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무언가 석연치않은 찜찜함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는 왜 8년동안 그곳에서 도망치지 않았던 것일가. 도망칠수 없었다고 할만한 상황은 아니였다. 24시간 그가 감시권안에 있었던것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도망칠 생각을 못할만큼 저능적인것도 아니였다. 그렇다면 왜? 돈 한푼도 못받고, 자고깨면 일을 해야 할만큼 고된 생활을 그는 무슨 생각으로 견뎌낸걸가? 바보가 아닌이상 폭행과 비인간적인 대우에 말 한마디 못하고 왜 묵묵히 모든걸 참아냈을가? 대체 왜 그랬단 말인가?

방송파일도 게시판에 올라왔다. 리모모가 주위의 누군가에 의해 신고되고 인권구조대가 착취당하고 있는 그를 몰래 카메라로 촬영하고, 드디여 그를 구조하기까지의 영상이였다. 그에게는 전화번호책도 있었다. 중국에 있는 식구들 전화번호가 줄줄이 적혀 있었다.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럼 왜. 도망치지 않은 것일가? 그에게서 그에 대한 해답을 들을수는 없었다. 다만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여 차에 탄 그가 에고, 돈이 뭔지. 라고 하는것이였다. 돈이, 글쎄 돈이란 대체 무엇일가? 그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가?

나는 여전히 바빴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졸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옷을 입고 출근길에 올랐고,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런 생각을 안하고도 저절로 손발이 움직여지는 식당서빙을 했다. 

손님들은 여전히 까다로웠다. 음식두개를 시키고 앞접시네개를 요구해서는 나눠 먹었고 본인이 쏟은 물까지 닦아달라는 알뜰함을 잃지 않았다. 안되는 카드를 두번세번 긁어달라고 요구했고, 잔액이 부족하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표정들이 굳어진다. 아줌마 중국에서 왔죠? 뭐를 모르나 보네? 뭔가 불리할때마다 히든카드처럼 그들이 꺼내드는 말이다. 네, 그래서요? 왜요?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입밖으로 튀여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막는다. 맥주 일곱개를 일곱번에 나누어 시켰고 료리 한접시를 세접시로 나눠서 갖다 달라고 한다. 짜다고 하고, 싱겁다고 한다. 랭면을 가위로 잘라 달라고 하고 콩국수에 설탕을 뿌려달라고 한다. 코푼 휴지에 심지에쉬야가누렇게 묻은 아기 기저귀까지 짝 펴서 식탁우에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는 아줌마들을 바라보아도 당당함밖에 읽을수가 없다. 그래서 화가난다. 너무 당연하다는듯한 그 당당함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된단 말인가. 

나는 괘씸하지만 그 어느것도 거부할수 없다. 니가 코푼 휴지는 니가 좀 처리를 하고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그럴수는 없다. 왜? 난 중국동포이고 그것보다 서빙이라는 네 밖에 허용되지 않는 음식점 아줌마이기때문이다. 손님한테 싫은 소리를 했다가는 주인한테 한소리들을것이고 그럼 결국 나는 또 식당을 옮겨야 한다. 하지만 어데가나 손님한테 대들어도 좋은 음식점은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없다는걸 4년간의 한국생활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건 중국동포인 나뿐이 아니라 한국 아줌마도 똑같이 겪어야하는 수모이다. 업종에 한한것이지 국적에 한한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위안도 될때가 있다. 왜? 그런게 있지 않은가. 매도 같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덜 아프게 느껴지듯, 억울함도 같이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덜 억울하게 느껴지는, 무리적인 동질감같은게 있지 않냐 말이다. 결국 나는 묵묵히 속으로 온갖 욕을 해가면서 휴지를 치우고 기저귀를 치운다. 참고 견디는것만이 결국 한화를 버는 길이고 내가 선택한 이 길에서 내가 할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에 묵묵히, 속으로 끓어 오르는 분노를 밖으로 표출이 안되도록 꾹꾹 눌러가면서 견뎌 낼수밖에 없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 종업원들끼리 마주 앉으면 우리는 열띤 어조로 이런 저런 밉상 손님들을,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아줌마들을, 쳐다보기도 싫은 무개념 아저씨들을 흉보고 욕한다. 밑바닥 생활인 식당종업원들만의 소심한 대처법이다. 

"에고, 그래도 막내는 중국가서 잘 살 희망이래도 있잖오. 나는 그런 희망도 없는 지라. 늙어서 일 못할때까정 이 일을 해야 하는겨, 배운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으니 서러울수 밖에. 이게 사는게 사는거여?"

한국인 치고는 너무 순수하고 착한 주방찬모 강이모가 나한테 해주는 말이다. 나는 그말에 자기 주제도 모르고 자칫 우월감마저 느낄번하는 착각에 빠진다. 강이모가 불쌍하고 고맙다. 

"이모, 커피 마실래요? 내가 타줄게."

나는 피곤함도 싹 가신듯 활기차게 일어나 커피를 탄다.

장마철도 지났는데 때 아닌 폭우가 련며칠 내린다. 뉴스는 하루 종일 복새통이다. 인하대학교 학생들이 강원도 춘천으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산사태가 일어나 산바로 아래에 있던 펜션이 충격으로 무너지면서 13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 당했다. 서울 도심이 물에 잠겼다. 차들이 잠기고 출근길에서 몇시간을 헤매다 출근도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에, 차를 버리고 물을 헤가르며 걷는 사람들에, 온통 난리법석이다. 우면산산사태에 아파트 수천동이 부서졌다.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물놀이를 하다가 숨지고, 잠자다가 숨지고, 구조대원들이 사람을 구하다가 숨지고, 물과의 전쟁이다. 보험사는 재빠르게 주차해서는 안되는 공간에 주차했다가 피해당한 사람은 보상이 안된다고 발표를 한다. 너무나도 머리도 잘 돌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약삭빠르다. 

그나마 내가 살고 있는 충북은 가장 안전한 지대인가. 비가 많이 오긴 했지만 큰 피해는 없다. 더욱이 세들어 살고 있는 집이 지세가 높아서 물피해는 없다. 평소에 올리막으로 다니기 힘들어서 귀찮았는데 뭐든 나쁘기만 한건 아닌가 보다. 

나는 재미삼아 인터넷 음악방송의 진행을 맡고 있었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주고자하는 취지에서 시작한것이였는데,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멘트를 작성해야 하고, 노래를 찾아야 하고, 록음하고, 괜히 이걸 한다고 했네, 하고 후회반, 시작했으니 후임자가 나지기 전까지는 해야지 하는 책임감반으로 억지 공사로 한번 두번 해나갔다. 

누가 듣겠나 싶었는데 그렇게 억지 공사로 한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듣는 사람도 꽤 있었고 고맙다고하는 분들도 많았다. 신기했다. 사연들도 많이 올라왔다. 몇십년동안 련락이 끊긴 친구한테 노래를 선물하고 싶어서 신청한다는 분도 있었고, 아들애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엄마라고 하면서 아들애가 메신저 창옆에 써놓은 노래제목을 적어놓고 한번 들어 보고 싶다고 하는 분도 있었다. 고향을 떠나 올때 엄마한테 꼭 돌아 오리라고 약속한 날을 못 지킨 아들이 엄마를 생각하며 신청하는 노래도 있었다. 단체로 마음의 병이라도 걸린듯한 망상을 일으킬 정도로 정에 고갈되고 외로움을 호소하는 모습들이였다. 열두시간동안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밥먹고 씻고 잠만 자도 피곤이 가실가 말가한데 방송까지 하느라 나는 극도로 피곤했다. 

비가 그치고 폭염이 찾아왔다. 찜통처럼 더웠다. 자원봉사자들이 피해지역에 가서 복구를 돕는 훈훈한 모습들이 방송에서 나온다. 젖은 옷이며 가전제품들을 말리느라 밖에 내놓았는데 도둑맞았다는 보도도 끊이지 않는다. 감시카메라도 없고 도둑을 잡기도 애매하단다. 그 와중에도 물피해로 우는 사람들의 물건을 훔쳐갈 생각을 하다니, 참 대단하다. 할 말이 없다. 

나는 날씨가 더운 탓이기도 하겠지만 휴가철이라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하루종일 뛰여 다녀야 했다. 피곤했다. 집에 돌아오면 하품만 났다. 그럼에도 나는 방송을 그만둘수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압박감과 뭔지 모를 성취감이 피로를 무릅쓰고 방송을 진행하게 했다. 그리고 나도 위로를 얻었다. 고맙다고, 고생 하신다고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는 큰 힘이 되였다. 

나는 방송에서도 리모모의 사연을 소개하고 하루빨리 일이 해결되고 리모모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마음을 전했다. 

그러는 사이 한주가 흘렀다. 인권구조대가 리모씨를 구조하였고, 가족도 찾았다. 3년전에 한국에 건너와 있던마누라가 울먹이며 남편을 만나러 뛰여갔다. 동생도 오고 형제들도 왔다. 그제야 리모모는 사장이 엎어 놓고때렸다는 말을 했다. 

"조선족이니까 맞아도 말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리모모의 말이 였다. 그는 부인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8년동안 련락없는 남편을 온전하게 기다려 낸. 부인의 순애보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이제는 행복이래요."

부인이 말한다. 중국에 돌아가서 꼭 잘 살거라고, 구조해준 KBS 인권구조대를 잊지 않을거라고 했다. 빛이 보인다. 드디여 중국동포들도 한국땅에서 자기의 권익을 온전하게 호소할수 있게 되는걸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는 중국동포들이 동포라는 리유로 불리익을 당하는 일은 없게 될것인가.

인권위원회에도 서한을 넣었다. 어데선가 울고 있을 제2, 제3의 리모모를 구조하고 그들이 하루빨리 세상의 빛을 찾아 걸어 나오기를 기도했다. 마음은 급해졌고 불안했다. 나는 자신이 무슨 정의의 사자라도 된양 흥분돼 있었다. 하지만 일면 이게 너무 순진한 생각은 아닐가? 정말로 이러한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질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가 커져 갈수록 뭔지 모를 불안함도 따라서 커졌다. 왜 좋은 일에 불안함이 끈적하게 따라 붙는 건지는 나도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확실한건 뭔가 그냥 불안하다는 것이였다. 돈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세월에 너무 구구절절 인간의 존엄을 따진다는건 세상물정을 모르는 짓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모순되게 머리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포기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글쓴이 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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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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