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우리나무 게시물 중,  cya0909님의  <고향에는 누가 살고 있을가?>  중 한장

이 사진은  초상사진이다. 일반적으로, 초상사진(초상화)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외모의 기록,  넓게는 대상의 정신성과 권위, 혹은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인간의 고유성에 맞춰져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이 사진 공간 속에 들어 있는 건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소다. 그러니깐 이 사진을 세분화한다면 동물의 초상사진 혹은 소의 초상사진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분류하고싶다)  소의 초상을 포착하는 일은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작업과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소의 초상을 읽는 것 또한 사람의 초상을 읽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일단 두가지로 본다.

하나는 소의  '포즈 없는 몸'이다. 동물은  포즈를 알지 못한다.  포즈는 신체가 만들어내는 언어다. 요구하는 포즈(혹은 원하는 포즈)가 개입되면 초상은 강력한 메시지를 갖게 된다. 이를테면 정치인들의 포즈는 그들의 정치성향과 어필하고 싶은 내면을 전달할 수 있는 코드가 되고 연예인, 교수, 회사원, 인부. . . 그들의 초상 속 포즈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선한지를 알아차릴 수 있게 의미화가 되며, 중학생의 V포즈는 안정된 삶 속에서 다져진 그의 자신감을 대변하다.  그러나 소는 포즈를 알지 못한다. 소의 포즈 없는 몸은 인물의 초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신체다.   그것은 아직 자기를 드러낼줄 모르는 어린 아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몸짓이다. 

다른 하나는 소의 '시선 없는 눈'이다. 소는 눈이 있지만 시선이 없다. 왜 눈이 인간의 감각 중에서 그렇게 지배적인 기관이 됐었을까?  촉감과 달리 시선은 철저하게 접촉과 격리되어,  안전지대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바로 시선을 통해서 인간은 자연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읽어나가면서, 자연 속으로부터 빠져나와 그것을 개념화시킴으로서 문화라는 것을 일궈왔다. 그러나 소의 눈은 그것을 할 줄 모른다. 소는 시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으로부터의 분리를 모른다. 그 눈은 보고있지만 안보는 눈이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눈이며 인간의 시선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텅 비어있는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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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먹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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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혼란이 대단합니다… “서”경대와 “선”경대의 차이에서부터 혼란이 생겨났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혼란을 만들었는지… ㅋㅋㅋㅋ 현대미술 전공한다고 했을때 “네”라고 긍정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지, 先知도 아니고 이런 우연이 있을수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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