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D-30 

어쩌다 보니 COO 직속부문으로 변한 우리 팀, 그 덕분에 올해 6월은 "너도 나도 백수 신세"가 되어 버렸다. 회사 워.라.밸. (work-life balance)를 추진한다고 밀린 휴가를 6월 말까지 청산해야 한다는 엄호령이 COO로부터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을 빼고는 모두 휴가, 하지만 아직도 상해는 코로나 위험 지역이기에 여행은 엄두도 못 낸다. 생각 같아서는 양궁 연습을 제대로 하고 싶었지만 왕복 3시간 거리에, 그것도 레스토랑 안에서 음식 먹기가 금지된 상황에서 나 자신을 설득시키기엔 역시 무리가 있었다. 

알리페이 앱에 요즘 무슨 공짜 이벤트가 있는지 궁금해서 뒤적였더니 시력교정수술 준비과정인 시력검사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이벤트를 보고 별 생각 없이 신청했고, 시간을 넉넉히 잡아 6월 21일로 정했다. 

6월16일 

D-14 

중요한 미팅을 끝내고 직장 동료랑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그 직장동료는 작년 여름에 시력교정수술을 받고 이미 안경을 벗은 상태인지라 내가 조만간에 공짜 검사를 받으러 간다는 얘기를 넌지시 했다. 그랬더니 들은 뻔한 얘기. 

"시력교정수술은 걱정이 많이 따르니 三甲병원 중 안과가 제일 유명한 곳으로 가야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추궁하기에도 편하니까 말이에요. 九院 혹은 五官科医院에서 수술받는 건 어때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냥 공짜 검사라 받아보려고."

"그럼 혹시 검사 중 동공확장 때문에 2-3시간 앞이 안 보이는 건 알아요? 위험할 것 같은데 혼자 가진 마세요."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아무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나중에 언젠가 다시 검사 받는 것도 귀찮아서 바로 수술예약을 해버릴 거라고. (귀가 얇고 만사가 귀찮은 난 이미 피부삽에서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돈을 몇 번 날린 적이 있으니까.) 

핑계를 대고 예약을 취소하고 바로 五官科医院 시력교정수술 검사과로 예약을 했다. 6월 21일 같은 날로. 

6월 21일 

D-9 

예약대로 의사선생님을 찾아가 간단한 대화를 마친 후 시력검사를 시작했다. 대부분 검사가 눈을 부릅뜨고 이 빛 저 빛을 보면 되는거라 별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검사. 동공확장 뒤 하는 검사가 고역이었다. 5분 간격으로 다섯 번 안약을 넣고 20분이 지난 뒤 또 넣어야 검사가 가능한데 문제는 이 약을 넣으면 동공이 풀려 눈이 아프고 앞이 흐릿해진다. 검사가 끝나고 다시 의사선생님을 찾으니 일단 제일 간편한 스마일(全飞秒)가 가능한 두께는 되는데 각막 표면이 조금 울퉁불퉁해서 수술 전 검사를 더 받아야 최종 확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술날짜는 7월 1일 금요일. 하필이면 내 휴가가 끝나는 날이다. 

안경은 항상 불편하고, 렌즈도 착용하면 눈이 말라드는 느낌이 점차 심해지는지라 언젠가는 받아야 할 수술인데 바로 지금이 그 기회인 것 같다.  

'금요일은 병가를 내고, 월-목 휴가는 그 다음 주로 미뤄야겠군.' 

선글라스를 낀 채로 택시에 앉았는데 저녁노을마저 눈을 힘들게 했다.  

7월 1일 

D-day

수술 시간은 오후 2시. 시력검사를 한번 더 받아야 최종 수술이 결정되기에 미리 도착하여 검사부터 받았다. 다행히 동공확장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예정된 2시보다 30분이나 지난 시간, ok 사인을 받고 수술대기실로 들어갔다. 

수술복을 걸치고, 모자를 쓰고, 눈 세척을 하고 한 10명 정도가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아마 기다리는 데에만 거의 1시간이 들었지 않았나 싶다. 다들 긴장해서 간호사가 묻지 않으면 아예 입을 닫고 눈도 감고 있는데 새로 들어온 내 옆자리 남자는 한시라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나와 자꾸 대화를 하려는 것을 대충 대꾸하고 눈을 감았더니 몇 분 뒤 새로 들어온 여자와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나도 웬만해서는 너랑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지금은 도저히 안되겠다고.' 

아마 이 두분은 긴장감을 대화로 푸는데 적응 된 사람들인가 보다. 

결국 내 순서가 되고, 눈에 마취안약을 넣었다. 몇분 지나고 수술대에 올랐더니 긴장감에 눈알이 제멋대로 움직이려고 했다. 30초 주목 연습도 몇번씩이나 했는데. 

'일단 눈알 돌아가면 난 이제 앞을 못 보는 거다.' 라고 되뇌이며 짧고도 긴 2-3분을 버텨냈다. 왼쪽 눈 수술 중 눈알이 통제를 받지 않고 조금 움직인 것 같았다. 

난 초조한데 의사선생님은 수술성공이라고 바로 쫓아냈다. 

확실히 앞이 잘 보이긴 했다.

수술복과 모자를 벗었다. 내일 오전 재검진을 받아야 한다며 주의사항을 알려준 뒤 간호사분들이 날 수술대기실 밖으로 내보냈다. 당황스런 내 표정이 없다면 그 누구도 내가 방금 수술을 받은 걸 모르겠지. 

잠깐 밖 의자에 앉아있는데 마취가 풀리는 듯 했다. 눈이 시리면서 눈물도 나고, 먼 곳은 빤히 잘 보이는데 가까운 곳은 잘 안보인다. 오른 눈 왼 눈을 막으면서 확인을 했는데 왼 눈이 오른 눈보다 잘 안보인다. 설마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집에 와서도 눈을 다칠까 걱정되어 선글라스를 벗지 못했다. 전동칫솔도 혹시 안 좋을가 보통 칫솔처럼 사용했고, 세수 대신 티슈로 얼굴과 목을 닦고 안약을 넣고 바로 잠들었다. 

눈을 비비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안 비빌 수가 있는지 납득이 안 되지만 안대를 쓰면 오히려 눈이 감염될까 두려워 그냥 의지력 하나로 참았다. (실제로는 두번 정도 눈을 비비려 하다가 잠을 깼던 것 같다.) 

7월 2일 

D+1

이른 아침에 번쩍 눈이 떠졌다. 

'이럴수가…' 

해상도가 240p인 세상이 하루 밤 새 8k 초고화질로 변한 느낌이다. 아, 내가 18,000원으로 평생 무제한 초고화질 관람권을 샀구나. 

재검사 받으러 갔더니 건강검진을 받을 때 하는 단순한 시력검사로는 0.8, 1.0이 나오고, 기계로는 +1.25, +0.5라는 이상한 수치가 나왔다. 내가 혹시 원시?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의사선생님을 찾아갔더니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검사결과를 찬찬히 보다 만족한 듯 웃으며 좋은 소식을 전했다.

"아무 문제 없네요. 참 성공적입니다. 20일 뒤 재검진을 받으러 오세요, 그 사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현재 회복 상태가 상당히 좋으니까 걱정 마세요." 

내 왼 눈을 이제 그만 걱정해도 되겠다. 

가까운 글짜는 아직도 흐릿하게 보이지만 이틀 정도 지나면 괜찮아 진다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자. 

7월 7일 (현재) 

D+6 

오늘이 휴가 마지막 날이라 슬프다. 

내일부터 눈이 고생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이건 다 배부른 소리. 수술 끝난 다음날부터 재택근무로 일을 시작한 친구도 있고, 의사선생님도 수술 끝나고 정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했었다. 단, 세수와 머리감기는 아직도 금기사항. 수술 상처가 감염될까 조심하는 게 맞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아무리 눈알을 굴려도 보이지 않는 상처가 정말 1-2주나 지나서야 회복이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미심쩍다. 

이제는 가까운 곳도, 먼 곳도 빤히 보인다. 존재감이 없는 렌즈를 착용한 느낌.

거울을 보니 눈동자에서 빛이 난다. 안경을 벗으면 영혼 없던 내 눈이 싫었는데.

더이상 안경을 치켜올리는 손동작을 하지 않는다. 언제 근시였었냐는 듯이. 

아쉬운 점은, 가벼운 안구건조증은 아직도 있는 것 같다. 예전부터 있었으니까 나아질 거라 기대는 안 했지만. 글을 쓰면서도 슬슬 건조해지려고 해서 최대한 중요한 내용만 담는 중이다. 

그리고 먼 곳 가로등을 보면 빛이 예전보다 조금 더 많이 퍼진다. 이건 보편적인 수술 부작용이라고 하는데 나는 불편함을 모르겠다.

수술 받으러 가는 길에 우리나무 작가 / 미술천재 지니에게 그림 부탁을 했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을 추상적인 그림으로 담고 싶었기에. 의외로 수술이 끝난지 하루 만에 바로 그림 선물을 받았다 (썸네일). 거울을 보면 분명 "순둥순둥"한 눈인데 감히 이런 카리스마가 있는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 의아할뻔 했지만 보면 볼 수록 정이 가고 매력이 느껴지는 그림을 받아서 기쁘기만 하다. 

그래, "스마일" 덕분에 이렇게 웃을 수도 있구나. 이 "순둥순둥"한 두 눈도, 카리스마 넘치는 마음의 눈도 번쩍 뜨고 해상도 8k인 세상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미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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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현

본명 아니고 필명 맞습니다 :D / Instagram: k_onthe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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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오히려 많이 간단합니다, 그냥 검사 받고 수술 받고 몇 번 정도 회복상태를 확인하러 다니면 되니깐요. 아… 쓰고 보니 시간과 돈을 꽤 팔아야 되는 군요😢 그래도 안경/렌즈와 작별하게 되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방에 자랑하고 다닐 만한 선물 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미 우리 팀 디자이너가 그림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했답니다!)

  1. 하하하. 240p에서 8k까지라니… 먼 곳에서 날리는 먼지까지도 보아낼수 잇겟슴다. 사실 육안으로는 4K까지만 봐도 대박인데. 암튼 수술 성공 축하드림다 ㅋㅋ. 시간별로 수술 준비과정과 일정을 글로 정리해줘서 따라가면서 읽기가 참 편했네요. D+ 라는 시간도 존재한다는걸 첨으로 알앗구요 ㅋㅋ

    1. ㅋㅋㅋㅋ어떻게 하면 있어보이게 과장법을 쓸 수 있냐 하다가 떠오른게 고작 8K임다ㅠㅠ 길게 디테일하게 쓰려고 했지만 글을 쓸 당시에는 눈이 건조해서 급하게 마무리했는데 편하게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D+ 예전에 countdown 앱에서 보고 그대로 쓰다가 방금 검색을 해보니 공식적으로는 이렇게 사용을 안하는걸 늦게나마 발견했습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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