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벤 안, 주위는 온통 어둠으로 꽉 차 있었다. 

내 손가락은 손잡이를 꽉 부여잡고 있었고, 꽤 오랜 시간 경직된 똑같은 자세를 취한 탓인지 손가락이 마비가 올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시름놓고 손을 손잡이에서 뗄수가 없었다. 떼는 순간, 앞으로 튕겨져 나가 산산히 부서질 거 같은 착각이 심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동중인 벤은 이리저리 덜컹거렸고 난 멀미가 나 당장이라도 토할 거 같았다. 어지러워 눈을 감았는데 워낙에 캄캄한 공간엔 더욱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억지로 다시 눈을 떠본다. 난 지금 관성을 거슬러서 가고 있다.

언제면 감미옥 역에 도착할 가 머릿속엔 전부 그 생각뿐이다. 감미옥 역이야말로 내가 여기를 비로서 탈출하는 타이밍이다.  여기저기 요란스레 멈췄다 출발했다를 수시로 반복하며 달리는 벤, 그 속 짐을 싣는 젤 뒷공간이 내 좌석이다. 그 자리는 가끔 짐이 아닌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 사람이 나 일 확률은 늘 십중팔구이다. 

그 자리는 번마다 다시는 올라타기 싫지만, 또 늘 행여나 없을까 걱정이 앞서는 그런 자리다.  뉴욕에서 뉴저지로 향하는 유일한 벤, 한시간에  하나밖에 없어서 놓치면 절대 안되는 벤, 내가 타려고 하면 늘 만석이여서 자연스레 짐 싣는 뒷공간으로 향하는 특수한 벤, 어쩌다 놓치면 밤 열시가 다 되도 집에 도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소중한 나의 교통도구…난 지금 벤에 앉아 퇴근중이다…

뉴욕에 금방 왔을 때, 운전이 불가능했다. 일단 워킹펄밋이 일년 걸려야 나올수 있었고, 나오자 마자 차를 사서 운전을 한다 해도 앞뒤  서류신청기간을 다 고려해본다면 적어서 일년 남짓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 정착한 곳은 뉴저지 포트리라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뉴욕 직장까지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이 벤이었다. 워싱톤죠지 브릿지를 지날수 있는 방법은 운전 혹은 이 벤 뿐이었다. (오히려 뉴욕시티 나가는 건 166번 뉴욕뻐스를 타면 됐지만) 우리집에서 그 때 직장까지 출퇴근을 할수 있는 그 사이에는 지하철도 없었고 뉴욕시내에서 다니는 그런 큰 뻐스도 없었다. 나는 출퇴근을 매일 이 벤으로 했다. 감미옥 역에서.

감미옥 역은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대략 15분 거리) , 내가 이 벤을 기다리는 역이다. 나는 늘 벤 도착시간 10분 전에 맞춰 나가 기다린다. 실수로 한번이라도 놓치면 난 지각 한시간을 할것이니 매일이 긴장하다. 회사에 9시 도착하려면 난 7:45분에 오는 이 벤을 무조건 타야 한다. 놓치면 8:45분에 오지말지도 모르는 일이니, 절대 놓쳐선 안된다. 그럴려면 7:30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침 준비시간을 고려해 봤을 때, 난 적어서 6:30에는 일어나야 한다.

겨울이었던 그때, 매일 아침 6:30에 일어나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더 괴로운 건 7:45분에 벤에 올라 탄 뒤 부터다. 그 시간대는 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시간대라 감미옥 역까지 오면 늘 앉을자리가 부족하다. 

운 이 좋으면 앉아갈수 있고 가끔은 기사님이 그냥 만석이라고 감미옥 역을 스친다. 그런 날이면 난 다음 차를 기다려 회사에 한시간 지각인 열시에 도착하게 된다. 분명 아침 6시 좀 넘어서 부터 탈탈거리며 이 출근을 준비하건만 난 왜 열시에 회사에 도착하는지 억울하고 어이없었다.  

몇번 스치움을 당한 뒤, 나는 그 벤을 운영하는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당신들의 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운수좋은 날을 기도해야 되는 운수게임처럼 매일 이렇게 내 맘을 졸일바엔 그냥 감미옥 역을 없애달라고 부탁했다. 그 역이 존재하는 한 어쨋든 거기서 기다리는 손님은 태워야 하는게 정상 아닌가고 따지기도 했다. 나는 분명 그 역이 존재함으로써 거기서 매일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데 만석이라는 이유로 허망하게 날 스치면, 회사에 지각해서 욕먹고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헛수고한 내 절망은 이해하냐고 애원까지 했다. 이런 통화를 한번만 시도한 건 절대 아니다. 

어느날부터 갑자기,  만석이여도 그 벤은 내 앞에 와서 섰다. 놀라웠다. 만석이면 서서 갈수라도 있다고 했다. 여긴 길이 산길도 좀 있고 오르막 내리막이 가파로와서 서서 가기엔 안전에 위험했다. 그리고 한시간 넘게 흔들리는 벤 안에서 서서 간다는 자체가 위험요소 제외하고도 법적으로 불법이였기에 기사님은 내 말에 동의할 일이 없었다. 그럼 경찰들 눈에 띄지 않게 쪽걸상이라도 준비해주면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라도 갈수 있다고 했다. 간절했던 나는,  그렇게 벤 뒷자리 짐 싣는 자리에 앉아갈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행복했다. 

비록 내 시야랑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뒷자리는, 뭔가 뒷문이 열리면 잇달아 오는 뒷차에 정통으로 내 몸이 부딪칠거 같은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는 위치였으나,  적어서 어떤 교통수단에 내 몸을 맡기고 갈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됐다. 기사 아저씨는 늘 내가 짐자리에 올라 탈 때면, 바쁜 아침시간에 자기가 운전석에서 한번 내리고 뒷문 열고 다시 닫고 하는 시간을 더블로 나한테 낭비한다고 궁시렁거렸다.  퇴근 시간도 마찬가지다. 투덜대던 말던 나는 늘 부탁한다. 문 꼭 잘 잠궈라고. 아저씨는 건성으로 “네네 걱정말아요.” 하면서 짜증을 내신다. 그 벤을 운전하시는 분들은 성격이 다 괴팍하다. 

그 수많은 역에서 사람들을 낱낱이 픽업하고 지정된 시간에 트래픽을 뚫고 뉴욕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감들이 늘 아저씨들을 예민하게 만든다. 당연히 그속엔 나처럼 뒷 짐공간까지 앉으려는 고객도 있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아침시간은 그나마 괜찮은데 퇴근시간이 문제다. 7시 퇴근인데 퇴근하자마자 겁나 빨리 달리기 해서 뛰어가도 한양역에 도착하면 이미 만석이다. 한양역은 내가 회사에서 (15 분 거리)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역이다. 한양역은 늘 출근할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퇴근을 기다린다. 

출근할 때는 여러역에서 조금씩 조금씩 올라타 사람들이 서서히 많아지는 느낌이라면 퇴근 할 때는 죄다 한양역에서 모여서 한번에 뉴저지로 출발하기에, 내가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해서 퇴근직후 달려간다 한들 이미 줄이 엄청 길게 서져있는 건 물론, 가끔 뒷쪽 짐 공간도 이미 누군가 타고 있어서 8:30 다음차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애간장이 타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이면 난 분명 7시에 퇴근을 했는데 집에 오면 10시가 넘는다. 배는 고프고 정신은 휭하다. (밤 10시에 감미옥 역에 도착할때면, 내려서 집까지 한숨도 쉬지 않고 뛰어 간다. 두리번 거리면서. 동네가 조용해서 밤이면 좀 으스산하다.) 

출근을 해서 하루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퇴근을 해서 하루를 마무리하지도 않았는데, 난 늘 지쳐있었다. 고단함은 늘 감미옥 역에서 벤을 탈때, 감미옥 역 벤에서 내릴 때 앞뒤로 날 동반했다. 

진절머리가 났다…

그렇게 4개월을 출퇴근을 하다가 난 뉴저지지사로 자리를 옮길수 있었다, 그 4개월은 출산한 직원 대신 내가 뉴욕으로 출근한 거 였기에, 나는 그때부터 뉴저지 포트리 집근처로 출근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감미옥 역에서 환호를 질렀다. 

다시 매일과 같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벤을 마음속에서부터 떠나 보내면서. 속시원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해 겨울은 잊을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어둠을 헤매면서 깨나야 하는 아쓸함, 벤을 타기까지 시간을 쪼개여가면서 단 한번이라도 놓치면 안된다는 곤두선 신경의 부담감, 날씨가 과하게 춥거나 눈이 많이 내린 날들은 그 과정들이 배로 피곤했던 무력함, 벤이 시발점에서 일찍 출발되어 거의 코앞에서 놓쳤을 때의 답답함,  겨우 벤을 기다렸는데 회사까지 한시간 넘게 짐 싣는 공간에서 멀미와의 전쟁을 강행해야 했던 아찔함.. 

그해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그 해 겨울엔 유난히 눈이 자주 왔다. 

그해 겨울은 출퇴근길에서 내 모든 에너지를 쓴거 같다.  

北漂시절 왕징에 살 때도 国贸까지 출퇴근은 늘 왕복3시간이였건만,  같은 시간 다른 느낌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 같다. 

벤을 운전하시는 기사 몇몇 분은 4개월쯤 되니 나를 감미옥 아가씨라고 불렀다. 멀리서부터 나를 맞이하는 그들의 표정엔 벌써 싫증이라고 써져 있었고, 그럼에도 좀 안쓰러워하는 기색도 보아낼수 있었다. 

퇴근길 “감미옥 역에서 내리는 사람 있어요?”  할 때마다 꿋꿋이 “네, 있어요” 라고 말하면 “아… 감미옥 아가씨가 또 탓네.. 휴”하는 한숨이 저 끝에서 여기 끝까지 들렸다. 나는 감미옥 역에서 내리는 걸 놓칠까바, 짐좌석에서도 늘 귀를 쫑긋하고 있다. 사방이 어두워서 밖은 안보이고 내가 내릴 감미옥역을 언제오냐 가늠할수 있는 척도는 기사아저씨의 저 단 한번의 물음이었기때문이다. 

지금은 차로 간편히 이동하고 출근도 가까운 집근처에서 하지만, 저 4개월의 추억을 떠올이면 늘 “난 다시는 저렇게는 출근 못하겠어” 하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어본다. 그때는 뉴욕와서 첫 직장이었고 drive license를 아직 만들수 없던 전제에서, 뉴욕까지 어떻게든 출근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렬했던 거 같다. 

4개월 동안 안면을 익힌 기사 아저씨들만 대여섯분 되지만, 그들은 저마다 다 날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차를 구매하고 난 뒤에도 난 가끔 운전하기 싫을 때면(당연히 거의 자가용을 이용)  그 벤을 타고 옛날 일하던 근처 뉴욕에 가곤 한다. (이때의 벤은 단순히 교통수단이  아닌 나의 추억이었고, 이때의 기사아저씨들은 단순히 운전자가 아닌 나의 벗이었다. 재작년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한동안 벤 회사가 망한 듯 보였는 데, 아직도 운행되는 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도 그 벤이 유일한 교통수단인 사람들은 어떻게 뉴욕을 오가는 지, 내심 걱정되기도 한다.)

행여나, 그때 기사 하시던 아저씨들을 만나면 그들은 날 반갑게 맞아준다. 그때 아가씨땜에 골 때렸고 그런 내가 딱해서 도와주고 싶을때도 많았다고 말한다. 나도 그때 면박을 주는 아저씨들이 짜증났고 그럼에도 늘 마음 한구석은 페를 끼친거 같아 미안했다고 답장한다. 

어쨌든, 그 시절의 나는 용감했고 부끄럼도 덜 했으며 내 목표는 오직 하나 “무조건 이 벤을 타고 직장까지 간다” 였다. 지금은 이사도 몇번 하고, 감미옥 역을 못가본지도 오래됐지만 종종 그립다. 

그 역에서 눈물 흘리던 나의 모습도, 그 역에서 웃던 내 미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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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사는 여니

별거아닌 생각, 소소히 적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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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부로 벤 이런 단어를 사용하면서 감미옥은 그냥 한글 그대로 감미옥이라고 적어봤어요, 감미옥 역은 저한테 단순히 역 이름이 아니라, 초짜 이민자가 매일의 삶을 시작하고 끝내는 시작점과 끝점이었어요. 감미옥 레스토랑이 그리고 늦게까지 영업했기에 제가 늦은밤 도착해도 늘 그 근처가 환하게 밝혀있어서 좀 위안이 됐던 기억도 있네요.

  1. 대체 무슨 단어가 감미옥이라고 발음이 되는지 궁금해하며 읽었더니 “감미옥” 그대로라 아 역시 다문화의 나라 미국이구나 하고 웃었습니다ㅋㅋㅋ 감미옥 아가씨면 Gammeeok Lady인가요?

    북미에서 살며 운전을 안하면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하는지 또 한번 깨닫고 갑니다. 가끔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날이면 1시간 남짓이 지옥철을 비벼야 하는 제 생활이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이 드네요, 여니가 왕징에서 궈모우로 출퇴근 했던 것처럼.

    1. 감미옥레이디 ㅋㅋㅋㅋ 던 감미옥걸이든, 저때의 경험은 한번으로 충족한 거 같아요. 오히려 뉴욕시티안에 살면 자가용이 있는게 돈도 더 들고 주차도 불편한데, 제가 있던 곳은 마침 그 변두리라서 좀 애매했던 거 같아요. 수현님이 말하는 지옥철도 제가 잘 알죠, 우린 다 쉽지 않은 매일을 살아내는 대견한 사람들임이 분명한 거 같아요.ㅋㅋㅋ

  2. 감미옥은 마지막 사진 보구 알았는데, 뉴욕에서 출발역인 한양은 또 뭐지 했습니다. 분위기 갑자기 조선시대 ㅋㅋ 아, 그리고 벤은 어떤 차량인지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많이 본건 연예인 벤 그런 느낌이라. 옛날 연길-화룡 사이, 아니 지금도 다니는 중형 차량을 맨날 이웨이커라 부르면서 앉아다녔는데 자리 없음 서고 쪽걸상 추가하고 이러면서, 그냥 직감대로 一位客인즐 알았는데 후에 알고보니 한자는 依维柯로 뭔가 브랜드명이었음…

    1. 한양역은 한양마트라고 있는데 그 앞에 역이라서 한양역입니다. 벤은 벤 또는 밴(van): 승합차.. 우리말로 하면 좀 이웨이커 느낌 맞아요. (작은 뻐스정도의 승객수를 용납할 수있는) 저 감미옥 맞은 켠에 조그마한 오래된 베이커리 카페가 있었는데, 벤을 놓치거나 혹은 벤이 저를 스쳐간 날이면, 다음차 올때까지 카페에 들어가 울면서 앉아있으면 거기 사장님이 막 안쓰러워서 커피랑 빵 건네주던게 기억나네요 ㅋㅋㅋ (늘 같이 그 벤 회사를 뭐라뭐라 해주시고 다음 차 타면 되니까 빵이나 먹어라면서.)

  3. 진짜 힘들게 하는것은 한번 넘어가면 되는 큰 고개가 아니구 날마다 반복되는 자갈밭 같은거 같애요. 여니 소설가로서의 잠재력 또 한번 보여주네요. 이제 이런 경험담에서 픽션으로 넘어가면 좋은 소설 금방 나오겠는데요. 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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