중국같은 소수민족 우대정책이 없을뿐만아니라 재일조선인에 대해서 기시를 하고 있었다. 물론 연변처럼 조선말방송 조선말잡지 같은것은 더욱 없다. 총련조직에서 조선말잡지 같은걸 좀 만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한되여있다. 우리가 생활상 다 조선어를 쓰는데 비해 그들은 학교에서만 조선어를 썼었다. 그러기에 우리 연변조선족들보다 조선어를 잘 못하는건 할수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중국에 잘 적응하기 위해 연변에 조선족학교가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어릴때부터 한족학교에 입학시키는 조선족들도 있는걸 생각하면 이렇게 각박한 조건임에두 불구하고 조선만을 고집하는 이 여자애는 그저 민족심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민족과 조국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김정일지도자가 알면 아마 애국자상이라도 주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여자애가 민족과 조국에 대한 신념은 확고했었다.

나보다 한살어린 이 여자애는 내가 중국조선족이라는걸 알고 날 언니라고 부르면서 무척이나 반가워했었다. 한국이나 조선에 있는 다수민족의 한사람이 아닌 소수군체의 한 일원이라는것으로 나한테 대해 동질감을 느꼈던거 같다. 한국인이나 중국한족등 다수민족한테는 없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두사람을 더 가깝게 끌어당긴거 같다.

나의 이 생각을 증명한것은 대학에서 한국류학생을 만났을때였다. 류학생담임이 그 한국학생한테 내가 중국조선족이고 한국말을 할줄 안다구 하니 그 한국애는 일본말로 [아, 소데스까] 하구 한마디를 하고말았다. 반갑다는 소리도 하지 않아서 류학생담임을 머쓱하게 만들어놓았다. 한국에서 다수민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그 한국인한테 있어서 난 그저 한국말을 할줄 아는 외국인이였을뿐이다. 한국에서 조선족한테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지라 그 한국애한테 난 그저 보통 외국인도 아닌 아주 질이 나쁜 외국인이였을지도 모른다.

동질감은 같은 립장에 놓여있는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정체성은 자기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을때 애써 찾는 감정인거 같다. 연변에 있을땐 크게 생각지 못했던 감정. 연변에 있을땐 우리가 한족과는 달랐지만 연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조선족과는 분명 같았었다. 그러기에 난 다수군체중의 일원이였다. 하지만 일본에 가니 난 혼자였다. 소수인 중국류학생과도 뭔가가 좀 다른 극소수의 중국소수민족 류학생이였다. 하기에 일본에 있는 그 몇년동안 난 늘 내 정체성에 대해서 민족의 정체성과 나라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우리 증조할아버지는 일제시절 가족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 중국에 왔지만 세상뜨실때까지 중국국적을 받지 못했기에 조선사람이다. 할아버지는 중국말은 [니호우] [쎄쎄]밖에 모르지만 해방후 중국국적을 받았기에 엄연히 중국사람이다. 조선이 해방이 된후 조선에 되돌아간 할아버지의 여동생은 조선사람이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고모할머니는 같은 피줄, 같은 고향 같은 언어 같은 습관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엄연한 두나라 사람이다. 이렇게 따지면 국가는 정치도구에 불과하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민족은 국가를 넘나드는 개념이다. 이런면에서는 민족이 퍽 더 중요하고 더 큰거 같다.

그럼 내 민족에 대한 정체성, 나는 무슨 민족일가? 내 선조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가? 고구려후손이였을가? 아님 백제 신라의 후손이였을가? 증조할아버지가 북에서 살았으니 위치로 보면 고구려 후손일 가능성이 크겠지? 그럼 난 백프로 조선인이라구 할수 있을가? 하지만 고구려가 신라한테 먹힌지도 천년이 썩 더 지났으니 백프로 조선인이라는게 있을가? 그저 신라 백제 고구려가 다 우리 선조라고 보면 될거 같다. 그런데 조선반도에서는 중국북방의 소수민족들과도 늘 싸워왔고 또 통혼도 했었다. 이렇게 보면 민족이라는게 의미가 있을가? 이런 생각이 들때도 있다.

하지만 민족이 의미없다고 생각되다가도 또 자신이 조선족이라는게 무지 자랑스럽다. 한족애들한테 자기가 한족이라는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가 하니까 무슨 소리인가고 되물어본다. 주변이 다 한족인데 뭐 자랑스러울게 있는가 한다. 넌 조선족이라는게 왜 자랑스러운가 되묻는 친구가 있어서 조선족의 문화수준이나 경제수준이 다른 민족에 비해 높다구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은 리유가 있어서 자랑스러운게 아니다. 이런 객관적인 원인들을 떠나서 자기의 민족이 그냥 자랑스럽다. 리유없이 자랑스럽다. 자기의 아이가 리유없이 귀여운것처럼, 남들의 눈에는 평범한 내 부모가 내눈에는 리유없이 멋진것처럼.

소수민족으로 태여나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만 소수민족으로 태여난것이 또 고맙기도 하다. 한족으로 태여났으면 주변의 한족들이 그렇듯이 나라 민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협애한 사람이 되였을것이다. 조선이 구차하다구 비웃고 한국사람들이 목소리가 높다고 비웃구 중국에서 통제가 엄하다구 불만을 토로하면서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할 생각을 못했을것이다.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태여났기에 경제적으로 가난한 조선이 안쓰럽고 한국사람들이 떠든다구 욕하는 한족들한테 중국사람들의 소질두 별로 높지 않다구 반박하며 소수민족우대정책을 해주는 중국정부에 고마움을 표할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길수 있는것이다.

우리의 민족국가인 조선이 하루빨리 역병을 이겨내고 폭풍경제성장을 해서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되였으면 좋겠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한국이 세상사람들의 존경을 받을수 있는 더한층 소질높은 국민으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 중국 한국 조선 이 세나라에 다 속하면서도 또 세나라에 온전하게 속하지는 않는 우리 중국조선족들이 온전하게 자기자신한테 속하는 정체성을 찾아서 풍요로운 마음을 느낄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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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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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 아랫세대들은 아마 어려울거 같습니다. 지금 여섯살인 우리아들도 외지에 있다보니 조선말을 하지 못합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민족에 대해서 어느정도 감정을 느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연변에서도 조선어문외의 과목은 다 한어로 강의하고 교과서도 한어교과서를 쓴다 하지 않습니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1. 아마도 그럴것입니다. 저의 생활궤적은 연변, 일본, 상해 이 세곳입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료해는 한국드라마를 통한 수준입니다. 한국에 장기간 거주한 분이시라면 저보다는 한국에 대해서 민족에 대해서 더 많은 감수를 느꼈을거라 생각됩니다.

  1. 저도 한때는, 몇년전에는 비슷한 정체성에 관한 글들은 썼었는데…. 글을 읽으니 잊고 살았던 많은 생각들이 다시 스물스물 나오네요… 하지만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는 언젠가 이렇게 잊혀져 갈거 같습니다. ㅋㅋ 모어를 제일 많이 사용하는 자치주 서점에서 이젠 모어로 된 책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니.

    1. 아마 우리세대까지가 모어로 조선말을 쓰는 세대일거 같습니다. 우리 차세대들은 중국말이 모어거나 아니면 한국에 완전 동화되거나 그렇겠죠. 안타깝긴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만으로 뭘 돌려세우긴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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