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지르지 못하고 나는 콩크리트 바닥에 찌그러져 버렸다. 통증을 참으며 일어서 보려는데 오그라든 빈 깡통 하나가 내 발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함부로 던져져 있었다. 꼭 그게 지금의 나를 닮아 있는 것 같아 기분은 더 엉망이 되어 버렸다. 발목에 통증이 심하게 느껴졌으나 그것보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으로 인한 창피함이 더 컸다. 은신술이라도 부려 사라지고 싶었지만 그건 내 능력범주 이외의 일이였다. 

“괜찮아요?”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며 상냥하게 웃었다.

올려다보니 얼굴이 하얀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였다. 

“네.”

내 손에 전해지는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듯 억지로 웃어보이고 고마움의 목례를 하고 돌아서서 겨우 한발 내디디는데 발목은 왜 또 그렇게도 욱신거리는건가. 

다행히 뼈는 상하지 않았는지 한걸음 두걸음 걸어보니 걸을수는 있었다. 한발한발 이 악물고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가로 걸어 나오는데 못견디게 짜증이 났다.

그 신발 가게 아가씨가 문제야. 이게 얼마나 위험한 높이인데 이걸 신어보세요. 휠씬 키가 커보이죠? 하면서 사람 꼬드기고 난리야. 새물새물 웃으면서 내 발목 분질러 버리려고 든거지. 하여간 장사군들이란. 

아니야, 꼬드긴다고 다 넘어가나. 위험해 보였음에도 덥석 집어든 내가 문제였지. 그걸 신고 키가 쑥 자란 것 같아 얼마나 좋아했던지 기억 안나? 위험한걸 신었으면 조심하기라도 했어야지 계단 내려오면서 왜 또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콩콩 뛰듯이 내려 왔냐구. 그러니까. 다 니탓이야. 남 탓 할거 없어. 다 니가 문제였어. 

집에 도착하자 숨이 활 나왔다. 그 원쑤 같은 십센치짜리 구두를 벗어 신발장에 확 던지듯 넣어 버리고 나니 바퀴벌레와의 사투 끝에 놈들을 완벽 퇴치라도 한 기분이였다. 

래일쯤 저걸 쓰레기통에 버려 버려야지. 내 발목은 십센치의 허영보다 중요하다구. 나는 이제부터 발을 위한, 발이 편한 신발만을 신을거야. 나는 단단히 결심했다. 

며칠은 발이 편한 워킹 운동화를 신고 다니니 그야말로 날것 같은 기분이였다. 그래, 이거야. 발만 편하면 되지 다른건 필요없어. 신은 발이 편하라구 신는거야, 키 커 보이려는 허영심 따위로 신는게 아니라구. 

그런데 이걸 어쩌나. 시간이 지나자 편한건 좋은데 슬슬 뭔가 허전해 났다. 구두를 신고 똑각거리며 걷는 그 묘한 느낌이 고파났다. 십센치짜리 구두도 자꾸만 꺼내 보게 되었다. 버리려고 꺼냈다가는 아니야, 그날은 내가 너무 호들갑스럽게 걸어서 그래. 조심하면 괜찮을수도 있어. 하면서 다시 집어 넣는 나를 보게 되었다. 다시 신어보고 싶은 욕망도 슬슬 살아 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용하게 꾹꾹 눌러갔다. 

운동화 아니면 십센치짜리 구두라 내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면 또 다른 신발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먼저번의 교훈을 살려 적당한 높이의 구두를 샀다. 신어보니 발도 편하고 구두의 똑각거리는 맛도 있어 허전한 마음이 어느정도 충족은 되는데 이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1프로의 허전함은 또 뭔가. 

위험하고 싶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위험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것을. 

그렇다. 나는 편한 구두를 신고 걸으면서 그 편안함에 안주하지 못하고 위험하고 싶어 모지름을 쓰고 있었다. 

그날의 처참했던 내 꼬라지와 발목 통증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음에도 자꾸만 다시 한번 십센치를 신어보고 싶은 마음이라니.

위험하고 싶어 안달이 난 이 마음이라니.

위험한 것은 왜 이토록 사람을 유혹하는 것인가. 

우리에게는 누구나 금지구역을 건드리고 싶은 불순한 세포가 있는것인가. 

그러고 보면 인류의 문명과 발전은 위험한 유혹이 이뤄낸 것이라고 해야겠다.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에 날개 달린 새가 아닌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건 상상할수 없는 위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은 견딜수 없는 유혹이 였을 것이다. 그 위험한 유혹이 비행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가 싶다.

꽃 한송이도 그렇다.

활짝 피지 않았더라면 처연하게 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활짝 피여 난다는건 꽃에게는 엄청난 위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든 꽃은 자신의 생애를 걸고 모든걸 던져 활짝 피여난다. 

위험한 유혹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서일 것이다. 

사마귀의 사랑법은 더욱 위험천만하다.

덩치 큰 암컷의 등에 용케 올라 탄 수컷 사마귀는 최선을 다해 암컷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짝짓기를 하지만 암컷의 눈에 벗어나면 가차없이 머리가 물어 뜯기는 불행한 사랑의 대가를 치루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컷 사마귀는 사랑을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일도 없겠지만 그 위험한 사랑의 유혹을 견딜수가 없는 것이기에 죽음의 사랑을 하는 것이리라. 

나는 다시 신발가게에 서있다.

편하고 무난한 신발들을 하나하나 지나치고 십센치도 더 되어 보이는 샌들앞에 넋을 잃고 서있다. 

이걸 신으면 높은 곳의 공기가 느껴질 것이고 자신감이 급상승 할 것 같고 눈부신 비상이라도 할 것 같은 환각마저 든다. 아아. 이 뿌리칠수 없는 유혹을 어찌할가.

십센치는 위험해.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려보지만 그것은 미미하게 가라앉고 만다. 

나는 신발을 집어 든다.

수컷 사마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위험이라고 할수도 없어. 하고 잠간 최면을 걸어본다. 

위험한 유혹에 빠지기로 한다. 기꺼이. 

김경화

2018년 7월 5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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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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