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많이 빠졌다.
아무런 힘도 안 들이고.
많이 아픈동안 식욕도 자연스레 없어지고 몸도 피곤했으니 내적에너지 소모가 많았고 덕분에 조금 이뻐졌다. 넘어져서 다친 팔을 들어봤더니 밑에 백딸러가 숨겨져 있는 걸 발견한 기분이다. 조금은 여유있어진 잠옷과 푸시시한 머리를 엉성하게 다듬으며 거울을 봤더니 턱이 한결 날카롭게 브이라인이 되어있었다. 초라해보여도 화장을 하면 아프기전보다 이쁘겠지 라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으나, 금새 이 무슨 미친 생각인가 싶어 홱 돌아서 다시 주섬주섬 약을 챙겨먹는다.
덧없다.
그렇게 일주일동안 페인으로 살만큼 아팠는데, 나는 다시 살아나 이렇게 글도 쓰고 엉뚱한 생각도 하면서 불금에 밖에 못 나가는 맘을 달래고 있다.
생각해보니, 모든 시련은 늘 덧없었던 거 같다.
지나보내지 못하고 힘겹게 제자리걸음 하며 고난이랑 병행할 때는 앞이 보이지 않고 죽을것만 같아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다 그렇다. 세상에 이런 사람 다시 만날수 있을까 하며 좋아했던 사람과 이별했을 때 도, 둘도 없는 단짝친구와 영원히 다시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 사이가 되었을 때 도, 열정을 퍼붓었던 일이 순간적인 거품마냥 수포로 돌아갔을 때 도, 대단한 성공이라 생각했던 사업이 한순간 폭망했을 때 도, 적응이 쉽지 않았던 이방인생활이 지겨워서 다 때려치고 싶었을 때 도, 부부지만 이토록 생각이랑 가치관이 다를수가 있구나 밤새우며 고민했을 때 도, 키우는 강아지가 개춘기여서 괴로움에 키운게 맞나를 수십번 의심했을 때 도, 몇년간 고생하며 쌓아올린 커리어가 참 별것 없이 배척을 당했을 때 도, 어리석게 내꺼라 생각하며 껴안고 있다가 어느순간 모래마냥 내 손에서 훅 흘러나갔을 때 도.. 그 뒤는 다 아무것도 아니란 걸 느꼈다.
결국 내가 다 알아서 해결을 보고 타협을 보고 인정을 하더라고.
시련만 이런가 아름다운 거도 덧없긴 마찬가지.
다시 오지 않을 사랑이라 생각하며 사람 전체가 사랑에 빠져 살았던 날들, 이보다 더 맘이 맞을수 없다며 24시간이 모자라도록 붙어있던 친구와의 추억, 좋아하는 어떤 일에 온갖 열정을 퍼붓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았던 찬란한 노력, 처음 해본 어설픈 사업이 대박났을 때 의 벅참과 희열, 뉴욕이란 도시의 황홀함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몸짓, 남편이 해주는 밥을 매일 먹으며 일부터 열까지 챙김 받는 어린애처럼 객관화가 못 됐던 20대후반, 철이 든 강아지가 이젠 고양이처럼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시크하게 혼자 놀고 간혹 내가 만지면 피곤해하면서 한숨을 쉬는 아이러니, 인정을 받으며 회사생활이 돈을 벌기 위한것이 아닌 내 가치실현임을 몸소 체험하며 달렸던 구간, 굳이 잡지 않아도 부단히 흘러들었던 행운과 끈이질 않는 좋은 일들… 그 뒤는 다 아무것도 아니란 걸 느꼇다.
그저 내가 그속에서 더 많이 웃고 행복했을 뿐. 행복해서 즐거웠을뿐. 즐거워서 살맛 났을뿐.
결국 내가 다 알아서 맘속에 저장하고 축적하고 흘러보내더라고. 이게 전부가 아닌 걸 아니까.
힘들때 꺼내보기용으로. 충전용으로.
덧없는 것 들이 어디 이뿐인가,
삶 자체가 덧없고 인생전체가 덧없는데, 그걸 잘 아는 우리는 자꾸 왜 그토록 경직되고 힘이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좋은 것도 영원하지 못하고 나쁜 것도 결국 지나갈건데, 우리는 그 뻔한 레파토리에서 갈피를 잃고 번마다 순간에 너무 과몰입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노력을 과대평가하고, 자기 불행을 확대하고, 자기 행복을 과시하고, 자기 우월감을 드러내고, 자기 불만을 내뱉고, 자기 자랑을 서슴없이 하고.. 자기가 쏟아부은 모든 거에 담담해지기 어려워하는 거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별루인 마인드와 굳어있는 사고와 발상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이젠 좀 생각을 바꿔보려고. 별일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을 자꾸 해보려고.
덧없는 것들을 만만하게 보는 연습, 그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는 오늘 팥호빵을 먹으며 깨달았다.
팥호빵은 몽글몽글하니 연하고 부드럽다. 아플 때 간단히 전자레인지에 돌려 하나씩 먹으면 가벼운 듯 든든하니 좋은 거 같아서 요새 자주 먹었던 음식이다.
겉은 굉장히 만만하게 생긴 이 호빵은 입에 포근히 깨여무는 순간, 육즙마냥 윤기도는 팥이 와르르 흘러나와 입속을 꽉 채우면서 달달함이 마음까지 전해지는 반전이 있었다.
죽 (粥)은 너무 아픈 티를 내는 사람들이나 먹는 거 같아서 팥호빵을 먹었는데. 너무 만만해보여서 먹었는데. 이토록 맛있고 만만하지 않는 음식이라니.
아, 세상도 고난도 덧없음도 이렇게 만만하게 생각하고 만만하게 대했을 때 나에겐 어떤 삶이 재탄생될까 기대가 됐다.
(满满-부족함없이 넉넉함)만만이 주어질가?
(漫漫-끝없이 무한함)만만이 주어질가?
(무서울거나 부담스러울 거 없이 쉽게 다룰만함)만만이 주어질가?
그래, 모든 게 덧없다면 난 그 모든 걸 더 대충 더 만만하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누구도, 그 무엇도 날 무너뜨릴 수 있는 건 없지 않을까? 내가 다 만만하게 생각하는데 어쩔건데. 내가 시시하게 생각하고 내가 종국엔 덧없음을 알면서도 바라는 게 없이 relax 한 상태에서 만만하게 상대하는데 뭐가 압력이 되고 슬픔이 된 단 말인가. 덧없음을 알면서도 분주히 사는 삶엔 사랑이 넘치지 않을가. 만만하게 보겠단 생각이 품고있는 그 누구보다 용기내 살겠단 내 결심이 티 나는가.
누가 나한테 삶이란 <사랑하며 살아가는게 삶이다.> 라고 하더라고.
그래. <살다, 삶, 사랑>이 다 같은 어원에서 나왔는데, 지겨움과 눈물 처절함 이런걸 통채로 만만하게 보고. 그럼 우리한테 남은 건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뿐이지 않을까.덧없음을 만만하게 보는 연습을 하다보면 우린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결코, 덧없지 않은 인생을 살수 있지 않을까. 모든 걸 만만하게 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우리는 인생을 잘 놀다가고, 재밌게 즐기다 가지 않을가.
덧없는 건 너무 뻔한건데, 그걸 반박하고 싶지 않은가. 덧없음을 무시해서 알차게 사랑이 넘치는 생활을 만끽할 때 오히려 성취감이 있을거 같지 않은가..
그 와중에 손에 든 팥호빵은 너무 폭신했고 따뜻했고 만만했다.
만만한 짜식, 이 팥호빵 같으니라구.
만만한 짜식, 이 덧없는 인생 같으니라구.
만만하게 대하는 맘이, 그 무엇보다 강한 맘일수도.
여니님이 쓴 세번째 만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사는 일의 덧없음을 알아서 어떤 일이 생겨도 뛸듯이 기뻐하거나 죽을듯이 슬퍼하지 않는 것, 이 상태를 평안이라고 한다던데 가지기 참 어려운 마음상태죠. 모든 욕심을 비우거나 아니면 어떤 대단한 약속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은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산다는 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여러 감정을 겪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말하신 그 사랑이 넘치는 생활에 악수하고 갑니다.
맞습니다. 마음속 평안을 가지는 일은 그리 쉽지 않지요.. 죽을때 되지 않은 이상..제 아무리 모든 욕심을 비우거나 대단한 약속을 소유할 지언정 평안이란 반복적으로 다스려야 할 부분인거 같습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여러 감정을 겪으면서, 몸소 느끼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그냥, 삶이란 그 과정뿐인거 같습니다. 그 과정이 있어보는 게 인간으로 살아가는 의미인 거 같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생활, 사랑하며 사는 삶, 사랑을 품고 희망을 가지는 일.. 두루 이런것들에 집중을 해보면서 살길 저한테 소망해봅니다.
慢慢 느긋하게 천천히, 조바심 내지 말고; 弯弯 빙빙 에둘러, 이리저리 체험하면서; 万万 생각지 못한 신비로움 놀라움도 만나고; 满满 벅참 행복감도 느껴보고
만만완완완완만만~ 다 느껴보고 그 느낀 걸 만만하게 생각하고 松弛感있게 살아볼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