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눈와

윤이 우산을 건넸다. 정갈하게 접은 검은색 삼단 우산이 하얀 손과 대비됐다. 소희가 멀뚱히 쳐다봤다. 큰 눈에 의문이 가득했다.

-나 눈오는 날 우산 쓰는거 봤어?
-안 쓰다 감기 걸려서 고생하는건 봤지.
-아잇 진짜
-말 좀 들어

허공에 떠있는 손이 한번 더 흔들렸다. 윤이 재촉했다. 하는수 없이 작게 숨을 내뱉고는 우산을 받아든 소희.  가방 한 쪽에  찔러넣었다.  이윽고 머플러 속에 말려들어간 머리를 빼내자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칼이 늘어지며 달큰한 샴푸향이 올라왔다. 

-드라이 또 꼼꼼히 안 했네

-긴 머리로 살아보셨어요?  정성스럽게 말리다간 팔 떨어져.

제대로 마르지 않은 머리는 한 겨울 야외에선 얼어붙기 십상이었다. 윤이 소희를 처음 봤을 때에 그랬다. 뻣뻣하게 얼어버린 머리끝이 패딩에 부딪힐 때마다 작은 소음을 냈다.  뭐 이렇게 성의없이 사는 사람이 다 있어. 소희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조금 한심하다고 여겼던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건 윤에게 있어 그 어느 평행세계에도 없을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소희와 오랜 연인이 되었다.  자기와는 너무 다르다 느끼는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운전해준다니까 왜 꼭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이직하고 첫 출근인데 남자 차 타고 다니는 모습 보이기 싫어.  사생활 노출되면 나만 피곤해져.

-추울텐데

-아니야, 눈 오는 날은 안 추워. 

-무슨 논리야?

-과학적으로 그래. 중학교 때 배웠는데 이유는 기억 안나네. 여튼 눈 올때 안 추운건 맞아. 

윤이 코웃음을 쳤다.

– 어어? 비웃어?

-비웃는 거 아니고 그냥 웃겨서 웃는거야.

-살아오면서 못 느껴봤어? 난 과학수업 때 그 얘기 듣고 눈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실험해보니 진짜로 그래. 정작 눈 오는 날은 별로 안 추운데 이튿날부터 혹한 시작인거지.  그럴때면 신의 배려를 느낀달까, 눈 내릴 때는 밖에서 겁없이 즐겨라 뭐 이런?

-너 불교잖아.

-조용히 해.

윽박지르면서도 웃음이 터진 소희, 부츠를 신던 손길이 멈추면서 한동안 현관에 앉아 실없이 웃어댔다.  장난을 친 윤도 덩달아 웃었다. 

-오케이, 그럼 부처님의 배려를 느끼러 가볼께.

찡긋, 눈을 감으며 소희가 총 쏘는 시늉을 했다.  윤이 또 저항없이 웃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소희를 윤이 돌려세웠다.

-잊은거 없어?

-아.

이내 그에게 가벼운 입맞춤, 그리고는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윤은 소희의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종종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을 떠올리고는 했다.  극작과 시절 의무처럼 외우고 다니던 셰익스피어의 문장들은 그 아름다움을 쉬이 실감하지 못했는데 알맞는 정경이 펼쳐지면 또 그만큼 경이로운 은유도 없었다. 

-너 진짜 어떡하냐? 날 너무 좋아해.

-나도 방법이 없더라고.

짐짓 어깨를 으쓱거리는 윤,  이내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소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갔다. 문이 닫히면서 썰렁한 냉기가 윤의 옷 속으로 파고 들었다. 혼자 남겨졌을때 몰려오는 서운함을 덜 느끼려면 부지런히 무언갈 해야 했다. 아침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커피를 내리고 서재로 들어갔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 윤이 전화기를 들었다.  연결음이 두번 울리다가 상대방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지금 택시에서 막 내렸어.

-우산 안 쓴거 다 알아. 지금 당장 펼친다 실시.

-알았어, 알았다고

마지 못해 웃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부스럭대는 인기척이 나는 걸 보아 우산을 펼친 것 같았다. 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대의 아름다움을 여름에 비해도 될까요 그대는 여름보다 사랑스럽고 온화해요." 

소네트 18번의 문장은 그렇게 시작했다.

눈 사이를 즐겁게  누빌 소희를 떠올렸다. 

겨울을 가로지르는 여름, 윤의 새 문장은 그렇게 시작했다. 

눈이 예쁘게 쏟아지길래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써보는 글, 별 내용 없고 감성만 짜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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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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