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심사가 끝난지 두 달 넘었다. 정말 바빴다. 매일 새로운 미션이 주어진다. 다행이 모두 공부와 상관 없는 일이였다. 내 머리 속이 이렇게 텅텅 비워질 줄이야…
소학교부터 고중까지는 暗恋과 연애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고, 대학교 때에는 창작을 한답시고 고뇌의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대학원 때에는 거장들의 사상들을 파헤치기에 바빴다.
참으로 단순하고 운좋은 삶이다. 33살까지 사회와 격리된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지자신과 힘겨루기(作)를 하면서 또 하고 싶은 창작과 이론 공부는 거의 다 해봤으니까. 소학교부터 고중의 공부생활은 정말 고역이였다면 대학은 완전 살맛나는 놀이터였지. (마치 유민상 문세윤이 '맛있는 녀셕들'에 출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내가 발견한건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면, 그 대가(代价)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아니지, 상당한 대가를 치루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맘껏 누릴 수 있다고 해야하나?
정말 부적합한 예를 들면, 나는 暗恋이 아주 별루다. 일방적인 좋아함은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혼자서 좋아하고 혼자서 아파하고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연애는 더하다. 연애는 시작하는 동시에 잠재적인 득실(得失) 리스크가 생성된다. 그 대안으로 이러한 염려를 최소화 하려고 '결혼'이라는 묶음 제도가 나온 것 같기도 한데, 결혼이 가져다 주는 안전감과 행복의 '대가(代价)'는….자명하다. 그러니까 뭐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상당한 대가를 치뤄야 되는 듯 하다.
내가 아무리 미술을 여태껏 해왔다고 해도, 아무리 미술에 대한 나의 선택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해도, 이 길은 결코 쉽지는 않은 길이다.
바꿔서 말하면, 그 모든 사회적인 의심의 눈초리와 경제적인 곤경 그리고 미래의 불투명성을 감당해낼 만큼의 미술에 대한 거대한 애정이 없다면 차라리 그냥 취미에 머무르는 것이 났다는 것이다.
보통 재벌 2세가 아니면 미술의 길을 권하는 것은 마약을 파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재주 있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현재를 도외시하고 기어코 이 길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 만큼 미술에 매혹되면 자신도 모르게 물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왠지 도박꾼을 묘사하는 것 같군…)
여기까지 오면 아마도 많은 부모들은 "우리애 한테 미술은 취미로만 배우게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위에 쓴 모든 정황들이 아주 그럴 뜻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오늘날의 상황은 그것과 정 반대다.
이제 미술은 득이 되면 됐지 절대로 마이너스의 선택이 아닐 것이다.
! 다만,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술가를 너무 예술가스럽게 본다는 것이다.
나는 미술을 긍정하는 것이지 예술가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까지 와서 '예술가'로 자리매김 되고 싶다는 것은 참으로 야심차고 실리주의적인 발상이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의 '예술가'는 위대함을 추앙하는 자이지 '위대한 자'로 임명된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 반대로 진정한 아티스트는 삶의 곳곳에서 아주 서민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해주는 일인 방송 프로그램, 멋진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각각의 크루 멤버들, 때론 드라마 보다 더욱 재밌는 웹툰을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들, 완벽하고 깔끔한 구조를 갖춘 코드를 만들어낸 개발자, 어느 한 분야에서 감탄할 만한 창의력을 발휘한 아무나…
무튼 개인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있는 모든 업종에서 사람들은 적어도 이미 아티스트의 기질을 갖추고 있거나 잠재적으로 보유하고 있다.(자신도 모르게 활용하고 있는 자들이 더욱 많지만)
이 때 미술 소양은 하나의 감각적 훈력으로 각 분야에서 자신의 안목과 사유의 층위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그야말로 '세련된 능력'이다.
이제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그 자체의 당위성(고정관념)이 사라지니, '미술'이 해방되어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교양이 되었구나! 이것은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그렇게 머리를 비우다가 써낸 글이 바로 이거였구나.
요새 나의 잠재 의식이 나의 의식을 잠재우고 혼자서 재밌는 생각들을 했었구나.
흠… 가끔 바보가 되어도 나쁘진 않네.
짝사랑은 심리전, 연애는 교전, 결혼은 장기전. 지니님과 예술의 관계는 이 세가지를 넘나들어 보이네요.
“보통 재벌 2세가 아니면 미술의 길을 권하는 것은 마약을 파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이 말은 참 안타깝지만 인정 할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하나 만드는 시간과 정력, 그에 맞는 인지도와 대가를 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미술 창작품 앞에서 그것에만 집중하면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느낀 후 일상으로 돌아선 순간 ‘기분 좋음’ 남게 되는 걸 명확히 인지했어요. 지니의 ‘비우기’와 어찌보면 유사한 맥락일 수도 있는데, 시간을 들여 감상 행위를 했으니 뭔가는 꼭 “습득”해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비워내고 나니, 정보가 아닌 저 만의 느낌을 최우선 순위로 둘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에 느낀 “기분 좋음”이 “감각적 훈련”의 입문 같은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