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으며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언제나 헐값에 팔면서도

또 산으로 나물 뜯으러 갔다

어스름이 내리고

낡은 벽시계의 소리가 커가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전등을 켜지 않고

불도 지피지 않고

밥도 짓지 않은 채

아버지는 몇번이고

문을 열고 나갔다가

비물을 주르르 흘리며 들어섰다

어둠과 같이 두려움이 

몇겹으로 깊어갈 때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섰다

나물보따리를 바깥에 던지며

아버지가 벼락같이 소리지르고

우리는 그래도 안도했다

천천히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우리는 그 날

여느때보다 따스한 저녁을 먹었다

언젠가 썼던 <비 오는 날>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그 날 우리 네 식구가 함께 무거운 침묵 속에서 먹었던 밥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렇게 적막 속에서 밥을 먹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홍수에 밭이 침몰되였다거나, 가뭄에 땅이 갈라지고 곡식들이 메말라죽었다거나, 어느 가을날 메돼지들이 밭을 휩쓸고 갔거나, 여물지 못한 논에서 소들이 곡식을 뭉텅뭉텅 잘라먹거나, 탈곡까지 다하여 외양간에 쌓아놓은 쌀마대들을 어느 날 밤 몽땅 도적맞혔거나, 아끼고 믿고 의지하던 소가 갑자기 상하거나… 그럼에도 우리는 늘 촉수 낮은 전등불 아래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비록 밥 먹는 소리마저도 조그마하게 죽이며 먹어야 했지만 우리는 늘 따스한 밥을 함께 먹었다. 나는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밥을 먹는 일은 힘겨운 오늘을 위안하고 래일을 살아낼 힘을 가지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말없이 우물거렸지만 우리는 서로의 숨결을 가장 잘 느끼고 있었으며 다시금 힘이 고여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밥을 거의다 먹을 때 쯤이면 조금씩 서로를 바라보기도 했고 희미하게나마 웃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그 무서운 날들을 이겨낸 것 같다. 

나는 밥을 잘 먹는다. 잘 먹는다는 것은 꼬박꼬박 세끼를 챙겨먹는다는 것이고 반찬에 관계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다는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직 내 몸이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처럼 또 다른 정신적인 무엇을 추구하라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우선 몸이 추스러지고 건강해야 건강한 정신도 생성되지 않을가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각을 나는 갖는다. 꿈이나 사랑이나 행복과 같은 것들이나 예술이나 과학이나 철학과 같은 것들도 모두 밥을 먹고 존재해왔다. 

이 세상 그 누구나 또 밥을 위해 싸운다. 새도 위장이 차야 날개를 퍼덕여 하늘을 날아예듯이 사람 역시 배를 불려야 정신적인 것이든 령혼적인 것이든 이룩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지독하게 도를 닦은 사람들은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다. 그래서 항상 이것도 밥이 될 수 있을가를 고민하며 밥이 될 것 같은 무엇을 찾아헤매게 된다. 밥을 마련하기 위해 먼지 낀 신발로 땀나게 뛴다. 세상에 태여나 첫울음을 우는 순간에도 우리는 처음 보는 이 세상에 놀라서 운 것이 아니라 음식물을 제공받지 못하도록 모체에서 단절된 상태를 무의식적으로 깨달아 울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먹을 것을 위해 한뉘 보채야 할 것을 알고 미리 울었을지도 모른다. 

일이 바빠 아우성을 치는 사람도, 그리움 때문에 죽겠다는 시늉을 하는 사람도, 병들고 아픈 육신으로 하루하루 겨우 지탱하는 사람도, 지어 혈육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사람도 밥을 먹는다. 눈물이 입안으로 흘러들더라도 목구멍이 꽉꽉 막혀오더라도 우리는 밥을 먹는 것이다. 자신의 식욕을 비웃고 싶고 밥을 먹어야 하는 이 세속성에 가련해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밥을 먹는다. 그것이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다. 그래야만 이 시간들을 견디고 살아낼 수가 있는 탓이다. 어떤 경우라도 식욕이 도는 스스로를 용서해야 한다. 리해해야 한다. 밥 한숟가락의 의미는 살아있는 자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 본능은 누가 뭐래도 위대한 것이다. 

딸애가 고중에 입학하여 일년 쯤 지난 어느 날이다. 애가 갑자기 학교로 안 간다고 날카롭게 나를 향해 소리질렀을 때였다. 나는 밥상에 마주앉아 있었다. 나는 안된다고 험악한 표정으로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고 입안에서 밥알들이 튕겨나오기도 했다. 학교로 가지 않으면 절대로 안된다고 여겼다. 이것이 세속적인 욕심인지는 몰라도 현실은 세속적이며 인간은 현실적으로 살아야 할 뿐이라고 여겼다. 세속적인 것들이 한 평범한 인간의 평범한 삶을 지켜준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미친듯이 히스테리적으로 애에게 온갖 잔인한 말들을 다 퍼붓고 나서 나는 “밥 먹자.” 그러며 밥공기를 내밀어 애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었다. 애에게도 기실 많은 것들이 힘들었음을 리해하며 내가 미처 보듬어주지 못한지 안다. 그것이 마음을 아프게 후볐다. 애가 울고 나도 울었다. 그리고 숭고한 의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우리는 밥을 입에 떠넣었다. 밥이 비죽비죽 나오려고 할 때도 기어이 입안에 그러모아 씹어댔다. 그 날 우리는 그렇게 밥을 먹었고 다 먹고 나서 “래일이면 괜찮을 거야.”라고 애에게인지 나 자신에게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애가 래일 학교로 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과 싸우거나 사람들과 이런저런 모순으로 힘들거나 심신이 아프거나 때론 슬프고 외롭고 실망하더라도 밥을 먹는다. 그것이 나는 여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밥을 먹고 있으면 서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사는 거라며 어떻든 살아내는 거라며, 자신을 달래줄 수 있었고 그 차분한 마음에 일상의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이 소복이 쌓여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다 이겨낸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그 어떤 힘든 일들도 다 지나오게 되였다.

밥을 목구멍으로 넘길 용기가 없는 자가 늘 세상을 피하고 세상을 떠나고 하는지 모른다. 그 용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밥을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밥을 먹을 때 그 풍성한 맛이 입안에 퍼지고 그것이 혀를 감미롭게 자극하고 다시 목구멍으로 넘어가 위장에 갈 즈음이면 또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밥은 그렇게 몸속을 통과해 배출되는 과정에 몸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의식에도 흘러든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생물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세상과의 접속을 원하는 행위이며 다시 그 세상에서 내 몸과 맘을 연소하며 살아가려는 의지이다. 밥상에 등을 돌리는 이는 삶이라 부르는 것을 포기했거나 포기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살고 있고 살고 싶은 자는 밥숟가락을 든다. 혼자 먹는 찬밥의 서러움과 슬픔이 있더라도 밥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어 먼곳의 빛을 보려는 노력이며 그 빛을 향해 일어서서 발자국을 내딛으려는 노력이다. 

밥풀의 끈끈한 힘은 넘어지는 자를 일으켜세워주고 휘청거리는 자를 단단히 서도록 붙잡아주고 스러져가는 자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땅에서 자라서 음식이 된 것들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온몸에 퍼지면서 땅의 기운을 불어넣어 이 땅에 굳건히 서서 걸어나아가도록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지속되는 것이다. 

아침이면 아침밥을, 점심이면 점심밥을, 저녁이면 저녁밥을 먹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존재가 어느 만큼 하찮든 관계없이 생존하려면 먹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활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먹고 그것이 나중에 똥으로 배설되고 그러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음식을 거부한 이는 유사 이래 없었다. 밥과 똥과 삶은 결국 다 똑같이 참된 것이다. 일어난다, 걷는다, 손을 잡는다, 껴안는다, 웃는다, 눈물을 흘린다, 사랑한다, 기다린다, 그리워한다, 희망한다, 열망한다, 창조한다, 성찰한다, 깨닫는다, 구축한다, 승화한다… 그 어느 것들이 밥을 먹지 않고 가능한 것들인가. 몸과 마음, 정신과 령혼 그 모든 것은 밥을 필요로 한다. 

밥을 먹으며 발목에 힘을 주고 무릎을 세우고 일어서 고개를 들어 새로운 하루의 해를 맞이하고 싶다.  배가 고파오는 이 생물적 욕구의 질서, 그것은 존경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 질서의 세계를 벗어난 사람이 어데 있는가. 그것을 벗어난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일 뿐이다. 먹고 배설하고 다시 먹는 것, 그것은 살아간다는 참된 의미이다. 죽은 뒤에야 파괴되는 질서이니까. 살아있고 살려고 하는 자는 모두 밥을 먹으며 그 힘으로 삶을 열어나간다. 밥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자 거룩한 일이다. 삶의 가치 만큼으로.

– 밥을 먹자.

참 이쁜 말이다. 매 자음과 모음이 어울려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그 여운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늘 들려주고 싶다.

하루 세끼 밥 만큼의 괴로움도 슬픔도 불행도 찾아오겠지만 또 세끼 밥 만큼의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과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이 글을 공유하기:

goql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12
응원합니다

댓글 남기기

  1. “나는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스을쩍 그러나 기이피 다가오는 말인거 같습니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이란 따뜻한 밥을 함께 먹고싶은 사람인것 같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2. “자신의 식욕을 비웃고 싶고 밥을 먹어야 하는 이 세속성에 가련해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밥을 먹는다. ” 정말 딱 그렇습니다. 죽도록 힘든 일을 겪고도 배가 고파 밥을 먹으면서 드는 생각 “지금 입에 밥이 들어간?” … 예, 들어가더군요.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