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파문을 일으킨다. 어떤 만남은 여울로 굽이치기도 한다. 책 속의 만남도 그렇다. 주위의 여러 지인이, 특히 우리나무 나무작가 중의 몇이 소설가 김애란을 언급했다. 끝내 읽었다. <바깥은 여름>, 그래, 여기도 바깥에 여름. 단편집이었지만 '짧다'는 물리적 분량과는 별개로 '빨리' 읽혔다. 그리고 말 못할 감정의 그물에 걸려 들었다. 이런 소설가 같으니라구. 글 몇 줄, 이야기 하나를 읽기만 했을 뿐인데, 사람과 세상을 다르게 하는 족속들인 걸 새삼 알겠다. 진안이 왜 그런 글을 썼는지 조금 알겠다. 

솔직히 불편한 감정도 섞여 있었다. 어딘가 '부디사다'. 김애란 자신이 책의 끝에 적었다. 자신이 써낸 그 사람들이 아직도 어딘가를 바라보고만 있을 것 같아서 작가 자신도 가끔 그들을 바라보기를 되풀이한다는 요지의 말을. 일곱 단편, 일곱 이야기. 휘리릭 되감겨버리는 금속줄자 같은 글들, 그러나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궤적을 남긴 것 같은 그런. 

소설들은 하나 같이 끝이 끝 같지가 않다. 찝찝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독자로서 '나'의 무언의 감정들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소설 속 인물들은 활자 저 편으로 홀연히 사라진다. 저 편에 있는 줄은 알겠다. 근데 나는 그들을 더이상 어찌할 방도가 없다. '내'가 그냥 던져진 걸까. 뭔가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그들 앞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언제 그랬다는 듯 바다는 고요해진다 라는 무기력한 말조차 전할 수 없는 '나'의 불안감이 남았을까. 그런대로 일상은 또 찾아오는 무가내함, 갚지 못할 신용카드를 당겨 쓴 기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나의 모습들이 호출되었다. <바깥은 여름> 중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일상이 평온하지가 않다. 결핍이 있고 결핍 속의 몸부림이 있다. 저자 소개의 김애란은 1980년 인천 출신으로 적혀 있었다. 외환위기와 국가부도가 그의 성장과 민감한 시기와 겹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소설 사이로 그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듯한 착각도 느껴진다. 허나 동시에 그건 한국이란 공간에만 제한된 이야기일까. 결핍이 더 넘쳤던 시대가 아니라도 누구나 다 성장하면서 객관적인 상황과 별개로 주관적인 '결핍의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었나.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동년을 보냈던 곳은, 지금은 누가 봐도 시골이라 부를 것 같고, 그 시대에는 시골 티는 조금은 면한, 그러나 절대 도시라고 불리울 일은 없는 작은 고장이었다. 부모님 모두 농사일에서는 자유로운 '공인'이었고 우리 집은 그 시절의 부러움을 살만 한 '나름의 쌍직공'이었다. 훗날 그 고장에 와본 어떤 이는 아버지가 지방정부에서 일을 했다는 이야기에 나보고 '금수저'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소학교까지 나도 나름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학급에는 집 형편이 나보다 어려운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늘 이런저런 결핍을 느꼈다. 또래보다 한 살 어리고 키가 작은게 불만이었고, 나와 주변 이들의 삶을 보면서 내 나름의 미적 기준과 현실의 차이에 다운되기도 했다. 

이런 결핍은 중학교를 외지에서 다니면서 부쩍 늘어갔다. 더 좋은 공부 환경을 위해, 소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님은 대중교통으로 40분 남짓이 떨어진 읍내의 중학교에 나를 보냈다. 거기는 바깥이였다. 이미 일주일 정도 학기가 시작된 뒤의 전학이라, 학교의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가 살짝 힘이 부쳤다. 내 인생 첫 '과외공부'를 나는 그 읍내에서 경험하였다. 진짜 내가 놀랐던 것은 다른데에 있었다. 

퇴직한 수학선생의 개인 집에서 과외를 마치고 나오는 길, 나와 함께 과외를 받았던 다른 중학교의 한 여학생은 자연스레 함께 걸었고, 우리의 귀가길은 가로등이 켜진 그 읍내의 오락가를 지나게 되었다. 그날의 밝은 불빛과 요란스러웠던 소리, 대범하게 내게 말을 걸어오던 여학생, 잊혀진 대화 내용, 붐비던 밤거리의 파편들이 아직 선명하다. 그리고 그건 아마 내가 '촌놈' 같다고 느꼈던 결핍이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은 내가 올리 쳐다봐야 할 것 같은 존재였다. 다른 친구들이 바늘자국 하나 안 보일 것 같은 새하얀 신발을 신을 때면 부러웠다. 시장에 가 봐도 똑같은 건 없었다.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건 인민페로 200원이 넘었다. 당시 내 한 달 용돈은 50원이었고 나는 그것도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조금 아끼면 신화서점에 가서 민족출판사에서 낸 조선어판 세계명작들을 한 권씩 사모을 수 있기까지 했으니 만족스러웠다. 헌데 신발 앞에서 결핍을 느끼다니. 다른 친구들고 비슷한 신발을 신고 비슷한 옷을 입어도 뭔가 나는 그 맵시가 안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차림으로 고향에 갔을 때는 뭔가 동네 풍경과 어울리지 않아 괴로와했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그 새하얀 신발은 그 친구의 엄마가 한국에서 부쳐준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큰 동네라고, 내가 중학교를 다닌 읍내는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바로 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거기서 같은 학급의 친구들과 같은 학교 다른 학급의 친구들은 2차로 모인다. 그리고 이튿날 그들은 학원에서의 이야기를 했다. 내 성적은 학원에 다닐 필요는 느끼지 못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학원에 다닐만한 돈도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친구들의 대화에 끼고 싶은 '결핍'이 있었다. 

또 있다. 누구나 오는 사춘기였고 이성에 싱숭생숭 눈을 뜨기 시작한 때였으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허나 나는 내가 느끼는 혹은 나 자신이 만든 '결핍' 안에서 자존을 못 이겨했다. 영문 없이 출처 모를 수많은 '왜'를 나 자신에게 퍼붓고 고민하고 부대꼈다. 나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쏘았고 그 자국들을 안고 나이를 먹어갔던 것이다. 

얼마 만큼의 시간이었을까. 이제 문득 돌이켜 보니 그 기억들과 결핍들은 강 너머에 있 듯 석연하다. 당연하게도 이제는 옷이나 물건이다 타인의 언행에 결핍을 느끼는 경우가 드물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감수성이 세월의 난도질을 당했다고, 혹은 더이상 그런 것들이 내 삶의 테제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세월의 끌에 마모된 흔적도 있을테지. 그래도 이젠 그런 것 없이도 삶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부분도 크다. 

완벽이라는 것이 있는 줄은 알지만, 그래서 완벽에 닿을 수 없어 괴로와했지만, 완벽이 아니라도 완성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완벽을 꿈꿨던 그 시절의 결핍의 감정들은 가끔 이렇게 꺼내볼 때 의미가 덧칠되어 빛이 나기도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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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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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핍에 대한 자각이 저는 아름답게 보입니다.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우리 안에 결핍이라는 생각을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닐까요? /적어도 서너번은 읽어볼 글을 써주심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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