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생의 기억 시리즈는 읽으면 아시겠지만, 어떤 장르도 아닌 그저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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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기억들이 몇 개 있다. 오늘따라 유년시절의 “석탄산”이 생각나는 날이다. 기억속에서 나는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우산을 쓴 또는 우산을 쓰지 않은 동네친구들과 같이 동네옆 석탄산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석탄산은 사실 산이 아니다. 늦가을인가? 잘 생각나지 않으나 아마 겨울나기를 위한 석탄비축시즌이 아니었나 싶다. 줄을 선 단층집 앞골목들은 모두 길 양편의 큰길로 통하였는데 우리 동네 서쪽 큰길에 석탄이 작은 산을 이루었다. 그 위를 아이들이 내기하듯 달리고 있다. 검은 석탄먼지가 아이들의 옷으로, 옷에서 손으로, 손에서 얼굴로, 그리하여 다시 빗물과 함께 땟국물이 흐른다. 바람도 많이 불었던 그날, 어떤 아이의 손에 들린 우산이 바람에 Y자 모양이 되었다가 个자 모양이 되었다를 반복한다. 모두들 오늘 저녁 집에 가서 맞을 매를 벌고 있으나, 일단 지금은 신이 난다. 

우리는 왜 석탄산을 올랐는가? 사실 석탄산뿐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는 놀이를 만들어 냈다. 아예 시골이면 산과 들을 뛰놀았을테고, 아주 대도시였으면 좀 더 세련되게 놀았을테나, 도시도 시골도 아닌 가운데 끼인 우리는 주로 땅과 약간한 도구들만 필요한 소박한 놀이들을 즐겼다. 

  1  공골

공골은 콘크리트의 일본발음이라고 한다. 영어가 일본식으로 돼서 다시 우리 말에 남은 것이다. 신작로라고도 불리는 콘크리트 바닥이란 신생사물이 동네 양옆에 깔리고, 아이들은 열심히 집앞에 그리고 동네의 다듬어지지 않은 맨땅에 콘크리트를 모방한 “공골”을 만들었다. 또래 친구들과 이 얘기를 해보면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걸 봐선 다들 익히 아는것 같지 않아서 한번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보통 혼자 또는 여러명이 같이 하는데 누가 물색해 놓은 어느 평평하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알맞춤한 흙바닥을 찾는다. 바닥 다음으로 중요한게 도구이다. 깨진 사기그릇의 볼록한 면, 안쓰는 숟가락, 반들반들한 단추 등이 주요도구이며 누가 만일 새롭고 효과적인 도구를 가져오면 그날 아이들중에서 체면이 좀 선다. 바닥과 도구가 갖춰지면 그다음 수분이 좀 필요한데, (읽는 이에겐 미안하지만) 보통 타액 즉 침으로 대체한다. 

목표한 손바닥크기 미만의 자리에 수분을 공급하고 그곳을 온갖 볼록하고 반들반들한 것들로 열심히 닦는다. 한사람이 닦다가 힘들면 그다음 사람이 닦는다. 누가 맡겨준 임무라도 수행하듯이 부지런히 닦는다. 이렇게 한두시간을 공들이다보면 거짓말처럼 그 부분의 바닥은 까맣고 맨들맨들한 반짝이는 면이 된다. 우리는 황홀하게 성과물을 바라보다가 일단은 다른 물체로 잘 덮어놓는다. 

좀있다가 또는 내일 다른 무리의 아이들에게 자랑할 때까지 부디 여전히 반짝이기를 바라며 주문도 외운다. “아바이 아바이~”로 시작했던것 같은데 아무튼 낼 아침까지 여길 지켜주시면 내가 뭘 사줄게요 뭐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다오”랑 같은 염원이었던듯 싶다. 

아이들은 천사가 아니다. 가끔 아이들끼리 사이가 틀어지면 남의 공골을 가만히 가서 뾰족한 물체로 그어놓기도 한다. 스크래치가 난 공골을 보면서 내마음에도 스크래치가 났던 그 기분이 지금도 새록하다. 그러나 금방 잊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공골을 또 만든다. 

 2  다마치기와 딱지치기

다마도 구슬의 일본말이란다. 이 다마치기는 주로 남자애들이 많이 놀았다. 딱지치기 또한 남자애들이 위주였지만, 화려한 딱지를 많이 소유했다면 여자애라도 동네 딱지짱인 남자애와 한번 승부를 겨뤄볼 수 있다. 

딱지는 두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종이를 접어서 만든 전통적인 딱지가 있었고 두꺼운 판지에 서유기같은 캐릭터들을 크고 작게 원형으로 인쇄한 중국식 딱지가 있었다. 전통적인 딱지는 집에서 만들수 있는 반면에 판지딱지는 상점에서 사야했으므로 많이 소유한 것은 애들사이에선 부의 상징이었다. 당연히 인기도 더 좋았다. 

일단 호주머니에서 딱지를 꺼내 손에 잡고 두명 또는 여러명의 아이가 딱지치기를 시작한다. 게임의 법칙은 내 딱지가 다른 아이의 딱지를 쳐서 뒤집으면 상대방의 딱지는 내 소유가 된다. 딱지를 칠때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저 치기”라고 불리는 후려치기 방식이 있고 “똑똑치기”라고 불리는 수직으로 내리치는 힘으로 뒤집는 방식,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일명 “꼬집어떼기”라는 방식으로 내 딱지를 꼬집어 그 힘으로 상대방의 딱지를 뒤집는 것이다. 고수들 사이에서는 마지막 방식은 시시해서 쓰지 않으나, 화려한 딱지의 소유자거나 어린 아이에게는 간혹 허용하기도 했다. 

아무리 큰 딱지라도 덤빌수 없는 최강자딱지를 소유한 아이들이 있었는데, 보통 이런 딱지는 특수제작이었다. 딱지 두장사이에 알류미늄 통졸임뚜껑을 오려넣고 다른 종이도 끼워넣어 두툼하게 만든후 양 옆을 테이프로 단단히 감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꼼수였으나, 그때는 아무도 트집을 잡지 않았고 오히려 부러워하였다. 

최강딱지를 만났든 그냥 딱지를 만났든, 주머니 가득한 딱지를 모조리 떼이고 돌아오는 날은 마음이 너무 허전했다. 아까 공골에 스크래치 난 것보다 더 타격이 컸으니, 아마 돈으로 샀고 또 주머니에 두둑했던 것이 없어진 상실감에서 온것이 아닐가 한다. 

 기계사람 

연변에서 “기계사람”이라고 불렸던 이 놀이는 한국말에선 사방치기 또는 땅따먹기라고도 부르며 중국어로는 跳房子라고 부른다고 한다. 땅따먹기와 跳房子가 같은 의미인것 같고, 어렴풋이 우리도 “집찾기”라고도 불렀던것 같다. 

대체 무슨 땅을 따먹으며 무슨 집을 찾는단 말인가. 숫자로 되어진 칸을 차지해가는 놀이이다. 한쪽발은 들고 한칸에 한발씩만 놓을 수 있다. 끝까지 무사히 갔다오면 지정한 집을 차지할 수 있다. 금을 밟거나 밖으로 신체의 일부가 넘어가면 다음 친구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다음 친구는 먼저번 친구가 차지한 집은 발로 밟을 수가 없으며 그 곳을 지나갈 때는 건너 뛰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 발이 3,4에 있는데 5가 이미 차지되어 있으면 나는 몸을 날려 6,7로 들어가는 동시에 또 마지막 칸이라서 돌아서는 기적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많은 아이들이 탈락하여 다음 아이에게 순서를 내준다. 반면, 자기 차지가 된 집은 두발로 밟을 수 있다. 참, 집 없는 자는 서러워지는 순간이다.

똑같은 그림이 없어서 최대한 비슷한걸로 찾았다. 

 4  줄넘기

어릴때 “기시”라고 불렸는데 대체 무슨 뜻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으나, 대개 소학교에 들어가면 여자애들은 이 놀이를 시작한다. 가끔 인원이 모자라면 남자애들도 끼워주긴 하나 거의 드문 일이다. 어린 아이임에도 남자아이들은 고무줄을 뛰는 모습 자체가 마음에 안들어서 정신이 사나우므로 여자애들끼리 노는 것이 가장 재밌다. 마치 남자들이랑 쇼핑을 하면 재미가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도구는 모든 탄력있는 고무줄이면 가능하다. 가늘고 짧은 고무줄을 이어붙여 만든 것을 갖고 오는 애들도 있고, 어디서 났는지 길고 넓은 고무줄을 가져오는 친구들도 있지만, 최고급은 시장에서 돈주고 사는 고무줄이다. 속옷안에 끼는 용도로 많이 쓰이는 고무줄이라 다소 민망할 것 같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고무줄은 하얀색 바탕에 파랑 또는 빨간 작은 점이 규칙적으로 박혀있는 산뜻한 모습이며 살 때 원하는 길이만큼 끊어 양 끝을 묶어주면 된다. 묶은 후 약 2미터 정도면 그저 그만인 “기시”가 된다. 

두명이 같이 뛰기, 새끼손가락에 낀 좁은 고무줄의 한줄을 발로 걸어내기 등 여러가지 난이도가 있으나 가장 도전적인 것은 높이 쳐든 고무줄을 넘는 것이다. 그 높이는 줄을 잡은 양쪽의 아이가 손끝에 끼워서 팔을 하늘높이 쳐들 때가 하이라이트다. 이 줄을 넘을 수 있는 아이는 아주 드물다. 무리를 하다가 무릎이 까지거나 운동장 바닥에 코를 박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운동신경이 부족한 나는 의욕은 앞섰으나 모든 놀이에 뒤쳐지는 편이었는데, 소학교 2학년때 나의 단짝이던 친구가 우리 반 최고의 줄넘기짱인지라, 나는 늘 그애와 같은 편이 될 수가 있었다. 줄넘기를 할때만은 나는 기꺼이 단짝의 그림자가 되어 그 우세를 누렸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친구가 전학을 가고 그런 특권은 더이상은 불가능 해졌다. 

 5   골뱅이

4학년 무렵이 되면 시작하는 단체놀이는 “골뱅이”라는 놀이다. 분필이나 막대기로 운동장에 골뱅이 같은 모습으로 그리거나, 주전자에 물을 담아 물을 부어가며 골뱅이를 그린다. 가위바위보를 통한 편가르기가 끝난 후, 양 편에서 대표 한사람씩 뽑아 서로 등지게 세우고 팔을 쳐들어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긴 팀은 줄을 지어 골뱅이 위를 달린다. 술래는 골뱅이의 바깥원을 에워싸고 제기를 던져 골뱅이 안을 달리는 상대방 조원들을 맞히려고 애쓴다. 가장 선두에 선 사람부터 맞히는 것이 요령인데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먼저 골뱅이의 가운데 집에 들어가면 이미 아웃된 모든 조원들까지 살아나 다시 처음부터 골뱅이를 달릴 수 있기때문이다. 달리는 목표물을 맞히는 일은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피해 줄지어 뛰는 일은 스릴이 넘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술래하기를 싫어한다. 

이 골뱅이 놀이를 생각하면 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소학교 5학년때 우리반 담임선생님은 이십대 중반의 예쁘고 세련된 미혼여성이었다. 티비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피부도 하얗고 옷차림도 늘 남다르게 멋있었다. 수업도 재밌게 하시고 공정한 원칙주의자에 모든 아이들을 두루 아껴주셨던 그분은 아마 나의 최초의 롤모델이었던것 같다. 

그때 우리반 아이들은 방과후 학교를 나서면 집에 곧장 가지 않고 학교 맞은 편의 은행앞 공터에서 골뱅이를 그려놓고 놀던 습관이 있었다. 때론 다섯시를 넘긴 시간까지 놀다보니 어두워서야 집에 들어갈 때도 있었으니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이 일을 알게 된 선생님은 교실에서 전 반 학생들에게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갈 것이며 특히 은행 앞에서 골뱅이를 노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엄히 경고하셨다. 

그땐 왜 그랬는지, 경고를 받은 그날도 우리는 아지트에서 줄을 지어 달렸다. 한참 신나게 노는데 저편에서 담임선생님이 특유의 우아한 발걸음으로 이쪽으로 오시는게 아닌가. “반주임이 온다!”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은 허둥지둥 다양한 행동을 취했다. 가방을 들고 골목으로 빠지는 아이, 급히 숙제를 하는 척 하는 아이, 바로 앞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척 하는 아이, 심지어 에라 모르겠다 벽을 향해 돌아서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을 거의 부모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나와 몇몇 아이들은 달아오른 얼굴로 자리에 서서 다가오는 선생님을 바라보다가, 선생님이 우리 가까이에 오자 “선생님~”하며 겸연쩍게 불렀다. 그 다음 생긴 일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바였으며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시고 꼿꼿한 자세로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은 백마디의 훈계보다 힘이 있었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음에서 오는 죄책감”을 가르치셨다. 그 뒤로 아이들은 은행앞에서 놀지 않고 방과후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놀이는 끝나가고 있었다. 석탄산, “공골”, “기계사람”, “골뱅이” 등의 단어들로 아롱져있던 유년기를 벗어나 우리들은 아동에서 소학생을 거쳐 죄책감을 비롯한 보다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는 십대중반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노는게 최고였던 소학생시절은 과거형이 되어가고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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