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노래인데 들으면 굉장히 벅차거나,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뭔지 전달되는 감정선이 흐릿한데 이상하게 빨려들거나, 딱히 한눈에 들어오는 미모는 아닌데 볼수록 헤어나오기 힘든 사람이거나, 무심코 스쳤는데 되돌려 생각하면 할수록 묘한 사건이거나. 

이런 것들은 잘 잊혀지지 않을뿐더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내 안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신선한 충격과 특유의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중 몇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연극 하나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도 아니고 누구나 보기 좋아하는 알라딘, 라이언킹도 아니다. 

관객이 직접 연극에 투여되여 배우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면서 관람하는 방식이란다. 뭐지? 신박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가자고 하는 사람도 이 연극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관객이 연극에 참여되면서 연극내용도 보는 순서나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니 그날 가서 보자는거다. 뭐 나도 깊게 생각 안했다. 별로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았고 보면 알겠지 싶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잘한 게 나는 이 뮤지컬을 보러 가기전에 여기에 대한 아무내용도 검색하지 않았고  심지어 관람방식만 특이한 줄 알았지 무슨 연극인지도 전혀 감히 잡히는 않는 상황에서 간 거 였다. 이게 내가 오늘까지도 이 연극이 나한테 보편성을 벗어나게 해준 이유인 거 같다. 

빈 백지상태로, 그 어떤 마음의 준비도 없이, 해맑게 연극보러 간 것. 

충격 그 자체였다. 

들어가자마자 음산한 분위기가 엄습했고 첨엔 잘 못 들어온 게 아닌가 싶었다. 지나치게 몽롱한 분위기, 처음 들어보는 재즈 음악, 부자연스러운 사람들, 그리고 지극히 어두운 톤의 내부환경.. 빨간 천을 두른 요상하게 화장을 한 여자가 앞에 앉아봐라고 하더니 카드 한장을 뽑아란다. 

그 카드는 내가 연극에 들어갈 입장순서표였다. 뭔가, 어딘가 문을 잘 못 열고 들어간 거 같은데 돌아갈 길이 없다는 초조감이 맴돌았다. 조금은 이상한 세상에 들어온 으스산한 느낌. 이때, 나비넥타이를 한 조각같은 남자가 느닷없이 흰 가면을 내 손에 건네준다. 설마.. 

그 가면을 쓰는 순간 나는 이미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었다. 이 엘리베이터는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걸까? 나랑 똑같은 가면을 한 수많은 가면들이 서로 무표정하게 어둠속에 떠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심장박동수가 과하게 뛰기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어도 잘 안 통하고 어디로 뭘 하러 가는지도 모르겠는데 일단은 소리를 낼수가 없단다. 지금부턴. 

대신 이 규칙만 지킨다면, 당신들은 이 백개의 호텔 객실에서 뭐하든 자유라고 한다. 

왓? 백개의 호텔 객실? 현기증이 났다. 엘리베이터가 이제 고작 2층인데 서서히 문이 열리더니 우리보고 나가라고 한다. 오, 여기서 내리나 보다 했다. 문 바로 앞에 선 내 친구가 먼저 나갔고 나도 뒷따라 내리려 하는데, 갑자기 규칙을 설명해주던 남자가 내 팔을 확 잡아당긴다. 

나는 다음번 문에서 내려란다. 내 순서는 다음번 문이고 넌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뭘까? 생각도 채 못했는데 문은 사정없이 닫혀졌고 나랑 친구는 그렇게 순식간 분리됐다. 황당한 분위기에 압도된 나는 결국 아무말도 못하고 혼자 3층에서 내려졌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가는 걸까? 원래 한명씩 한층에서 내리는걸까? 그럼 이 건물은 토탈 몇층일까? 그냥 뛰쳐나오고 싶단 생각도 몇초 들었다. 하지만 나는 출구를 모른다. 그리고 내가 내려진 곳은 어떤 무덤 앞이었다. 뽀얀 안개가 무덤을 휘감고 있었고 좀 떨어진 곳에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울고 싶었다. 친구도 잃었고 무덤앞에서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혼미했다. 황량한 깊은 산속에 버려진 새벽공기를 마시는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용기를 냈어야 했다. 일단 내 친구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이 안에 모든 관객들이 가면을 하고 있었고 건물도 여러층인데다가  모두가 무질서하게 유동하고 있어서 쉽지가 않았다. 

칠흙같은데를 막 걷기 시작했는데 발 밑에 뭐가 걸리적 거리는거 같기도 하고  앞에 어떤 사람이 내쪽으로 정신없이 질주해오고 있었다. 정신병자 같은 컨셉으로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나 혼자였다. 나를 향한 방향이었다. 총체적난국이다. 하아..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사람을 주시했다. 더 이상 두려움에 떨 심적여유가 없었다. 일단 저 사람부터 피해서 사람들이 많은쪽으로 달려야 했기때문이다.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겠단 생각을 하면서 분노를 일으켜봤다. 짧은 시간내에 나한테 담량을 키워줄수 있는 감정은 오직 분노였다. 맞짱 떠보잔 맘으로 질주하는 사람을 정면으로 마주보면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거의 얼굴이 맞닥칠 거리까지 좁혀지니 그 사람이 휙하고 나를 가로질러 좁은 복도로 뛰어내려간다. 식은땀이 났다. 살았다..

수많은 가면들이 알짱거리는 그 곳에 뛰어간 나한테 더 큰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차릴 틈을 안 준다. 페기된 병동같은 객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몇십개의 허줄한 침대와 곳곳에 널부러진 인형들, 얼키설키 걸려있는 링거들, 쉽게 눈에 띄는 도처의 피자국…이건 뭐 공포체험 하려고 온 곳인가! 침대위 인형이 갑자기 뛰어와 나한테 말을 걸거 같았고, 나는 잡을수 있는 손이 없어서 혼자 두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나는 사실 이제야 감을 잡았다. 어떤 형식의 연극인지, 그리고 앞으로 난 이속에서 재미를 찾아야 하고 여기에 빠져있어야 함을. 

하나씩 녹쓴 침대를 스치며 나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모여있는 방을 찾아갔다. 확실히 거기선 어떤 두 배우가 노출이 좀 된 상태로 서로 부등켜 안고 있었다.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였고 서로 실타래기처럼 칭칭 감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허위적거리는 그들 모습은 어떠한 행위예술을 보는 느낌이었다. 난해하고 이게 이 스토리의 어느쯤의 내용인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무대가 따로 있는게 아니여서 나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을 볼수가 있었다. 진짜 거의 손닿을수 있는 거리였다. 또 대사가 없기에 완전히 얼굴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배우들이 표현하고자 하는걸 추측해야 했고, 이야기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주요장면들만 내가 도착하는 순서나 뒤따라가는 순서로 보여지기에 시공간을 막 뒤어넘어 기억속의 흔적들로 흩어진 퍼즐을 마춰가는 느낌이 들었다. 신선했다. 나는 갑자기 흥분되는 거 같았다.

나는 막 배우들을 따라 후다닥 위층으로 뛰어올라가고 이방 저방 들쑤시면서 자유로운 영혼이 된 것마냥 나름 즐기고 있었다. 언뜻언뜻 내 얼굴옆에 떠있는 가면들도 드뎌 상투적으로 느껴졌고, 배우들의 모습은 단지 처절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사전 조사가 없었기때문에 난 이 뮤지컬이 무슨 내용을 말하고자 하는지 완전히 알수가 없었다. 일도 모르겠더라. 

그러니까, 왜 저런 장면이 있고 이런 셋팅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가 막 의미부여를 하면 된다는 꽤 괜찮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본게 내가 이해하는거고 내가 이해하는게 이 순간에 빠지는 다 인거다. 그것들이 전부요소다. 온전히 느껴지는 내 감정에 온 신경을 다 곤두세워 충실하고 싶어졌다. 

이때 한 여자가 내 손을 잡더니 어떤 방에 끌고 들어간다. 나는 누구한테 이끌려 당겨지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누군가 내 손을 잡아줬다는 게 내가 이 연극의 묘미인 관객과 배우의 소통에서 짜릿함을 느낄수 있는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우다다 내 뒤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속에서 나는 내 친구를 다시 찾았다. 우린 얼떨결에 상봉했고 말을 할수가 없었기에 그저 툭툭 서로 어깨를 쳤다. 다행이다, 이젠 혼자가 아니다.

그 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가히 살벌했다.

살인하는 장면과 목 매달아 처형되는 장면이었다. 아까 파격적인 노출씬보다 이건 좀 슬펐다. 왜 처형당하는가? 입은 옷이나 늠름한 표정으로 보아하니 왕 같다는 위엄도 느껴지고.. 왕의 죽음으로 뭘 말하려는 걸까? 그 속에 서있는 나는, 마치 한편의 소설을 보고 있는데 그 소설속의 가상의 공간으로 나를 훅 넣은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나는 그 가상의 공간에서 내가 쫓고자 하는 걸 쉼없이 쫗아가고 그 끝은 보이지 않는 아득함이었다. 이 층은 내가 내리던 무덤이 있던 그 층이 아니다.

아마 한계단 내려갔거나 두계단 올라갔거나. 

옆에서는 한창 무도파티가 진행중이었다. 선남 선녀들이 서로 리듬있게 발폭을 마춰 춤을 추고 있었다. 돌면 크게 퍼지는 치마를 입고, 어둠속에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휘리릭 휘리릭  춤을 춘다. 치마결이 내 살을 스치고 얼른 비켜서지 않으면 내가 다칠거 같다는 위협감도 들었다. 춤 쟝르는 우아한 거 였지만 춤 사위는 과격하고 힘 있었다. 

몇층을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시간이 얼마 흘렀을 까 꽤 오래 흘렀다고 느꼇을 쯤에 나는 아까 봣던 똑같은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연극은 한번 플레이 되는 게 아니다. 몇번을 반복하면서 관객들이 처음에 따라갔던 방향이 아닌 다른 흐름을 선택했을 때 보여지는 또 다른 시각을 두루 체험할수 있도록 만든거였다. 대박이다. 파격적이다. 

이 연극은 어떠한 욕망에 관한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봤던 장면들은 다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감을 주었고, 배신감, 절망, 처연함 이런 비극적인 요소들이 더 많았던 거 같다. 

깜깜한 복도의 벽을 더듬어가며 간신히 나온 나는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출구를 도저히 찾을수가 없었다. 무한 반복 플레이 되는 게임안에 갇힌 야릇하고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안 되는 영어로 보안직원한테 다급한 척 물어봐서 그제야 나오는 문을 찾아 나올수 있었다. 

칙칙한 미궁 같았다. 그 미궁속에서 빠져나오니 아까봤던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에 겹치고 스쳐지나가더라. 나와서도 나는 이 연극이 무슨 내용인지 무슨 제목인 지 그때까진 잘 몰랐다. 왜냐면 친구가 티켓팅을 했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맨하튼 첼시마켓 근처에 있는 6층짜리 호텔 전체가 공연무대인  Sleep no more 이라는 공연이었다. 

영국회사에서 기획한 공연이고 세익스피어의 맥 베스를 스토리 라인으로 한거였다. 뮤지컬이라 하지만 어떠한 발레쇼나 춤 공연, 예술쇼 등 다양한 쟝르가 믹스된 거 같아서 정말 특별했던 경험이었다. 

연극을 다 보고, 밖에 나온 우리는 미치게 배가 고팠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날 밤, 우린 맛있는 걸 참 많이도 먹고 또 먹었다.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허기지고 설레고 벅차고 후즐근했다.

저 때가 2017년이니까 5년전에 본 연극이라 그 기억이 많이 옅어지고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그 체험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우리의 인생은 저 가면뒤에 가려진 욕망과 사랑 그리고 덧없음을 많이 닮아있는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잠 못드는 수많은 밤이 찾아와 괴롭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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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사는 여니

별거아닌 생각, 소소히 적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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