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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 그는 안해를 안았다. 

왼팔을 안해의 머리께로 뻗자 안해가 기다렸다는듯 그의 팔에 머리를 묻었다. 안해의 몸에서 알싸한 박하향이 풍겼다. 서먹함과 설레임이 교차했다. 내 안해지만 오래만에 살을 대하니 미묘한 낯설음이 있다. 얇은 끈나시만 입고 누운 안해는 성숙한 여자의 매력이 풍기고 살집이 올라 제법 통통하다. 그는 약간 떨리는 손으로 안해의 등을 더듬어 브라자의 호크를 풀었다. 그는 잠간 망설인다. 성한 손으로 팔베개를 한터라 잘린 손가락으로 안해를 만져야 한다. 그는 망설여진다. 잠간 주춤하다가 그는 아직 성한 엄지를 안해의 가슴에 가져갔다. 부드럽게 늘어진 가슴이 다소 그의 긴장을 늦추게 한다. 그는 손을 뻗어 가볍게 유두를 만졌다. 

그때였다. 안해가 몸을 비튼것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였지만 그는 멈칫했다. 가슴에 서늘한 무엇이 비껴 지나가는 순간이였다. 엄지만으로 만지려다가 잘린 손가락이 안해의 가슴에 닿았고, 그 순간 안해의 몸이 살짝 움직였다. 미세한 동작이였지만 그는 또렷이 느꼈다. 그는 멈칫했다. 눈앞이 아득해지려고 했다. 그 미세한 몸짓의 언어를 알것 같아서였다. 그는 침을 삼키고 용기를 내여 몸을 일으켰다. 떨리는 손으로 안해의 마지막 한겹을 벗겨냈다. 안해의 그곳은 그러나 차갑게 닫혀있었다. 건조했고 경직돼있었다. 그의 남자도 축 고개를 떨구고 도무지 머리를 들 기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스르륵 안해의 꽃에서 손을 거두었다. 애써 짜냈던 한가닥의 용기도 어부가 그물을 거두듯 스르륵 거두어졌다. 어디선가 풀벌레소리가 들리는듯했다. 그는 허물어지듯 안해한테 등을 보이고 누워버렸다. 안해가 말없이 뒤에서 그의 등을 두어번 쓰다듬다가 스르륵 팔을 거두고 그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그는 훅 땅에 머리라도 박고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나보다. 잠에서 깨여 일어났을때, 안해의 숨소리만이 적요한 방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는 어둠속에 우뚝 섰다. 카텐틈새로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이 방안에 스며들어 안해를 비추었다. 그는 모로 누워 잠든 안해의 들여다보았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가린 안해는 흰 어깨를 이불밖으로 드러내고 쌕쌕 가벼운 숨소리를 내며 자고있었다. 어깨로부터 목까지 이어지는 선이 희고 매끈하다. 뛰여나게 이쁘진 않지만 누구나 탐할만큼 매력적이다. 게다가 안해는 서글서글한 성품에 친화력이 좋은 편이여서 낯선 사람하고도 어렵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다. 여자나이 마흔이면 한창이지.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안해는 마흔살이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흰머리가 반을 차지하고 막로동에 거멓게 탄 피부와 제법 굵은 주름이 건너간 그에 비해 안해는 아직 젊고 싱싱하다. 열살이라는 나이차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그가 나이에 비해 훨씬 겉늙어버린데 비해 안해는 나이보다도 훨씬 젊어보인다.

그는 베란다로 나와 담배를 한 대 꺼내물었다. 

잘린 식지와 중지에 라이타를 끼고 아직 성한 엄지로 라이타불을 당긴다.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불을 붙였다. 손가락이 시큰거린다. 고작 라이타불 하나 켜고 시큰거리는 손으로 이제 무엇을 더 할수 있단 말인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정통편이라도 먹어야겠다. 그는 주방쪽 전등만 켜고 그 불빛을 빌어 랭장고옆 서랍장을 열고 약상자를 뒤적거린다. 각종 감기약과 소염제가 있다. 그는 하나씩 꺼내 확인해본다. 정통편이 어디 있을터인데 보이지 않는다. 그때였다. 그 약곽이 눈에 들어온것은. 약곽의 글자를 확인하는 순간, 그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는 약곽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다시 한번 글자를 확인하고나서 천천히 손을 뻗어 약곽을 열었다. 약은 반이상 빼여먹은 상태이다. 그는 잠간 주춤하다가 약을 도로 상자에 넣고 서랍장을 닫아버렸다. 우뚝 랭장고앞에 섰다가 랭장고문을 열고 물병을 꺼냈다. 커다란 사기컵 가득 차가운 물을 담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혼자 사는 여자가 먹어버린 피임약이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말인가. 서있는 바닥이 그대로 밀려나가는듯했다. 

뭔가 희미하던것들이 또렷해지고있었다. 일년전쯤부터였나. 전화를 하면 받지 않다가 다시 지금 전화해줘요. 하고 위챗으로 문자가 오던거며 이제 돌아가서 연길에서 뭐라도 해보고싶다는 그의 말에 아직은 한국에서 버는게 낫슴다. 하고 한마디의 고려도 없이 보내던 안해의 문자며, 이렇게 오래 갈라져있어서 이제 세식구 같이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그의 말에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뭐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던것들, 공항에 마중나온 안해를 보고 전에 비해 옷차림이 지나치게 화려하다고 느꼈던것, 울리는 전화를 그대로 꺼버리며 사기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고 과하게 짜증내던것, 집안에서도 전화기를 항상 갖고다니던것, 순간적으로 불쾌했으나 지나고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간의 편린들이 한꺼번에 수면우로 떠오르며 이제 실체가 확실해지고 있었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것들은 결코 아무렇지 않은것들이 아니였다. 그는 방안을 노려봤다. 희미한 불빛아래에도 거실은 잘 정돈돼있음을 알수 있다. 안해는 정리정돈을 잘한다. 텔레비도 소파도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반듯하게 놓여있다. 건조대의 빨래도 반듯하게 걸려있다. 안해는 누구한테나 잘 웃어주며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원래 하얀 피부가 좋은 화장품을 쓰며 잘 가꾼탓인지 탄력있고 윤기가 흐른다. 무엇보다 아직 젊다. 눈이 있는 사람은 모두 안해를 볼것이며 안해의 이러한 매력을 느낄것이다. 이 생각을 왜 못했을가. 왜 그토록 미련하게 돈을 버는 일에만 미쳐있었을가. 한주에 한번 하는 전화통화도 거의 아들애에 관한거였으며 늘 지쳐있어서 위챗으로도 길게 얘기를 해본적이 별로 없다. 그는 살가운 말을 할줄 모른다. 남자는 말로 하는것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돈을 버는것만이 가장의 의무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했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후회되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마냥 마구 엉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을 감았다. 안해는 단순한 바람인가. 아니면 이미 그쪽으로 마음이 가버려 더 이상 나한테 남아있는 마음이 없는 상태인가. 그는 머리를 저었다. 그것만은 아니라고 믿고싶었다. 그는 눈물이 나오려고 해 눈을 껌벅인다. 그가 서있는 오른쪽방에는 사춘기의 아들애가 단잠에 빠져있을테고 텔레비옆으로 문이 나있는 큰방에는 그의 안해가 잠들어있다. 모든 것이 잘 정돈된 서랍같은 온전한 가정이다. 그는 이 온전한 가정의 가장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이다. 그가 악을 쓰듯 지켜내고저 했던것들이다. 그는 이것들을 이룩하기 위해 모든걸 희생해왔고 한번도 후회한적 없다. 언제까지나 후회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이 한꺼번에 후회되는 순간이 오게 된것이다.

그가 이 가정에서 차지하고있는 위치는 엄연하다. 아니, 엄연하다고 믿고싶다. 이 온전한것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였다. 틀어쥔 주먹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차오르고있음을 느끼며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 자신은 지금 이 모든 것을 부수어버릴수도 지켜낼수도 있다. 모든 것은 그의 손안에 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며 그는 두려워졌다. 두려움에 뒤걸음질쳤다. 

그는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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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며 웃음이 헤픈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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