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에 작성해 놓은 김멜라의 모모 (전편). 이틀동안 연말시간을 즐겁게 보내느라 후편은 이제야 업뎃한다. 

눈점은,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답게 눈이 점만한 캐릭터를 그리길 좋아했다. 그 캐릭터에게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로 여기며 펜과 종이만 있으면 눈이 점만한 캐릭터를 그렸다. 그 캐릭터는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했다. 자기 성격을 닮았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본명 대신 눈점이라 불러주길 원했다. 

먹점은, 눈점이란 이름에 맞춰 자신의 별명을 만들었다. 윗입술 오른쪽에 작고 까만 점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주위 어른들로부터 입술에 난 그 점 때문에 평생 먹을 복이 있을 거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언뜻 김 가루나 검은깨가 붙은 것처럼 보여 그 점이 싫은 적도 있었지만 눈점이란 별명에 맞춰 기꺼이 먹점이 되길 바랬다. 

눈점과 먹점 애칭의 유래를 읽으면서, 그리고 또 이 단편을 읽으면서 나는 가끔 눈점이 되고 가끔 먹점이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 소통방법이 공감되었고 글이 한겨울에 읽기에 따뜻했던 것도 있었지만, 나는 눈점이 그리는 캐릭터처럼 눈이 점만했고 먹점처럼 윗입술 오른쪽에 작고 까만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서워서 지금까지 못한 쌍곱플덕에 여전한 단곱플은 화장을 안하고 있을 때면 작고 가늘다. 입술안과 입술가에 있는 점들을 빼버리려고 몇번 생각을 하다가 그게 복점이라는 말에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눈점처럼 회화과를 전공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먹점처럼 작곡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음악을 사랑하고 음 한소절, 가사 한줄에 가슴이 먹먹해질때가 많다. 

그들(눈점과 먹점)이 살아가는 세상도 흥미진진하고 솔직해서 글이 매력있는데, 서술자가 모모라는 것도 너무 참신하다. 종종 나오는 모모의 독백 같은것도 너무 웃기다. 

<나에게도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 전문가를 만나 내가 받은 굴욕과 멸시를 털어놓고 싶다. 문득문득 내 몸이 답답해 견딜 수 없다. 잘려나갈 것 같고 이미 잘린 것 같다. 크고 단단할수록 좋다는 내 동족에 대한 신화는 거짓이다. 여자들은 날 원하지 않았다. 내 외형을 관찰하며 길이와 굵기를 따지고 강직도를 판별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내가 만난 두 여자는 그랬다. 두 여자는 내가 그들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지에 무지했다. 그들은 3단계 바이브레이션 기능을 지닌 딜도를 갖고도 쓰지 못하는 미개인이었다. 나는 녹슬어가는 내 진동기 건전지를 보며 언젠가 날 필요로 하는 여자다운 여자를 만나는 상상을 했다..> 

<먹점은 미니멀 라이프의 또 다른 계명을 말했다. 몇 년간 안 쓴 물건은 앞으로도 쓸 일이 없다. 그러니까 버리자. >

<먹점은 미니멀 라이프의 또 다른 계명이 떠올랐다. 한가지 물건을 되도록 여러 용도로 써라. 버리지 말고 안마기로 쓸까?..이름에 갇히고 쓸모에 묶이면 내 선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두 여자가 가증스러웠다. 먹기 위해 키우는 파를 애칭으로 부르며 위선을 떠는 너희의 이중성을 낱낱이 폭로하고 싶었다. 날 사자고 할 땐 언제고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려 성욕을 잊은 너. 유통기한이 지난 단무지는 그대로 두면서 날 버리자는 말엔 끝내 버티지 못한 너. 내 도움없이, 내 등장 없이, 만지고 안고 비비며 오르가즘을 느끼는 너희의 오만한 감각. 날이 따뜻해지고 대파가 자랄수록 너희는 더 좁고 옹색해지는 살림살이 안에서 질식해가리라는 것을 나는 예감했다. > 

<낮이고 밤이고 나는 읽었다. 두 여자의 미니멀 라이프 덕분에 나는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 버려진다는 조바심과 생의 위기 속에서 나는 책을 읽고 사색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책에는 모두 내가 상징처럼 숨겨져 있었다. 나는 인류 지성사에 깃든 나의  위대함을 확인하며 두 여자가 내린 쓸모없다는 판단이 얼마나 반인류적이고 반지성적인지 깨달았다. 쓸모없음이야말로 인류가 지켜가야 할 빛나는 보석이었다. >

<어디에도 쓰일 수 없어야 진정으로 아름답다. 쓸모 있는 모든 것은 욕망의 표현이라 추하며, 인간의 욕망은 그 비루하고 나약한 본성처럼 비열하고 역겹다. 나는 무쓸모의 쓸모, 철저히 무용해지고 버려져 허공의 별이 되리라. > 

<남자 만나. 여자 둘이 살기엔 너무 힘든 세상이야. 남자 만나서 혼인신고 하고 신혼부부 대출 받아서 좋은 집 가. 나 마지막 소원이 있어. 하고 싶어..하면 나을거 같아.> 

<우리 물건이 우리의 시간이고 흔적인데, 다 버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쓸모없고 설레지 않는 것들을 버리다가 먹점이 네가 나까지 내다버린다고 할까바 무섭다고 했다. >

..

이 글을 읽고 나는 김멜라라는 작가를 알았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우연히 읽은 첫번째 글인데, 아마 이제 나머지 글을 다 읽는다해도 이 글을 초과할 글이 있을지 모르겠다. 첫 구절이 흡인력이 별로 없어서 넘겼던 임솔아의 <초파리 돌보기>가 대상 수상작이란다. 그래도 내 맘속 대상은 김멜라의 모모이다.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선 그저 감명깊은 한편의 글이었을뿐이지만,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의 입장에선 김멜라의 재능이 부럽다. 이 작가의 팬이 될 거 같다. 

<함께 사는 커플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식재료 사서 요리해 먹고, 다 먹은 다음 나란히 기대어 앉아 내일은 뭐 먹을까 메뉴를 궁리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 많은 연인이 그러하듯 눈점과 먹점의 생활도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 두 사람을 넘어뜨립니다.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사람들은 어떻게 이 힘겨움을 이겨내고 사나. 그 고달프고 막막한 마음이 이 소설을 시작한 첫걸음이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작가가 정이 간다.

작가의 자료를 두루 검색해보니, 

<제가 문창과를 나왔는데요학교를 10년이나 다녔어요시나 소설을 늘 읽었죠늘 읽었지만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서른이 지나서 한 것 같아요왜냐하면 제 스스로 소설가가 갖춰야 될 역량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그러다가 하나의 소설이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면여러 사람이 있을 때 내가 그 중 한 명이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했고…… 등단했던 해에 겨울부터 응모를 해보았는데 ‘괜찮다라는 평을 들을 수 있어서…….> 소설가가 되어야 겠다 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란다. 

어떠한 계기든지, 나는 앞으로 김멜라의 다른 글도 찾아서 읽어볼 거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다. 세련된 문장구사 능력을 갖춘 사람들도 넘친다. 그래도 난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좋다. 진솔하고 작은 이야기지만 큰 힘을 가진 글. 다 읽고 나면 잠이 안오는 글. 어느 부분이 그렇게 감동적인지는 딱히 모르겠는데 읽을수록 마음을 훔치는 글. 적어서 <저녁놀>은 나한테 그런 글이었다. 

작가노트를 읽어보니 <웃게 해줄 수 있다면> 이라고 적혀있다.

책 첫페이지에 친필메모를 보니 <당신께 웃음빛이 닿기를> 라고 적혀있다. 

연말에 웃고 울고 할수 있는 글을 써준 김멜라 작가님. 

사진을 찾아보니 외모도 귀엽고 이쁘기까지. 

동성애자가 아닌 내가 딜도가 주인공이고 빠듯한 세상을 살아가는 두 레즈비언의 삶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영화는 감명깊게 본게 둬서너편 된다만)에 이렇게 깊게 빠질줄은 몰랐다. 눈점과 먹점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모모도 더 이상 일몰을 두려워하지 않고 쓰레기차 오는 소리에 불안해하지 않기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벅찬 삶 들에게 햇살이 내리쬐고 웃음빛이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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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사는 여니

별거아닌 생각, 소소히 적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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