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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로 가야 하나.

몇시쯤 되었는지 알수 없다. 푸르스름한 새벽기운을 느끼며 집을 나왔고 아파트단지를 한바퀴 돌고 여기까지 어슬렁거리며 걸어왔으니 대략 짐작해보면 아침 여섯시에서 일곱시사이쯤 되었을것 같다. 주머니에 핸드폰이 있어 꺼내보면 시간을 알수 있겠지만 그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산한 버스정류장 한켠에 비껴서서 정면을 주시하고있다. 무언가에 골몰한듯 보이지만 실은 어떤것에도 집중해있지 않다. 

버스가 달려온다. 선로번호가 씌여져있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버스의 행선지를 추정해보려 애쓰지만 그의 기억은 너무 흐릿하다. 이 도시에는 그의 이름으로 된 집이 있고 엄연히 호적에 또렷하게 찍혀있는 그의 부인과 아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낯설고 꿈의 한 장면같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지금쯤, 안해는 쌀을 씻고 있을가. 주름이 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희고 통통한 손을 앞으로 뻗어 밥물을 맞추겠지. 오늘아침은 국을 끓일려나. 아니면 토마토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계란과 함께 볶을려나. 아들애를 깨워 잔소리를 해가며 밥을 차려주고 입을 옷을 골라 주겠지. 완벽한 가족의 아침풍경이라고 해야 할것들이다. 그는 그 완벽해보이는 가족의 남편이고 아버지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러하다.

그것을 믿어도 좋은것일가.

모든 현실이 힘을 합쳐 그를 밀어내고 있다. 땅이 한쪽으로 기우는듯한 착각에 그는 발 끝에 단단히 힘을 준다. 그가 침을 삼킨다. 다리가 저려난다. 이곳을 지나는 버스는 네 대다. 그는 하나하나 자세히 훑어본다. 이 시간 그가 갈만한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이 폭발할것 같은 마음으로 집에 들어간다면 눈앞에 그려지는 아름다운것들을 그의 손으로 부숴버릴가 그는 두렵다. 그 자신이 애써 쌓은 탑을 그의 손으로 무너뜨리고 그 무덤앞에 무릎을 꿇고 주먹으로 땅을 칠것 같아 그는 두렵다. 

꽉 틀어쥔 주먹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 그가 멀거니 주먹사이로 빠져나가는 검붉은 액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게 될가봐 그는 두렵다. 꾹꾹 가슴속에서 올리미는 충동을 억누르며 그는 눈을 쪼프리고 낯설고도 익숙한 역이름들을 내리훑는다. 모아산? 그는 모아산에서 눈길을 멈췄다. 그래. 여기로 가볼가. 딱히 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흙의 냄새를 맡고 나무를 만져보고 풀잎이라도 손을 뻗어 쓰다듬고 싶다. 그러면 불덩어리가 들어있는것 같은 이 마음이 조금 다독여질수도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을 정리하자. 그는 목표를 정하고 오른손을 뻗어 주머니를 뒤진다. 

세 개의 짤린 손가락끝은 물체에 닿을때마다 아릿하다. 지갑을 꺼내 열어보니 일원짜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주위를 흘깃거리다가 정류장뒤편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물 한병을 산다. 일원짜리 두장을 손안에 거머쥐고 다시 단단히 섰다. 차가 스르륵 멈춰서고 문이 열리자 그는 훌쩍 올라탄다. 주말이 아니라서 그런가. 차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는 창가쪽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꼭 십년만이다. 그가 연길을 떠날때는 십년전 겨울이였다. 십년후 여름, 그는 다시 이 도시로 돌아왔다. 중간에 장모가 돌아갔을때 한번 왔으니 아주 안온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는 닷새일정으로 급히 왔다가 장례만 치르고 떠났었다.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은 낯설다. 십년사이, 이 도시는 너무도 많이 변했다. 변하지 않은것은 그뿐인것 같다.

 아니, 어쩌면 가장 많이 변한것은 그 자신일수도 있다. 그는 더 이상 젋고 기운차지 않으며 열 개의 손가락을 갖고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그는 그가 아니다.

김경화 (하몽)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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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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