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서른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연스럽게 지나갈 숫자에 불과하다. 솔직히는 그랬으면 좋겠다. 무덤덤하고 무탈하게 서른을 통과했으면 좋겠다. 요즘 따라 ‘곧 서른인데’를 주절거리며 오지도 않은 미래가 부쩍 걱정된다. 뭘 해야 하지, 뭐라도 해내야 하는데…

슬금슬금 다가오는 숫자의 위압감일까? 상상으로 부풀려진 두려움일까? 지금쯤이면 근사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쯤이면 더 단단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질 못하다. 내가 지향하는 삶과는 거리가 좁혀지질 않고 오히려 뿌옇게 윤곽만 실룩거린다. 나는 여전히 나지만, ‘내’ 앞에 붙이고 싶은 수식어를 바꿀 힘과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여전히 꿈에 허기져 있다.

명절에도 아직 용돈을 타서 쓰는 나다. ‘넌 아직 학생이니까 주는 거다.’며 사회에서는 학생 취급도 안 해주는 대학원생에게 먼 친척들은 용돈을 건네주신다. 용돈 앞에 장사없다(?)고 쏠쏠한 유혹을 쿨하게 마다할 자존심 따윈 오래전에 버린 나다. 쑥스럽고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하면 달갑지는 않지만 자존심을 세울 형편이 아님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인 나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려도 한참은 많은 나이에 아직도 용돈을 타 쓰는 내가 한심할 때가 많다. 배우고 싶은 걸 배우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이지만, 배움에 다가갈수록 나는 배고픔을 절감하고 모순과 고뇌에 빠진다. 결국은 돈이었을까? 이 초조함도, 이 불안함도 결국 돈에서 비롯한 현실적인 문제였을까?

돈으로 살 수 있는 만족, 돈만이 해결할 수 있는 불안은 아니지만, 서른을 앞둔 나에게 ‘돈’도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직껏 경제적으로 혼자의 힘으로도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그걸 가능하게 했던 건 내 몸둥아리 하나만 책임지면 되었기에, 그리고 20대라서 가능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바라보는 서른은 혼자만 잘 사는게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성공해야 하고 근사해져야 하고 더 올곧아야 한다.

미래를 걱정하느라면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눈앞은 캄캄해진다. 그래도 잠깐잠깐 살아온 날들의 흔적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의 나를 믿어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올해엔 많은 것이 달라질 것 같다. 양적인 축적이 질적 변화로 나타날 것 같다. 나의 다짐은 예사롭지 않고 나의 직감은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벌써부터 호들갑이냐며 야단법석을 떨지말라는 사람들도 있다. 무려 서른인데, 나의 서른은 일년으로 대충 준비하고 싶지 않다며 가소로운 참견들을 튕겨낸다.

서른이라는 도전적인 시작을 (코앞은 아니지만) 앞둔 나에게 건네는 말, “넌 참 대단해. 더좋은 너로 거듭날 거야.”

또다시 오지 않을 이십대가 더 반짝이기를, 곧 다가올 삼십대가 더 희망차기를 응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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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urt-K님께서 공감해주셔서 너무 큰 위안입니다. 하하하 명절용돈 빼고는 거의 경제적인 원조(?)를 거부하지만, 쉽지가 않네요… // 자기의 믿음을 꾸준히 밀고가는 것, 포기할지 말지 고비에 놓인 저라.. 용기가 되는 응원을 믿어보면서 힘을 내야 겠습니다.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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