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다. 그런데 일어나기 싫다.
오늘은 토요일, 12시부터 5시까지 아이 일정이 꽉 찼고 나는 데려가고 기다리고 마중해야 한다.
지금은 11월, 국경절부터 한달 넘어 지났고 한달 더 있어야 설날이다. 개학날부터 두달 넘어 지났고 두달 더 있어야 방학이다. 어정쩡한 중간시점, 오도가도 못한다.
일어나기 더 싫다.
무기력하구나. 시간을 맞추고 시간에 쫓기는게 싫구나. 내가 원시인이라면 아마 굶주리거나 사자에게 쫓길때 이런 상태가 아닐가. 안전한 시스템과 싸움/도망 시스템 중 후자의 지배를 받는 상태.
싸우거나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몸은 당장 급하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지 않는다. 밥을 천천히 맛있게 먹는다든가, 소설을 느긋하게 읽는다든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든가, 남편을 칭찬한다든가 이런 아름다운 일들에.
시간에 쫓길 때 싸우거나 도망가야 하는 상황으로 착각하기 쉽고, 늘 시간에 쫓기면 아름다운 일들이 늘 미뤄진다. 그러다보면 더 착각하게 되고.
이 순환의 고리가 명절이나 방학 때 자연스레 끊기는데 11월은, 아, 앞뒤로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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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까풀도 꼼짝 않고 머리를 굴린다. 안전한 시스템으로 바꿔야 겠어. 하루라도 좋으니 시간을 지키지 말자. 어떻게? 아이를 내 삶의 동반자, 남편에게 맡기자.
– 여보, 내가 요즘 잘못된 시스템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는거 같애. 오늘 당신이 애를 맡으면 내가 안전한 시스템으로 돌아올수 있을거 같아.
– 좋아.
– 꺄악~
– 그런데 심심하지 않겠어?
– 심심하면 찾아 갈게.
입귀가 슬쩍 올라가더니 근육이 힘을 느낀다. 아, 이제 일어날만하다. 바닥도 닦는다. 노래도 흥얼댄다.
등 떠밀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 순간,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믿는 순간, 시스템이 바뀌였다.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 신비의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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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려가고 기다리고 마중하는 어미가 이런데, 그 시간동안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해야 하는 아이는 오죽할가. 애매한 중간시점, 아이도 아마 더 자주 싸움/도망 시스템에 있을 것이다.
싸움/도망 상태에서는 급하게 대처하느라 깊이 생각 못하고 즉각 반응한다. 아이한테 왜 이것도 모르냐,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냐, 그게 그렇게 어렵냐 부정적으로 대하면 싸움/도망 시스템이 가동돼 눈앞의 지적에 급히 반응하느라 반항하고 거부한다.
하지만 배움은 천천히 정밀하게 정보를 가공하는 작업이므로 급하게 처리할게 아니다. 안전 시스템이 가동돼야 잘 할수 있다. 내 어미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내가 어떤 모습이여도 사랑하는구나 느낄때 잘한다.
긍정 안테나를 빳빳이 세워 아이가 잘하는 부분을 발견해서 구체적으로 칭찬하고, 더 잘했으면 하는 분야에서는 기미가 보이면 털을 내리 쓸듯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칭찬을 하란다. (이 부분은 남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방향이라 함은, '아이를 챙기고 내게 자유의 시간을 줘서 고마워요', '내가 쓰는 글에 삽화를 그려줘서 고마워요' 이런 식이다. ('왜 당신은 안 챙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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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마음은 전해야 하니, 눈섭을 그리고 입술을 바르고 집을 나섰다. 내 아이를 데려가고 기다리면서 우아하게 책을 읽고 있을 남편에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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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책과 강의
Daniel Kahneman의 책 Thingking, Fast and Slow (思考,快与慢)
李松蔚의 강의 培养自我负责的孩子
万维钢의 강의 《行为》11: 从林法则和人类社会
郭小月의 강의 一土学校给村里爸妈的私享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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