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신랑과 신부는 금강석 반지를 교환하겠습니다.”
주례자의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금강석 반지’라는 말에, 여느 신부들처럼 다소곳이 그리고 여러 감정으로 울먹이고 있던 신부는 그만 ‘풋’하고 웃어 버리고 말았다.

이는 십수 년 전 중국 연변의 한 결혼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인 주례자의 중국조선어식 어휘 선택은 신부를 포함해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울려다 웃은 그 신부는 바로 필자였고, 그 결혼식의 주례자는 평양과기대 설립 부총장을 지내시고 현재 포스텍에 계신 정진호 교수님이셨다. 조선족인 신랑과 신부, 그리고 대부분이 조선족이었던 여러 하객을 배려하고, 진정 소통하고자 하셨던 주례자의 사려 깊은 언어 선택이었던 것이다. 때는 2000년대 중반이었으니 남한의 ‘다이아몬드’를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서는 한자어인 ‘금강석’을 표준어로 하고 있었고, 한국과의 교류로 ‘다이아몬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던 때였다.

서울말이든 경상도 말이든 남한 말을 익히고 사용하려는 조선족은, 필자를 포함해 많고 많지만, 반대로 필자가 만난 남한 사람 중에 중국조선어를 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정 교수님이 유일했다. 한국인이 다수이고 조선족이 소수인 한국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다수가 조선족이고 한국인이 소수인 중국 연변에서조차도 정 교수님 말고는 그런 남한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전라도, 경상도 등 지방 출신들이 서울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서울 사람이 지역 방언을 하는 경우는 드문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매우 다른 데가 있다. 서울말이 남한에서는 표준어이지만, 북한과 중국 조선족 사회에는 그들의 표준어가 따로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근대 국가 수립과 동시에 표준어를 정했는데, 다민족·다언어 사회에서는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그중 하나 이상의 언어를 공용어로 정하고(예: 인도의 힌디어와 영어), 단일민족·단일어 국가들에서는 한 언어의 여러 방언 중에서 주로 수도권의 언어를 표준어로 정한다. (예: 대한민국의 서울말) 그런데 우리말에는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른 표준어가 세 가지나 있다.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 남한의 “표준어 규정” 총칙 제1항

“조선말발음법은 혁명의 수도 평양을 중심지로 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하여 이룩된 문화어의 발음에 기준한다.”
– 북한의 “문화어발음법”의 총칙

“우리 나라(중국) 조선족 인민들에게 널리 쓰이고 조선말 발음법칙에 맞는 발음을 가려잡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중국조선어의 “조선말 표준발음법”의 총칙

위에 보인 것은 남북한과 중국조선어의 어문 규범 중에 표준어 내지는 표준어 발음에 관한 규정이다. 남한은 특정 시기(“현대”), 특정 지역(“서울”)의 특정 사회 집단(“교양 있는”)의 말을 표준어로 정했다면, 북에서는 언어의 특정 사용 지역(“평양”)을 표준 발음의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주요 사용자 집단(“조선족 인민”)과 언어학적인 적격성(“조선말 발음법칙에 맞는”)을 표준 발음의 근거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세 나라 또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과 글은 같은 언어이지만 발음에 차이가 있고, 쓰는 어휘도 일부 다르며, 오랜 물리적인 단절과 서로 다른 체제로 인해 실제 언어 사용의 관습에서도 더러 차이를 보인다. 쓰는 글도 띄어쓰기나 사이시옷(나뭇잎/나무잎), 두음 법칙의 적용(노동/로동), 외래어의 표기(트랙터/뜨락또르) 등에서 다른 점들이 두루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 표준이든, 또는 말하는 이에게 어떤 표준이 익숙하든, 남한의 방송에 나오는 탈북자나 조선족들은 일률로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며 서울말을 하려고 애쓴다. 남한 방송인들은 이경규, 강호동 등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신 지역이 어디인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거의 서울말을 유창하게 한다. 사회언어학 연구에 따르면, 이처럼 주변 지역의 방언 사용자가 사회·경제·문화 중심지의 언어 또는 표준어를 선택해 사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다. 우리말에 세 가지 서로 다른 표준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30년간 중국 조선족, 탈북자들이 남한말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남한의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 문화적 영향력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올 초 북에서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이라는 것을 제정해 남한말의 영향을 차단하고자 하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 법은 “괴뢰말투를 쓰는 현상을 근원적으로 없애고 비규범적인 언어요소를 배격하며 온 사회에 사회주의적언어생활기풍을 확립하여 평양문화어를 보호하고 적극 살려나가는데 이바지”(제1장 제1조)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적고 있다. 이어서 제2조에서는 “평양문화어는 우리의 고유한 민족어를 현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킨 가장 순수하고 우수한 언어로서 우리나라 국어인 조선어의 기준”이나, “괴뢰말은 어휘, 문법, 억양 등이 서양화, 일본화, 한자화되어 조선어의 근본을 완전히 상실한 잡탕말로서 세상에 없는 너절하고 역스러운 쓰레기말”이라고 하며, 남한말의 사용에 비판적이고도 방어적인 태세를 취한다. 아마 북한 내에서도 중국 방문 등을 통해 남한 드라마, 대중가요 등을 접촉하는 주민이 늘면서 남한 말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언어를 ‘지역 방언’이라고 한다면, 같은 지역 방언 안에서도 사용자 집단의 연령, 성별, 사회적 계층 등에 따라 다른 ‘사회 방언’이 존재한다. 지방 출신들이 경제, 문화 중심지의 언어인 표준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따라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은 사회 방언에서도 관찰된다. 윌리엄 라보프라고 하는 미국의 언어학자는 지난 세기 60년대에 미국인들이 사회 계층에 따라 ‘r’ 등의 영어 발음이 다르고,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표준 발음을 사용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해 재미있는 실험을 한다. 실험은 뉴욕의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이 가는 백화점을 각각 방문해 백화점 점원들에게 잘 설계된 질문을 하고 그들의 발음을 기록하여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4층에 있는 어떤 상품이 어디 있냐고 질문하면, 점원들은 ‘r’이 두 번 들어가는 ‘fourth floor’라고 답하기 마련인데 이때 ‘r’ 발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가설은 적중하여 상류층일수록 ‘r’ 발음을 길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 흥미로운 발견은, 백화점의 점원들조차도 본인의 사회 계층과는 무관하게 백화점을 찾는 고객 집단과 동일하게 발음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회 계층에 따른 사회 방언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선망하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회 집단의 언어를 따라 하면서 본인의 위세를 그들과 같이한다는 것이다.

사실 남한에서 표준어인 서울말은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방언처럼 서울이라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이긴 마찬가지이지만, 그 사용 지역이 정치·경제적 중심지라는 프리미엄과 함께 표준어로 규정되면서 그 가치가 다른 지역의 방언보다 평가 절상이 된다. 그와 동시에 다른 지역 방언들은 서서히 사투리로, 촌스러운 것으로 평가절하되거나 받아들여진다. 이때, 다수의 사람은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는 언어를 선택함으로써 본인의 지위를 해당 언어의 주요 사용 집단과 동일시하려는 노력을 하는데,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한편, 남한의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에 나오는 평양말이나 중국조선어 또는 연변말은 대체로 희화화되거나 부정적인 모습이다. 때로는 허풍쟁이, 때로는 보이스피싱 범죄자, 또 많게는 무지막지한 살인자의 입에서 변형되어 뱉어지는 연변말을 듣다 보면 나도 그렇지만 연변 출신의 조선족 친구들은 화가 난다. 그리고 그렇게 반복되는 부정적인 노출은 ‘내’가 해 오던 말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남한 사람들 앞에서 고향의 말 대신 서울말을 사용하는 것은 자의에 의한 것만은 아니며 강요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해야겠다.

그리하여 정진호 교수님의 결혼식 주례에서 신랑 신부가 속한 중국조선족 사회에서 사용하는 어휘를 특별히 선택해 말씀하신 것은, 즉 일반적인 사회언어학적인 현상을 거스르는 언어 사용은 마음이 복잡했던 신부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 더 큰 감동을 주었다. 교수님의 조선족 신랑 신부와 조선족 하객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진정한 소통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교수님께서 연변과기대와 평양과기대에서 수십 년을 걸쳐 실천하신 우리 민족 간 교류와 협력에 대한 진정성은 최근 출간하신 역사 소설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교수님은 “역사와 력사를 모두 아우르기 위해”, 지문에서는 ‘역사’처럼 남한식 두음법칙 표기를 사용하고 대사에서는 당시 실제 발음으로 추정되는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력사’, 즉 북한의 표기 방식을 사용하셨다.  

정진호 교수의 역사 소설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상, 하권

북에서는 력사가 있었고, 남에서는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력사/역사는 모두 불완전하고 비틀리고 가려져 있었다. 이제 우리가 새로운 통일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분열의 근대사 속에서 나뉘었던 서로의 력사/역사를 알고 배우고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력사는 역사를 알아야 하고, 역사는 력사를 배워야 한다.
정진호(2021)의 “여명, 혁명과 운명”(상)의 “여는 글”에서

자신이 속한 지역이나 집단의 그것과 다른,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육아나 교육에서 적극 권장된다. 육아에서 말을 익히는 어린아이와 소통하기 위해 엄마들은 쉬운 말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데, 이를 ‘엄마 언어’(mother talk)라고 한다. 아이의 언어 능력을 약간 웃도는 엄마 언어는 아이의 언어 발달에 필수이며 아이와의 애착 형성에도 매우 필요하다. 또, 외국어 교육에서는 학습자의 미숙한 언어 능력을 상회하는 교사 언어(teacher talk)가 요구된다. 이 두 사례는 화·청자의 언어 능력이 다르다는 점에서 동포들 간의 대화와는 다르지만, ‘나’의 발화 속도를 늦추고 발화 난이도를 낮추는 등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의 성장을 이끌어내고 궁극적으로 원만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참고가 될 만한다.

필자의 해묵은 결혼식 얘기를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남북의 교류와 협력, 나아가 세계 7,800만 우리 민족 간의 교류와 협력도 이처럼 서로 배려하고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한 진정한 소통이 그 시작이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꺼내기 위한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포럼의 교류와 협력도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배려와 소통의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길,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으로 번영하고 발전하는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맺는다.

그리고 사족을 붙이자면, 2000년대 중반에 연변에서는 ‘금강석’보다는 뭉뚱그려서 ‘보석’, ‘반지’보다는 ‘가락지’를 더 많이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례자께서 ‘금강석 반지’가 아닌 ‘보석 가락지’라고 하셨더라면, 아마 눈물도 많지만 웃음도 많은 신부는 빵 터져서 결혼식을 망쳤을지도 모른다. 주례자께서 연변말을 완벽히 아셨던 것은 아니어서 참으로 다행이지 싶다. 

금강석 반지 또는 보석 가락지 또는 다이아몬드 반지 ^^

(한 포럼의 뉴스레터에 썼던 글을 옮겨 옴.)

이 글을 공유하기:

들레

우리의 말과 글을 배우고 가르치고 따져 보는 걸 좋아합니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14
좋아요
오~ 오~
1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1. 일반적인 사회언어학적인 현상을 거스르는 언어사용, 즉 사회적으로 우위를 점한다고 보이는 서울말이 아닌 연변말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 그것은 상대방과 대화하고자 하는 자세,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선행될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글 속의 정진호 교수님과 같은 경우는 그걸 넘어 애정을 지니기까지 하셨군요.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