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외래어 사용이 자국어 생태계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것은 이미 철 지난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영어교육의 제도화, 보편화가 이루어지면서 소수 일부의 노년층을 제외한 청·장년층에게 외래어는 지극히 일상적인 표현으로 체화되어 있다. 최근 필자의 또래 같은 경우 외국어를 가미하지 않고서는 대화 자체가 어려울 정도다. 기성세대가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상태에서 ‘거시기하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다면, 요즘 세대는 그것을 외래어(일반적으로 영어)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외래어는 우리의 의사소통 중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논쟁이 일단락되는 듯싶었지만, 한국어는 또 다른 신종의 ‘범람’에 그 권위를 도전받게 된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새롭게 생겨난 단어, 신어 또는 신조어라고 한다.1)
언어는 인간 상호 간의 의사를 전달하고 교환하는 도구가 되어주는 동시에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특수한 사회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언어와 사회는 한 쌍의 공변체로서 서로 호응하며 변화한다. 현대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변혁하는 상황 속에서 신어는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신어는 한국 사회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신어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2)는 한국 사회의 취업난과 경제불황을 직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이런 신어의 출현을 두고 찬반양론으로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보다 그 행간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현상을 포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신어의 광범위한 사용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예컨대 ‘창렬스럽다’, ‘혜자스럽다’3)란 신어는 필자 또한 처음 접하였을 때 한자어로 오해하였지만, 연예인 이름에서 유래된 표현이었던 거다. 전 세계를 강타한 한류열풍 덕분에 한국어 학습자(외국인)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런 신어들은 한국어의 진입장벽을 한층 높여놓았다. 즉 특정한 신어는 한국인의 특유한 정서 또는 한국 사회의 경향성을 선 파악하여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사실 멀리 갈 필요 없이 트렌드 감지에 약한 고령층 한국어 사용자(내국인)에 있어서도 신어는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일 것이다. 계속되는 언어분화가 세대 분화로 이어지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이렇게 유불리가 공존하는 신어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부정적인 시선이 지배적인 듯싶다. 심지어 신어를 경상적으로 사용하는 젊은 세대를 문제시하거나 개조의 대상으로 여기는 의견도 있다. 신어나 비속어, 은어 등 변형된 형태의 언어 사용은 우리말 고유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이다. 필자는 이에 대하여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신어와 비속어 모두 우리말의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나 양자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경계하여야 한다. 비속어는 사회적으로 비격식적이고 교양 없고 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일련의 어휘나 표현을 말한다. 반면 신어는 앞에서 설명하였다시피 새로 생겨난 어휘다. 신어의 사용자가 한정된 것은 어디까지나 새로 생겨난 것이 원인이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피 하는 비속어와는 결이 다르다. 물론 신어에 비속어가 포함되는 경우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신어에도 차별과 배제를 자극하거나 상식 이하의 표현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신어를 싸잡아 규제할 필요는 없다. 필자가 보기에 2019년의 한국 사회에서는 상식에 의한 필터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기에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신어는 자연스레 비속어로 분류될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우리말의 어휘와 표현은 한날한시에 만들어진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어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꾸준히 증가되고 늘어났다. 또한, 발화자(사람)의 입에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어휘들은 사전에서 삭제되기도 한다. 즉 아무리 새로운 단어라 하여도 이른바 표준어로 인정받을 자격과 잠재력을 가졌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소나무가 늘 푸른 것은 끊임없이 잎을 바꾸기 때문인 것처럼 문화의 영원한 생명력도 시대의 흐름을 읽는, 변용과 재해석에 달려있다.
셋째, 신어 자체로서의 가치도 무궁무진하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반영하는 신어들은 외국인 학습자에게 있어서 언어 습득은 물론 한국의 사회문화를 통섭할 수 있는 소중한 교육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신어가 TV 예능프로그램과 SNS상에서 많이 생산, 유통된다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역으로 언어 학습에 동기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사물의 출현은 늘 의심의 눈초리를 수반한다. 신어는 거부할 수 없는 당연한 흐름이자 한국어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필자는 떨쳐낼 수가 없다. 그러나 신어가 갖는 사회적 효과에 비추어 볼 때 아직 신어의 긍정적 측면에 관한 연구나 지도(교수)법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시대의 ‘이단아’가 제대로 대접받게 될 그 날을 기대해본다.
본문 중 각주:
1) 국립국어원은 신어를 ‘새로 생긴 말, 기존 낱말의 형태를 이용해서 만든 말, 기존 낱말의 의미를 확장해서 만든 말, 외국어에서 차용한 말’로 정의하였다.
2) 이태백: 20대 태반이 백수, 사오정: 45세 정년, 오륙도: 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
3) 연예인 김창렬과 김혜자의 이름에서 따온 표현이다. 2009년 모 편의점 업체에서 김창렬을 모델로 한 도시락을 출시하였는데 비싼 가격 대비 양이 너무 터무니없이 적고 맛도 좋지 않아 생긴 신어이다. 반대로 김혜자를 모델로 한 도시락은 가성비가 훌륭하였기에 창렬스럽다’의 반대 개념으로 쓰인다.
잘 읽었습니다. 서두에서 외래어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다가 신어 얘기로 바뀌어서 조금 혼동하기 쉬운 부분이 있는것 같습니다. 각주에서 설명라다시피 외래어가 신어가 아닐수도 있고, 신어라고 해서 꼭 외래어인 것은 아니니까요.
신어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견해에 동감합니다. 비속어가 들어있든 외래어가 많든 그건 만들어졌다 하여 전부 유행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지연히 사회적인 취사선택이 이루어지니까, 너무 코앞의 시간좌표에만 국한되어 문제를 과장하여 법석을 떨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