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으막에, 시원한 샤워를 마치고 보드랍게 머리를 말리고. 뽀송한 잠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한참을 멍 때렸다.

오늘 하루는 적잖게 다망한 하루였다. 지금쯤 적어서 조그마한 멍이 필요한. 보람찼지만 고단한 하루였다. 

하얗고 각진 천장을 한참 보고 있다가 머리를 돌려보니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바로 옆에 놓여있다. 

서수진의 <골드러시>가 슬프다던 누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진짜 너무 슬펐다. 

은희경 소설가는 이 소설에 대한 독후감을 이렇게 남겼다. <삶이라는 가시투성이 수갑에 함께 손목이 묶인 젊은 부부의 파탄과 무력함이 잘 그려져 있다. 비록 시효가 지나버렸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랑과 히스테릭한 희망의 파편들, 그리고 그것들이 남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들만이 그들의 삶을 증거할 뿐이다. 온통 붉기만 한 세계로 돌아오는 그들의 귀로에서 고전적인 비극의 우아함을 느꼈다. > 

작가노트에서 서수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슬퍼하기를 바란다. 뒤뜰을 가꾸는 서인의 뒷모습을. 캥거루를 쇠막대로 내리치는 진우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아 주기를 바란다. 지나가버린 사랑을 온 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는 이들을 안쓰럽게 여겨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언젠가는 사랑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쓰겠다. 사랑을 쓰겠다. 손에 잡히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 

사랑이야기를 좋아한다. 사랑이야기는 사람이야기이기때문이다. 사랑이 담긴 이야기들은 다 재밌다. 뭔가 가슴이 뭉클하고 참고 참았던 게 터지는 상쾌한 멋이 있다. 평소에 잊고 살던, 묵인하고 살던, 속이며 살던 것들을 시원히 열어제끼고 용감히 마주보게 하는 힘이 있다. 

누구의 잘못이라기엔 너무도 애매한. 어디서부터 어떻게 뒤틀렸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그럼에도 이 사이를 부여잡고 갈수밖에 없는 상황과 처지속에서 끝끝내 외면해 온 것들. 어쩌면 그 속에도 가느다란 희망이 남아있지 않을가 해보는 마지막 노력, 그 노력이 아무런 결과가 없을걸 뻔히 아는 심적 비극, 더 좋은 앤딩이 있을수 있지 않았을까,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되뇌이는 고통의 눈물, 우리의 꿈은 어디에 사라진걸까.. 

이 소설은 이런것들을 젊은 부부의 결혼7주년 기념 여행기를 통해 잘 담아냈다.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진우와 서인은 빛나는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빛나는 순간. 진우는 그들이 늘 그것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았다. 붉은 햇빛이 차 안에 가득 들어찼다. 진우는 온통 붉기만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 

온통 붉기만 한 빛나는 세상을 앞에 두고, 이젠 아마 다신 되돌릴수 없는 그들의 지나간 사랑은 왜 이렇게 아픈가. 

<오색빛으로 찬란한 순간은 오지 않는 시간 안에 영원히 봉인되어 있을 것이다. 진우가 서인에게 끝내 건네지 못한 주머니 속 오팔 반지처럼.> 

이런 글은 어떻게 적어내는 것일까?

나는 부럽다. 

피로가 풀린다.

잠이 잘 올 것 같다. 

꿈속에서 서인을 만난다면 안아주고 싶다. 진우가 고생한만큼 잘 살았으면 좋겠다. 

둘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지만 각자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부부가 얼마나 더 많을까?

그들은 잘 지내는가..

정말 잘 지낸다고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들도 서인과 진우처럼 애쓰고 있겠지.

해피앤딩인 사랑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사랑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얼만가. 

사랑이 뭔지 사랑을 하는지 우린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 평범한 사랑을 지속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빛나는 세상은 사랑이 가져다주는 게 아나라 

그저 서로의 한결같은 노력이 만드는 것이 아닌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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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사는 여니

별거아닌 생각, 소소히 적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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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빛나는 순간”을 많이 만들어두면 그 기억으로 살기도 하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기도 할테죠. 고생은 사람을 단단하게 한다고는 하지만 망가뜨리기도 한다고 어느 어른이 하신 말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캥거루를 내리치는 것 같은 그리고 또 다른 종류의 너무 고생한 기억은 아마 둘이 화해한다고 해도 부부사이에도 다시 언급하기 어려운 고단한 기억일것 같고.

    1. 그저 이렇게 다 서서히 깨지는 유리같은 사이가 되는거죠..사랑이란 단어를 쓰기엔 너무 얇은 인간과 인간사이 관계, 그걸 지속하는 것 또한 고단한 과정이고. 사랑을 진짜로 이해했을때 우린 형식에 구속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고생은 부부사이를 단단하게 만들거나 혹은 망가뜨리기도 하는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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