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도 어쩌면 아주 랑만적인 분이였을지도 모른다
20대초반까지 연길에서 살다가 63년도에 하향한후로 쭉 농촌에서 살아오신 아버지는 하모니카도 잘 불뿐만아니라 바이올린도 아주 잘 켰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명시와 명작들을 수첩에 정리해둔것이 아버지가 세상을 뜰때까지 보관되여 있었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일가? 아버지는 연길에 일보러 갈때면 점심을 굶으면서도 나에게 소설책을 사다주시군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안경을 걸고 책을 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아버지는 보통 농민들과는 다른 고상한 취미들을 가지고 계셨다.
텔레비죤이 없는 세월, 아버지는 영화보러 자주 다니셨다. 나와 어머니도 종종 아버지뒤를 따라 영화관에 가군 했었다.
어느 한번, 아버지가 단위에서 영화표 한장을 얻었었다. 그때 내가 아마 대여섯살쯤 됐을거였다.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은데 감히 말은 못하고 미닫이문뒤에 숨어 쿨쩍쿨쩍 울었다. 성미가 불같은 아버지한테서 불호령이 떨어질가봐 모두들 조마조마한데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 눈물을 닦아주고는 나를 등에 업었다.
담배를 입에서 떼는 법이 없는 아버지는 나를 업고 가면서도 줄담배를 피웠다. 굽인돌이를 돌때 바람에 담배연기가 나한테 확 몰려왔다.
“아빠, 담배연기가 눈에 들어와 눈물이 나요.”
내가 이렇게 나직이 종알대자 아버지는 인츰 담배를 땅에 던지고는 발로 비벼 껐다.
그날 본 영화제목도, 내용도, 어느 한 장면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하지만 어린 딸의 한마디 말에 인츰 담배불을 끄던 아버지의 부드러운 사랑은 지금껏 나를 울린다.
아버지는 농사를 짓는 한편 겨울이면 진의 기업, 학교, 병원들을 돌아다니며 보이라불을 땠다. 몇리 길을 오르내리자면 두발로 걸어다닐수 없었다. 자전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조롱조롱 네 딸이 있고 엄마가 자주 앓음자랑을 하는지라 자전거를 살 돈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토록 아끼던, 자주 켜지는 않지만 먼지가 앉을세라 닦고닦던 바이올린을 꺼냈다. 친구와 둘이서 하루종일 바이올린을 켜서 엄마를 귀찮게 했다는 그 바이올린, 아버지의 보배였다. 아버지는 그 바이올린을 팔고 그 돈으로 자전거를 갖추었다. 겨울이 지나 출근하지 않게 되자 그 자전거는 다시 바이올린으로 바뀌였다.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자 바이올린은 다시 자전거로 바뀌였다.
이는 아버지의 30대적의 이야기이다. 얼마만큼의 돈을 보태여 바꿨는지 모르지만 내가 열몇살될때 아버지는 이미 28형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셨다. 그후 그 자전거는 다시 바이올린으로 바뀌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가정의 짐을 그 자전거에 싣고 가야 했던것이다.
아버지의 바이올린은 아버지의 추구와 함께 먼곳에서 잠을 잘수밖에 없었다.
농망기엔 농사를 짓고 농한기엔 출근하시는 아버지. 밤 12시면 아버지는 그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선다. 추운 밤 12시, 바람 불고 눈이 오는 캄캄한 겨울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아버지의 가슴은 얼마나 시렸을가. 병약한 안해와 딸 넷을 거느리고 터덜터덜 인생길을 걸어오신 아버지.
그때 내 나이가 열네살가량 됐을거였다. 어느날 내가 상우에 신문을 놓고 보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얘, 이젠 자려무나.”
아버지의 그 말에 나는 신문을 활 팽개쳤다. 재미있게 보는데 자자고 하니 불시에 심술이 난걸가? 뾰로통해서 밥상을 걷우는데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 웬 일이야? 점점 말이 아니구나.”
당금 때릴 태세여서 나는 깜짝 놀라 밥상을 떨어뜨렸다. 밥상은 아버지의 발치에서 둔중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그 밥상이 아버지의 발등을 내리치지 않았었는지. 지금은 물어볼수도 없다. 아버지는 저 세상에서 말없는 사랑으로 나를 감싸줄뿐이다.)
나는 양말바람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10월의 밤날씨는 추웠다. 겁이 나서 먼곳에 갈수 없었다.
가까운 탈곡장에 달려갔다. 괴물처럼 낟가리들이 우중충 서있었다. 하늘의 별이 보였다.
가까운 곳에서 어머니와 둘째언니가
“향란아, 향란아!”
하고 부르며 지나갔다.못들은척 했다. 그리고 울었다. 제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면서 울었다.
눈물도 멎고 추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다시 어머니와 언니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구성이나 만난듯
“저, 여기 있슴다.”
하고 소리쳤다.
“너 여기 있었구나. 그런걸 큰언니네 집에까지 가서 찾았다.”
둘째 언니가 나무랐다. 어머니와 언니 뒤를 따라 집으로 타박타박 걸어오는데 저 앞으로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왔다.
“향란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말없이 자전거를 돌리셨다. 자전거짐받이에는 나의 솜옷이 놓여있었다. 그 솜옷을 입고 아버지 자전거뒤에 앉아오면서 나는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그것은 낟가리우에서 흘리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였다.
도급맡은 논에 모내기를 할즈음이면 학교에서도 모내기 방학을 한다. 고중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둘째 언니와 고중에 다니는 작은 언니, 그리고 초중에 다니는 나까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모내기에 나선다.
어머니는 벼모를 뜨고 아버지는 그 모를 2리쯤 떨이진 논에 나르고 우리 세 자매는 논밭에서 벼모를 꽂는다. 열네댓살나는 내가 모를 꽂으면 얼마나 잘 꽂았겠는가. 그저 하루해가 길기도 길다는 느낌뿐이였다.
허리 굽히여 벼모를 꽂다가도 허리쉼을 하며 고개를 들어 두도-화룡도로를 쳐다본다.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가 하고.
아버지는 소수레도 아니고 손잡이 뜨락또르도 아닌 그 자전거로 벼모를 나르셨다. 중병으로 허덕이던 어머니의 병치료때문에 진빚,우리들의 아름찬 학비때문에 아버지가 남들이 다 노는 겨울철까지 출근을 해도 소수레를 장만할 돈이 없었던것이다. 농망기라 빌릴수도 없어 아버지는 몇년 계속 자전거로 모를 나르셨다.
멀리서부터 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인다. 자전거에서 벼모 두주머니를 내리워 멜대로 메고 다시 200메터쯤 떨어진 우리 논으로 검실검실한 논두렁길을 따라 가물가물 걸어오신다.
이렇게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번씩 오고갔고 우리 쪽에 와서 물을 마시고 다시 벼모 뜨는 어머니한테 가서 물을 마시고.가져온 물은 아버지가 거의 다 마셔버리군 했다.
시집간 내가 금방 팔가자에 살림을 차렸을 때였다.
대문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아버지가 자전거를 밀고 들어오셨다.
“아니, 아버지. 왜 자전거를 타고 오십니까? 그렇게 먼거리를.”
“너한테 편지도 오고 원고료도 왔더구나. 그걸 갖다주려고.”
“그럼 뻐스를 타고 오시지 왜…”
“내가 뻐스 타고 오면 너희들이 또 차비를 갖추어 주느라 힘들게 아니냐. 너희들 살기 바쁜걸 내 다 안다. 운동도 되고 괜찮다. 그렇게 먼거리도 아니다.”
나는 더는 할말을 찾지 못했다. 30리 길을 고혈압까지 있는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오시다니. 그 차비가 얼마라고.
점심을 드신후 아버지는 인차 돌아가려 했다. 나도 함께 나섰다. 친정집이 있는 곳의 우전국에도 들릴 일이 있어서였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먼저 떠나시고 나는 뻐스를 탔다. 아버지가 어디쯤 갔는지 알려고 창문켠에 앉았다. 나는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서성진도 지나고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들도 지나갔다. 머리를 차창밖에 내밀고 길만 바라보는데 아버지가 마을어구에서 자전거 뽐프를 들고 나오신다. 나를 보고는 웃으면서 손을 저으신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도로옆에 세워져 있었다. 자전거다이야의 공기가 새여나간 모양이였다. 지금도 뻐스 타고 그 길을 지날때면 손에 자전거뽐프를 들고 웃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아파온다.
역시 모내기철이였다. 아버지는 금방 모내기가 끝난 논밭으로 자전거를 타고 논물 보러 가셨다. 마을사람과 함께 논두렁에 앉아
“이젠 일년농사 절반은 시름 놓았소.”
하고 기뻐하시더라는 아버지.아버지는 담배를 말아 입에 물고는 성냥을 그었다. 헌데 손이 떨려 아무리 그어도 불을 켜지 못했다.
“끝이야.”
하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란다. 그 말이 아버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한마디 말이였다.
논밭에 쓰러진 아버지를 동네분들이 지나가는 기동삼륜차에 싣고 병원에 갔을때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었었다.
일생을 가족을 위해 허덕이고 떠나갈때도 한점 부담 남길세라 주사 한대 맞지 못하고 59세를 넘기지 못한채 그렇게 급급히 떠나갔다.
이튿날, 화룡으로 가는 장의차에 앉아 눈물로 얼굴을 씻던 어머니와 우리 딸들은 길옆 논밭머리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보았다. 아버지가 논밭에 타고 간채로 미처 가져오지 못한 자전거.
“아버지의 자전거다. 아버지의 자전거…”
우리는 언뜻 스쳐 지나가는 그 자전거를 보며 더욱 울었다.
사명을 다한듯 논밭옆에 버려진 자전거, 아버지가 아껴아껴 15년이나 타신 자전거였다 닳고 찌든 그 자전거와 같은 아버지와 그 자전거에 무거운 짐을 싣고 먼먼길을 달려온 초라하고 주름투성이인 아버지 같은 자전거. 아버지와 자전거는 분리될수 없는 일체인듯 싶었다.
내 잠재의식속에 있던 하나의 소망이 고개를 쳐든다. 아버지에게 반들반들 윤기도는 새 자전거 한대를 사드리고 싶다. 밤에 출근할때나 모를 나를때 타는 자전거가 아닌, 다른 아버지들처럼 문구 치러도 가고 무도장에도 타고 가는 그런 자전거를 사드리고 싶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고 낡은 자전거만 덩그라니 남았을뿐이다.

이 글을 공유하기:

kangkang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39
응원합니다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