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삼국연의?

 

《三国演义》(全名为《三国志通俗演义》,又称《三国志演义》)

 

志:사실기록을 말하는데 삼국지라하면 삼국시기역사를 기록한 서적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기록입니다.

演义: 소설의 장르입니다. 픽션이라는 거죠. 역사사실을 소재로 하나 창작적인 허구가 가능한 형태를 얘기합니다.

三国演义와 三国志는 완전히 다른 책입니다. 삼국지는 西晋의 陈寿가 쓴 역사책이고 삼국연의는 삼국지에 기초한 픽션입니다.

 

삼국연의를 七分历史,三分杜撰이라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사실은 三分历史,七分杜撰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허구라는 얘기입니다.

 

삼국연의의 이야기를 역사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드리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삼국연의의 성공이 역사는 잊혀지고 소설이 역사처럼 변하는 기이한 문화현상을 만들어냈습니다.

 

열나게 삼국연의를 역사처럼 담론하다가 가끔씩 아차…이건 픽션이지 하고 제정신을 차릴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삼국연의가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얘기입니다.

 

삼국연의의 의미를 이 책에서 리더십,  경영관리,이런 것들을 배울수 있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삼국연의에서 배우는 리더십이나 경영에 관한 책이 나오는데. 저자의 허구로 만들어낸 이야기에서 리더십과 경영에 대한 것을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별로 가치를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기업총수들이나 성공한 사람들이 삼국연의를 좋아하고 삼국연의를 예로 들어 얘기하는 건 그냥 어려서 꿈과 열정과 상상의 공간을 제공했던 책에 대한 추억이 너무 강해서일뿐입니다.

 

가치가 전혀 없다는 건 아니고. 실제 案例가 아닌 저자 마음대로 모든 조건과 과정과 결과를 결정하는 이야기에서 현실적인 책략과 리더십 경영이론을 찾아낸다는건 신빙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삼국연의의 기록 연대:

 

삼국시대는 기원 220年-280年사이의 동한과 서진 사이에 있었던 혼란과 분열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삼국연의는 언제 쓰여졌나하면 원말명초, 대략 1370년에서 80년정도에 쓰여 졌다고 보면 됩니다. 저자 라관중이 1330년에서 1400까지 살았으니깐요.

 그러니까 비록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쓴 것이나 1000년후에 쓴 소설이다 보니 언어, 문화, 가치관, 생활관습 이런 문화적 속성은 어느 시대의 것을  보여줄까요?

 원말 명초의 문화적 속성을 보여 줍니다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남송의 영향을 많이 받았겠죠. 원조가 통치 시대가 100년이 안되니까 또 원조의 문화가 중원의 문화에 영향을 별로 끼치지 못했으니까 삼국연의를 기록하던 시대의 문화는 남송문화의 연장선으로 보아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삼국연의를 읽으면서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결코 삼국시대의 문화나 관습 생활환경 문화적 배경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겠죠.

 

그리고 원말명초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원조의 몰락의 시대, 몽고족의 통치에 반대해서 홍건군을 비롯해서 수많은 농민봉기가 일어났던 시대죠.

 

수십갈래의 봉기군들중 서로 치고 박고 해서 나중에 남은 세갈래의 봉기군은 주원장, 진우량, 장사성 이 세 개 파벌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삼국연의에는 삼국시대가 아닌 원조말기의 정치 문화 역사가 굉장히 많이 투영되였습니다.

 

삼국연의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역사소설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자가 삼국연의를 쓰면서 참고한 자료들이 습니다.

주로 두가지 부류라고 볼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사인 삼국지, 다른 하나는 민간전설들입니다.

 

진수가 쓴 삼국지는 역사기록입니다. 정사이죠. 280년에서 290년에 기록한 것인데 진수는 삼국시기 촉한의 관리까지 지낸적이 있어서 굉장히 신빙성이 있는 사료들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남북조 시기에 송나라(刘宋, 조광윤이 세운 송조가 아님)의 배송지372-451라는 사람이 주를 달아서 보충하고 수개햇습니다. 진수의 “삼국지”그리고 배송지의 “진수의 삼국지 주” 이 두책은 정사이므로 중요한 역사적 참고자료 였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의 영웅인물들에 대한 민간전설이 삼국연의가 씌여지기전 여러형태로 1000년동안 부동한 버전으로 전해 졌습니다.

 

당조때부터 “说话”설화라는 곡예예술 형태로 评书랑 비슷한 장르의 예술로 삼국연의의 이야기들이 전설로 문학적 가공이 되어서 전해 지고 있었습니다.

 

설화는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면서 보통백성들에게 깊은 학문을 전할수 없으니까 이야기랑 그림이라든지 皮影나 木偶剧연극이라든지 이런 형태로 불교이야기를 전하면서 생겨난 장르입니다.

 

사료들에 보면 당조때부터 이미 삼국연의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설화”의 형태로 전해 졌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인물인데 역사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재밌는 이야기로 또 영웅인물형상들로 만들어져 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송조에 와서는 많은 발전을 가져와서 민간에서 많이 전해졌고 원조말기는 원곡등 희곡의 발전과 함께 더욱 많이 수많은 버전의 삼국연의속의 인물들이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민간전설에서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이런 사람들은 이미 이미지 형성이 이루졌던 것입니다.

 

특히 송조때는 유교가 성리학으로 발전하면서 충효와 인의 도덕등을 특별히 강조하는 그런 시대여서 삼국연의의 모든 곳에는 그런 유교적 가치관들이 확고하게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조조 같은 위대한 정치가이자 문학가였던 사람은 挟天子而令诸侯, 황제를 허수아비 삼았다는 이유하나로 아주 나쁜 놈으로 그려지고, 류비는 황제의 수많은 방계자손중 하나이지만 류씨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정통을 이어받는 정면 인물로 그려져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류비 역시 그냥 사천지역을 억지로 차지한 외래 군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라관중이 삼국연의를 쓸때는 이미 많이 이야기들과 인물들이 정형화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면 왜 수많은 삼국시기 이야기들중 라관중의 삼국연의만 남게 되고 중국의 사대고전명작으로 될수 있었느냐 하면 그건 라관중이란 인물의 경력과 또 그의 뛰여난 견식 문확성때문이였습니다.

 

삼국연의 수호전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문학에서 소설은 아주 지위가 낮았습니다. 그리고 작품이라고 할수 있는 그런 완성도 높은 소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중국문학사에서는 诗만이 문인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당시송사唐诗宋词하는 词도 그냥 문인들이 술을 만시고 기방에서 기녀들에게 글재주를 뽐내는 장난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습니다. 소동파같은 경우도 사를 시보다 잘 썼지만 사에 대해서는 챙피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소설의 위치는 형편없이 낮은 거였습니다.

그냥 민간에서 보통 백성들이나 아녀자들이 읽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발전을 가져올수 없었습니다. 서민들에게 문학작품을 얘기해서 돈벌어먹고 살수는 없는 일이잖습니까. 그래서 소설은 재미있는 줄거리로 그리고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다룬 소설이 아닌 청중들이 좋아할만한 정형화된 인물형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관운장 하면 충심 의리, 제갈량 지혜 충심, 조조 간사함 의심많음 이런 식의 인물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小说…작은 말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홍루몽의 저자도 자기 이름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피해를 당할가봐 그런 거도 있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을 문인으로서 챙피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그러다 보니까 소설의 발전이 원말명초에 와서야 시작된 것입니다. 그 시작점에 시내암과 라관중이 있었구요. 그러니까 중국소설사에서 수호전과 삼국연의의 위치는 서양문학사에서 단테의 신곡이나 세르반테스의 돈 기호테의 지위랑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원말 명초에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부상하게 된데는 라관중의 공로가 큽니다. 훌륭한 저자가 있는 것이지 훌륭한 장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탁월한 저자는 문학장르에 상관없이, 그가 썼기 되었기 때문에 명작이 되는거죠. 무협지 같은 大雅之堂에 들어갈수 없는 장르도 김용선생이 쓰니까 문학의 경지에 오르는 것과 같은 도리입니다.

 

그러니까 삼국연의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관중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삼국연의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중국소설사에 대핸 이해를 돕게 되니깐요.

 

저자 라관중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원조말년에 비단장사 집안에서 태여났습니다. 7살부터 서당에서 사서오경을 공부다가 14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를 따라 소주항주 일대에서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항주는 경제가 많이 발전하고 문화적인 중심으로 희곡과 “설화”와 같은 문화가 굉장히 발달된 곳이였습니다. 당시송사원곡명청소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시 관한경이나 정광조같은 원곡의 대가들도 항주에 거주했었고 해서 훗날 소설가이자 작극작가가 되었던 라관중은 청소년시기를 항주에서 이런 문화적 영양분을 자연스럽게 섭취하면서 자랐습니다.

 

비단장수 집안이지만 라관중은 상업에는 뜻이 없어서 아버지의 동의를 받고 현재 녕파의 慈溪에서 당시 유명한 학자였던 조보풍의 문하에서 공부를 합니다. 학문적인 수양을 이때 엄청 쌓아갔던 거죠. 공부를 마치고 항주로 돌아오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설화”나 “잡곡”작가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라관중은 큰뜻을 품고 당시 기의군 장사성의 모사로 들어가는데 라관중의 건의하에서 장사성은 주원장의 부하 강모재의 진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냅니다. 그러나 그해 장사성은 친동생이 원조에 포로가 되자 의리를 중히 여겼던 장사성이 원조에 투항을 합니다.

 

장사성은 원래 소금장수 출신이고 경제가 가장 발달한 소주지역을 차지했기에  굉장히 부자였는데 원나라에 투항을 하고 한때는 향락에만 빠져삽니다. 그러다가 원조가 망하자 다시 자칭 왕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때 라관중을 비롯해서 모든 모사들이 아직은 시기 상조라고 했지만 장사성은 고집대로 왕으로 자칭하고 주원장과의 싸움에서 대패를 합니다.

 

원조말년에 원나라가 쇄약해지면서 한산동 류복통 곽자흥 서수휘 팽영옥 한림아 진우량 장사성 주원장등 수많은 군벌들이 출현하는데 초기에 백련교등 종교를 이용했던 면에서 동한말기 삼국연의 서두에 나오는 황건군의 난이나 군웅할거의 장면이랑 비슷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들도 삼국연의의 군웅들처럼 내부싸움을 거쳐 세갈래만 남게 되는데 바로 진우량 장사성 주원장입니다. 김용선생의 “의천도룡기”도 이 시대를 배경으로 쓰고 이들을 등장 시킵니다.

 

이 들중 진우량은 가장 강했습니다. 사람이 아주 독하고 자신의 주군을 서슴없이 베고 대놓고 배반을 인생의 모토로 삼는 사람이였습니다. 成者为王,败者为寇,人不为己,天诛地灭를 공공연히 감주치도 않고 실행했던 인물입니다.

 

다른 정치인들처럼 절대로 감출줄을 모르고 嚣张한 스타일입니다. 달통안되면 싸우자. 도리가 아닌 칼로 말하라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内战内行,外战外行”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하여튼 싸움도 지독하게 잘해서 당시 6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던 절대 강자였습니다.

주원장보다 3배나 더 많았습니다.

 

장사성은 의리를 중히 여기고 호걸남아의 기질이 다분한 비극적 영웅 스타일이였습니다. 가장 부유했던 소주호주등 강소성 지역을 차지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는 가장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좀 우유부단하고 독하지 못하고 큰 뜻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주원장은 굉장히 독하고 음흉한 사람이였지만 이때까지는 류방을 흉내내면서 민심얻기에 힘을 썼던 사람입니다. 굉장히 큰 포부를 갖고 있었고 그릇이 컸었습니다. 그래서 친민 정책을 써서 당시의 민심을 가장 많이 얻었던 사람이고 나중에 끝내 진우량과 장사성을 소멸하고 명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이 세명은 삼국연의에 위,촉,오 세나라처럼 두나라씩 서로 힘을 합하기도하고 여러 가지 권모술수들이 오갔습니다.

 

그 중심에 라관중은 장사성의 모사로 있었고 이 모든 것들을 직접보고 참여하고 또 큰 실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장사성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험들이 그리고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성격들, 그리고 자신이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한 뜻과 지략과 계획들이 삼국연이라는 큰 틀속에 허구로 젖어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사성 진우량 주원장이 류비, 조조, 손권과 일일이 매칭되지는 않지만 이들의 특성들이 골고루 류비와 조조, 손권에게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연의에 나오는 수많은 모사들과 장수들의 모습에서도 라관중이 만났던 원말명초의 군웅들의 모습들이 녹아 있습니다.

 

전쟁에 관한 묘사가 유달리 생동한 것도 직접 전쟁에 참여하였고 계략을 내놓았던 경험들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삼국연의에서 가장 유명한 적벽대전 같은 경우에는 역사상의 원래의 적벽대전보다는 오히려 진우량과 주원장의 파양호대전과 삼국연의의 적변대전의 과정과 줄거리가 아주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비슷합니다. 제가 이전에 주원장에 관한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아보다가 파양호대전의 내용을 읽으면서 소스라치게 놀란적이 있습니다. 삼국연의의 적벽대전과 너무나 비슷하기때문에

 

그러니까 삼국시대의 이야기나 인물의 틀에 기반하고 또 전해져 오던 “설화”형식의 비역사적인 민간전설들에 원말농민기의의 생생한 인물들과 사건들이 녹아들다보니까 다른 버전의 삼국이야기들보다 탁월한 소설이 된것입니다.

 

그리고 삼국연의를 보면 사실 주인공이 어쩌면 제갈량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갈량은 과연 탁월한 전략가였을가요? 중국역사에서 최고의 谋士로 알려지는데.

 

역사상의 제갈량은 탁월한 인물이긴 해도 최고의 천재적인 谋士에 속하기는 힘듭니다. 주문왕의 모사 강자아나 제환공을 도와 패업을 이룩했던 관중이나 월왕 구천을 도왔던 범려나, 진시황을 도왔던 리사나, 류방을 도왔던 장량이나 광무제 류수를 도왔던 엄광, 조광윤을 도왔던 조보, 주원장을 도왔던 류백온 같은 인물들과 비교하면 진짜로 그렇게 까지 대단한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제갈량은 민간설화에서 지혜의 화신으로 둔갑하고 또 라관중의 문학적 가공을 통해서 완전히 완벽한 인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제갈량이 한 일이 아닌것도 제갈량의 공로로 다 돌려버렸습니다. 예를 들면 적벽대전의 승리와 계략은 모두 주유의 작품이거든요. 제갈량과는 거의 아무상관이 없는것도 다 제갈량의 것으로 만들고 꼭 마치 삼국시기의 모든 정세가 제갈량의 계획과 책략대로 제갈량의 손바닥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만들어 놨습니다. 그래서 삼국연의의 제갈량은 诸葛近似妖라는 평판을 듣습니다.

 

왜 그렇게 썼냐면 라관중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다 제갈량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는데 쏟아 부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죠.삼국연의 매니아들 대상으로 한 컴퓨터 게임이 굉장히 많은데요. 게이머들은 그 게임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일종의 대리만족을 얻는데 빠져 사는데 어떻게 보면 라관중은 삼국연의라는 문학적 가상 세계를 만들고 제갈량이라는 캐릭터를 선택해서 게임을 진행하면서 성취감을 얻고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이랑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사실 삼국연의에서의 제갈량은 라관중 자신과 자신의 스승 시내암의 형상과 꿈을 넣어 만든 인물입니다.

라관중이 장사성의 휘하에 있을 때 만난 스승이 바로 시내암이였습니다. 시내암 하면 우리는 수호전의 저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수호전의 저자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데 어떤 출판사에서는 시내암과 라관중 공동저작으로 표기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라관중이 저자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삼국연의와 수호전을 대비하면 필법자체에서 너무나 다른 풍격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내암이 쓴 글을 라관중이 편집수정했다는 주장에 한표를 던집니다.

 

시내암은 대단한 학문의 소유자였습니다. 주원장의 모사 류백온과 친한 친구이자 과거시험 합격동기였습니다. 장사성 휘하 있으면서 라관중은 시내암의 영향을 여러모로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승을 거의 제갈량의 화신으로 존중했고 삼국연의에서 제갈량이라는 인물을 그려내면서 시내암을 모델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시내암과 함께 삼국시기의 모략과 전략들을 서로 담론하고 또 당시의 정세들에 대한 토론들을 통해서 알게 된 시내암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의 지략, 그의 포부를 제갈량이라는 인물에 쏟아넣어서 만들어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배경들을 알고 삼국연의를 읽으시면 더 풍부한 상상과 또 원말명초의 정치환경과 연결성, 그리고 인물형상들을 만들어가는 저자의 의도를 조금더 이해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르: 삼국연의의 장르는 章回小说입니다. 중국고전소설의 중요장르이고 장을 나누어 서술하는 형태의 소설입니다. 원천이 评书다 보니까 한꺼번에 다 얘기할수 없고 또 한번의 얘기가 서두와 결말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어야 하고 또 다른 장들과의 연결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매회가 독립적이면서 또 뒤에 오는 내용들을 이끌어내는 서두가 됩니다.

 

그리고 청중들이 또 와서 돈팔고 듣게 하기 위해서는 꼭 긴장한 대목으로 끊어주죠 欲知后事,请听下回分解。이런 식으로. 그래서 줄거리 선이 명확해서 아무리 긴 소설이라도 헷갈리지 않구요 또 각 장마다 확실한 독립적인 이야기 구성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현재의 드라마들이 이런 문학장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독자: 대부분의 장회소설의 독자들은 그냥 보통백성이였습니다. 문학적 소샹이 있는 분들이 아닌. 그러나 삼국연의 수호전 서유기 홍루몽등의 등장으로 젊은층 문인들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부자집 도련님들 규중의 아가씨들도 주독자 층이였습니다. 그런데 쓸데 없는거라 가만히 읽는 티를 내지 않고 읽었습니다. 마치 무협지나 琼瑶소설을 읽으면 챙피하게 생각하는 거랑 같은 맥락. 그러니까 문학성보다는 취미 위주로 줄거리 위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삼국연의의 간략한 배겨지식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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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石

문학사 동서양철학사, 그리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깊이 있게 공부한 분야는 하나도 없지만 여려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여행과 독서 사진 촬영을 취미생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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