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많이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기로 결심했다, 2017년. 한때는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곁에 있어도 곁에 없어도, 그저 잠깐 떠올리는것만으로도 웃음이 새여나왔는데, 어쩌다보니 그 인연도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이났다. 연애는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면 끝나지만, 그 후유증은 좋아한만큼 많이 아프고 오래가는 법이겠지. 내방 곳곳에 자리잡은 그의 흔적들, 우리가 헤어졌던 집근처 공원, 그리고 거울속에 비친 내모습까지, 모두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해 견딜수가 없었다. 그 아무도 나와 그를 모르는 곳에 그리고 나도 모르는 곳에 그냥 가야했다. 그리고 어딘가 눈덮인 추운 곳에 가서 질척거리는 나의 마음과 생각들을 정신이 번쩍 들게해야지 라고 결심하고 2017년 12월말 큐슈(九州)의 산속으로 나를 던져버렸다.

아픔을 낫게 하는데에 시간이라는 약은 중약같은것같다. 맛은 쓰고 매일 또 오래 마셔야 병이 나을가말가 한데 그에 비해 낯선곳에서의 여행은 아픈곳을 바로 떼어내주는 수술같은것같다. 낯선 도시, 낯선 산들을 헤매다 돌아오니 곪았던 염증들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과 마주하며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거리다가, 돌발상황을 대처하느라 정신없다가 어느새 정신차려보니 나는 슬프지 않았었다. 그 시간들이, 5년이 지난 지금도 돌이켜보면 참 고마운 시간, 그렇게 새롭게 슬픔을 마주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던 그 여행을 이제 흐뭇한 심정으로 풀어보려한다.

조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고시마(鹿児島) 공항에서 나와 맡았던 큐슈의 공기는 소똥냄새였다. 도시에 하도 오래 살아서 소똥냄새의 그 신선한 충격은 웃픈 이번 여행의 예고편이였다. 연애의 아픔을 잊어보겟다고 여기가지 날아왔는데 아무도 없는 시골마을을 소똥피해가며 혼자 걷고있었던 나의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 할머니집으로 가던 길냄새도 이런 냄새였는데, 이렇게 못된 나라도 따뜻하게 안아줄것같은 느낌이 들어 안심이 되기도 했다. 1시간을 아무도 없는 텅빈 시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카고시마시에 도착. 첫끼로 아주 유명한 돈까스집을 찾아갔다. 유명한 만큼 맛있기는 힘든데 예상보다 훨씬 맛있었다. 커다란 백팩을 메고 들어와 음식 사진을 찍으며 여행객 티를 내자, 주인아저씨가 흐뭇하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뭐라고 명함까지 건네며 또 먹으러 오라고했다. 교토(京都)에선 다들 허리는 굽혀도 콧대는 하늘을 찌르는데 첫끼부터 친근한 사장님을 만나니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 

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기차역, 옛날 할머니집근처 뻐스역도 이런 분위기였는데

큐슈를 논하자면, 화산과 고기를 빼놓을수 없다. 큐슈의 산들은 거의 대부분이 화산이라 큐슈땅밑에선 용암들이 들끓는다, 목욕을 하려고 굳이 물을 덥힐 필요가 없는 온천천국이다. 큐슈는 또 2차 세계대전후 기계화적인 고기생산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킨 지역이라 지금도 일본 대부분의 국산 닭고기와 돼지고기는 큐슈산이다. 일본 사람들한테 큐슈는 음식이 맛있는 현(県)으로 형용될 정도로 큐슈의 음식은 싸고 맛나다, 특히 라면과 돈카츠는 너무 맛있어 고기를 안좋아하는 나도 하루세끼 고기를 먹었을만큼 맛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산얘기, 나는 여행을 가면 항상 그 지역의 제일 높은 산이나 이쁜 산들을 오른다. 큐슈에서 오를 산을 사전조사를 통해 3곳을 정했다, 제일 높은 산인 쿠쥬야마(九重山, 1791m), 이름때문에 가야만했던 카라쿠니다케(韓国岳), 그리고 지금도 분화중인 아소산(阿蘇山). 

제일 먼저 오른 산은 카라쿠니다케

카라쿠니다케에 오르면 조선땅이 보일만큼 높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한국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만, 사실은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등산구가 있는 뻐스정류장에 도착해 뻐스에서 내렸을때, 나의 앞에 펼쳐진 내가 올라야 할 산이 아주 멋진 산일때 가슴은 그저 벅찰뿐이다, 이 커다란 산덩어리앞에서 나의 미련과 슬픔들은 그저 너무 소소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조금 부끄러워졌다.

등산구에서 바라보는 카라쿠니다케, 오른쪽 높은 봉우리가 카라쿠니다케 최고봉이다.그리고 가운데 옴폭하게 파인 부분은 화산구. 일본에서 이쁜 산들, 그리고 지형이나 경치가 특별한 곳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자연보호를 보정하는 동시에 또 사람들이 그 자연을 즐길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가 진행된다. 그래서 등산로도 안전하게 완비되어있어 높은 산도 안전하게 오를수있다.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꿈이 하나 있었다. 나이를 먹어 무릎이 안 좋아지기 전에 세상의 이쁜 산들을 다 올라보는것. 세상에는 이쁜 산들이 너무 많아 하루라도 젊었을때 더 빨리 더 많이 올라야지라는 나름의 사명감같은걸 가지고있었는데, 카라쿠니다케 정상에 오르니 할머니들이 바람을 피해 바위뒤에 쪼그리고 앉아 주먹밥을 드시고계셧다. 그렇게 거창했던 나의 꿈은 없어졌다. 우리의 무릎은 생각보다 오래 쓸수있었다.

카라쿠니타케 정상에서 보이는 경치, 주위에 온통 화산이라 정상에서 또 다른 화산구가 보인다.

다음산은 아소산

아소산이 있는 지역은 지형이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아소로 이동하는 뻐스안엔 남자친구와 헤어져 우울한 사람은 없고, 사진기 셔터를 정신없이 눌러대는 관광객만 있었다. 카라쿠니타케도 좋았지만, 장백산에서 본 천지와 비슷한 느낌이였다. 하지만 아소의 풍경은 상상초월이라는 단어가 이럴때 쓰는거구나 라고 이해가 가게되는, 애초에 상상해본적도 없는 풍경이였다. 아소지역은 화산으로 인해 화산구주변의 엄청난 면적의 땅이 밑으로 꺼지고 그 곳에 사람들이 모여 땅을 일구어 농사를 하고 소말을 방목하며 마을이 생기기 시작한, 화산구지대에 마을이 생겨난 아주 드문 사례라고한다. 장백산천지의 형성도 아소지역과 같은 이론(칼데라caldera)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다만 장백산은 해발이 높고 화산구주변에 물이 차 호수가 형성되엇지만 아소산은 화산구주변에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저멀리 보이는 벼락으로부터 땅이 꺼져 마을이 형성됨

메인 화산구인 아소산 주변에 봉긋봉긋 피어난 자가마한 화산구들
위 사진에 보이는 산봉우리는 아소산 화산구주변에 널린 자그마한 화산구들중 하나이다. 옛날부터 방복지로 쓰였다고한다, 여름에는 온통 새파랗지만 가을부터 초봄까지는 노오란 대지색으로 변한다. 재미있는건, 초원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2월에서 3월사이, 초원에 불을 놓아 나무들이 자라는걸 방지해 방목할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는것. 축목업은 아소지역의 아주 중요한 경제래원이므로 아소지역에서 중요한 행사중 하나이며 오랜 전통이고 문화이다. 3월말쯤에 아소에 가면 아마 새까맣게 타버린 초원을 볼수있지 않을까  (산불현장을 담은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0gn_2CT_IzA)

클라이막스는 큐슈에서 제일 높은 산-쿠쥬야마

큐슈 여행내내 호스텔같은 싸고 간편한데서만 숙박을 해결했는데, 설산을 올라야했기에 그 전날밤만큼은 산밑에 있는 꽤 괜찮은 호텔에 머물렀다 (정확히 5500엔/350원정도였다, 학생인 나에게는 큰 지출이였기에 기억하고있음). 조금 비싼 호텔의 대가는 상상 이상이였다. 혼자서 즐길수 있는 노천온천, 큰 창으로 보이는 산, 그리고 새벽에 문뜩 눈을 떳을때는 창밖에서 별이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고 나의 시야엔 오직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밤하늘, 아름다운 밤이였다기 보다는 온천도, 넓은 호텔방도, 아름다운 풍경도 함께 나눌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마음에 외로이 다시 잠이 들어야 했던 혼자 아름다운 밤이였다. 

등산하기전날 묵은 호텔에서 보이는 산

겨울에 해발 2000m가까이의 산을 오르는건 여러가지 주의해야할 점들이 있다. 해발 1000m이상부터 눈이 덮이기 시작하고, 날씨가 안 좋은 날엔 눈바람에 시야가 흐려져 길을 잃을수도 있다. 눈길에 젖지않기 위해 방수장갑과 부츠는 물론, 체온을 유지하기위한 철저한 장비와 체력도 필요하다. 연애가 끝난뒤, 사람들은 종종 고생을 사서하고 싶어져 겨울산을 오를지 모르겠지만, 평범하게 즐거운 매일을 살고있다면 굳이 겨울등산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어쨋든 5년전 나는 심리적고통을 초과하는 육체적고통이 필요했으므로 서슴없이 쿠쥬야마를 정복하기로 했다.

쿠쥬야마 정상으로 향하는 길6시간남짓이 가도가도 끝이 없는 설산을 누비고 산에서 내려왔는데, 추운 뻐스역에는 시간이 되어도 마지막 뻐스가 오지않았다. 산속이라 주위엔 마을도 사람도 없고, 날도 어둑해지는데 아무 속책없이 길가에 서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자가용차 한대가 내앞에 멈추더니 이제 뻐스도 없을텐데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물론 올라탓지만 머리속엔 온통 어디로 팔려가는게 아닐까하는 걱정뿐이였다. 태워주신분과 담담히 담소를 나누는척, 태연한척 했지만, 사실은 줄곧 휴대전화를 힐끔하며 제대로 가고있는지 위치확인을 하고있었다. 물론 나를 역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 그는 그저 아주 아주 친절하신 좋은 분이셨지만 히치하이킹은 아무나 할수있는게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산속에서 주먹밥두개를 먹은뒤 줄곳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는 쿠마모토(熊本) 시내에 돌아와 쿠마모토에서 제일 유명한 칵테일바로 갔다. 춥고 길었던 등산과 뻐스를 기다리던 초조함, 그리고 낯선 차를 얻어탔던 긴장감에 녹초가 되어잇었다. 그런 나에게 술을 만들어준 사람은 세계칵테일대회에서 챔피언도 햇던 사람, 금방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 좋아할만한 술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아래 사진처럼 길다란 막대기에 달린 용기로 세리(Sherry)를 멋지게 따라주셨다. 그리고 어울리는 안주로는 쵸콜릿을. 진득하게 강하지만 부드러운 세리와 씁쓸달콤한 쵸콜릿이 허기진 나의 혈관들에 스며드는듯 했다. 옆자리엔 도쿄에서 출장온 아저씨와 모델일을 하고있어서 안주는 못먹고 술만 마실수 있다는 예쁘게 나이든 아줌마, 그리고 족발을 뜯는 여자가 제일 섹시해 보인다는 바텐더와 오늘있었던 얘기, 만났던 사람들 얘기, 그리고 요즘 쿠마모토에서 있었던 얘기, 굳이 신선하진 않지만 충분히 편안하고 흥미진진한 담소를 나누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누구도 모르는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그래서 슬픔도 부끄러움도 없는 낯선 여행지에서만 가능한 큐슈에서의 마지막 밤이였다.

https://en.wikipedia.org/wiki/Venencia

그 뒤에도 세리를 찾아 마셔보았지만 아직까지 그 날 마셨던 술보다 맛있는 술을 맛보지 못했다. 챔피언의 손맛인건지, 아니면 내가 처한 상황들이 너무 치열해 그 한잔의 술이 더 찐하게 달콤햇던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남자친구와 행복한 요즘은 옛날처럼 술맛이 달게 느껴지지는 않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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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의 남자친구와 행복한 요즘은 옛날처럼 술맛이 달게 느껴지지는 않는것 같다… 힘들었던 시간도 가히 아무렇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 지금의 달달함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같아서 읽는이도 덩달아 흐뭇해집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누구도 모르는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그래서 슬픔도 부끄러움도 없는 낯선 여행지에서만 가능한 ” 소중한 큐슈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옛날에 이별을 하고 너무 힘들어서 무작정 제주도로 보름간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일래븐님처럼 산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거랑은 거리가 먼 전 그냥 바다보고 산기슭에서 산책이나 즐기기를 좋아했기에 아마 제주도를 선택한 거 같습니다. “이 커다란 산덩어리앞에서 나의 미련과 슬픔들은 그저 너무 소소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조금 부끄러워졌다.” 제주도에서 같은 느낌을 받았고, 다시 제주도를 찾게 된다면 그건 아마 사랑하는 사람들로 모여진 가족여행이 되지 않을 가 싶습니다. 아름다운 별밤이 빛나는 큐슈에서 일래븐님의 사랑이 넘치게 꽃 피길 바랍니다.

  2.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누구도 모르는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그래서 슬픔도 부끄러움도 없이 진정한 내적인 나와의 대화가 가능하게 하는게 여행의 맛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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