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린다. 가로등조차 끊겨 어둠이 칙칙하게 드리운 길에서 나는 멈춰섰다. 하루동안 땀에 절어가면서 뛰여다닌 피로가 순간적으로 몰려온다. 나는 뒤로 가있는 가방을 휙 앞으로 돌려 쪼르로기를 열고 소란스럽게 울고있는 핸드폰을 찾아 끄집어내는동안 급해지는 마음을 어쩔수 없다. 피로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나는 하품을 한다. 어떤 전화던지 누구한테서 걸려오는건지를 일단 알아야 불안이 해소된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핸드폰을 바로쥐고 피로한 눈을 깜박이며 화면을 보니 신화라고 써있다. 아하, 이분이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하셨을가? 그는 중국조선족들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인터넷카페를 운영하는 카페지기이다. 그냥그냥 아는 사이이긴 하지만, 말수도 적고 전화같은건 잘 안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분이 어쩐 일로 밤 열시에 그것도 이처럼 다급하게 전화를 했을가? 

"여보세요?"

받으니 아무 기척없다. 그새 끊겼나보다. 

쪼로로 문자메시지가 뜬다. 퇴근하시면 메신저에 오르세요. 무슨 일이 있긴 있나보네.

나는 허위허위 열개는 넘고 이십개는 채 안되는 계단을 올라 또 한참을 걸어 이 동네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내 세방에 도착한다. 불은 켜져있었고, 함께 살고있는 언니는 이미 퇴근했는 모양, 샤워실에 물소리가 요란하다. 

나는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내 방 불을 켠다. 선풍기를 돌리고, 컴퓨터를 켠다. 메신저를 켰으나 신화는 없다. 핸드폰메세지로 무슨 일이세요? 라고 보내자 좀 지나 신화가 메신저에 로그인된다. 

나: 무슨 일 있나요?

신화: 길림신문에 우리 동포가 노예생활하다가 구조된 기사가 실렸는데 보셨어요?

나: 네?

아마 내 눈이 휘둥그래졌으리라. 이 무슨…? 지금은 서기 2011년이고, 여기는 민주와 평화를 부르짖는 대한민국인데, 노예라니? 잘 맞춰지지 않는 퍼즐쪼각을 마주한 사람처럼 나는 곤혹스럽다.

신화: 못보셨으면 우선 카페에 들어가 기사부터 보세요.

나: 네, 알았어요.

중국조선족카페를 로그인하고 들어가니 한겨레소식방에 “흑룡강조선족 한국서 현대판 노예로 8년”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중국의 모 신문사에서 작성한 기사였다.

흑룡강조선족 리모모가 8년동안 한국의 한 시골식당에서 죽게 일하면서도 기본적인 인간대우는커녕 사장에게 폭행을 당하고 로임 일전 한푼 받지도 못하면서 현대판 노예생활을 해오다가 일전에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선 한국 KBS방송국 인권수사대프로 제작일군들에 의해 구조되였습니다, 하는 글과 함께 사진들이 보였다. 검게 탄 얼굴에 보기에도 불편해보이는 몸을 한 중년남자가 풀을 매고 불을 때고, 음식을 나르는 등 사진이 쭉 있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비닐하우스 한쪽켠을 가로막은것이 그의 거처였다는 설명, 탁상시계는 멈춰져있었고 이부자리는 언제 빨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커멓게 되어있었습니다. 낮이면 일하고 밤이면 자고 그렇게 날자 가는줄도 모르고 8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리모모는 2003년 7월에 한국에 입국하여 그해 8월부터 구조될 때까지 줄곧 이 시골식당에서 숯불을 피우는 일외에도 여러가지 잡일들을 쉴새없이 해왔습니다. 어느때 허리뼈가 골절됐다가 저절로 비뚤게 아물어 붙었는지 그 원인으로 걸음걸이가 몹시 불편했는데 공무원으로 있다가 비리에 걸려 사직한 사장으로부터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귀뺨을 맞은적도 한두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기사에는 리모모가 한달에 50만원정도의 월급을 받기로 하였으나 8년동안 로임봉투를 만져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사진상으로 보니 사시장철 헌 장화만 신고 일했다는 다리는 피부가 거멓게 죽어있었다. 그의 다른 한 신발인 하나밖에 없는 슬리퍼는 그나마 뒤축이 다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이웃들이 사장이 뒤에서 엎드려 뻗치기를 해놓고 그를 때렸다고 증언하는 사진도 있었다. 물론 이웃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여있었다. 사장이 통화를 못하게 해서 중국에 있는 가족과 거의 8년을 련락두절된채 일만 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고단함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있는 그의 사진을 마주하고 기사를 읽으며 나는 가슴을 쳤다. 그리고 흥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나는 잠시후에 보자고 신화한테 말하고 밥을 대충 먹고 샤워를 했다. 땀에 젖은 몸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살것 같았다.

나는 컴에 마주앉았다. 

나: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되죠? 

신화: 그러게요. 이대로는 안되겠죠. 재한동포들의 권익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가만있을수 없는것 같아요.

나: 방송국에서 취재했으니까 어느 정도는 해결되겠지만 그래도 가만있어서는 안될것 같네요. 저분 월급, 장애인판정, 정신적인 보상 다 받아야 되잖아요.

신화: 그럼요. 서명운동 해야겠어요. 작성 부탁드릴게요.

나: 그런데 그런 글 써본적 없어서… 아무튼 써볼게요.

나는 조금은 들뜬 심정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마음은 급했고 흥분돼있었다. 맹세하건대 한국생활 4년동안 그처럼 들뜨고 설레인적은 없었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현대판노예 리모모의 사건해결을 촉구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기사내용을 인용해서 리모모의 상황을 소개하고나서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리모모가 식당에서 일한 로동개시일부터 구조일까지의 임금을 최저임금법에 기준, 휴무, 초과근무수당 포괄하여 사업주가 지불할수 있도록 빠르고 확실한 조치를 요청한다. 

둘째, 즉시 사업주를 구속하고, 그의 모든 재산을 차압할것을 요청한다. 아울러 사업주의 신상정보를 낱낱이 공개할것을 요청한다.

셋째, 리모모의 8년동안의 퇴직금을 현행기준인 월급(최저임금법으로 환산)의 십분의 일로 계산하여 지불할것을 요청한다.

넷째, 상해로 장애가 된 그의 다리에 장애인표준등급을 매겨주고, 적절한 보상을 해줄것을 청구, 아울러 장애후유증으로 1억, 8년동안의 정신손해배상으로 2억원을 청구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정부에서 이번 사건을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처리하여 자국의 위망을 수립하고, 고국땅에서 동포들이 얼마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약자에 놓여있는가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바입니다, 라고 하고나서 중국동포 여러분, 대한국민 여러분, 우리의 동포가, 내 아버지같고 오빠같은 분이 한국에서 8년동안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량심있는 분들은 서명해주시고, 함께 목소리를 모으고 힘을 모아 조속한 사건해결을 도웁시다. 리모모가 그동안의 보상을 받을수 있도록 힘을 모읍시다. 리모모한테 힘이 될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서명 부탁드립니다, 라고 했다. 

나는 신화한테 글을 보냈고, 신화는 뭐라고 한구절 추가해서 카페에 올렸다. 

같은 처지에 있는 재한동포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다들 자신의 일처럼 흥분했고 서명을 했다. 한국인들도 서명했고 고향에 있는 중국동포들도 서명했다. 서명을 어떻게 하면 되냐고 신화한테 전화도 왔다고 했다. 며칠사이 회원댓글 356개, 손냄댓글 179개라는 어마어마한 수자를 기록했다. 

서명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서명합니다. 참말로 마음이 아프네요. 하루 빨리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서명합니다. 악덕사업주에게 마땅한 응징을 바랍니다.

서명합니다. 우리 모두 일심으로 뭉쳐 억울하게 8년간 노예생활한 리모씨에게 희망을 줍시다.

그동안 각종 일터에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억울함을 감내하면서 살아온 재한동포들은 신분상 약자일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상기되여서 더욱 흥분했다. 이런걸 두고 나비효과라고 하는건가? 허구헌날 헐뜯고 서로 비꼬고 의견분규로 인터넷상에서 티격태격 싸움질만 하던 한국인들과 동포들은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합치는 감동을 보였다. 정의는 아직 살아있다는것인가? 불의에 분노하는 댓글들은 감동이였다. 사람마다 분노했고, 나는 그 정의로운 댓글들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고 참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 하면서 자칫 눈시울까지 붉어지는 감격도 느꼈다. 기다리자. 잘 해결될것이다. 기다리자. 이번 일이 재한동포들의 인권문제를 개선할수 있는 계기가 될수도 있겠다. 기대에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글쓴이 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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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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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터넷은 구석구석을 비추는 빛과 같습니다. 이때까지 사람몰래 한 행위와 말들이 고스란히 기록이 되어 낯낯히 환하게 공개되면서 그동안 남을 괘롭히며 살아왔던 사람들은 그동안의 댓가를 치르게 되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수고하시며 억울함을 당하셨던 분들이 존엄이 있는 삶을 살수 있도록 하는, 당신들은 정말 멋있는 천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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