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떽쥐베리가 창백한 이마의 “어린 왕자”를 품에 안고 가는 비행사를 묘사할때, 그리고 뱀한테 물려 죽으며 사랑하는 장미의 곁으로 가기를 작정하는 어린 왕자를 묘사할때,  삶에 대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해를 가진 어린 주인공을 그렇게  죽게 할때… 그 대목을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였을가를 생각을 해본다 

    레브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을 쓸때 그가 마지막 숨을 톱는 그 장면을 묘사할때 그는 또 어떤 마음이였을가… 

심리적인 짜릿함을 주기 위해 수많은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주인공으로 하여금 인위적인 우여곡절을 겪에 하여 대중의 인기를 자아내는데 능한 이야기꾼들과 달리 자신의 삶과 영혼을 퍼부어 그를 닮은 주인공을 만들고 그 주인공과 함께 자신의 삶을 울고 웃는 작가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많이 다르다. 즐거움을 위해, 일상을 소비하기 위해 읽는 것과 영혼을 후벼파는 고통스러움의 차이만큼 많이 다르다. 

     “어린 왕자”가 주는 메세지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과 닮은 구석이 있다. 두 작품은 모두 언젠가 오게 될 우리의 맨 나중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유망한 법관인 이반 일리이치가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이 피상적이고 진부한 자신들의 삶에 이기적으로 몰두하는 자녀들과 안해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절망은 어떠했을가?

    그가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한 뼈저린 후회를 안고 마지막 숨을 톱는 그 호흡에 대한 묘사는 나에게 죽음의 두려움의 그 극치를 보여줬고  나는 그때부터 정신을 차려 나한테 주어진 삶을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던것 같다. 그것은 나의 고중시절, 나의  엄마는 구급실에 몇번씩 드나들면서 아프셨고 사춘기였던 나는 수시로 엄마를 잃을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죽음에 대해 그토록 고민을 했다. 엄마를 다시 못보면 어쩌지 하는 그 하늘을 꽉 메우는 먹장구름 같은 무거움과 걱정을 안고 있는 나한테 이 작품의 의미는 너무나 컸다. 그리고 그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그 누구도 다독여줄수 없었던 크나큰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을때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하여 나에게  용기를 가지고 삶의 진실을 제대로 대면하라고 엄숙하게 알려주었고 그것은 “다 괜찮아!” 라고 하는 위로보다 내 삶에 곱절로  도움이 되였다.

     톨스토이를 그렇게 알았다. 그때 멋모르고 서점에서 집어든 단편소설집에는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수두룩 들어있었고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이야기는 수십번 읽어보면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것, 바보 같은 선행에도 꼭 좋은 보답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선한 씨앗을 마음에 키우며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문학전공을 공부하면서 톨스토이의 일생을 보고 혀를 찾다. 그렇게 내 영혼을 울려주던 고귀한 작품을 쓴 작가의 인생의 모순적인 모습, 타락과  선행 그리고 고뇌와 방탕함이 교차되는 그 일생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단면적인 삶을 알고 있는지를 알게 되며 가슴을 쳤다. 톨스토이의 만남은 이렇게 다이나믹했고 나는 지금도 내 삶과 내안에 요동치는 수많은 욕망과 또 그만큼 실현이 어렵고 또 아름다운 이상들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도 톨스토이와 숨결을 함께 하고 있는듯 하다. 

      또 나의 삶에 대한 사고를 더욱 깊게 할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 그들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였다.  바로 반 고흐와 윤동주이다. 

      “어린 왕자”가 찾아간 별은, 반고흐와 윤동주도 작품중에도 등장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라는 시구를 쓴 윤동주의  “별을 노래한다”는 결코 가벼운 노래가 아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되는 노래는 결코 쉽게 불러질수가 없지 않는가! 그리고 그 시구뒤에 나오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는 그게 인생에 대한 얼마나 깊은 고뇌의 끝에 찾은 답일지를 지금에야 느끼며 윤동주의 그 경건한 삶과 맑은 영혼에 감탄을 하게 된다..  

    계속 아프시던 엄마는 아홉번째 중풍을 맞고 더 이상 의식을 차리지 못하시고 눈은 뜨고 계시지만 사랑하는 딸인 나를 더는 알아보지 못하시게 되였다. 나는 엄마의 눈을 그토록 애타게 보며 애원하듯이 “엄마! 나야~ 나!! 나 왔어! 엄마 딸이 왔어!”, “엄마, 나는 여기있는데, 엄마도 여기 있는데 엄마는 어디있어?” 오열하며 수없이 물어보았지만 엄마의 눈동자는 더 이상 그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엄마를 그러안고 지치게 울다가 우연하게 내다본 창밖의 밤하늘에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한없는 절망의 마음으로 밤하늘을 우러러 봤을때 빛으로 모든 어둠을 진동하며 내 눈동자가 시리도록 나한테 다가오는 별들, 감당할수 없는 부담감과 같은 무서운 거물처럼 나한테 희미하게 그리고 또 명확하게 다가오는 별빛들이 나한테 주는 깨달음은…죽음, 그것을  넘어서는 이들도 있고 그것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며 떠나야만 하는 이들도 있다는것…나는 정녕 그걸 대면해야만 한다는 것이였다.

나에게  반고흐의 미술 작품 “별이 빛나는 밤”과 윤동주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 둘은 어찌 그리도 일치하게 다가왔던 것일가?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가? 그 노래는 대체 어떤 노래여야만 하는것일가! 모든 살아가는것을 사랑하는것이 아닌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고 더 이상 기쁨도 힘을 잃고 희망도 간곳이 없는곳에서 부르는 노래는 어찌 불려져야만 하는것일가? 

     나는 그곳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엄마 먼저, 나중에는 나도 갈 그곳을 바라본다. 내게 이야기로 다가와 삶을 만져준 별을 사랑하는 이들,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이들이  바라봤던 그곳… 그래서 외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서 내 가장 깊은곳의 실존적인 외로움은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며 “나에게 주어진 그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환상과 상상을  정말로 좋아한다. 그 곳의 넘쳐나는 신화와 같은 세상을 이 세상에 그려보고 그 진실함과 진정함을 짚어보고 나면 내 안의 열정은  “그곳”에 대한 열망을 닮았다는 생각조차 든다. 내 전공은 문학이였고 한때 문학을 사랑한다고 떠벌이며 다닌적도 있지만 더 이상 저한테 문학은 학문이 아닌 내  삶을 글로 써내고 그것으로 진실한 삶들을 만나는 일이다.

    칼 융이 신화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본것에서 계발을 받은것일가?  나는 한 인간의 상상으로 써낸 작품너머의 그 작가들을 바라보기를 참 즐긴다. 그리고 그 허구와 그 묘사와 그 상상을 바라보면 작품 만들어내기 위한 표현과 진실한 삶의 발견들을 가려본다.  허구와 묘사중의 진실함은 객관적인 현실의 진실함을 초월한 마음의 진실함이다.어쩌면 넘겨짚기 달인을 마주하여 어영부영 아니라고 변명을 하는 당황함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진실함으로 내 삶의 고비에 만나준 작가들과 나눈 그 진실한 대화를 알기에 모든것을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이 그토록 반갑다.

    병환에 계신 엄마와 함께 지낸 암울한 청소년 시절에 나를 만나준 톨스토이가 그랬고 꿈 많은 대학시절  문학공부를 하며 도서관에서 만난 생 떽쥐베리,  교수님을 통해 만난 수많은 시인중에 유독 깊이 나를 만나준 윤동주도 그랬다. 한두개의 형용사나 감정단어들로 절때 표현이 불가능한 내 마음들을 만져주고 읽어주고 그렇게 내 삶에 가장 큰 선물로 다가온 반 고흐의 수많은 미술 작품들도 그랬다.

      그들은 내 삶속의 사람들과의 말로하는 만남보다도 더욱 깊이 나를 만나주었고 머리로 만나주지 않고 마음으로 만나주었고 내 영혼을 만졌다.   문학작품을 넘어서  인간사이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한 인간자체가 이 세상의 가장 소중한 작품이 아닐가! 

      나는 지금도 소설을 쓸려고 끄적거리다가 써내려갈수가 없다. 그 인물들의 대화에 몰입해 있다가 다시 한번 읽어보고는 그 인물들이 다 내안의 모습들이여서, 그 인물들 성격과 인물 관계에 투영되는 내  삶속의 모습들이 그 누군가에게 들켜버릴것 같아서 그냥 그곳에서 멈춰버리군 한다. 그 꾸며낸 이야기속에는 다 내가 원하는것과 이루고 싶은 마음의 진실이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내 마음의 진실한 상태를 드러내는 작업을 아직도 그리도 두려워한다.  

     내가 만난 작가들은 용기있게 자신의 삶을 펼쳐내며 저의 마음을 만져 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내 진실한 삶을 나누는 작업에 이토록 서투르고 인색하다. 주목을 받고 싶어서 혹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크고 작은 거짓과 허영으로 포장하고는 문학적 기법과 교묘한 장치를 자랑스러워할때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삶의 진실한 상태를 부끄럼없이 드러내며 그 깊은 고뇌를 파헤치며 그만큼한 깊이로 만나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나를 너무나 잘 안다. 살다가 힘이 들땐 풀어내지 못한 내 욕망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살냄새가 가득한 글로 내 삶을 풀어야만 하고, 그게 또  재주가 되여 목적성과 공의성이 가득한 글을 쓰는 제가 제일 혐오하는 부류의 글쓰는 사람이 될수도 있다는것을… 또 세상이 나를 아니라고 부정하면 더욱 인정과 주목을 위하여 몸부림 치며 화난 얼굴이 잔뜩 들어있는 글을 쓰는 이 사랑스럽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그 진실한 모습이 다 내 안에 있음을… 

   어쩜 아름다움과 하나가 되는 그 길은 바로 사랑스럽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하지만 저 진실한 모습을 껴안고 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내가 가장 원하는것은 그냥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곳에 푹 빠지고 싶지만 현실은 그게 절때 아니라고 항상 나에게 말하고 있다.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여 어쩜 더욱 가닿고 싶은 곳일지도 모르지만, 내 현실에서는 보잘것 없어 보이는 작은 매순간에 전부를 바쳐야만 하는 정말로 쉽지 않는 과정일것이다. 

     그곳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도 한가득 눈물이 차오른다.  

   그 별을 향해 가는 중에 나는 엄마가 만나주신 그 만남으로, 그 사랑으로 다른 인생과 만남을 이루어가며 이 삶을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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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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