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발에 뭐가 걸린거도 아니고 누가 놀래킨거도 아닌데 그냥 아무이유 없이 넘어졌습니다. 넘어지고,  순간 너무 아파서 한참 쓰러진채로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챙피해서 벌떡 일어났을텐데, 일어날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얼굴이 긁힌 게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상처 난 자리들은 옷으로 가릴수 있는 계절이라서. 다행입니다. 이 현장을 목격한 건 고양이 뿐이라서. 다행입니다. 저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다시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백만불짜리 하우스가 부럽습니다. 하지만, 모든 백만불짜리 하우스 뒤 테라스가 우리집처럼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멋지게 지은 옆집 길게 뻗은 건물과 큰 나무가 바로 앞에 무성하게 자라 시야는 겨울에만 확 틔입니다만. 그래도 그 틈으로 보는 노을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저 작은 빈틈 사이로 가끔 불꽃축제도 보이고 빗방울도 스쳐가고 눈송이도 날립니다. 요즘은, 노래져가는 나뭇잎을 보면서 카뮈가 말했던 두번째 봄을 만나는 중이구나 싶은게.. 참 좋습니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번째 봄이 우리 집 뒤뜰에 있습니다. 

 

어제 우연히 제목에 끌려서 어떤 영화를 봤습니다. 살면서,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들은 일상에 너무 많으니깐요. 그냥 침묵으로 넘기거나 차마 입밖에 내 뱉지 못하고 스친 것들이 이 영화에 나오나 싶어서 클릭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취향에 맞아 감독을 찾아봤습니다. 이시이 유야? 첨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중요한 건, 앞으론 이 사람의 영화는 챙겨볼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찍은 작품도 찾아볼 거 같습니다. 더 중요한 건, 곧 더 좋아질 이 사람이 나랑 생일이 같은 날이었습니다. 

비비큐치킨에서 스파이시 맛 이라고 새로 나온거 같습니다. 요즘 중독되어 자주 투고해 먹습니다. 어렸을 때, KFC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정작 미국와서 저는 단 한번도 간 적이 없습니다. 그때는 연변에서 작퉁KFC 라도 자주 먹는 친구들이 그렇게도 부러웠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스레 집밥을 해줬고 난 그 집밥을 질리도록 먹었습니다. 지금은, 부자들이 유기농 먹는다고 재미로 뒤뜰 같은데 밭을 만들어 채소를 심어 먹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서른 넘도록 병치레 한번 안할수 있었던 건 결국 밥심이었습니다. 

가을타령 하러 나왔는데 멀리서 올드 오픈카 한대가 바람을 거슬며 오더니 옆에 척 서는 겁니다. 백발의 노인 두분이 나란히 내리셔서 손잡고 낮은 등산길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 중인지 대화가 서로 많아보였습니다. 젊은 우리들보다 더 많은 말들을 주고 받으며 즐겁게 걷고 있었습니다.  그냥 늙으막은 저런 낙에 사는 게 어떠냐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부도 명예도 비교도 분투도 없는 세상에서 천천히 늙어가면서, 같이 삶을 마감하는 거 말입니다.   

차에 앉으면 어디든 놀라가는 걸 이젠 별이가 아는거 같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미쳐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안쓰럽습니다. 이 쉬운 걸 솔직히 우린 자주 해주지 못합니다. 어느날인가 우리가 다 한줌의 흙이 된다면, 그때 우리가 가장 후회될 일들은 다 그저 이런 사소한 일들 일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보고싶은 가족한테, 그리운 내 사람들한테.. 오글거리지만 자주 표현하는 습관을 하려고 합니다. 문자나 글 정도라도 조금씩..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긴 아직도 전선줄이 얽히고 설킨 풍경들이 꽤 됩니다. 전선줄이 구름이랑 함께 하늘에 걸려 있는 걸 보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어린 시절 빨래를 걸어 널었던 가늘지만 꽤 튼튼한 빨래줄도 생각나고, 복잡하지만 나름의 룰에 따라 정연하게 자기 위치에 가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의 인연 같기도 합니다. 전선대는 공부가 죽도록 싫었던 나에게 자살도구쯤으로 기억됩니다. 힘차게 달려가서 저기에 머리를 박으면 죽을수 있을까 하는 유치한 생각도 했었는데, 가끔 맨하튼 거리에 가면 “Flower Flash”라고 전선대에 생화를가득 묶은 쇼를 합니다. 전선대는 광고 포스터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용도가 아닌 꽃이 만발해야 하는 게 더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가을햇살이 유난히 찬란한 커피숍 안에는 커피향만 있는게 아닙니다. 주황색 스웨터의 온기도 있습니다. 다들 열공중입니다. 저들은 꿈이 뭐고 커서 하고 싶은 게 뭘까요? 오늘따라 주황색이 유난히 따스해보이면서 그들의 미래도 밝아보입니다.

 

코스트코에 갔는데 벌써 연말느낌이 납니다. 남은 3개월은 낭만옆에 낭만이 줄지은 나날들이라 생각하려고 합니다. 집이 그리워지는 나날들은 다 낭만이 있습니다. 그리움은 낭만입니다. 겨울이 오고 첫눈이 쌓이고  집집마다 클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그러면서 낭만을 만끽하는 겁니다. 그런 낭만을 기다리는 가을은 분명,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같은 사랑스런 계절임이 분명합니다.

 

박완서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를 읽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구성되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창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거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요행보단 재난이 많아서 보잘것없는 거라도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그녀는 가을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둘레에서 소리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폭의 저녁놀, 먼 산빛, 이런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히 새겨두고 싶다. 이런 찬란한 시간이 허락된다면 과연 언제쯤일까.. 10년,20년, 몇년 후 라도 좋으니 그때가 가을이었으면 싶다.가을과 함께 곱게 쇠진하고 싶다.>

올해 가을은, 제가 통째로 렌트했습니다. 원없이 즐기고 맘껏 만끽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은 제가 샀고, 책은 제가 챙겼습니다. 바람도 새소리도 푸른하늘도 하얀구름도 너무 좋습니다. 강이 에메랄드 빛으로 보이는 건 제 기분탓인 거 같습니다. 한 한시간을 여기 이렇게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주위는 평화롭고 전 아무생각이 없습니다. 아무생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살수 있음에 잠깐이지만 감사합니다.

 

여기는 월마트 가는 길에 보이는 개인비행기장 입니다.  작고 붐비지 않습니다. 여기를 지날때마다 마음이 서늘한 건 그들이 부유해서 일까요? 아님 떠나고 싶음 떠날수 있는 여유때문일까요?  자꾸 눈에 밟힙니다. 저 곳이, 저 놀이감 비행기 같은 것 들이. 

 

칭구집에 놀러가서 술 한잔 했습니다. 소주는 맛별로 골고루 여러병 마셨습니다. 사과가 파릇파릇한게 제일 싱그러운 거 같아서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우리도 저렇게 새파랄때가 있었는데 하면서 온밤 생산적이지 않은 수다를 떨었습니다. 추억팔이는 수다떠는 멋에 하는 거 같습니다. 추억의 페이지가 넘겨질 때마다 술 한병이 비워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우린 줄 지은 빈 술병과 함께 밤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좋은 밤이었습니다. 

 

카멜레온처럼 푸르름을 입은 두 청년이 있습니다. 나뭇잎인지 먼데서는 잘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대자연의 한조각이 되어있는 그들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가방도 내가 좋아하는 천가방이었습니다. 용량이 넉넉하고 들구 다니기 편한 가방입니다. 그들 발밑으로 귀만 팔락대며 보이는 시바이누도 우리 집 별이랑 똑같았습니다.  친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처럼 원서도 여유롭게 읽을수 있는 날들이 오면 참 좋을 거 같습니다.

 

처음 뉴욕 왔을때 길거리에서 종종 사먹었던 1불 짜리 피자가게 입니다. 피자가 맛있고 크고 쌉니다. 아주 어릴 땐 연길에 놀러가야 피자나라에 가서 피자를 먹을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피자는 이젠 제일 저렴한 음식이 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바삭하고 노릇하고 향기로운 치즈향은 사랑입니다. 저는 지금도 피자나 햄버거는 별루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일부러 찾아 사먹곤 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피자를 손에 들고 대충 먹고 있으면, 커피를 한손에 들고 빠른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들보다 더 뉴요커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샤워는 오래 천천히 꼼꼼히 합니다. 샤워를 하는 행위는 뭔가 리셋하는 느낌이 듭니다. 힘들었던 하루 번뇌도, 과하게 흥분했던 마음도, 억울했던 감정도, 슬펐던 기분도, 오만했던 순간도.. 물줄기와 함께 리셋되는 기분입니다. 마음이 다쳐 아픈 날은 그냥 샤워기 밑에 주저앉아 웅크리고 있어도 좋습니다. 이 샤워가 끝나면 새로 태어날 수 있기때문입니다. 그럴때마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던 이정하 시인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도 서래를 낮은 구덩이에 몸을 숨긴채 밀려오는 물에 잠겨 죽는 앤딩을 찍은 걸까요? 무튼,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밑에서 온 몸으로 받아내면 번마다 새롭게 살아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샤워는 하루한번은 필수인 거 같습니다. 

알록달록 구름안경이 너무 귀엽습니다. 저걸 눈에 착용하면 피식 웃음이 나올거 같습니다. 제가 말고 다른 사람이 착용하면요. 눈앞이 막 노랗고 빨갛고 까맣고 할거 같은게 웃깁니다. 저런 모양안엔 뭔가 글자들이 적혀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조카나 있으면 하나 사주면서 <선물 잘 사주는 이모> 소리 듣고 싶은 물건입니다.

 

비오는 뉴욕거리는 내가 좋아하는것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다는 거, 그것도 행복인 거 같습니다. 비가 와서 누군가가 떠올려 지는게 아닙니다. 그냥, 늘 마음에 숨겨둔 누군가가 있는데 비가 오면 적당한 핑게거리가 생기면서 꺼내 생각하기 자연스러워 지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손이 닿지 않는 계절에, 비는 그 기억들을 하나씩 떨어뜨려 보냅니다.

 

걷다가 발밑에 작고 이쁜 노란꽃이 촘촘히 핀 걸 보았습니다. 너무 작아서 가까이 얼굴을 대여 보았을 때에야 그나마 꽃잎모양이 잘 보였습니다. 주변 가득 자란 잎들을 보니 세잎클로버 였습니다. 옛날이면 바로 그속에서 열심히 네잎클로버를 찾았을텐데, 이제 그런 행동은 하지 않게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찾지 않아도 어딘가 숨겨져 있을 행운, 그건 그냥 그대로 두면 됩니다. 행운은 찾아내는 게 아닌 같습니다. 저절로 나한테 오는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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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사는 여니

별거아닌 생각, 소소히 적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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