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시내에 나갔다가 새 서시장 건물을 보았다. 11월부터 다시 문을 연다고 하더니 그간 시공으로 인해 가려졌던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새 건물은 어느 분의 작품인지 아마추어인 나의 눈에는 어쨌든 품위 있고 세련된 건물이었다. 

갈 일이 없어서 아직 들어가보진 못한 서시장은 그래서 나의 머릿속에는 아직은 옛날 모습 그대로다. 눈을 감으면 그때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갖가지 소리가 들리며 냄새 또한 기억을 타고 돌아오는 듯 하다. 

총 4층으로 된 옛날 서시장의 1층에서는 주로 먹거리를 팔았다. 각종 냄새가 서로 섞이는 것을 방지하느라 그런 것인지, 벽으로 막은 여러 구역에서 식품의 종류를 나눠서 팔았고 이것을 사고나서 저것을 사려면 문을 나서서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그런 구조였다. 서시장에 햇수로 치면 족히 30년은 들락날락했겠건만 어느 매대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미로 같은 그 안에서 나는 발이 가는대로 움직이거나 번번히 물어봐서야 목적지를 찾는다.

시각적으로든 후각적으로든 가장 또렷하게 기억되는 곳은 고기파는 매대였다. 갈때마다 똑같은 비릿한 냄새가 감도는 가운데 각종 육류와 내장과 뼈를 여러 모양으로 팔던 그 곳에서 손님들은 매의 눈으로 각종 부위를 살펴 가며 결단성있게 근수를 댔고 손에 식칼을 든 매대주인은 숙련된 솜씨로 고기를 잘라서 저울에 달았다. 어른이 되면 의례 나도 알게 되는줄 알았던 그 다양한 고기의 부위를 지금도 제대로 입에 올리지 못하니 그야말로 먹을줄만 아는 격이다. 

냄새로 치면 고기매대 못지 않은 곳이 바로 각종 장과 양념을 파는 곳이었다. 된장옆에 고추장, 그 옆에 또 된장 그리고 고추장, 그러다가 몇 집을 건너뛰면 소금, 맛내기, 설탕을 팔고, 또 몇집을 건너 뛰면 고춧가루를 팔고 이런 식이었다. 모습은 비슷해도 장맛은 다 달랐으리라.  산처럼 쌓아올려 곱게 다진 “장봉우리”는 스스로가 만든 장에 대한 매대주인의 자존심처럼 보였다. 

사진출처:네이버 -장파는 매대와 간식파는 매대에 이웃하여 있던 곡류매대

장 파는 곳과 가까운 곳에 간식파는 매대들이 있다. 여기서 사탕, 과자와 포장된 간식들을 파는데 소학교와 중학교때 이 곳에 일년에 두번정도 왔으니 그때는 바로 봄소풍과 가을소풍시즌이었다. 소풍가기전날에 부모님이 주신 돈을 들고 여기에 가면 반드시 같은 반이나 같은 학년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서로 그건 어디서 샀니, 얼마주고 샀니 정보를 주고 받고, 어른들 흉내를 내며 간식값도 깎아보며 이 가게에서 저 가게로 시끄럽게 몰려다니는 소풍전야의 묘미를 선사해주는 곳이었다.

떡 파는 매대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곳이었다. 일단 떡은 익혀서 파는 음식이라 군냄새가 없었고 주로 흰색인지라 보기에 예뻤고 게다가 대부분 차곡차곡 정돈된 모습이었다.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으로 작은 점을 세개 찍어 넣은 동그랗고 하얀 쉰떡, 다이아몬드 사각형에 무늬가 찍혀있는 납작한 골미떡, 반달 모양에 속에 넣은 팥때문에 차가운 하얀색으로 보이는 만두기떡, 눈같이 하얀 떡에 팥옷을 입힌 시루떡, 콩고물이냐 팥고물이냐 아니면 이도 저도 싫으면 설탕에 찍어먹느냐 하는 취향이 심하게 갈리는 찰떡. 내가 기억하는 옛날 떡매대의 5대천왕이다. 

서시장 일각(사진출처: 네이버)-맞는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이 사진이 떡매대의 아우라를 지닌듯 하다

시장을 다니다가 출출하면 위의 떡매대에서도 요기를 할 수 있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또 한군데가 있다. 바로 순대국, 팥죽, 옥수수죽 등을 파는 곳이다. 언제부터 그랬고 언제까지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한동안 이 곳은 손님이 들어서면 서로 앞다투어 음식을 맛보라고 내미는 풍조가 있었다.아주머니들의 목소리의 밀도가 하도 높아서 무엇을 판다는 목적어는 들리지 않고 온통 “잡숴보쇼, 잡수오”라는 소리가 귓청을 때리던 때가 있었다. 들어가기전에 무엇을 먹을지 먼저 정하고 재빨리 자리를 정해서 앉아야지 그러지 않고 열정적인 “잡숴보쇼”의 포화속을 뚫고 전진하려면 꽤나 민망했다. 현장의 민망함에서 멀어진 지금, 그때의 분위기를 다시 떠올려보면, 사실 매대주인들이 서로 자기 음식을 팔겠다고 나섰다기보다는, 마치 어떤 외딴 마을에 놀러온 손님에게 그 곳 주민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특별한 문화를 보여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새로 선 서시장에 이 매대들은 꼭 다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1층에는 이렇게 주로 먹거리를 팔고 2,3층에는 의류와 천을 파는 매대들이 있었다. 존재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는 한복집도 여러 군데 있었다. 4층에는 가구를 팔았었나? 확실하지 않다. 더 되살려 보고 싶지만 서시장에 대한 나의 기억은 파노라마 같이 완전하지는 못하고 이것이 전부다. 

잊혀진 것은 잊혀진대로 보내고, 서시장은 다시 문을 열었으니 그 새로운 서시장과 다시 조금씩 친해가야겠다.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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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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