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묘
A4용지 크기만큼
스케치북 펼쳐지면
적수공권을 들고
시 한수를 그린다
엄지와 식지
펜솔 한자루
적당한 각도를 찾아
예각으로 고정하고
손목을 흔들어
리듬을 꺽는다
감각이 살아야
그림이 자연스럽다
굵직굵직
륜곽을 땃더니
불끈불끈 살아나는
감정의 선
거친 4B 연필로
명암을 먹이고
먹장구름 만든다
어렴풋한 시의 테두리에서
소나기 부서져 내린다
지우개를 흔들어
석고상의 명암을 깎는 일
그렷다가 지웟다가
보탯다가 깎앗다가
덜엇다가 비웟다가
고무지우개 하나로
어둠과 빛의 절벽에서
시 하나 건져올리기 위해
색즉시공을 중얼거린다
하얀 바탕화면에
산산이 깔리는
명암의 시체
벌레처럼 어지러운
시의 때와 부스레기들
입바람 짧게 불어
천국으로 훅 날려보내면
눈마냥 정갈한 시가
은은하게 내린다
그동안 시에 묻어낫던
온갖 더러운 얼룩과 루명
이 모든 어둡게 생긴
그늘과 그림자들은
오로지 그 시를 위한
나레이션이 아니엿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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