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로동은 정말로 중체력 로동이 맞는걸가! 치워도 치워도 끊임없이 널려지는 애들의 장난감, 수많은 동화책들,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옷가지와 양말들… 이러한것들을 정리하는것은 끝도 없는 일이라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건성질을 내며 큰 소리도 버럭버럭 지른다.   

   산다는게 무엇일가? 이렇게 채바퀴 돌듯 집청소만 하는것은 아닐텐데… 하루에도 몇번씩 회의에 잠기군한다. 힘을 내여 정리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웬지 요즘에는 도저히 그런 힘이 나지 않는것이다.

    무엇때문일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내 살림들이 나한테 말을 걸어오는것을 느끼고 있었다. 조용하게 자리를 지키던 내 살림들이 지금 나한테 말을 걸어오면서 내 마음을 마구 휘젓고 있었던것이다. 

 “여긴 내가 있어야 할곳이 아니야! ” 

 “내가 갈 곳은 어디지?” 

 “난 길을 잃었어!”

“난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

“아이들에 의해 오늘 수없이 오르락 내렸어!”

“내 갈곳은 어디야?”

여기저기 널려있는 물건들의 불평소리가 마치 시위라도 할 태세이다.

   “알았어! 알았다고!” 

나는 이 모든게 귀찮은듯 널려진 물건들을 우르르 쓸어 큰 광주리에 담아버렸다. 

    “이 광주리는 잡동사니 투성이야. 네 아이들이 삼킬수 있는 동전들, 말라붙은 찰흙들, 나사못 그리고 먹다 남은 감기약 통도 있어! 네 남편의 냄새 나는 양말도 함께 들어오는것은 너무 했다는 생각이 안드니? 너 좀 정리해! ”

    “닥쳐! 난 못해! 요즘 며칠째 실면에 모든게 너무 심란해! ” 

    나는 물건들한테 버럭 소리 지르며 귀를 막아버렸다. 

    “혹시 나때문이니?” 

    물컵 옆에 벗어둔 결혼반지가 조용히  물어온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넌 어느새 이렇게 뿌옇게 된거니? 넌 백금이잖아? 항상 반짝반짝 빛을 뿌려야지… 왜 이 몰골이 되였니?  ” 나는 결혼반지한테 원망하듯 물었다. 

    “나때문이 맞구나?” 결혼반지는 믿을수 없다는듯 확인을 하며 되물어온다. 

   “너한테 박아 둔 보석때문에 널 낄수가 없어… 앞으로 튀여나와서 너를 내 손에 끼고는 일을 할수가 없어. 약간 날카로워서 내 아이를 안을때 긁힐가봐 걱정이 되고 옷을 입을때 실밥이 걸리기도 해! 이런 디자인을 한 사람은 결혼 안 한 사람임이 분명해… 그들은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큰 보석으로 허세나 부린다고 생각할거야! ” 

     “너 첨에는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니?”

     “그랬지…그런데 지내보니 아니야! 이렇게 튀여나온 보석은 꼭 마치 허풍쟁이 같아! 오히려 밋밋했더면 그냥 무난하게 끼고 다닐텐데…”

     나는 결혼반지를 들었다가 그냥 그 자리에 놔두었다. 끼고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불편한 결혼반지였다. 아니, 벗어버리고 싶은 장신구의 일종일뿐이다… 

     옷장을 열어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보라색 긴 드레스에 주름이 가득 가있었다. 

      “휴~~ 난 이제 끝이야! ” 그 주름살 사이에는 실망이 가득 서려있었다. 

    “너랑 함께 했던 기억들이 너무 소중했어… 함께 영화도 보고 도서관도 가고 친구들과 마음껏 만나고 연애도 하던 그 시절들, 우린 그때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했지… ” 함께 옛날 추억을 나누다보니 저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친다.

    “다 돌이킬수 없는 일이 되였으니 참 슬프지? 너도 나도 이제 한물갔어!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는 네 그 슬픔을 잘 알아… ”

   부드러운 보라색 드레스가 나를 꼭 안아주며 위안해준다. 그런데 옆에 걸려있는 암갈색의 정장 치마가 눈을 치뜨고 나를 쏘아본다.

    “너 지금 이러고 있을때니? 너 일자리 찾는다고 나를 살땐 언제고 이젠 어떻게 할거니? 너 이제 애 둘이나 딸린터라 솔직히 날 입는게 두렵지? 너한테 맞는 직장은 이제 없어! 넌 애를 안고 다니느라 지금 하이힐도 못 신잖아. 넌 그냥 애 엄마야!” 

   악을 바득바득 쓰며 퍼붓는 그 가시 돋힌 말에 나는 볼 부은 소리로 대답했다.

   “애 엄마가 어때서? 난 애들을 키우는게 힘들긴 해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

   그런데 구석에서 이 모든것을 지켜보던 하얀 원피스가 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슬그머니 몸을 피해버린다. 대학원 졸업식때 입었던것이던가, 학술회 논문 발표때 입었던것이던가! 기억이 왜 이렇게 가물가물해질가? 오래전 일도 아닌데… 하긴 인생의 복잡한 모순에 대한 고민은 때론 억지라도 어두운 곳에 넣어두고 꺼내보지 않는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마치 기억 나지 않는것처럼, 마치 아무 일 없듯이…  

    그런데 왜 이렇게 모든 힘이 풀리는것일가! 저도 모르게 마루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나를 피하며 마주보기를 거부하는 그 하얀색  원피스가 너무 마음에 걸린다. 

   “흥! 좋긴 뭐가 좋다고! ” 

   마루바닥이 단단한 가슴을 내밀며 허구프게 웃는다.마루바닥은 모든것을 알고 있어 더욱 냉정하다. 아, 이 현실은 어쩜 이 단단하고 냉철한 마루바닥과도 이리도 닮아있는것일가!

    “내 인생 내 놔! 내 인생 내 놔! ” 

    멱살이라도 잡으며 외치고 싶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깊고 깊은 한숨만 땅이 꺼지게 나갔다. 

    그러다 보니 저켠 소파밑으로 책 하나가 보였다. 저건 내가 그렇게 찾고 찾던 요리책이 아닌가! 저렇게 희뿌연 먼지를 가득 덮고 고이 잠자고 있다니. 수많은 먼지가 무덤처럼 온 몸을 뒤덮고 있을때 저 책은 어떤 절망감에 모대기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가? 죽어가기로 작정이라도 한것일가? 나는 수건에 물을 묻혀 먼지가 묻은 책을 닦아주었다. 한때 그렇게 찾았던 요리책이였다. 알콩달콩 맛있는것을 해먹으며 잘 살고 싶었던 가정에 대한 부푼 기대로 사왔던 이 요리 백과…그렇게 기대에 들떠서 이 책을 만났었는데…그런 기대는 다 어디간것일가? 지금의 이 뒤죽박죽이 된 내 삶으로 어떻게 이 아이를 대면해야만 하는것일가? 삶의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가 되는 먹거리를 그토록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주는 저 요리책. 나는 그토록 삶을 소망하고 있지 않았는가?

    요리책은 천천히 잠에서 깨여나며 맑은 눈동자로 내 얼굴을 들여다 보더니 사랑이 어린 눈길로 냉장고에 손짓했다. 그 손짓에 웅크리고 있던 냉장고가 묵직한 목소리로 나한테 말을 건넨다. 

     “어두운 곳에 그렇게 차갑게 숨겨 놓은것을 한번 열어볼수 있겠니? “

    나는 요리책에 떠밀리여 크고 무거워 보이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얼어있는 가슴속을 파헤치며 나직히 내뱉었다. 

“엄마가 되여 애들을 키우고 교육하는 일이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또 가정주부로 하잘데 없는 단순한 가사노동에 매여있는 내가 너무 못나보이기도 했어. 나 절로도 너무 모순돼! 그런데 이런 모순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 사회생활 잘하고 있는 남편은 오히려 나한테 잘난척만 했고 나를 힘들게 공부시키셨던 부모님들은 내가 인생을 낭비한다고 생각하고… 왜 가정을 보살피고 아이를 돌봐주는 일을 그렇게 우습게 여기는걸가? 내가 하는 일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수없이 회의에 잠겨. 이해가 되면서도 때론  한심해져! 난 자존심이 상했어. 그리고 점차 실망이 되였지. 그러한 실망감에 내 마음은 꽁꽁 얼어들기 시작했지.” 

“그럼 한번 꺼내서 녹여보는건 어때? ”

냉장고속에서 푸짐한 식재료들을 꺼내 들었지만 냉기에  손이 시렸다.

“내 어린 아이들을 정말로 잘 키워보고 싶지만 때론 내가 하고 싶은 그 간절한것들이 생각이 나. 그럴때면 정말 견디기 어려워! 가까스로 마음의 평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아! 내 인생은 뭐지? 내 꿈은 언제 이룰수 있을가? 왜 이렇게 어려울가?  왜 이해주는 사람이 없을가? 현실이 너무나 벅차! ” 나는 손에 식재료들을 한가득 든채 간신히 팔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냉장고는 내 손에 들려진 그 재료들을 지긋이 보다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사실…이봐. 네 손에 이미 꽤 많은것이 들려져 있잖아! 약간만 더 인내심을 갖고 네 손에 주어진것들을 살펴 보렴! 감사한 마음이 네 모든 원망의 에너지를 어마어마한 창조력으로 만들어줄거야. 넌 삶에 수동적으로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고 너만의 삶을 창조하는 멋진 존재야. 그리고 엄마는 더욱 대단해! 그리고 쉿! 비밀을 알려준다면… 이런 모순들이, 바로 이런 어려움들이 사실은 진정 살아가는 재미야! 용기내봐! ”

“이런 모순과 어려움이 살아가는 진정한 재미라고? ”

     냉장고가 주는 식재료들을 들고 주방 쪽을 바라보니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듯이 국가마, 후라이팬, 국자, 접시들이 일제히 나한테 환성을 보낸다. 

     커다란 국가마가 약간의 오기를 부리며 잘난척 한다.

     “큰 가마는 원래 천천히 끓는 법이야!”  

     요리책이 건의를 해준다.

     “급한 마음 앞세우지 말고 이 모든것을 먼저  잘 느껴봐! 네 오감으로, 네 마음으로, 네 영혼으로 천천히… 그러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수 있어! 네 삶도 마찬가지야. ” 

    요리책과 대화들을 주고 받으며 아주 정성들인 반찬이 알싸하게 감동을 전해 주며 만들어지는데 퇴근한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손에 들려진 요리책을 보더니 남편이 손을 비비며 반색을 한다.

“히야! 그렇게 찾던 요리책을 찾았네! ” 

남편의 입에서 군침이 돌며 뭔가 기대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얼마만이야! 당신 기쁘게 요리하는 모습…” 

남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군침이 도는 입으로 수없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며칠간 이어진 냉전을 종식시키려는듯했다. 나는 그 얄팍한 심사가 너무나 빤히 보여 괘씸했지만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갔다. 

     그 순간, 나한테 수군거리던 살림들은 일제히 몸을 가누고 입을 다물며 그냥 물체로 회복한다. 그토록 나한테 유난을 떨던 살림들은 더 이상 아무말도 없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몸을 맡기고 집은 다시 난장판으로 되여간다. 

    푸짐한 저녁상을 물리고 아이들 뒤치닥거리를 마치고 하루는 또 그렇게 저물어 갔다. 하루동안 쌓인 피로를 잠식시키며 어둠이 주는 평화를 느끼며 조용히 잠을 청한다.

“당신 우리 가정에 너무 많은걸 희생하는게 참 미안해, 수고했어!”  잠결일가, 꿈결일가! 두런거리는 남편의 말소리였다. 나의 그 어느 깊은 곳이 뭉클했다. 내 마음 속에서 맴돌던 부산한 기운들이 깊은 한숨과 함께 후련하게 빠져 나가며 나는 더욱 깊은 평화를 향하여 잠에 빠진다…  

   새벽의 희붐한 은색의 빛이 내안의 새로운 나를 깨운다. 나는 식구들이 자는 틈을 타서 살며시 일어나 진정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졸업식때 입었던 하얀 원피스를 꺼내 정성스럽게 다려주며 수고했다고 말해주며 꼭 기다려 달라고, 지켜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직장을 찾으려고 사두었던 암갈색 정장한테는 더 이상 비꼬는 말을 자제해달라고 귀뜀해 주며 그게 다 불안했기에 그런것인줄도 안다며 이해를 해주었다. 나와 모든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했던 보라색 드레스는 그 주름살들이 다 펴지게 다려서 보관하며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부분으로 간직할것이라고 약속하였다.

마루바닥의 잡다한 먼지를 쓸어내고 물기를 한껏 품은 물걸레로 구석구석 고루고루 닦아주니 마루바닥은 마치 한껏 생기를 품은 식물마냥 싱싱해지며 숨을 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답답하지 않았고 그 어떤 활기찬 생명의 역동이 일어나고 있는것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장난감중에서 재밌는 장난감 두어개를 골라 아직 깨여나지 않은 아이들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먼 훗날에는 분명 이 시절들이 참 눈물나게 그리울것이라고, 그래서 나와 함께 여기저기 오르락 내리락 하며 때론 자신이 있을 자리조차 찾지 못한채 보채는 모든 장난감들한테도 서로 이해해주며 함께 힘내자고 했다. 

내가 집안 정리를 하며 지나다닐때마다 결혼반지는 계속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용기를 내서 결혼반지를 대면했다. 소다를 묻힌 티슈로 결혼반지를 빡빡 문질러 닦아주니 결혼반지는 어느새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아졌다. 

    그러고 보니 결혼반지가 새롭게 업그레이드 된듯 했다. 더 이상 누구의 선택이나 지시에 휘둘리며 어쩔바를 모르며 풀이 죽어있는 어린 아이같은 모습이 아니였다. 강력한 자신의 빛을 뿜으며 진정 삶의 주인이 되여 때를 기다릴줄도 알고 선택의 자유도 한껏 누리며 또한 훨씬 주도적인 책임감으로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이였다. 

나의 손가락들을 내려다 보았다.  힘이 센 엄지나 총명한 식지가 아닌 가장 힘이 없고 가장 보잘것 없는 약지가 결혼반지의 자리가 아닌가! 그래서 결혼반지는 서로의 가장 여린 부분에서 빛을 뿌리며 관계를 이어주는가보다!  

반지의 보석이 튀여나온 디자인, 공연히 잘난척하고 실용적이지 않는 구석은 어쩜 내 남편을 이리도 닮은것일가?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런 구석이 은근한 기대를 준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 지금처럼 수시로 안아줘야 하는 시간들이 지나면 이 내 약지가 보석을 달고 아무 걱정없이 호강할수 있을가? 아니면 남편이 약간 더 미안해하며 나한테 가사분담을 훨씬 더 많이 해주면 내가 더 여유를 가질수 있을가? 

약간 허세를 부리는 저 얄미운 보석, 오늘따라 반짝반짝 빛을 뿌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는것은 웬일인가! 그래서 이 모든 모순과 어려움들이 바로 살아가는 재미라고 하는것일가!

요리책을 뒤적이며 냉장고속에서 보물을 찾아내듯 식재료들을 꺼내들었다. 새벽 집정리를 마치고 아침을 준비하는 내 가슴은 어느새 삶에 대한 기대가 벅차 오르고 있었다! 

이 글을 공유하기:

유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32
응원합니다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