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불쑥 검은 봉다리가 그의 눈앞에 들이밀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 보았던 여자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심까? 한참 서있었는데도 모르게.''

가까이에서 보니 여자는 그다지 못생기진 않았다. 안해보다는 많이 처지지만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외모다. 

''이걸 좀 잡수쇼. 아침도 안 드셨을텐데.''

여자가 내민 주머니를 엉겁결에 받아들고 열어보니 일회용도시락곽에 김밥이 반정도 남아있다. 

''얼른 잡수쇼. 난 배부르게 먹었으니 걱정마시구.''

여자가 살갑게 권한다. 그는 망설이다가 김밥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쌀이 퍼진건가. 김밥은 입안에서 질척거린다. 하지만 배가 고팠던차라 그는 김밥을 연신 집어 입어 넣는다. 

엇, 

얼결에 그의 눈이 굳어졌다. 길을 걷느라 브라자가 뒤틀린건가. 여자의 유두 한쪽이 빼꼼이 얇은 등산티위로 솟아올라있다. 스멀스멀 동물적인 남자의 욕망이 뱀이 머리를 쳐들듯 쳐드는걸 느끼며 그는 민망해졌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물을 한모금 마셨다. 여자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으로 날씨가 너무 덥다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있었다.

그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여자의 얇은 옷을 아무렇게나 찢어버리고 새침하게 솟아오른 여자의 유두에 입술을 갖다대고 걸탐스럽게 탐하고싶어졌다. 여자를 쓰러뜨리고 등산객들이 다 뒤집어지게 여자의 속옷까지 찢어버리고 싶어져 얼굴을 붉혔다. 

''잘 먹었습니다. 배가 고팠는데.''

그는 괜스레 여자한테 미안해졌다. 

여자는 샐쭉 웃어보이더니 

''뭐하는 분이심가? 주말도 아닌데 이 아침에 등산 다니시는걸 보니 출근하시는 분은 아닌것 같구.''

말끝을 흐리며 그의 얼굴을 살핀다.

''그럼 그쪽은 뭐하는 분임가? 아침에 밥도 안하고 이렇게 나오시구.''

그는 여자의 얼굴을 흘깃 살폈다.

''아. 뭐 좀 함다. 장사를.''

''아…''

여자는 그냥 봐도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딘가 어수룩해보인다. 사회경험도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쩐지 여자는 가정주부가 더 어울릴것 같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초면에 너무 자세히 물어보는건 실례인것 같아 말끝을 흐린다.

''저기 내려가서 식사하러 안가시겠슴가? 김밥도 잘 먹었는데 밥 한끼 사기쇼.''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여자는 대답대신 웃더니 먼저 앞서서 내려간다.

몇시쯤 되었나. 해빛이 델것 같이 뜨겁다. 이 여자는 뭐하는 여자인가. 그냥 봐서는 시골아낙네같이 어수룩해보이는데 이른아침에 밥도 안하고 산에 와서 돌아다니고. 그렇다면 챙겨야 할 식구가 있는 여자는 아닌듯 싶고. 그건 그렇고 지금 나는 제정신인가. 멀쩡한 안해를 집에 두고 처음 본 여자 뒤꽁무니나 따라가고. 멀쩡한 안해. 갑자기 그는 도망치고싶다. 모든 현실에서 도망쳐 멀리멀리 떠나버리고싶다. 

그는 하늘을 쳐다본다. 파란 하늘은 건뜻 들려있다. 화창한 날씨이다. 잔등이 축축해난다. 이마에서 땀이 뚝 하고 떨어진다. 그는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걷는다. 여자의 뒤를 따라 산을 내린다. 버스정류소에 이르러 여자와 한걸음 떨어져 서서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본다. 점심때가 다되는 시간이였다.

6

''아…''

그의 입에서 탄식처럼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이게 절대로 다단계는 아님다. 뭐 내가 다단계를 소개하겠슴가. 그냥 1688원 주고 가방이나 이불세트 사면 자기가게를 하나 가진단말임다. 면세점물건이고. 이보쇼. 물건이 영 좋슴다.''

여자는 핸드폰을 그에게 내밀었다. 무슨 가방이며 향수며 진렬된 인터넷가게다. 

''정말 이건 첨에만 투자하면 그담에는 누워서 자는 시간에도 돈이 술술 들어옴다. 내 밑에 누가 가입하면 가입비 들어오고 내가 물건사도 돈이 들어옴다. 나두 몰랐는데 친한 친구 이거 한단 말임다. 그래가지구 친구소개로 가입해봤는데 아직 나는 돈은 못벌었슴다. 친구는 돈으 마이 범다. 나두 지금 열심히 노력하는중임다. 같이 해보지 않갯슴가? 아무래도 집에서 쓸게 많잼가. 그런거 사면서 또 돈도 번단 말임다. 한국에랑 가서 죽게 일해서 돈버는건 정말 우둔한 짓임다. 다들 형세를 몰라서 그랜단말임다. 이제는 한국 가지 마시구 요거 하쇼. 그래구 다른것도 내 항목 몇 개 소개해드릴게. 다 친구 하는겜다. 몇 개만 하면 정말 앉아서 돈벌게 된단말임다.''

이게 말로만 듣던 다단계라는건가. 여자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여있다. 여자의 말투는 자신있지 못하다. 약간 더듬거리면서 그에게 자신도 딱히 모르지만 친구는 돈을 잘 버는, 소위 앉아서 누워서 돈이 들어오는 일을 설명하고있다. 여자가 못먹는다고 돈랑비하지 말라고 극구 만류해서 명란볶음 하나에 오이랭채만 시켰었는데 그마저도 반도 축나지 않고있다. 애초부터 여자는 먹는것에 관심이 없었던걸가. 

그는 아까부터 맥주 한잔을 놓고 홀짝거리는 여자의 잔을 채워주고 자신의 잔에 맥주를 넘치게 부었다. 잔을 들어 단모금에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음이 평정을 찾고있었다. 

''내 화장실 좀 다녀오기쇼.''

여자한테 양해를 구하고 그는 화장실로 갔다. 

오줌줄기가 길게 뻗어나간다. 여자는 이 일을 금방 시작한게 틀림이 없다. 누구를 속일만큼 절대 영악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속히우기 쉽게 순해빠진 인상이다. 무슨 사정이 있는것일가. 남편이 없어서 혼자 벌어서 살아야 되는 여자인가. 여자가 지금 하고저 하는것이 무엇이면 어떠한가. 다단계라도 좋다. 어쨋거나 여자는 저토록 살려고 노력하고있다. 삶에 애착을 가지고 애쓰고있다. 그는 지난 십년간 아침마다 깨여나면 오늘 하루도 열심히 돈벌자고 웨치던 호기롭던 그를 생각한다. 자칫 잊을번했던 단단했던 그를 떠올린다. 그는 마음이 저릿저릿해난다. 이름모를 여자는 그가 잊고있었던 그의 내면의것들을 깨우고있었다. 

뇨도에 마지막 남은 한방울까지 짜내고 그는 지퍼를 잠그고 돌아섰다. 

여자는 그가 음식값을 지불하는동안 밖에 나가 기다리다가 그가 나가자 어색하게 웃으며 어디가서 커피라도. 하고 말끝을 흐린다. 여자는 그새 브라자를 정돈해서 티우로 크지 않은 가슴이 얌전하게 내밀어져있다. 아까 산에서 여자의 반팔티우로 솟은 유두를 마주했던 그 격정은 온데간데 사그라들고 없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누이동생이나 오래된 친구처럼 그는 여자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다음에 봅시다. 하면서 여자한테 웃어주었다. 여자도 별뜻없이 한 말인듯 푹 웃더니 고개를 숙여보이고 돌아선다. 그는 여자의 뒤모습을 바라본다. 작고 마른 여자의 걸음걸이는 뜨거운 해빛탓인지 지쳐보인다. 그는 여자의 신발이 많이 닳아있음을 느낀다. 

7

그가 추적추적 걸어서 집에 돌아왔을때, 안해는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집은 아침에 청소를 한듯 바닥이 알른알른하게 닦여져있다. 식탁에 씌워져있는 흰색의 보자기를 거두자 정갈한 반찬이 차려져있다.

더운날에 맥주를 마셔서인지 숨이 차다. 그는 주방에 우뚝 섰다. 그가 밖에서 헤매고있는동안 여기에는 그를 기다리고있는것들이 있었다. 그가 헛헛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몸부림치고 있을때 적어도 그를 기다리는것들은 존재했다. 아니, 있었다고, 존재했다고 이 순간, 믿고싶다. 뭉텅 잘려져나간 필름같다고 여겨졌던 십년, 도무지 맞추어지지 않는 퍼즐같아 그가 절망했던 그 십년은 그냥 잘라져나간것만은 아니라고 이 순간, 그는 굳게 믿고싶다.

그는 핸드폰과 지갑을 식탁에 놓고 빨래건조대에서 팬티를 집어들고 화장실로 갔다. 입었던 옷을 모조리 벗어 세탁기에 처넣고 갈아입을 팬티는 세탁기우에 놓고 샤워기를 집어들었다. 윽. 그는 짐승같은 소리를 낸다. 물이 너무 차가워서이다. 세수비누로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몸을 문질러댄다. 형편없이 쪼그라든 그의 남자는 수도꼭지처럼 얌전히 고개를 떨구고있다. 그는 손을 뻗어 천천히 그의 남자를 문질러 씻는다. 

손가락 세 개는 잘려나갔지만 아직 엄지와 새끼손가락은 붙어있다. 그는 새끼손가락을 쳐들어본다. 적당히 굵은 그것은 너무 멀쩡하다. 그는 세상을 향해 유혹하듯 그것을 까댁까댁해본다. 웃음이 나온다. 새끼손가락으로 세상을 향해 푹 찔러보고싶어진다. 그는 주먹을 쥐여본다. 엄지가 세 개의 잘린 손가락을 감싸고 새끼손가락이 받쳐주어 하나의 주먹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세상 어디를 향해서든 충분히 내지를수 있는 주먹이였다.

그는 어깨를 펴고 몸을 곧게 핀다. 그때, 그의 남자가 빼꼼히 고개를 쳐들고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고, 죽었다고 생각할때에도 사실은 안에서 멀쩡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고 시위라도 하는듯했다. 그는 까댁까댁하면서 머리를 들고있는 그것을 멀거니 바라본다.

어디서 개업이라도 하는걸가. 밖에 폭죽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탕탕탕. 탕탕.

그는 샤워기를 끄고 조용히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밖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소리, 아직 끝나지 않은듯 퉁.탕 하고 끊기다가 또 울리는 폭죽소리가 들려온다.

그 모든 소리들을 들으며 그는 그렇게 주먹을 틀어쥐고 거인처럼 우뚝 서있었다.

2017년 10월 4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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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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