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기생충인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영화계에서 핫이슈로 떠오르는 단어는 당연히 “기생충”이다. 

영화매니아가 아닐지라도 심지어 “기생충”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한두마디씩은 던진다. 그리고 가장 큰 관심은 영화가 받은 상들에 맞춰져 있다.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 두가지를 다 받았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또 상들이 영화 자체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민족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킬만 한 큰 일이니까.

 

별로 자랑할것이 없는 우리는 나랑 같은 민족의 누군가가, 나랑 같은 국적의 누군가가 아니면 나랑 같은 고향출신의 누군가가 큰 성과를 냈을 때 자신의 일처럼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이런 자긍심의 잠재적인 논리는 이런 것이다. 나랑 같은 그룹에 속한 누군가가 우수하다. 그건 내가 속한 그 그룹이 우수하다는 얘기이다. 고로 나도 우수하다. 

논리 오류임은 분명하나 인간의 감정은 이성적인 논리를 완전히 밟아 버린다. 

그러므로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이 된 이후 우리 민족공동체에서 “기생충”에 대한 화제는 영화자체가 주는 메시지나 영화에서 느낀 감정이나 이런 주제이기보다는 “기생충”에 부여된 영예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을 받은 그 의미나 민족적 자호감 민족문화의 자호감 같은데 포커스가 맞추어 져있다. 그래서 봉준호감독의 외할아버지까지 이슈가 되고 있다. 허나 “기생충”영화 자체는 오히려 홀시 받고 있는 기이한 상황이다.

 

오히려 외국인 영화매니아들을 중심으로 “기생충” 영화자체에 대한 토론이 훨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인들에게는 “기생충”이 갖고 있는 영예의 광환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기에  “기생충” 자체에서 느끼는 공감들이 주된 관심이 되는 것 같다. 

요즘 트위터에서는 도대체 누가 기생충이냐는 논쟁으로 뜨겁다.

 

그럼 “기생충”에서 말하는 기생충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 글은 영화평론이아니기 때문에 영화내용 소개는 하지 않겠다. 이 제목을 읽고 클릭하는 독자라면 영화를 이미 봤으리라고 전제하고 글을 쓴다.

 

기생충에 대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눠보면 “하도 난리이 길래 찾아 보니 그냥 영화이던데…” 라는 얘기들이 굉장히 많다. 

사실 그렇다. “기생충”을 보면 이곳저곳 재밌는 대화도 있고 웃음 포인트도 있고 또 이곳 저곳 은유와 상징적인 내용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줄거리나 눈물코물을 쥐였짜는 감동적인 내용 혹은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주는 영화나, 주제나 메시지전달이 명확한 영화를 봐왔던 분들에게는 맹숭맹숭한 영화이다. 

근데 왜 세계가 이 난리일까?

 

그건 “공감” 두 글자 때문이다. 

공감은 우리가 학교에서 어문공부를 하면서 세뇌당하는 획일적인 중심사상 같은 것이 아니다. 보는 자마다 느끼는 서로가 다른 느낌이나 공명 인식인 것이다. 

천명의 독자에게는 천명의 햄릿이 있다고 한다. 저자가 의도하는 햄릿은 하나일것이다. 그러나 탁월한 저자는 다른 시각에서 보면,  서로 다른 배경과 지위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봐도 빨려 들어갈수 있는 입체적인 “햄릿”을 만들어내서 그 작품이 수많은 독자들의 경험까지 가미되면서 하나의 위대한 작품이 완성되게 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바로 이런 작품이다. 

서로 다른 사회계층이나 이익집단에 소속된 사람들 마다 모두가 공감할수 있고 또 그 작품속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문제점이나 관점을 찾아낼수 있다는 것이다. 

부자는 부자의 시각에서 생각해왔던 “기생충”을 영화에서 찾아 냈다고 생각하고 가난한자는 가난한 자들이 평소 생각했던 “기생충”을 영화에서 보고 있다고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만이 아닌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현시대 사회의 양극분화 아니면 다극분화와 청예한 대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했던 사람들은 또 이 영화에서 그 문제점을 똑같이 보고 있다고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봉준호의 “기생충”은 자신들의 입장과 주장을 대언한다고 공감하고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급속한 세계화의 물결 때문에 문화와 전통을 초월해서 거의 모든 나라가 비슷한 사회구조와 모순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안고 있는 사회모순과 문제점이 세계 그 어떤 나라에서 든지 비슷한 양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온 세계의 관중들이 공감할수 있는 것이다.

 

“기생충”의 완성은 황금종려상이나 아카데미상 수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관중들은 자신들의 선입견과 편견속의 “기생충”들을 보았다. 그리고 편견으로 인해 해결되지 않는 증오와 그 증오가 불러오는 파멸도 보았다. 

이제 “기생충”의 완성은 관중들의 몫이다. 누가 기생충이냐는 활발한 토론으로 각자의 편견의 색안경들이 벗겨질 때 “기생충”은 진정한 완성을 가져 오게 될 것이다. 

서로가 다른 이익집단들의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인간들 서로가 서로를 인간이 아닌 “기생충”으로 바라보는 편견들을 버리려는 의지가 절망으로 달려가는 인간사회에 한줄기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다.

 

과연 누가 “기생충”일가? 이 영화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 “기생충”이다. 인간을 “기생충”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제도 자체도 인간의 욕망을 숙주로 만드는 기생충이다.

 

그러나 이는 허상이다. 

실상은 인간은 그 누구도 하찮은 “기생충”이 아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도 서로가 서로를 “기생충”으로 만들어서는 안되는 공생의 공동체야 한다. 

인간을 인간대접 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의 편견의 교정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야한다. 

편견은 부동한 시각으로 볼수 있을 때에야 버려지게 된다. 

“기생충”은 세계적인 서로 다른 편견들의 열렬한 토론에 불길을 지핌으로 더욱 훌륭한 작품이 되어 갈 것이다. 

화두는 봉준호 감독이 던졌고 완성은 관객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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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石

연변사투리로 표현하면 그냥 미련한 돌대가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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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참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아카데미 시상식 라이브를 보면서 같이 울컥하고 뭉클했던 기억이 있네요~ 워낙에 봉준호 감독을 좋아해서 이번 영화에 관심도 많았겠지만… ㅋㅋㅋㅋㅋ실상은 인간은 그 누구도 하찮은 기생충이 아닌데 편견의 교정이 늘 쉽지가 않은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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