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지인이 모멘트에 <마스크를 얼굴 반쯤 턱에 대충 걸치고 굉장히 싸늘한 무표정으로 총을 들고 앉아있는 사진>을 올린적이 있다. 그 어떤 멘트도 없이 사진만. 당연히 그 총은 아무데서나 손쉽게 구입가능한 가짜 놀이감이다. 그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정말 단순히 궁금했다. 왜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는 모멘트에 굳이 조금은 난해한? 사진을 기재하는것인가, 도대체 말하려는게 뭔가, 아님, 아무 생각없이 재미로 올렸을가? 

그럼 그 의문을 가지고, 그전에 일단 이것을 생각해보자.  이 곳은 뉴욕의  MOMA현대미술관의 한 광경이다.  크나큰 미술관 내 수많은 유명그림중 유독 여기만 미여터질것 같다.  가끔 …방문해도 이 그림을 전시안하는 경우도 있어서 운 좋지 못하게  못보고 나왔다며 한탄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바로 그 유명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다들 알다싶이 이 그림은 고흐가 고갱과 싸우고 자신의 귀를 자르뒤 정신병원에 있다가 환각상태에서 그린 그림이다. 처음 이 그림을 실물로 접한 내 진솔한 느낌은 이러했다. <원래 밤하늘은 좀 어둡고, 그나마 별이 총총하게 있어봤자 미세히 반짝이는 정도에 머무는데 , 이런 경우에 비해 이 작품의 밤하늘은 많이 영롱한 느낌이구나… 뭔가 화가가 희망을 보여주고 샆었던거겠구나. >

(이 사진은 뉴욕 매트로폴리탄에  있는 고흐의 자화상)

살아 생전에 그림 한 점 못 팔았던 고흐는 엄청 가난했고 자살로 이 생을 마감했으나 죽어서 그의 작품들은 엄청난 화제를 일으키며 세계적으로 재조명 받는다.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은 < 당시 고흐의 엄청난 슬픔과 극도의  고독들을 나타내며 혼란스러운 내면상태를 표현>했다고 평가된다. 또 <자포니즘>이라고 하는 일본의 풍속화인 <우끼요예>작품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아 그려진것이라고도 한다. 

강렬히 알고 싶었다. 그것이 뭔지? 하지만, 나는 고흐의 전하려 했던 그 뜻을 그림만 보고는 알수가 없었다. 아니, 너무나 알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내 눈엔 분명 찬란하게 보이는 한폭의 <고즈넉한 마을의 밤하늘>그림이었을뿐이었다.  고흐의 그림뿐만아니라, 존재하는것과 생각하는것 사이엔 무수한 신비가 내재되어 있다. 사실 모든것에 대한 판단은 보여지는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강렬한 표현으로 원색만 살린 이 그림은, 어쩌면 이것이 후기 인상주의가 신인상주의를 초월한 부분이 아닐까, 혹은 현대사람들의 (审美)미의 기준을 바꾼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마크 로스코의 마음풍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림;작가의 내면을 강조한 현대미술도 난해함들의 집합이다) 

그렇다, 망막에 비춰진대로 나타나는 신인상주의와는  달리 안에서 밖으로, 작가가 느끼는대로, 자신의 내면세계와 감정을 주로 표현한 후기인상주의파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안>을 그린 작품으로 나는 <보이지 않는 그>의 비가시적세계를 읽을수가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지인의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그 모멘트에 의아함을 품었다는 자체만으로 일단 일종의 선입견과 소위 객관적인 도덕율리와는 다소 어긋난다는것을 내 무의식속에서 판단한 셈이다. 그럼 왜 진짜 실존하지도 않는 평면적인 일차원세계의 사진 하나를 두고  온갖 추측을 다 하며 의문했을가? 즉 그런걸 올리지 말아야 <참>인가 하는 설정에서도 나는 부정이나 대꾸할만한 딱히 떠오르는 반박거리가 없었다. 

    ( 사람 얼굴이 여러 상황에서 찍혀 나타나는 표면상) 

그럼 모든 실존 사건에 대한 보여지는 본질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본질이란 어떤것이 존재하는 이유나 목적인데,  반대로 인간은 실존하는 생명체다.  그냥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다. 즉 피투성(被投性)이라는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자유가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규범도,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도, 딱히 주어진 역할도 없다. 즉 아무런 제약도 없고 내가 무얼하든 그건 자유다. 하지만 인생은 종종 선택에 직면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답이 없는 선택을 택함을 위한 자기기만을 한다. 반대로,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가치가 창조되고 그게 정답이 되는것이다. 단,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되고 그것이 정답인양 행동하면 된다.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인간은 피투성으로 태어났지만 결국 기투(企图)하는 존재로써 앙가주망(Engagement)을 하고 있지 않는가…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질서있게 연결되어 있고 세계는 사물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의 총체이니까. 나를 주체로 하되 그로 인해 일어나는 반작용도 어쩌면 현실고려의 범위를 벗어나진 못한다. 

유명한 분석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철학의 임무란 세계와 언어의 한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말할 수 있는것은 더욱 명료하게 말하고 말할 수 없는것에 대해서는 침묵하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의 삶엔 정답이 없다. 그리고 대개 어떤 판단이나 평가 같은거도  정확한 척도기준이 없다. 실존은 본질에 앞서고 누구나 그 본질을 알수가 없다. 즉 우리는 예술이 인생을 묘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인생이 예술을 묘사하는 경우가 다반수다. 

그냥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서 내가 뭘 하려고 여기 왔는지, 그걸 알기 위해서 할게 나한테 필요한 스토리텔링이다. 온 자리를 알고 갈 자리를 안다면 중간에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 디테일로 장식할지만 내가 진정  해야 하는 일이다. 중간에 있는 스토리는 쭉 멋지게 젊음을 찍고 또 쭉 다시 차분히 내려올것을 이미 알고 있다면 인생은 매우 가벼운것이다. 이 가벼움은 내면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동떨어진 시선>으로  승화한다. 우리 모든이의 매일은 소중하고, 그 누구한테도 평가받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특별한 시간 여행속에서 주관이 강한 사람으로 쉽게 세속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막을수 있는 방패가 든든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별이 빛나는 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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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니

글로 내 생각과 내 마음을 표현할수 있는건 굉장히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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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웬지 모를 여운이 한참을 감도는 듯한 글이네~~^^
    어케보면 내삶이 내행동이 내자유인데 누가 내 삶에 대해 지적질하고 너를 위해서 인양의 틀을 들고 내 행동마다에 평가하고 잘못되엇다 평가하고 참… 인간은 그너듯싶어… 너무 슬픈건 나도 어느 모르는 순간에 누구한테 너 좋아하고 그러는거야 라는 마인드로 그런 행세를 햇을거라는거야…
    그리고 저말 너무 맘에 드네…
    내 언어의 한계는 내세계의 한계 라는걸..
    더 낳아진 사람이 되고 싶어

    1. 참 포인트를 잘 포착하시네요~ 저 말은 진짜 유명한 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이 한 말인데요, 세속적인 표현으론 죠~ 엄청난 유럽재벌가 막내아들로 태어나 엄청난 부를 누릴수 있음에도 1/2차 세계대전 다 자원참군하고 마지막엔 재산은 가족과 사회에 다 기부하고 농촌마을에서 학생들 공부 가르치다가 2차세계대전 끝나고 은둔생활하다가 인생 마감함 ,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은 더 자기내면을 들여다 봐야 하는 일이고 자기를 잃지 말아야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을가란 샹각두 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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