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심장이 찌릿했다.
“설마? 아니겠지…”
문장 사이 사이에 숨길 수 없이 흘러나온 전공 분야에 대한 열정과 그의 특유의 절제된 언어 사용법이 되려 나에게 이 글의 저자가 그가 틀림 없다는 확신을 주었다.
“반갑네.“
나는 이내 회상 속으로 잠긴다.
루이스는 나의 첫사랑과 닮아 있었다.
그가 나에게 그의 연애사를 털어 놓을 때에도 나는 그의 얼굴에서 수 백번 수 천번이나 나의 첫사랑인 레옹을 떠올렸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세상이 참으로 좁다. 그는 벤의 후배였던 것이다.
그날 벤의 연락처를 받았고나서 나는 잠시 멍때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도 온통 루이스의 생각으로 채워진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웠던 첫사랑의 소식도 듣게 되었지만 그리움의 대상은 조용히 나의 기억을 배신하고 말았다.
”루이스. 당신에게도 나는 그 어떤 그리움의 이상에 불과할까요?“
혼이 팔려나간 듯 그의 글 앞에 앉아서 혼잣말을 주절주절 하였다.
”여보, 넥타이 좀 골라주오.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소.“
애들 등교를 마쳐 놓고 남편을 문앞까지 바래다 주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남편을 만나고 나서 나의 삶은 송두리채 바뀌었다.
늘 사랑이 멀게만 느껴졌던 나는 이와 함께 함으로써 사랑의 모양이 이토록 구체적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는 갈대 같은 나의 마음을 꾹 붙잡고 있는 늪과 같았다.
내가 퇴사를 결심 했을 때에도, 홀로 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그는 들쑥 날쑥 찾아온 나의 슬픔의 기류를 묵묵히 헤아려 주는 그런 인간이다.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남편을 정말 사랑하는가?
사랑한다면 왜 나의 마음은 아직도 미련스럽게 첫사랑의 잔상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요동치는가.
특정한 인물도 아닌 그(미련? 그리움?)이 도대체 뭐라고. 뭐라고..
혹시 남편도… 아니겠지.
아닐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의 삶에서만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취직하고 나는 작가가 아닌 “편집자“로, 결혼하고 나는 “독립적인 주체“에서 ”상호적인 공동체“로,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는 “나 자신” 보다 “어미”로서, 나의 위치를 번마다 다시 잡아왔다.
후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열정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나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귀환 된 기분이다.
<우리나무>에서 글을 올리던 전우들도 현재 모두 잘 지내려나…
문뜩 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에 대한 들뜬 마음을 잠시 옆에두고, 나도 나의 새 출발을 위해 무언가 작성하고 싶어졌다.
우리나무(연녹색) 라벨
제목:<빈집들, 아니 새 집을>
마치 삶을 다시 사는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이 나에게 진정 흥미를 줄 수 있는지 전부 清零 되었다.
어릴 적 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주변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모르겠다는 말을 들으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직장, 가정, 육아에 매일 부대끼며 살다보니 내 삶의 가치는 끝없이 외부로 부터 긍정의 의미를 부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얻은 것도 당연히 있다(많다). 그것은 바로 나만의 주관을 타파하고 주변과 어울려 지내는 법을 배워간다는 것, 타인을 헤아일 수 있는 마음의 용기가 넓어 졌다는 것, 그 무엇보다 오만스러운 자아 확신에 대해 부끄러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도 자식도 다 나의 마음대로 안 되니 ㅎㅎㅎ
지금의 나에게 예전으로 돌아가라면 과연 내가 흔쾌히 응 할 수 있을까?
수 년 동안 직장에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고 또 수 년간 육아를 함께 해오며 심신이 지쳐가던 쯔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자유”가 새로운 미션으로 다가왔다.
그 다음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 것인가?
신체 건강, 일상 밸런스, 마인드 컨트롤과 같이 무미건조 하지만 그 평범하고 규칙적인 패턴 속에서 유유히 1인 출판사의 ‘꿈‘을 한 발자국씩 이어 나아가는 것이 나의 새로운 첫 과제로 주워진 듯 하다.
예전엔 작가라는 꿈으로 가득 채워진 그 곳이 내가 영영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였다면,
현재 나의 꿈은 바로 여기에, 텅 빈 채로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연변 외곽 촌마을 사이에 방치된 텅 빈 집들 처럼 말이다.
나는 새로 이사한 이 공간의 안팍을 어떻게 인테리어 하고 무엇으로 차곡차곡 채울지, 나의 기호에 부합한 섬세한 디자인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리적인 집과 정신적인 집이 통합되는 순간,
나는 나를 지키는 동시에 타인에게 열려있는 그러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끝.
버킷리스트: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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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나의 출반사에서 나만의 소설책 1권 출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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