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무 위챗췬에서 [파친코]에 대한 토론이 열렬해지자 조선글버전을 구하지 못한 나는 아쉬운대로 중문으로 번역된 소설을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중문으로 보는지라 속도가 좀 느렸고 처음엔 몰입도 좀 늦었지만 선자네가 일본으로 건너간 다음에는 몰입이 되여서 꾸준히 보기 시작했다. 한주일에 걸쳐서 다 보았고 여운도 많이 남는 좋은 소설이였다. 기회가 된다면 조선글로 된걸 한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재일조선인이란 군체에 대해서 처음 안것은 조선방송을 통해서였다.  90년대초 그당시 북조선에는 다섯명의 미모의 여가수로 결성된 보천보전자악단이라는 음악단이 있었다. 그 음악단이 재일동포를 위해서 일본에 가서 공연을 하게 되였고 재일동포들속에서 폭풍인기를 얻었다고 하는것을 조선방송에서 듣게 되였다. 그땐 어렸는지라 재일동포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아버지한테 물었었다. 아버지는 간단히 전쟁시기 일본에 건너가서 거기서 정착하고 살고있는 조선사람들이라고 알려주었다. 

    그후로도 재일동포라는 말을 조선방송을 통해서 종종 듣곤 했었다.   [곡절많은 인생] [은비녀] 등등 조선영화에서도 종종 재일조선인의 삶들이 등장하곤 했었다. 물론 일본에서 어떠어떠하게 수모를 받던 조선인들이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였다. 물론 조선영화는 믿을것이 못된다. 진짜로 북조선에 돌아간 재일조선인 대부분이  행복하게 살고있었다면 이렇게 영화까지 찍어서 그들의 행복을 선전할 필요도 없을것이다. 오히려 북조선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박해가 있었고 세계적으로 안 좋은 여론이 있었기에 그걸 반박하기 위해서 이런 영화를 찍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파친코에서 서술한 조선에 돌아간 사람들이 박해를 받는다고 한 서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잘생긴 애국청년 김창호가 북조선에 돌아가서 죽었다고 하는건 정말로 슬픈 일이지만.

   내가 일본에 있을때 우리 학부에도 재일조선족 4세가 있었다. 그 애는 일본 성을 안 썼던 기억이 난다.  이름은 [리 아키노리], 조선말 이름은 [리명철이]였다.   꽤 잘생겨서 우리 학부에서 인기가 있던 애였는데 자기가 재일조선인 4세라는것을 속이지 않았으며 스스럼없이 얘기했었다. 어릴때부터 일본학교를 다녀서 조선말은 [안녕하세요, 전 리명철입니다]를 빼고는 할줄 몰랐다. 이 한마디마저도 발음이 이상했다. 그때는 2005년 정도인지라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적어졌을때라 보아진다. 적어도 이 명철이라는 아이가 학교에서 다른 일본애들한테 배척을 당하는것은 보지 못했다. 3학년때부터 취직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명철이는 취직도 쉽게 하였었던거 같다. 무슨 회사에 취직이 된건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파친코회사는 아니였다.

  소학교부터 대학까지 줄곧 조선학교에 다니고 지금 총련에서 일한다는 여자애도 만나본적 있는데 그애도 일본사회에서 배척을 당했다는 소리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파친코 소설에서는 조선인들이 그렇게 수모를  받았다니?  뒤에서는 타인의 험담을 하여도 앞에서 대놓고 누구를 욕하지 않는 일본사람들의 특성상 대놓고 [니 몸에서 김치냄새가 난다],[죽어라] [너희들의 나라로 돌아가라] 하는것은 상대를 상당히 얕보았고 상당히 싫어했음을 알수 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흐르고 조선반도를 직접 지배하던 일본인들이 다 이세상 사람이 아니니 조선인4세, 5세 에 대한 수모 멸시가 적어졌겠지만 70년대까지는 자기들이나 자기네 아버지세대들한테 지배당한 조선인이 자기네들보다 한레벨 낮은 인종이라고 생각되였을것이다. 

  이 소설에서 재일조선인이라는 신분때문에 제일 고생한건 노아와 모세 이 형제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들의 부모세대인 선자와 경희도 일본땅에서 모진 고생을 하였다.  그녀들은 조선에서 태여나고 자라서 일본에 올때 일본사람과 확연히 달랐다. 선자는 일본에서 몇십년 생활한 후에도 일본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기에 일본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그들이 일본사람들한테서 차별의 시선을 받는것은 어느정도 추측이 가능한 일이였다. 

  하지만 노아와 모세는 일본에서 태여나 일본말을 하면서 자랐으며 일본에 대해서 잘 안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누구도 이들이 일본사람이 아니라는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이들은 일본인과 똑같다. 하지만 그 출신때문에 이 두형제는 유치원때부터 주위사람들의 수모와 멸시를 받았으니 그들의 마음속의 상처가 어느정도인지는 가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 수모와 멸시를 이겨내고 떳떳이 살기 위해서 노아와 모세 두 형제는 다른 방향으로 제가끔 노력을 한다. 노아는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해서 모든면에서 일본인들을 초과해서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모세는 주먹으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도 일본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편견을 깨지 못했으며 노아는 결국은 그 신분을 감추려 했지만 감추지도 못하고 죽음을 택한다. 모세는 일본인들이 경멸하는 일을 하여 부를 축적했지만 그래도 일본인들한테 있어서 그는 더럽고 조폭한 조선인일뿐이다. 심지어 부유한 집에서 태여나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고  미국유학까지 한 엘리트  쏠로몬조차도 재일조선인이라는 신분때문에 일본회사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리용과 배신을 당한다. 하지만 쏠로몬은 큰아버지인 노아와 달리 조선인이라는 신분을 저주하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것이 아니라 벗어날수 있는 조건이 있음에도 조선인신분을 받아들이고 일본에 남아 떳떳한 조선인으로 살기로 한다. 이 소설을 보면서 내내 가슴이 아프다가 이 대목을 보면서 돌연 위안을 받았다. 일본인중에도 하루키 하나코 에츠코 등 재일조선인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으니 일본인전체를 부정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인 모세는 일본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한번도 법을 어긴적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줬으니 일본사람들의 평가와 관계없이 떳떳하다. 이 구절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재일 조선인 3세에 와서 드디여 자기의 위치를 찾은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소설에는 조선인3세까지 나오고 끝났지만 내가 류학시절 만났던 재일조선인 4세인 명철이는 자기의 신분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 소설의 결말과 묘하게 어울렸다. 

  이 소설에서 가슴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제일 가슴아픈 사람은 노아이다. 사실 노아는 제일 이해가 안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기의 목숨을 버릴만큼 그 신분이 싫었던걸가? 자기의 조선인신분을 저주할게 아니라 그 신분을 경멸하고 짓밟으려 하는 일본사람들한테 분노해야 되는게 아닐가? 또 아니면 노아가 싫었던건 재일조선인 신분일가? 아니면 악당인 고한수의 아들이라는 점이였을가?

  이 소설에서 또 한명 가슴아픈것은 경희였다. 선자 또한 많은 고생을 하고 아들도 한명 잃었지만 선자는 여자로서 얻을수 있는 많은것도 얻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며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고 아들 손자들의 존경도 받으면서 살았다. 하지만 유순하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전통적 조선여인 경희의 삶은 어떠했는가? 아이 한명 없이 한평생 남편만 바라보면서 살아왔다. 남편의 고집때문에 선자가 오기전에는 하고싶던 일도 못했으면 남편에 대한 충성심때문에 멋진 애국청년 김창호의 사랑도 외면해야만 했던 불운의 여인. 자기가 하고싶은걸 명확히 알고 싫은건 과감히 싫다고 하는 신세대 여성인 재미교포 菲芘와 비하면 경희는 너무나도 자아가 없는  한생을 보냈었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경희가 현시대 여성이였으면 그녀는 더 멋진 삶을 살지 않았을가?

    파친코를 보면서 드는 또 한가지 생각은 우리 증조할아버지네가 두만강근처에 살았던게 다행이고 두만강을 넘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였다. 적어도 우리는 중국에서 재일동포들이 겪었던 수모 좌절 실망을 경험안해도 되였으니까. 예전에는 못느꼈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니 조선족들이 깨끗하고 문명하다고 얘기해주는 연변한족들한테 감사하다. 조선족들과 잘 지내려고 어설프게나마 연변사투리를 쓰는 한족장사군들이 더없이 고맙다.

  

    파친코를 읽은 여러분들의 감상은 어떠했는지요? 제일 좋은 사람은? 제일 가슴아픈 사람은? 제일 안타까웠던 사람은? 제일 싫은 사람은? (참고로 전 별로 싫은 사람은 없답니다. 고한수도 싫지 않네요. 어떤 면에서는 꽤 매력적이니까요. 꼭 한사람 찍어라면 요셉이 좀 짜증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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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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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췬 덕분에 오랜만에 긴 소설 하나 완독했네요^^노아가 제일 충격이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가장 노아스러운 앤딩이었던것 같습니다. 차에서 지켜보면서 스치라는 고한수의 말을 듣지 않은 선자가 미웠고 엄마라는 명의로 고작 사랑하고 보고싶었다는 이유로 와세다 대학도 포기하고 낯선 도시에서 숨어 살기로 선택한 아들의 인생에 무턱대고 나타나는 선자를 보면서 가끔은 모성애를 빙자한 사랑이 얼마나 지독하게 폭력적일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노아는 방 서랍에 늘 총을 두고 있었겠지요. 일본인이라고 거짓말로 시작한 생활이 얼마나 갈지는 선자의 선택에 있었고 낳아주고 키워준 엄마였으니 불평 한마디 없이 그런 선택으로 자신이 한 거짓말을 책임지는 것 같아서 슬펐습니다…

    1. 선자가 노아를 불렀을때 도망치거나 아니면 불쑥 나타난 엄마한테 분노하거나 이 두가지 반응일거라고 생각하면서 내리 읽었는데 너무 고분고분해서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때 이미 죽음을 결심했기때문이였네요. 선자가 좀만 더 아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야 되는데. 하여간 너무 충격이였습니다.
      노아는 너무 착하구 너무 완벽해서 더 가슴이 아픕니다. 고한수의 아들이면서 그 강한 성격을 닮았으면 다른 결말이였겠는데 키워준 아버지의 여린 성정을 닮았죠.

  2. 소설은 읽지 못했고 드라마도 못봤지만, 이렇게 잘 정리된 소개, 줄거리를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한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글 마지막 부분에서 “연변한족들한테 감사하다. 조선족들과 잘 지내려고 어설프게나마 연변사투리를 쓰는 한족장사군들이 더없이 고맙다.” 이 구절이 와닿네요. ㅋㅋ 연변의 한족들은 참 친절했지요. 대부분 비즈니스하는 장사군들과만 대화해봐서 였을까요? ㅋㅋ

    1. 소설은 좋습니다. 29만자로 좀 길긴 하지만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근데 드라마는 추천못하겠습니다. 제가 2집까지 보다가 갈피를 못잡아서 그만두었습니다.
      연변의 한족들 좋죠. 장사군들뿐아니라 우리 마을에 있던 농사를 짓던 한족들도 참 친절했습니다.

  3. 아주 똑 뿌러지게 썼네요 … 저도 독후감을 쓰고 싶었는데, 서리꽃님이 앞장섰군요 ^^ 4세 재일조선인을 곁들어서 쓴 내용이 새롭고 신선합니다. 저는 고한수가 멋있습니다. 고한수가 나타나면서 선자와 주변사람들을 계속 지켜줬고, 선자를 끝까지 사랑했던 한 고한수! 최종 황혼결혼까지 했었더리면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다는 …

    1. 비의 가을님도 꼭 독후감을 쓰세요. 여러분들이 이 소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고싶습니다.
      4세 재일조선인에 대해서 쓴걸 좋게 봐주셨네요. 다른 중국류학생들은 그 명철이란 애를 그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던데 전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더군요. 그애도 다른 중국애들보다 저를 친근하게 대해주는거 같았구요. 이 소설을 보면서 자연스레 그애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고한수가 싫지는 않네요. 성공인사죠. 근데 좀 폭력적인 면은 피하고싶어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아닙니다.

  4. 가장 안타까운건 노아죠.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인물이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 있는 그대로의 자신, 원초적 자아를 부정함과 동시에 파멸이라는 결과를 예정해둔 것 같습니다.

    가장 좋아한 인물은 한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가 떠올랐어요. 생존을 위해 불법적인 일도 서슴치 않는 강하고 똑똑하고 위험한 남자, 게다가 잘생겼어… 그러고 보니 해방일지 구씨랑도 닮은 듯 하네요~^^

    1. 저도 노아가 제일 가슴아픕니다. 강한 친아버지의 성격을 닮았으면 결과는 달랐겠는데.

      한수는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죠. 선자에 대해서도 진심이였고. 더구나 드라마에서는 이민호가 연기했었고. 해방일지 구씨를 퍽 초과하는 우수한 남자라고 말하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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