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 가면 들리는 내가 좋아하는 가게안. 눈빛에 초점이 없거나,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아저씨들. 그들은 와이프 쇼핑을 기다리는, 이 지점과는 아무런 교집합이 없어보이는 귀여운 사람들. 그래도 그들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 인생 동반자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임을 경직된 몸으로 표현하는 같아서. 

연말이 되면 특히 눈에 자주 띄는 시티속  삼륜차. 저 안에 글귀를 봐. 래츠  파티!  손님이 탑승하면 신나는 음악도 공짜로 틀어주고 즉흥적인 추임새도 넣어주면서 거대한 파티 현장에 온 듯 탠션을 높여줌. 결과가 어떻든 일년동안의 피로는 이대로 잊자구나. 지금 우리는 파티중. 

무슨 시위인지는 모루겠으나, 겁나 장엄함. 왜 시위하는지는 모루겠으나, 겁나 진지함. 그래, 시위도 하고 불만도 표출하고 자유도 민주도 웨쳐야지. 살아있음을 증명해야지. 늘 분주한 이 십자가. 사람 정말 많다, 인생 정말 다양하게 산다, 세상은 재밌다. 

뉴욕공공도서관 정문앞. 남자분이 여자분을 성심성의껏 사진 찍어줌. 여자분은 책을 가슴앞에 들고 활짝 웃으면서 이 순간을 기록함. 무슨 책인지는 감이 안 잡히지만, 한 열장 찍었는데 책은 카메라에서 제외된 적이 없음. 남자분은 사진이 마음에 들게 나왔는지 초조하고, 여자분은 책이 이 건물이랑 본인 표정이랑 조화로운지 체크중. 

연말이면 늘 찾는 공공도서관. 나는 여태껏 여기를 한 열몇번은 넘어 온 거 같음. 그냥 도서관이란 자체가 오고 싶음. 브라이언 파크랑 붙어있는것도 번마다 오게 되는 이유 중 하나임. 정작 여기서 책을 빌려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음. 푸하! 연말이면 안에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도 있고 낭만적인 촛불 장식도 있음. 그냥 영화같아, 이 안은. 언제나. 

들갈때도 나올때도 아저씨 포즈 똑같애. ㅎㅎ 뭐를 저리 똑같은 자세로 하고 있는거야. ㅋㅋ 모자도 신발도 너무 귀엽다. 당당하지 못하게 젤 구석에서, 주변을 힐끔거리며 방송하는 게 그중에서 젤 귀여워. 

시대를 거슬러 간 것 같은 식탁보. 귀여운 크리스마스 레드 네일로 완성된 작고 통통한 손이 다망하게 움직이는 올드 타자기. 네일이랑 어울리는 코트 안 빨강 스워터. 앞머리마저 곱슬임.  연말 축복을 적고 있는걸까? 연말이니까 보고싶은 사람한테 편지를 쓰는걸까?

뱅크시의 그 유명한 그림. 풍선과 소녀. 미술의 상업화를 반대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화제가 됐던 그림. 이렇게 곳곳에 널려 있지만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그림. 그 누구도 단 돈 1불 주고도 사지 않는 그림. 진짜 뱅크시 그림일수도 있잖아. 그런 적도 있었잖아. 그래도 안 사. 현실은 이렇게 풍자적인거야. 그래도 풍선을 놓치지 말아야지. 풍선은 희망이잖아. 

팔도 으쓱 움직여보고, 리듬도 타보고, 뒤돌아도 보고. 연말이라 아들 뎃고 시내돌이 나온 아빠가 찰칵찰칵 하느라 바쁨. 이런 순간들이 어느 순간 인생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저 아빠를 살리는 사진이 되겠지? 아가야, 표정이 풍부해서 다행이다, 아빠가 좋아하겠네. 

이 아저씨 캐롤 노래랑 완전 혼연일체. 음악을 이 사진에 넣어 동시에 보여줄 수 없는 게 아쉬움. 10분동안 홀린 듯 이 아저씨만 바라봄. 이 낭만적인 연말에 온갖 행운이 내 몸에 촤르르 쏟아져내리는 마법같은 시간이었음. 그 10분동안 분명 내 표정은 웃고 있었을거임. 인생 별거없네. 아저씨가 말해줌. 

잘 생긴 두 소년. 너무 잘 생겨서 멍하니 바라보다 뒷모습만 찍음. 편한 옷차림, 젊음이 가득한 싱그러운 미소, 대수롭지 않게 운동복 바지에 넣은 두 손. 무슨 얘기를 그렇게 즐겁게 주고 받으면서 이 이모를 이토록 심쿵하게 만드는거니. 눈이 즐겁. 맘이 정화됨. 

록펠러센터 앞 스케이트장. 수많은 영화에서 남주가 여주한테 고백하던 장소. 오늘도 어김없이 낭만적이구나. 축복같은 하얀 눈이랑 어울리는 표정들, 함께 손에 손잡고 앞으로 쑥쑥 달리는 쾌감, 끊이질 않는 시끌벅적함속의 웃음소리. 평안하군. 

아직도 이런 풍선을 사는 커플이 있을가. 아저씨는 장갑을 하고 열심히 풍선만들기에 여념없음. 오잇? 바로 어떤 남자가 와서 하나 사감. 옆에 여자는 없었음. 앗, 이거 사들고 뛰어가서 록펠러센터 스케이트장에서 기다리는 여친한테 주면, 사랑이 이루어지겠지? 풍선속 핑크장미 너무 예쁨. 사랑이라는 환상과 아름다움과 설렘에 포위 된 공주같아. 

브라이언 파크는 연말 소시장. 훈춘 서시장이 그립. 겨울에 엄마 아빠랑 셋이 가서 더러운 양꼬치도 먹고 오징어쵈도 먹으며 입김 홀홀 하던 기억이 뿜뿜. 북적이는 사람틈으로 보이는 이쁜 아가씨. 나도 저렇게 앉아서 연말을 같이 보낼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은 주말에도 일하거나, 쉬는 날도 맨해튼 나가는 걸 질색함. 아쉽. 

아찔한 몸매의 소유자인 언니들이 화려한 스타일의 룩을 하고 뉴욕 연말 길거리를 장식함. 그림인데도 너무 멋짐. 뉴욕이랑 어울림. 이제 하우스를 사면, 저런 그림 몇점 사다가 걸어야겠음. ㅎㅎ. vogue에 표지모델로 실리면 기분이 어떨가? 늘 하는 상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취미. 꿈을 이루는 첫시작이 될수도. 

저물어가는 하루의 끝자락. 삭스에서 하는 등불쇼를 보고, 집으로 총총. 작년 등불쇼랑 많이 달라짐. 작년, 재작년  다 비슷했던 거 같은데, 올해는 아예 다른 스타일로 하는 듯. 기다려 보기 잘했음. 당연히 같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밖으로 같지 않아 득템한 기분. 초생달쪽으로 발걸음을 빨리 해야겠음. 집으로 가는 방향임. 

길거리 포차. 저 꽈배기처럼 생긴 애는 맛없음. 군밤은 맛잇음. 근데 많이 먹음 목이 메어 거의 사지 않음. 물병을 또 하나 들기 귀찮음. 누군가 물병을 들어주면 한봉지 살거임. 목이 메도록 먹어볼거임. 겨울에 사 먹음 진짜 맛있긴 하겠네.

앗, 사진 찍다가 걸림. 둘이 너무 손을 꼭 잡고 있길래, 이뻐서 슬쩍 찍으려다가 들킴. 장갑이 필요없는 나이. 춥지 않은 시절. 여자애 목걸이 하트임. 청바지에 셔츠, 청바지에 패딩. 패딩 남자꺼 같은데. 어깨사이즈 보면. 연말영화의 주인공들 같아. 사랑스럽. 

뭐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이올린이랑 첼로가 동시에 등장. 1딸러를 놓았더니 바이올린 켜는 여자애가 그냥 나한테 웃으면서 윙크를 날림. ㅎㅎ 사회적이네. 첼로 키는 여자애는 너무 피곤해보임. 하기 싫은데 하나봐. 될수 있다면, 커서 오페라극장에서 다시 봐. 

동화속에 온 거 같음. 연말 분위기 물씬. 아기자기한 잡동사니들이 온천지. 연말이 희망적인 이유. 난 연말이 또 하나의 새해 같아.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 같음. 그래서, 무척이나 희망적임.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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