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착한아이콤플렉스를 껴안고 산다.

착한 딸, 착한 마누라, 착한 엄마, 착한 직장인으로 산다. 그 착함이 버거울 때에는 심술을 쓴다. 심술로 나를 보호하는거다. 그래서 착하지만 심술 궂다. 어릴적 나를 이뻐해준 이는 설레게도 '이그, 뾰로통해서' 하면서 웃어넘겼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 내가 왜 심술이 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어떤 심술은 이제 순환의 고리를 그만 끊어줘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올해는 사는 도시를 옮길가 고민 중이다. 우리 어머니는 반대하신다. 하지만 '어른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원칙을 굳게 세우고 계시는 분이라 "니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씀은 하신다. 그리고는 나름대로 은근슬쩍 반대의사를 내비치는데 요즘은 "비싸게 주고 올해 운세를 봤더니 지금 있는 자리에서 10년을 더 머무는게 좋다고 하더라" 하셨다. 무슨 올해 운세가 10년을 내다보는지.

하지만 이를 어쩌나. 착한 아이와 함께 심술쟁이가 난동을 부린다. '나는 이곳에 어울려 그리고 편해' 착한 아이가 말하면, '그거 네 생각이 아니야' 심술쟁이가 떠든다. 

우리 부모님은 대체로 내 일상에 관여 안하시는데, 말 그대로 쭈욱 지켜는 보신다. 그러다 가끔 슬쩍 들어와 스윽 휘젓는데, 그때마다 나는 대체로 어르신들 뜻에 따르는 결정을 내린다. 심줄쟁이가 발버둥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냥 그러다 만다.

10년을 더 머물라… '그렇답디까? 알았슴다 참고할게예' 하고 넘어가면 좋을텐데 착한 딸로 수십년 살아온 나는 그게 잘 안된다. '누구 뜻대로 하지 않으면 사랑 받을 수 없어'라는 속삭임때문에 두려움과 욕망의 거품이 이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하다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창 젊었던 내가 뭘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아버지가 "나중에 내가 60이 되면 다 알려줄게"라고 하셨다. 그런데 60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고 무슨 말씀이 하고 싶었던건지 나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였다. 그래서인지 년륜이 있는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하는 지혜로운 말씀을 귀담아 듣게 된다. 혹시, 이런 말씀을 하시려 했던걸가 하면서.

***

법륜 스님이 바로 지혜로운 말씀을 나누어주시는 한분이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블로그를 자주 보는 편인데 마침 '점집에 발길을 끊으니 안 좋은 일들이 생겨요'라는 제목으로 업데이트 된 문장이 있었다. 

20년 넘게 무속인을 찾아다니다가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무속인 집에 발길을 끊고 스님 참회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큰 아들이 맹장수술을 하고 작은 아들이 공황장애가 생기고 남편 사업이 안풀리는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길래 무속인 집에 안 가서 그런가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는 질문에 스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다.

만약 남편 사업도 잘 되고, 부부 관계도 좋고, 모든 것이 원만한데 아들이 맹장 수술을 했다면, 그냥 '아프구나'라고 생각하지 다른 생각을 안 할 겁니다. 사업만 안 되고 다른 문제가 없다면 '경제가 안좋아서 사업이 잘  안되구나'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두세가지가 겹쳐서 일어나면 '뭐가 문제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해요. 이걸 징크스라 합니다. 마음이 불안하면 징크스나 운세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점을 치거나 굿을 하면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굿을 하고 나면 '이제 좀 잘 풀리겠지'하는 믿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점이나 굿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에요. 실제로 일이 잘 풀리는지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심리 치료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굿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사실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거예요… 업단지를 두고 절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업단지를 치워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업단지를 치울 수준이 안 된다는 거예요. 업단지를 치웠는데 내일 다리가 부러지면,질문자는 업단지를 치웠기 때문에 다쳤다고 생각할 겁니다. 저는 다리가 부러지면 그냥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거예요. 다리 다친 것과 업단지를 연관시키지는 않습니다…

내가 업단지를 치울 수준이 안돼있어서 그렇구나 깨닫는다. 한 시내에서 집을 옮겨도 처음에는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닌데 하물며 도시를 옮기고 안정된 수입 없이 사는건 상식적으로 보아도 쉬운 일이 아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그런 어려움을 '그것 봐, 올해 운세를 보니 옮기지 말라고 했잖아' 하면서 징징댄다면 그야말로 업단지를 치울 수준이 안 된것이다.

물론 불안하겠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산다는게. 특히 말 잘 듣던 착한 아이는 지침을 내리는 이가 없으니, 오히려 지침에 어긋나려고 하니 더 불안할테고. 그 불안한 마음이 올해 운세 한오라기를 잡고 버둥거리는거지. 올해 운세가 없었다면 아마 다른 지푸라기를 잡았을거야. 내가 불안한건 올해 운세와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 그러니 잠시 휘젓기더라도 천천히 거품을 거두어내자. 

'이번만은 꼭 내맘대로 할거야,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아'라는 심술쟁이의 목소리도 들린다. '너도 저쪽에 가서 잠이나 자'. 아니, '이그, 뾰로통해서, 그래 너맘대로 해, 헌데 너 마음이 뭔지 차근차근 알아보자.'

내가 자주 들르는 블로그가 또 있는데 블로그 주인은 따라배우고 싶은 멋진 아줌마다. 오소희 작가님. 이 분도 어릴 때 엄마의 기쁨조였다고 한다. 착한 아이였지. 

"너 아니면 엄마는 벌써 죽었을 거다" 엄마는 삶이 고될 때마다 그렇게 말했고 나는 다급해져서 엄마 목숨을 어깨에 들쳐메고 뛰었다.

백수가 되었을 때도 나보다 더 걱정된 것은 부모님이었다. 나도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분들은 자신의 생에 대한 기대와 보람을 내게서 찾으니 내가 그분들을 어개에서 내려놓는 순간 이제 무엇을 낙으로 살아가실가 싶었다.  

그래도 내려놓았다. 내 발등의 불이 급해서. 누군가의 낙이 될 기력 같은 건 없었다.

"네가 이 모양 이꼴이 될 줄 몰랐다." "우린 자식 농사는 다 망쳤다."

 꺼질 듯한 한숨과 모진 말들로 매번 나를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하고 '제발 다시 내 낙이 되어달라' 흔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분들에게 필요했던 건 확고하게 재편성된 시간과 그 안에서의 새로운 적응이었다.

내가 계룡산에 짱 박혀 수년 간 꿈쩍 않자, 부모님은 모진 말과 한숨을 내뱉을 만큼 내뱉고 하는 수 없이 새로 주어진 여건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잘 살아가셨다.

짊어지는 것도 내려놓는 것도 그저 나의 선택이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내 백수시절,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게 전화해서 '잘 지내고 있냐' 물어보셨고 가끔 사돈 얼굴 보기 민망하다고 하셨다. 

에이, 나도 그때 꿈쩍 말아야 하는건데, 그때도 착한 아이가 못견디고 주섬주섬 일 구하러 나갔지. 결국 오로지 내 선택이였다. 

스무살 아들이 진로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오소희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방황은 온전히 아이 몫이다. 방황이 생의 밀도를 높인다. 방황으로 청춘의 뜻을 벼린다.

그 기회를 빼앗는 것은 부모의 무지와 이기심에서 비롯된 폭력이라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터득한 사람.

내 아이가 방황하도록 내버려두려면 우선 나 자신의 방황을 수용해야겠지. 물론 지금은 방황보다는 차분한 판단과 선택, 그리고 거기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지. 

***

말이 쉽지.

블로그 보면서 마음을 달랜 이튿날 아저씨가 말한다. "나는 그냥 네게 기댈거야". 

허걱

착한 나는 고민 끝에 어깨를 내주고 싶을수도 있지만 심술 궂은 나는 전혀 아니라고. 나도 무섭고 기대고 싶다고.

익숙치 않은건 두렵다.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으시대다가 주눅들다가 흥분하다가 의기소침한다. 

으시대고 흥분하는건 아마 나를 과대평가해서일테고, 주눅들고 의기소침하는건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역시 블로그를 찾는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과장된 자아란 '내가 굉장히 잘났다! 나는 뭐든지 틀리면 안 된다! 나는 뭐든지 잘한다!'라고 생각하는 자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면 남에게 교만하게 행동하기 쉽습니다. 한편으로 자기가 자기 기대에 못 미치기때문에 자학하는 증세가 생깁니다. '나는 못났다, 나는 부족하다.' 이렇게 자기를 미워하고 학대하고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며 괴로워합니다.

현실에 있는 우리는, 잘 못할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어요.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 틀리면 고쳐서 다시 하면 되고,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개선하면 됩니다. 나만 부족한게 아니라 모든 사람은 다 모르고 틀리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게 현실이에요. 그런데 '나는 틀리면 안되고 다 잘해야 하고 다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현실의 나를 너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사로잡힘이 심해지면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자학을 하거나 스스로 부족하다고 물러나는 것은 열등의식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일어나는 일이에요.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면 오히려 자신을 왜소하고 못난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는거에요. 자신이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것을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읽고나니 잠시 후련했다. 나는 편하게 살아야 한다고 고집하니 괴로울 수밖에. 되뇌인다, 우주의 먼지 한톨에 불과하면서도 매우 소중한 우리, 부족하지도 우월하지도 않다.

역시 나는 아직 블로그단지를 치울 수 없다. 그런 수준이다. 

괜찮아, 부족할수 있지. 지금 이대로 좋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mnyun

오소희작가의 태평양의 끝 블로그

https://m.blog.naver.com/endofpaci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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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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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너무 긴 시간은 아니지만, 11년을 살던 도시와 사람들을, 결혼하고 와이프 임신 사실을 안 시점에서 떠났습니다. 불투명함, 불확실성은 항상 따라다니더군요. 머뭇거리게 되더군요. 옮기고 3년이 지난 지금 정답은 없고 또다른 삶의 체험은 확실히 있습니다. 두려움은 이사온 시점에서 이미 사라졌구요 ㅎㅎ

    1. 응원 감사하고 먼저 돌다리를 건넌 마음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우 매우 큰 힘이 됐습니다.

      정해질때까지 머뭇거릴테지만, 덕분에 오늘도 조금 더 용기를 냈고 어느쪽이든 괜찮을거라고 달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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