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12시, 로얄카페 옆 벤치, 10만 달러 ‘

율은 자신의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짧은 편지와 폴로라이드 사진을 손에 든채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거실 한켠의 식탁에는 경찰 두 명이 마리의 엄마와 마주 앉아 있다. 마리 엄마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경찰의 질문에 대답하고 경찰은 열심히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다.

율의 눈길이 다시 사진으로 향했다. 누군가의 손에 머리채를 잡힌채 카메라를 향한 여자아이는 분명 마리가 맞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율이 마리 모녀를 알게 된건 5년 전이다. 마닐라에서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던 율은 그날 관광객들이 묵을 호텔에 사전 답사 하러 갔다가 로비에서 카운터 직원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누군가를 찾는 마리 모녀를 만났다. 가무잡잡한 피부의 엄마와 달리 어린 딸은 확연히 옅은 피부에 이목구비가 동아시아계에 가까웠다. ‘엄마…’ 언뜻 한국말이 들렸다.

‘또 버림받은 코피노인가?’ 율은 미팅시간에 쫓겨 엘리베이터 앞으로 곧장 걸어갔지만 모녀를 그냥 지나치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구의 절반은 혼혈인 필리핀에서 자피노는 규모가 커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고 이미 세력화 됐지만 코피노는 규모가 작아 아직 한국정부의 지원을 못받는다. 게다가 자본이 뒷받쳐주는 치피노와 달리 코피노 대부분이 빈민가에서 산다.

버림 받은 코피노는 한국민간단체의 도움으로 한국학교 다니고 주택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지원을 못받는 아이들도 많다. 게다가 15세 정도면 알아서 나가 돈 벌어야하는 이 곳에서 그들의 삶은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을만큼 험난하다.

율이네 여행사는 패키지 상품에 코피노가 만든 수공예품을 파는 기념품 숍을 넣었다. 이런 계기로 율은 코피노를 많이 접하게 됐다.

딸이 좀 예쁘다 싶으면 외국인과 결혼시켜 신세 고치려 드는 이 곳 사람들도 문제지만, 적어도 이들은 아이를 버리지는 않는다. 율이 분노하는 대상은 매춘이였든 연애였든 싸질러 놓고 나몰라라 도망간 한국 남자들이다. 단돈 10~20만원이면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있는데…

율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며 엄마 다리에 매달려 있는 아이를 한 번 더 뒤돌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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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글쓰기 연습하는 두 아이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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