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경절 기나긴 휴가가 시작 되였다.위쳇 모멘트에 “얏호! 휴가다” 하고 환성을 지르며 말하는 사람들이 얄미운 나는 두 어린 아이의 엄마이다. 이번 휴가에는 아무런 여행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큰 애가 학교에서 하는 공부도 따라가기 힘겨운 현실이지만 친구가 위쳇 모멘트에 올린 동영상에는 그의 딸 아이가 우리말로 된 동화 책들을 유창하게 읽어가는 모습이였다. 어딘가 약간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며 우리말은 절때 놓치면 안된다는 욕심에 이번 국경절기간에는 받침을 떼줘야지 하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그러고 보니 긴긴 휴가를 두 아이와 삼시세끼를 해먹으며 꼬박 집에서 지내야만 되는 현실… 한숨이 나갔다. 

    애가 어릴때는 글자에 색칠을 하기, 종이로 자음과 모음을 오려붙이기, 찰흙으로 글자 만들어보기… 있는 쇼 없는 쇼를 다해가며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쳐주며 칭찬을 해줘가며 배워줄때는 말을 참 잘들었는데 이제 소학교에 입학하며 학교숙제에 매달리며 공부하다 보니 우리말 단어량은 턱없이 부족하게 되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아이한테 우리말은 참 어렵다는 인상이 박혀버리게 되여 쉽게 책상에 마주 앉지 않는다. 세종대왕께서는 절때 어려운 조선 글을 만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자음 모음을 합쳐서 하나의 글자가 된다는 법칙을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그림을 기억하듯 이렇게 생긴 애는 “나비” , 저렇게 생긴 애는 “비누” 라고 우리 딸은 기억을 한다. 어른들의 이해력과는 달리 기계적인 기억은 정말로 잘한다. 그리고 단기기억이 출중하다. 순식간에 많은 단어를 기억해서 우리 딸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막 자랑하고 싶지만 정확히 이튿날이면 거의 다 까먹어버려서 나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서너번 반복하다보니 인내심이 점점 바닥이 나고 (아마 집에 애들하고 오래 처박혀 우울해진 원인이 더 클것이다) 위쳇모멘트에 올리는 친구들이 올린 신강의 높은 하늘이며 운남성의 푸른 산이며 호주에 있는 푸른 바다며 자랑인지 불만인지 천안문이나 장성에 갔다가 사람구경만 하고 왔다는 푸념질까지 모두 내 속을 끓게 만들었다.  이중에서 서울에서 친척, 친구들 만나 푸짐한 먹거리 사진, 아이가 재롱떨며 모모랜드에 다녀온 사진을 마구마구 올리며 은근히 화장품, 어린이 용품 구매대행 큐알코드 사진도 섞어 올리는 둘째 딸의 친구네 엄마는 약간 블랙리스트에 넣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우씌~ 난 삼시세끼 해먹느라고 온 몸에 기름냄새, 정말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목처럼 황하에 뛰여들어도 씻어버릴수 없을것 같은 주방냄새가 가득하단 말이야! 

    눈앞에 삼삼거리는 친구들의 여행사진을 애써 잊으려고 노력하며 눈을 부릅뜨고 애가 삐뚤삐뚤 적어가는 글자를 바라보고 있을려니 화가 불뚝불뚝 쳐오르기 시작한다… 

2. 

    실은 국경절을 두주 앞두고 엄마가 세상을 뜨셨다. 중풍 아홉번을 오가며 거의 2년을 침대에 누워만 계셨던 엄마. 그런 병중의 고통에서 해탈을 얻은거라고 낮에는 위로를 하고 밤에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 떠오르며 그 싸늘한 몸의 낯선 체감이 생각나고, 또 엄마와 주고받았던 크고 작은 대화들이 생각나고, 이젠 그 어디에 가도 이젠 엄마를 볼수 없다는 절망감에  눈물을 훔치며 결코 잠이 오지 않는 나날들… 사실 내 마음 어디에도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었다. 

    막연히 기나긴 휴가, 남편의 장기출장과 더불어 맡길데 없는 애들… 우리 애들한테 받침을 떼여준다고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꽤 당찬 결심은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한것이였을가!  나는 그냥 애 둘의 엄마가 되여 살아내야만 하는것이다. 혼자 되신 아버지한테 우리 집에 와계시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대시며 선뜻 오시지 않는다. 하는수 없이 림시로 시트립을 통해 어렵게 표를 구해 아버지한테 갔다. 

아빠가 혼자 계시는 집의 냉장고를 열어보니 실로 냄새가 코를 진동하는 창고 같았고 온돌이지만 그 위를 끌신을 신고 다니면서 바닥청소는 포기하고 사는 모습… 아주아주 어릴적 할머니네 초가집이 생각이 났다. 나는 북경에서 15년을 살며 이젠 그 아주 어린시절 경험했던 그런 더럽고 지저분한 생활방식은 영원히 나의 삶에 속한것이 아니라는 착각을 하고 산듯 했다. 애는 텔레비앞에 꼬박 앉아있고 나의 고심한 육체 노동이 시작되였다. 나의 생활형편에 아버지한테 소비돈도 넉넉히 드릴수 있는것도 아니니 내가 해드릴수 있는것은 팔을 걷어 부치고 구슬땀을 흘리며 가을바람이 찬줄 모르고 대청소를 하는것이였다. 기진맥진한 몸과 텔레비앞에 종일 앉아 있은 딸아이의 손을 잡고 아버지의 바램을 받으며 돌아서는 내 마음은 뭐라고 할가… 한두마디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3.

    국경절 휴가가 거의 끝날 무렵 큰 딸의 친구 엄마가 나한테 잘 지냈냐고 말을 걸어왔다. 그냥 잘 지냈다고 얼버무려 대답하고 할말을 잊지 못하는 나한테 그녀는 가족여행을 갔다가 한바탕 크게 싸운 대목을 나한테 풀어놓듯 얘기했다. 보기에 참 화목해보이는 모범부부였는데 이렇게도 싸우나…?  함께 항상 여행도 다녀오고 그렇게 사이 좋은게 아니였나? 그러한 의아함과 더불어 나는 약간의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진실한 삶을 나한테 터놓는 모습이 고마웠다. 위쳇 모멘트에 올라오는 수많은 내용들은 은근 비교심리로 차있는 나를 참으로 비참하게 만들었다.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처져 못산다는 그런 기분, 그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나니 그러한 나의 마음 한구석이 평형이 되였다.

    나는 잘 살아볼려고 노력하지만 또 절대 안되는 부분들도 있다.  나의 한계라고 할가, 내가 채찍질할 부분이 아닌 내가 스스로 보듬으며 살아갈 그 부족한 부분들… 나는 그러한 부분들을 남들한테는 깊이 감추고 살아간다.  소셜미디어는 마치 남들은 완벽한 삶을 사는듯한 착각으로 나한테 다가왔고 이 부분은 그야말로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내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 한순간도 정신줄을 놓을수 없는 어린 내 아이들, 정신없이 뛰여야 살아남을수 있는 남편… 분명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도 많은데… 이런 나와는 달리 이것저것 잘하는, 잘나가는 사람들의 모멘트를 보면 실로 나는 어딘가 잘못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속에서 나의 비애와 내 실망과 걱정 그리고 내 부족함은 갈곳이 없고 그걸 대면할수 조차 없었는데…남편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친정살이, 시집살이, 자신의 부끄러울수도 있는 부분들을 허물없이 나한테 털어놓는 그 아주머니 덕분에 나도 그 아주머니에게 혼자 계시는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터놓을수 있었고 국경절 휴가 기간 딸 아이한테 우리말을 가르쳐주다가 고함을 질러버렸던 어느날 오후도, 밤새 엄마가 보고 싶어 혼자 울었던 그  흐느낌도 함께 하게 되였다.  

4.

    보여주고 싶은 삶으로 만나는것이 아닌 내 진실한 아픔과 기쁨이 있는 삶으로 만나지는것은 쉬운듯 하지만 대단한 일이다. 인간이라는 두 존재가 진실하게 만나지는 전율은 엄마가 아이라는 한 존재를 탄생시키는 본능적인 기쁨과 근원적으로 가장 닮아있을것이다. 거기에는 가식이 없다. 기쁨은 진정한 기쁨이고 고통은 진실한 고통이다. 그래서 함께 진실로 울어줄수 있고 웃어지는것이 아닐가? 

    엄마는 나를 낳을때 태줄이 내 목에 걸려서 참 오랫동안의 진통끝에 어렵게 나를 낳으셨다고 했다. 엄마를 보내고 슬픔에 잠겨있던 어느날 밤, 나는 그런 모진 산고를 거치고 나를 탄생시킨 엄마의 기쁨을 생각해 내게 되였다. 실로 그러한 본능적인 기쁨은 인간의 생명을 향한 신의 은총이라고 해야할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처음 만났을때 엄마의 그 기쁨은 어땠을가… 나는 그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그런 기쁨으로 시작한 만남이 언젠가 떠날적에 그게 얼마나 아픈지 나는 지금도 그걸 겪으면서 잘 안다. 그래서 엄마와의 만남으로 시작하며 배운 나한테 다가온 모든 만남은 소중한것…  하지만 나는 지금 도대체 어떤 만남들을 만들어가고 있는것일가! 

    그 아주머니의 넉두리에 들어있는 푸근한 인정의 무게와 위쳇모멘트에 대고 자랑질하는 그 얄팍함의 차이가 더없이 크게 다가온다.  다른 이의 삶의 어려움, 다른 이의 삶의 고난, 또 그들과 별로 크게 다를것 없는 내 삶, 그러한 진실한것들이 솔직하게 부딪치고 함께 할수 있다면…

   위쳇모멘트에는 자랑질, 뉴스에는 온갖 태평성세, 사회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높으신 분들의 강력하고 허무한 위로와 달리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의 곳곳에 직면하는 진실한 어려움이나 고난들을 바라보면 놀랍기까지 하다. 정신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쉽사리 빠지게 되는 허상과 착각중에서 때론 내 진실한 어려움과 아픔은 표현의 길을 잃는다. 그래서 또 외면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 진실한 세상과 내 진실한 마음과 또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진실한 삶을 대면하고 포용하는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것일가? 

    이러한것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고독하다. 위쳇 모멘트에 주목과 관심을 끌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나의 흔적들 만큼 나는 그리도 고독하다. 어찌하여 인간관계는 이리도 피상적으로 치닿는것일가! 

그러면서 나는 부족한 노력이긴 하겠지만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나한테 진실한 존재가 되여 넉두리를 풀어놓으며 다가왔던 그 평범한 아주머니의 그 모습처럼 나도 그렇게 다른이에게 다가가볼 작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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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약 한달전 위챗 모멘트를 닫아버렸어요 … 분명 좋은 부분도 있지만 지금으로써의 나는 너무 쉽게 모멘트속의 불편함속에 빠져 주눅들기도 하고 때론 분노하기도 하고 어쩌면 하면할수록 더 고독해지는 모멘트의 세계 같아서 스스로 닫아버렸어요 ㅠㅠ 마지막에 언니의 얘기처럼 진실한 존재의 만남의 이어감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가를 이국생활에 육아를 하면서 더 깊이 느끼게 되였고 나도 너무 부족하지만 그런 노력들을 하고 싶어졌어요 …오늘은 일본에 시집와서 세아이를 키우고 있는 페루 엄마가 나를 보러 간식 한가들 사들고 집에 와서 스스럼없이 세시간이나 육아 결혼 신앙얘기를 해주는데 그 진실된 따뜻한 마음에 감동먹은 날입니다^^

  2. 위챗이라는 제품이 진짜 사람들의 심리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것 같슴다. 익인지 손인지를 떠나서… 보여주고 싶은것(기본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공간이 밀착형 인간관계에 가득차게 만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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